의정감시센터 칼럼(aw) 2012-03-19   2005

[칼럼] “연좌제? 아직도 박근혜의 8할은 박정희다”

 

“연좌제? 아직도 박근혜의 8할은 박정희다”

– 박근혜는 ‘박정희 그림자’에서 벗어날 의지가 있나?

 

 

홍재우 인제대 교수,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실행위원

 

 

부모가 모두 총탄에 비명횡사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새누리당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하 직함은 생략)의 가족사는 논란의 여지가 없이 불행하다. 어머니가 죽고 난 이후 5년간 한 나라의 퍼스트 레이디의 역할을 했지만 세상의 가장 아름다운 꿈을 꿀만한 이십대 아가씨에게 음모와 모략 그리고 압제와 저항이 가득찬 독재의 마지막 나날이 만만치만은 않았을 것이다. 아버지가 측근의 총에 사망 후 가족을 보호하던 권력의 울타리는 사라졌다. 남동생은 사업과 결혼 실패, 마약 등으로 속을 태웠고 돌출적인 행동을 하는 여동생과의 관계도 그리 원만하지 못했다. 아버지의 명예는 오로지 큰 딸이 지킬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지나간 세월과 그에게 드리운 권력의 어두운 그림자로 인해 배우자를 만나 단란한 가정을 꾸릴 기회도 갖지 못했다. 최고 권력의 자녀로 태어났지만 보통사람의 행복을 누릴 기회를 갖지 못했다. 이것이 이 시대의 장년층이 박근혜에 대해 느끼는 연민의 내용이고 대구경북에 퍼진 광범위한 정서일 것이다. 어쩌면 그 시대를 기억하는 보수적 유권자들은, 특히 박정희 덕분에 이 만큼 살게 되었다는데 털끝만큼의 의심도 없는 사람들은 박근혜의 이런 개인적 불행에 아주 조그만 부채 의식 같은 것을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

 

 

맞다. 만약 박근혜가 정치권에 뛰어들지 않고, 지금 가장 유망한 대권주자가 아니었더라면 아버지의 과거를 기억하고 치를 떠는 사람들도 그녀의 상대적 불행에 토를 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박근혜는 박정희의 생물학적 딸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박근혜의 정치에서 박정희를 뺀다면 무엇이 남겠는가? 아직까진 적어도 정치인 박근혜의 8할은 박정희다. 박근혜가 선거의 여왕이어도, 박근혜가 탄핵역풍에 침몰하는 한나라당을 구했어도, 박근혜가 또 다시 새누리당을 구할지 몰라도, 혹은 복지를 추구한다고 해도 박근혜의 정치는 결코 박정희의 정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것은 본인이 결코 아버지의 유산을 지우거나 부정하려 하지 않는다는 사실 뿐 아니라 측근도 없이 추종자를 경쟁시키고 소통도 하지 않는 박정희식 정치와 완전히 결별하지 못한 자신의 정치 스타일, 그리고 이 사회와 공동체의 현재에 대한 자신만의 진단이나 미래에 대한 자신만의 정치적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는 데서 분명히 알 수 있다. 박근혜는 어두운 권력의 그늘 아래서 보고 배운 바가 많은 노련한 정치인이며 아버지의 유산을 자신의 정치적 자산으로 교묘하게 이용할 줄 알지만 결코 자신만의 정치를 창출하지는 못했다. 여전히 박근혜의 8할은 박정희이다.

 

 

