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감시센터 칼럼(aw) 2003-10-21   725

<안수찬의 여의도 파일> 지난 대선의 추억

요즘들어 부쩍 지난해 대선 때의 풍경들이 생각난다.

고백하자면 그 때, 이회창 후보가 당선될 거라 믿었다. 11월까지 그 믿음에 큰 흔들림이 없었다. 언론계 출입처제도의 여러 악폐 가운데 하나가, 출입처의 논리에 저도 모르게 경도되는 것인데, 어쩌면 나도 그 한가운데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한나라당을 출입하고 있다. (그래서 미리 일러두는 게 좋겠다. 오늘의 이야기에도 한나라당의‘체취’가 묻어 있을 수 있다)

“그래, 차라리 이회창이 되는 게 더 좋을지도 몰라.” 그런 생각을 했었다. 사람은 주변 상황을 자신에 유리한 쪽으로 해석하고, 끝내 불리한 일이 발생하면 아예 기억세포에서 지워버린다는데, 당시 상황이 딱 그랬다.

이른바 ‘대세론’에 세뇌(?)당하면서 눈앞에 펼쳐진 거대한 한나라당의 위력에 억눌려 있었던 나는 ‘이회창 대통령 시대’에 어울리는 그럴듯한 위안거리를 찾고 싶었던 것 같다.

한참 집권말기 증상으로 몸살을 앓고 있던 디제이 정권이 그 근거를 제공했다. 독자적인 집권능력이 없어 김종필까지 끌어들인 지역연합으로 출범한 국민의 정부는 끝내 각종 부패의혹으로 만신창이가 돼 있었다.

햇볕정책을 비웃는 극우세력의 준동이야 분심을 품어 당당히 상대하면 그만이지만, 이런저런 정치자금이 드나든 정황증거 앞에서는 할 말이 없었다. 모든 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이라는 금언도 별로 위로가 되지 못했다. 짝사랑했던 여선생님도 결국엔 방귀뀌는 인간에 불과하다는 깨달음 따위와 비교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러니까 그 스토리는 이렇다. 태초에 한줌도 안되는 군사파쇼독재 세력이 있었고, 여기에 대항하는 민주화세력이 있었다. 피눈물 흘리며 무수한 생목숨을 눈앞에서 떠나보내는 수십년의 인고 끝에 보수야당 세력의 대표주자인 김대중씨가 대통령이 됐다.

민주화 세력 안에서는 이런 저런 정치적 이견이 있었지만, 이들 모두의 ‘공적’인 군사독재세력에게 김대중 대통령이 주구장창 탄압당했다는 사실만큼은 토를 다는 사람이 없었다.

대선 이전에야 다들 할말이 많았겠지만, 기왕 당선된 이상 김대중 대통령 시대가 한국정치 발전에 있어 ‘차선책’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데까지 얼추 공감대가 형성됐다. 김대중을 지지하지 않은 사람들조차도 “이젠 그 사람도 대통령할 때가 됐지” 류의 정서를 광범위하게 공유했다. 이 정도면 축복받은 대통령이다.

권력이 좋아 금뺏지를 따라간 소수의 학생운동권 출신 정치인을 제껴두더라도, 당장 ‘집권세력’의 중심부에서 의미있는 변화들이 있었다. 의문사규명위도 생기고 국가인권위도 만들어지고 민주화보상심의위에 노사정위라는 것도 생겨서, 그 모양으로만 보면 과거청산과 역사복원, 노동권 보장에 대한 사회적 합의틀까지 만들어졌다.

이제 와서 디제이 정권을 향해 이러쿵저러쿵 하지만 돌이켜보면 할말이 많을 수 없다. 그때 의문사위로, 국가인권위로, 민주화보상심의위로, 노상정위로 수많은 재야 민주화 인사들이 달려가 힘을 보탰다. 대단한 권력의 단물을 나눠먹었다는 게 아니다. 그런 방식으로 상당수의 민주화 세력은 디제이 정권과 함께 이 나라의 어떤 부분, 역사의 어떤 지점을‘통치’했다.

난생 처음 공무원 월급을 받았던 민주화 인사들도 적지 않았다. 행여 오해 마시길. 이를 비꼬고 틀어 꼬집으려는 뜻은 추호도 없다. 오히려 그것이 이른바 ‘최선책’으로서의 어떤 집권의 날이 온다면, 훌륭한 경험의 토양이 될 것이라는 점에서도 백 번 박수를 보낼 일이었다.

문제는 그 정권이 만신창이가 돼 버린 데 있었다. 이를 민주화 세력(그렇게 묶을 집단이 지금까지도 있다면)의 관점에서 보자면, 그들은 김대중 정권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거나, 정확히 비판하지 못했거나, 의미 있는 압박을 가하지 않았거나, 혹은 그 세가지의 잘못을 동시에 저질렀던 것이다.

