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감시센터 칼럼(aw) 2017-05-13   1350

[스토리펀딩] 그들은 왜 범법자가 되었나 ⑦ 오바마의 자유, 문재인도 누리길

스토리펀딩, 그들은 왜 범법자가 되었나 7화

오바마의 자유, 문재인도 누리길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2년 대선 후보 시절, ‘친구 문재인’을 두고 이런 말을 했다.

 

“그 사람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그 친구를 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내 친구 문재인은) 말은 떠듬떠듬 유창하지 않게 원고를 보면서 읽었습니다만, 저는 제가 아주 존경하는, 나이는 저보다 적은 아주 믿음직한 친구, 문재인이를 제 친구로 둔 것을 정말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아주 존경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친구” 문재인이 대통령이 됐다. 14년 전, 두 친구는 함께 청와대에 들어갔다. 노무현은 대통령, 문재인은 초대 민정수석으로 말이다. 격무에 시달린 문재인은 2004년 2월 민정수석 자리에서 물러나 히말라야로 훌쩍 떠났다.

 

자연인으로 돌아간 문재인의 은둔은 오래가지 못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됐을 때, 문재인은 다시 친구 곁으로 돌아갔다. 문재인은 노 대통령 변호인으로 활동하며 헌법재판소의 탄핵소추안 기각을 이끌어 냈다.

 

 

문제의 중심에는

선거법이 있다

 

 

대통령 노무현의 위기, 문재인의 복귀와 방어. 이 흐름의 중심에는 공직선거법이 있다.

 

2004년 그때, 노 대통령의 직무를 정지시킨 국회의 핵심 탄핵소추사유는 선거법 위반 혐의였다. 국회는 노 대통령의 기자회견 발언을 문제 삼았다.

 

“개헌저지선까지 무너지면 그 뒤에 어떤 일이 생길지는 나도 정말 말씀드릴 수가 없다.”

 

2004년 2월 18일 경인지역 6개 언론사 합동기자회견에서

“앞으로 4년 (대통령이 일을) 제대로 하게 해 줄 것인지 못 견뎌서 내려오게 할 것인지 국민이 분명하게 해줄 것이다.(중략) 국민들이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해 줄 것을 기대한다.(중략) 대통령이 뭘 잘해서 우리당이 표를 얻을 수만 있다면 합법적인 모든 것을 다하고 싶다.”

 

2004년 2월 24일 방송기자클럽 초청 기자회견에서

 

 

 

안희정 충남도지사가 제19대 대선 방송3사 출구조사에서 ‘문재인 당선 확실’ 결과가 나온 뒤 광화문광장을 찾은 문재인 후보 얼굴에 뽀뽀를 하고 있다. ⓒ프레시안 최형락

 

야당은 노 대통령이 공무원의 정치 중립 원칙을 규정한 선거법 제9조 등을 어겼다며 공세를 펼쳤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역시 대통령이 선거법을 위반했다며 경고 조치했다.

 

노 대통령은 물러서지 않았다. 노 대통령은 같은 해 3월 4일 이병완 청와대 홍보수석을 통해 견해를 밝혔다.

 

“이번 선관위의 결정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점을 분명히 밝혀두고자 한다.(중략) 이제 우리도 선진 민주사회에 걸맞게 제도와 관행이 바뀌어야 한다. 과거 대통령이 권력 기관을(중략) 동원하던 시절의 선거 관련 법은 이제 합리적으로 개혁되어야 한다. 선거법의 해석과 결정도 이러한 달라진 권력문화와 새로운 시대 흐름에 맞게 맞춰져야 한다.”

 

여드레 뒤,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됐다. 고작(?) 노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언급한 몇 마디 말 때문이다. 대통령 직무를 정지시킨 근거가 된 무서운 선거법. 당시 노 대통령의 발언이 그렇게 잘못된, 민주주의 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었을까?

 

잠시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사례를 보자. 민주당 힐러리 후보와 공화당 트럼프 후보가 맞붙은 지난 미국 대선 때 오바마 대통령은 이런 연설을 했다.

 

“(중략) 힐러리 클린턴은 늘 우리를 위해 그곳에 있었습니다. 우리가 항상 알아채지 못할 때도 말입니다. 여러분이 민주주의를 중요하게 여긴다면, 클린턴이 모든 이슈에 대해 여러분과 의견을 같이 하지 않는다는 이유 만으로 집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그녀와 함께 이 무대에 뛰어들어야 합니다. 민주주의는 구경꾼의 스포츠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그래, 그가 하겠지’의 나라가 아닙니다. 이건 ‘그래, 우리가 할 수 있어’입니다. 우리는 이번 가을 힐러리를 승리로 이끌 것입니다.”

 

2016년 6월 27일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트럼프 후보에 대해서도 말했다.