박근혜는 아버지의 독재와 유신이 자신에게 정치적 부담이자 족쇄가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을 부정하고 정면으로 맞서 극복하려는 순간 자신의 정치적 존재 가치가 없어진다는 사실 또한 잘 알고 있다. 그에게는 아버지와 반대편에 서서 아버지의 부채를 역사에서 탈거해버리는 더 큰 정치인이 될 현실적 필요도 없거니와 그럴 감정적 동기도 없다. 그래서 박근혜의 과거에 대한 인식은 그저 수사적일 뿐이다. 2004년 박근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을 찾은 자리에서 “아버지 시절에 많은 피해를 입고 고생한 것을 딸로서 사과드린다”고 했고 2007년 6월, 대선경선 출마선언에서는 “아버지 시대의 불행한 일로 희생과 고초를 겪으신 분들과 그 가족 분들에게 항상 송구스럽고 죄송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또 지난 13일에는 지역민방 초청 토론회에서 “산업화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피해를 입은 분들께 저는 항상 죄송한 마음을 가져왔다. 그분들께 제가 사과를 드린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의 말에는 역사와 정의에 대한 평가가 없고 진정성이 없다. 기껏해야 박정희의 시대는 옳았고 어쩔 수 없는 부작용이 있었을 뿐이며 이에 대해 유감스럽다는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그나마도 아껴가면서 발언했다. 또다른 가치를 위해 싸우고 억압받았던 피해자들이 옳았고 의로웠다는 인사치레조차 없었다. 그리고 말 뿐인 유감 이외에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오히려 대선후보 검증 청문회에서 “5.16은 구국의 혁명이었다”며 민주주의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한 때 민정당에 있다가 또 한 때 민주당에서 국회의원을 하기도 한 새누리당 비대위원 김종인은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유신체제에 구체적인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며 박근혜에게 책임을 묻고 사과를 요구하는 것은 연좌제의 성격이 있다는데 동의했다. “사람이 어느 부모 아래서 태어났다거나 태어난 (것에) 자유스러워야 하는데 그걸 자꾸 연결시켜 이야기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김종인은 대선을 염두에 두고 박근혜의 지지자들이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를 일러주고 있다. 박정희의 부채를 대가없이 지우려 하는 것이다. 대선가도까지 박근혜는 상황에 따라 이 사과의 강도를 조절해 가며 반복할 것이다. 정치에서 진심을 찾기는 어려우나 과거를 왜곡하고 잘못을 뉘우치지 않는 자가 정권을 잡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박근혜와 김종인의 이런 말들은 기시감(Deja vu)을 불러일으킨다. 기억해봐라. 정말 사과하는 것 같지 않게 사과하고 그런 말을 반복하면서 “자꾸 사과하는데 언제까지 사과하라는 것이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누구였는가를. “통석(痛惜)의 염(念)”같은 듣도 보도 못한 구절이나 유감과 통절함 같은 말로 치장하지만 결코 그 많은 범죄를 인정하지 않고 피해자를 연민하는 정도의 발언에 그치는 일본 정부가 떠오르지 않는가? “왜 만날 사과하라고 하는가, 일본도 식민지 조선에 잘한 것이 있고 일본의 지배는 정당한 것이었다”고 우기는 일본 극우파들의 망언과 너무 닮지 않았는가? 그들은 늘 말한다. 과거는 묻고 미래로 나가자고. 범죄의 책임은 잊으라고. 그 범죄의 결과로 그 자리에 설 수 있던 자들이 당당하게 말한다. 김종인의 발언은 후안무치하다. 박정희 정권 아래 연좌제 신음하며 인생을 망친 사람들이 들어도 분통이 터질 말이거니와 그게 연좌제라면 일본정부도 연좌제로부터 풀어주어야 한단 말인가?

 

 

오늘의 박근혜는 박정희의 유산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박정희의 그 크고 어두운 그림자 안에서 박근혜는 자신의 그림자를 만들지 못할 것이다. 앞으로도 박근혜는 박정희의 유령들에 둘러싸여 있을 것이다. 그가 집권한다면 전국 곳곳에 더 많은 박정희 동상과 더 많은 박정희 기념관이 서지 말라는 법이 없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박정희를 미화하며 민주주의를 폄하하는 내용이 수록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박근혜는 아버지를 뛰어넘을 의사도 능력도 없어 보인다. 박근혜는 말한다. “유신체제는 역사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고. 그러나 역사는 역사가들의 책에만 기록되는 것은 아니다. 역사는 시대의 살아 있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제는 박정희의 시대와 유산을 믿는 자들에게, 박근혜를 통해 그 시대의 일부를 다시 복구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역사가 어떻게 판단하는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그 어두운 시대를 결코 동경하지 않는 사람들이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80년대로 퇴보한 5년 끝에 다시 70년대로 돌아갈지 선택해야만 한다.
 

 

※이 글은 3월 18일 프레시안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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