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감시센터 칼럼(aw) 2003-10-06   565

<칼럼> “저급한 정치가 인사청문회를 망쳤다”

감사원장 임명동의안 부결을 보고

어제 국회는 윤성식 감사원장 후보에 대한 인준을 압도적인 표차로 거부함으로써 노무현 대통령의 국정구상과 운용에 다시 한번 심각한 타격을 입혔다.

감사원장 임명에 대한 동의는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국회의 권한이다. 따라서 국회가 대통령의 인사권 행사에 제동을 걸었다는 것은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적 대통령제의 원칙이 우리나라에도 훌륭하게 관철되고 있음을 입증한 사례일 수도 있다.

그러나 임명동의가 부결된 과정과 경위를 살펴보면 그것이 후보자에 대한 책임 있는 검증과 납득할 만한 근거에 의하지 않고 정치적, 정략적 타산에 입각한 것임이 여실히 드러난다. 이는 국회가 스스로 자신의 권위를 훼손하고 국가 주요 공직 인사의 원칙과 엄정성을 심각하게 훼절시킨 행위이다.

이번 감사원장 임명 동의안 처리는 작년 정기국회에서 감사원장에 대한 인사청문회 제도를 도입한 후 처음 치러진 것이다. 대통령이 임명하는 핵심 권력기관장에 대한 인사청문회 제도의 확대 도입은 정치개혁의 핵심 과제 중 하나로 간주되어 왔다. 소위 제왕적 대통령에 비해서 초라할 정도로 위축되어 있는 우리 국회의 위상과 권능을 회복시켜서 대통령과 행정부에 대한 견제력을 강화시키려는 것이 청문회제도 확대의 근본 목적이었다.

국회가 주요 공직후보의 직무수행 능력, 전문성, 도덕성 등에 대해 공정하고 깊이 있는 검증을 함으로써 대통령의 인사권 행사가 자의적으로 흐르는 것을 방지하는 한편, 인사의 신중성과 객관성을 담보하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 첫 청문회와 그에 이은 동의안 처리과정은 국회 견제력 행사의 책임성과 정당성에 뚜렷한 한계를 드러냄으로써 인사청문회 제도 확대 도입의 근본 취지를 심각하게 훼손시켜버렸다.

단 하루 동안 치러졌던 이번 청문회에서 청문위원들은 파격적으로 젊고 또 감사원 개혁에 대해 뚜렷한 소신과 의지를 피력해 온 윤 후보의 직무수행 능력과 전문적 식견을 따져서 그 한계를 드러내는 데 실패했다. 청문위원들은 후보의 자질과 능력, 도덕성과 소신 등을 깊이 있게 검증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대통령과의 밀착 정도를 따진다든가, 대통령의 인사방식에 문제를 제기한다든가, 혹은 직무수행 적합성 판단에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사생활에 대해 질문을 집중시켰다. 그 결과 이번 청문회는 공직후보에 대한 자질검증의 장이 아니라 대통령의 인사 방식과 직무수행 방식에 대해 특히 야당 의원들이 시비하고 딴죽을 거는 정쟁의 장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인사청문회의 이처럼 한심스런 행태는 본회의 표결에 그대로 재연되었다. 청문회를 통해서, 또 언론과 시민단체의 검증을 통해서 도덕성, 청렴성, 개혁성, 전문성 중 어느 부문에서도 감사원장 직무수행에 장애가 될 심각한 문제가 지적되지 않은 후보자를 오직 ‘대통령의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국회는 그 인준을 거부했다. 국회의 이번 결정이 객관적인 검증을 토대로 하지 않은 것임은 명약관화하다. 오히려 국회를 장악하고 있는 두 야당의 무책임하고 감정적이고 정략적인 대응이 국회 권위를 실추시키고, 국정에 불필요한 혼선을 초래하고, 가뜩이나 불안한 정국을 더욱 위태롭게 만들어버렸다.

한국 민주주의를 위해 불행하고 서글픈 일이지만 국회의 위상과 권능을 강화하기 위한 여러 개혁들은 국회의원들 스스로 추진해 온 것이 결코 아니다. 인사청문회 제도 확대 역시 시민사회의 여러 세력들이 정치개혁을 위해 끈질기게 투쟁해 온 결과 어렵사리 얻어 낸 결실이었다. 이번 감사원장 국회 동의 과정은 시민들이 이처럼 힘들여 이룬 제도개혁의 성과조차 제대로 활용하지 못할 정도로 저급한 수준에 우리 국회와 국회의원이 머물러 있음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었다.

이번 사례가 주는 한 가지 교훈은 명백하다. 정치개혁은 법률과 제도의 개혁만으로 완성되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점이다. 아무리 훌륭한 제도라도 그 제도를 운용하는 사람이 제대로 활용하지 않는다면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천하의 명약이 잘못 쓰여질 경우 치명적인 독약이 되어버리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렇기 때문에 법제적인 개혁을 아예 포기하자는 것은 물론 아니다. 제도개혁은 인적청산과 병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인적청산은 깨어 있는 시민들의 추상같은 판단과 심판에 달려있다.

이글은 9월 27일 인터넷신문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에 기고된 글입니다.

김수진(의정감시센터 소장/이화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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