 

“트럼프는 계획을 세우는 사람이 아닙니다. 사실 관계에 충실한 사람도 아니죠. 자신을 사업가라고 부르는데 그건 사실이지만, 저는 온갖 소송 건, 임금을 받지 못한 노동자들, 사기 당한 기분을 느끼는 사람들을 만들지 않고도 성공한 남녀 사업가들을 많이 알고 있다는 말을 해야겠습니다. 70년 평생 동안 노동하는 사람들에 대한 존중을 보여준 적이 없는 사람이 갑자기 당신의 편, 당신의 목소리가 될 거라고 믿는 사람이 정말로 있습니까?”

 

2016년 6월 27일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오바마가 한국 대통령이었다면? 당장 탄핵됐을 거다. 오바마의 연설은 전당대회여서 용서(?)가 된다고? 그럼 다음 사례를 보자.

 

 

오바마는 자유롭게

힐러리 지지

 

 

힐러리 후보가 건강 문제로 유세를 쉰 작년 9월 13일, 오바마 대통령은 아예 단독 유세에 나섰다. 그는 “비록 나의 개인적인 선거운동은 끝났지만, 올가을에 클린턴을 다음 대통령으로 당선시키기 위해 최대한 노력할 것이다. 여러분들도 나를 지지했던 만큼 클린턴을 위해서도 열심히 뛰어달라”고 시민들에게 연설했다.

 

역시 한국 선거법을 적용하면 대통령 직무가 정지될 수 있는 발언이다. 하지만 미국은 다르다. 정치 표현의 자유를 폭넓게 보장한다. 현직 대통령이 지원 유세에 나서도 관권선거이니, 선거부정이니 하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한국과 무척 대조된다. 한국은 공무원의 선거운동은 물론이고, 정치 표현의 자유까지 선거법으로 크게 제약하지만 정작 국가정보원이 ‘SNS 여론 조작’에 나서는 등 부정선거 논란이 끊이지 않으니 말이다.

 

물론 한국과 미국은 다른 사회다. 한국의 선거법이 온통 ‘금지 중심’으로 만들어진 배경에는 과거 권위정부 시절의 고질적인 관권, 부정 선거 트라우마가 있다.

 

시대는 많이 달라졌다. 공적인 직무와 상관없이, 자신의 권한과 지위를 부당하게 사용하지 않는, 개인 자격 공무원(대통령 포함)의 정치활동-표현의 자유를 규제하는 게 과연 합당한 일일까?

 

한국 대통령은 거의 대부분 정당에 가입된 상태에서 직무를 수행한다. 열린우리당 소속의 노무현 대통령이 한나라당을 지지한다거나, 새누리당 소속의 박근혜 대통령이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한다는 건 애초부터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이었다.

 

 

 

문재인 대통령. ⓒ프레시안 최형락

 

과거 노무현 대통령은 선관위의 경고에 맞서 “이제 우리도 선진 민주사회에 걸맞게 제도와 관행이 바뀌어야 한다”고 밝혔다. 그를 변론했던 변호사 문재인이 대통령이 된 지금, 안타깝게도 선거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노무현 탄핵’ 이후 13년이나 흘렀는데도 말이다.

 

한국 시민은 여전히 “나는 OOO을 지지합니다”라는 글을 써서 자기 집 대문에 붙일 수 없다. 지난 대선 때 선거운동원이 아닌 문재인 후보 지지자들은 “파란을 일으키자”고 적힌 파란색 점퍼도 입을 수 없었다. 홍준표, 안철수, 유승민, 심상정 후보 지지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국 시민은 본심을 숨긴 채 고작 “투표합시다”라는 말에 만족하면서 ‘장미대선’을 보냈다. SNS 등 인터넷에서는 그나마 자유롭게 지지의사를 밝힐 수 있지만, 오프라인에서 똑같이 했다가는 순식간에 전과자가 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연설을 보고 싶다

 

 

그만큼 한국의 선거법은 모순 투성이고, 어려우며, 비민주적이다. 말 몇 마디 때문에 대통령이 탄핵되고, 선거 때마다 괜한 범법자가 양산되는 시대는 이제 끝낼 때도 됐다.

 

5년 뒤, 문재인 대통령은 ‘친구 노무현’처럼 멋진 연설을 하는 사람으로 바뀌어 있을까?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연설을 듣고 싶다. 권한을 남용하지 않은 상태에서 문 대통령이 자기 소속 정당 대선 후보를 적극 지지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말은 떠듬떠듬 유창하지 않아도” 문 대통령의 진심을 보고 싶다.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후보 지지연설을 한다면 그 모습은 표현의 자유가 크게 신장된, 민주주의가 많이 발전했다는 결정적인 장면으로 역사에 오래 남을 것이기에 하는 말이다.

 

 

 

ㅣ 박상규 기자, 참여연대 공동기획

 

이 글은 5월 13일 스토리펀딩에 게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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