대선 정국에서 한나라당의 위풍당당한 진군을 목도했던 나에게 그 위세의 상당부분은 바로 디제이 정권의 실책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였다.

2002년 한해만 돌이켜봐도, 한나라당의 대표적 공격수인 정형근 의원의 타율은 5할이었다. 그가 터뜨린 각종 의혹 가운데 터무니없는 억측으로 밝혀진 것과 상당한 근거가 있는 지적으로 드러난 것이 반반 정도 된다는 거다. 이 지경이면 정 의원이 아무리 지긋지긋하고 징그러워도 그의 공세를 무조건 무시할 수는 없다. 더 미운 건, 그런 토양을 제공하는 디제이 정권이었다.

도덕성 컴플렉스가 김대중 정권과 민주화 세력의 천형도 아닌데, 왜 유독 이들에 이르러 더 완벽에 가까운 잣대를 들이미느냐를 따져 묻고 싶지만, 사실은 도덕과 양심의 이름으로 군사독재 세력을 단죄했던 게 불과 몇년 전의 일이므로, 결국은 스스로를 구차하게 만들뿐이다.

하여 지난해 11월까지 나의 결론은 이랬다. 김대중 정권의 정치문법과는 전혀 성격을 달리하는 새로운 정치적 대안세력을 형성하고, 이를 통해 도덕과 양심의 심급은 물론 능숙능란한 노련함과 치밀함을 겸비한 통치기술을 갖출 때까지, 또 한번의 ‘인고’는 감내할 가치가 있는 것이다….

이회창 대통령 시대가 끝내 ‘반동’으로 몰아칠지라도, 그조차도 어쩌면 또 다른 거름이 될 수 있다는 생각도 했다. 적어도 디제이 정권처럼, 군사정권의 잔당들에게 돌을 맞고서도 씩씩거리기만 해야하는 상황을 다시는 반복해선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노무현 정권이 탄생했다. 그날, 대선 개표가 끝나고 폭풍처럼 기사마감까지 마치고 난 새벽에, 선배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나는 가슴깊이 반성했다. 세상은 일개 정치부 기자가 함부로 재단하고 속단하는 것과는 달리, 그 도도한 흐름을 계속 이어가고 있음을 절감했다. 이제 ‘게임이론’의 파편으로 정치권력에 대해 논구하는 따위는 완전히 폐기처분되는 시대로 접어들었음을 절감했다. 그 요동치는 변화를 진작에 감지못하고 시시껄렁한 ‘퇴각’ 따위로 몽상을 일삼았던 시절도 그 절감 속에 묻어버렸다.

묻어버렸는데, 그렇게 한때의 착각이라 떠나보내고 겸허히 반성하며, 무식한 기자따위는 미처 깨닫지도 못했던 미지의 지평에서 한국 사회의 변화양상을 지켜보겠다고 벼르고 있었는데, 다시 그 날들이 되살아 나를 괴롭히고 있다.

우리 그때, 정말 제대로 찍었나. 다수의 선택을 받았던 대통령 후보는 단순한 집권이 아닌 통치와 국가운영에 대해 준비는 돼 있었나. 적어도 어떤 각오라도 했었나. 노무현 시대에 환호했던 사람들 가운데, 그 권력을 제대로 지키거나 올바로 비판하거나 의미 있는 압박을 가하는 이들이 정말 있긴 있는 건가.

이라크 파병 결정이 각 신문의 1면 톱에 올랐다. 정치적·외교적 수사 뒤에서 전투병 파병의 피냄새가 진동한다. 그 냄새는 이라크 양민과 그들이 지원하는 반미 이슬람 전사들과 우리의 앳된 병사와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조차 불의의 테러에 노출된 우리 자신의 피에서 퍼지고 있다.

나는 노무현 대통령 시대에 이런 피냄새를 맡게 될 줄은 몰랐다. 검은 정치자금과 반대파들을 요리하지 못하는 정치적 무능과는 전혀 다른 심급의 문제다. 김대중 정권 말기에 ‘전략적 퇴각’을 고민했던 허무맹랑한 내 상상력조차도 지금에 와서는 어디에서 나래를 펴야할지 막막하다.

아는 게 많지 않고 깨달음이 부족한, 젊은 정치부 기자는 이런 날 무슨 말을 해야할 지도 모르겠다. 요즘 들어 부쩍 지난해 대선 때의 풍경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는 것말고는 말이다.

대통령도 그때의 일들이 기억날까. 아니면 집권 8개월만에 벌써 흐뭇한 추억만 간직한 채, 지금의 처지에 불리한 기억들은 뇌세포에서 모두 지워버린 것일까.

안수찬 『한겨레』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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