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감시센터 칼럼(aw) 2012-06-12   2596

[칼럼] YS, DJ도 주장한 25년 묵은 주제, 결선투표제

 

2012년 대선부터 결선투표제 도입하자

[시민정치시평] YS, DJ도 주장한 25년 묵은 주제, 결선투표제

 

김진욱 참여연대 집행위원장, 변호사

 

 

엊그제 민주통합당의 당 대표 경선이 끝났다. 향후의 정치일정은 연말 대선을 준비하는 것으로 귀결될 것이다. 누가 당 대표로 선출될 것인가에 관심이 모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 밖에 특별히 관심이 간 것은 조정식 후보의 ‘연말 대선후보선출 결선투표제 도입’ 주장이었다. 비록 당사자는 6인의 최고위원 중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그의 ‘결선투표 도입’ 주장은 언론에서도 일부 반응이 있었다.

 

조정식 후보가 주장하는 내용은 민주당의 대선후보 선출 방식으로 제안된 것인데, 당 밖에 있는 시민의 입장인 필자로서는 그의 주장이 연말 대통령 선거의 당선인 결정방식으로까지 논의가 확산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요컨대 30%가 됐건 40%가 됐건 다른 후보보다 1표라도 더 얻으면 승리하는 현행의 방식을 철폐하고 국민의 50% 이상의 지지가 확인된 사람을 대통령으로 하게 하자는 것이다.

 

대통령 선출 방식을 결선투표제로 하자는 논의는 식상할 정도로 오래되었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부터 일부에서 주장하기 시작했고, 1988년 정대철 당시 평민당 의원이 ’88 이후 한국정치의 과제 토론회’에서 다시 주장했었다. 1989년 10월 김영삼 당시 민주당 총재가 부통령제 및 결선투표제의 도입을 주장했는데 김대중 당시 평민당 총재도 의견을 같이했었다. 그렇지만 김영삼 총재는 3당합당의 길로 방향을 바꾸었으며, 이후에는 평민당이 보다 적극적으로 결선투표제 도입을 주장하고, 지방선거와 14대 총선의 공약으로 내세웠었다.

 

이후 대선을 치를 때마다 결선투표제는 단골 메뉴였다. 1997년 대선에서는 조순 민주당 대표가 대통령 후보로서 이를 주장했었고, 2002년 대선에서도 노무현 후보의 공약으로 주장되었고 2007년 대선에서도 정동영-문국현 단일화 논쟁의 바깥에서 심상정 의원 등 여러 정치인, 언론인, 학자들이 결선투표제의 필요성을 주장했었다. 역사로 따지자면 25년 해묵은 주제가 바로 ‘결선투표제’의 도입인 것이다.

 

‘결선투표제’의 도입이 이토록 오랜 기간동안 주장되어 왔던 것은 현행 ‘단순1위제’방식의 시행과정에서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만한 불합리와 폐해가 발견되는 까닭이라고 판단된다.

첫째는 비민주성이다. 다수 후보자 가운데 단순 1위자가 당선되는 방식이므로 유권자는 전략투표를 강요당하게 된다. ‘의미 없이 버릴지, 될 사람 찍어줄지’를 강요당한다. 누구 찍으면 누가 된다는 말이 판을 친다. 자신이 누구를 지지하는지 투표를 통해 표현할 기회는 주지도 않고 ‘비판적 지지’를 하라고 내몰린다. 지지하는 후보에 대한 투표의 기회가 실질적으로 보장되지 않는 요소 때문에 투표율은 낮아진다. 결선투표제를 시행하는 프랑스의 금년 초 대선의 1차 투표율은 무려 79.47%였다. 한국에선 15년 전 15대 대선 때나 기록했던 수치다. 2007년 대선의 경우 프랑스 1차 83.77%, 2차 83.97%였고, 한국은 63.0%였다. 물경 20%의 차이이다. 4.11 총선 투표율은 고작 54.3%에 그쳤다. 민주주의의 위기인 것이다. 혹자는 투표에 불참하는 사람을 비난하며 불이익을 부과하는 방법을 도입해야 한다고도 한다. 현상의 원인을 제대로 분석하지 않은 주장이다. 결선투표제로써 자기 이익과 생각을 표현할 충분한 기회를 보장하는 것이 올바른 방법이며, 프랑스의 제도가 이를 증명한다.

 

둘째는, 지지자보다 반대자가 더 많은 사람이 대통령으로 되는 데에서 오는 리더십 결여 내지 안정성 부재의 문제다. 낮은 투표율과 단순다수 당선제가 결합하다보니 실질적으론 반대자가 더 많은 사람을 대통령으로 선택하는 것이 현행 제도다. 이명박 정부는 압도적 표 차이로 승리했다고 자랑하면서 출범했지만, 투표율 63% 아래에서의 48% 득표에 불과하였으므로 명시적 지지자는 전체 유권자의 30%정도에 불과한 셈이다. 전체 유권자의 70%가 그에 반대했거나 지지를 유보한 것이다. 소수자 대표이며 리더십과 안정성에 근원적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한반도에서의 삶은 아주 오랜 과거부터 ‘모든 문제는 권력’이어 왔으며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성춘향(백성)을 고통에 몰아 넣는 것도 권력(변학도)이었고, 그를 구제한 것도 권력(어사 이몽룡)이었다. 홍수, 가뭄, 대기근, 전염병으로부터 오는 고통보다도 권력의 가렴주구가 고통의 더 큰 원인인 것이 이 땅의 역사였다. 모두를 고통으로 몰아넣을 수 있는 권력담당자를 다수자 지지의 확인절차 없이 선택한 결과가 현 정부 아래에서 겪는 정부 부재의 무능과 임기 동안 내내 지속된 고통스러운 삶인 것이다. 권력과 기능이 크면 그에 합당한 지지를 확인하는 절차가 있어야 리더십을 기대할 수 있고 안정을 바랄 수 있다.

 

셋째는, 소모적 단일화 논의의 폐해와 부정의 위험이다. 우리나라의 대선을 돌이켜 보면 1963년과 1967년 박정희 후보에 맞서기 위해 윤보선 후보로의 단일화가 이루어진 이후, 1980년과 1987년 양김(兩金) 단일화 협상, 1997년 DJP 연합, 2002년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협상, 2007년 정동영·문국현 단일화 협상 등에서 보여지듯 대선 후보 단일화를 위한 물밑협상과 이벤트에 너무 많은 시간과 비용이 지불되어 왔음이 확인된다. 교육감이나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후보 단일화를 위한 탈선과 불법이 끊이질 않았다. 단일화 논의는 정책논의가 아니다. 오히려 모든 정책논의를 죽여 버린다. 선거공간에 마땅히 있어야 할 미래에 대한 설계와 합의의 기회를 말살한다. 그렇게 하고도 많은 경우 단일화는 실패했다.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정체불명의 여론조사방식이 고작이었다. 금년 대선도 다수 후보자의 출현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판단된다. 또다시 선거 종료 임박할 때까지 진행되는 단일화 논의를 지켜보아야 하는 고통을 겪어야 하는가? 지금 이순간 결선투표제의 도입을 선택함으로써 단일화 논의 대신 정책과 미래에 대한 토론과 합의가 이루어지는 선거가 되기를 절실하게 기원한다.

 

결선투표제의 도입을 주장하는 기회에 이 제도가 대통령제를 가진 거의 모든 나라에서 보편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제도란 점을 강조하고 싶다. 프랑스가 원조로서 프랑스, 폴란드, 우크라이나는 대통령과 국회의원 모두를 결선투표하고, 유럽연합(EU) 27개국 가운데 14개국 및 아프가니스탄, 아르헨티나, 오스트리아, 브라질, 불가리아, 칠레, 콜롬비아, 크로아티아, 사이프러스, 도미니카, 핀란드, 가나, 과테말라, 인도네시아, 폴란드, 포르투갈, 루마니아, 세르비아,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우크라이나, 우루과이, 짐바브웨 등이 대통령 결선투표제를 실시하고 있다. EU 대부분의 국가는 의원내각제이다. 대통령은 상징적 존재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그 상징적 존재에도 민주적 정당성은 요청되며 그것도 절대다수의 지지가 확인될 것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 이들 나라들의 제도이다. 아프카니스탄은 사실상 전시인 상태에서도 결선투표제를 실시했는데 이들보다도 못하면서 우리가 민주주의를 완성했다고 말하는 것은 지나친 자화자찬 아닌가?

 

다른 한편 우리나라에서도 결선투표제는 예외적 현상이 아니라 보편적 선거방식이다. 각급 단위 노동조합들, 의사협회 등 각종 직능단체, 농협, 대학총장의 선출에 있어서 결선투표제의 시행을 확인할 수 있으며, 주민직선으로 되기 이전의 간접선거 방식에 의한 시·도 교육감선거도 결선투표제 방식이었다. 이러고 보면 다른 어떤 나라의 대통령보다도 막강해서 ‘제왕적’이라고까지 비유되는 형편이고 민간의 각급 단체 대표 직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국민생활에 대한 영향력을 가진 우리나라의 대통령 직위를 지금껏 단순 다수로 뽑아 왔다는 사실자체는 우리나라의 민주화가 얼마나 미흡했던 것인가를 반성하게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우리 헌법은 “대통령의 선거에 관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고 규정한다(헌법67조5항). 국회에서 공직선거법의 관련 조항만 개정하면 시행가능한 일이다. 기존 제도 아래에서 가장 유리하다고 평가받는 후보자는 선거방식의 변경을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위헌논란을 제기할지 모른다. 하지만 국민의 선택을 받아야 하는 입장인 까닭에 정치 민주화에 대한 국민의 열망에 끝까지 저항하지는 못할 것이다. 관건은 국민 열망의 크기인 것이다.

 

2012년의 정치일정을 단순한 정권교체를 넘어 큰 원(願)을 도모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2013 체제’론이 있다. 그 큰 원(願)중에 민주주의 심화를 빼놓을 수 없다. 대통령의 선출에서 국민다수의 지지를 확인하는 결선투표제의 도입이 그 첫걸음이다.

/김진욱 참여연대 집행위원장. 변호사

 

 

* 이 칼럼은 2012년 6월 12일 프레시안 시민정치시평에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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