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감시센터 칼럼(aw) 2008-12-22   1129

징역을 살아야 할 것은 정창수가 아니다

징역을 살아야 할 것은 정창수가 아니다
FTA협정문 한번 안 읽고 거수기 노릇하는 금빼지들이다


이태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전 한미FTA저지범국민대책위 대외협력 및 정책사업팀장)


한미 FTA 관련 문건을 유출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전 국회의원 보좌관 정창수씨가 법원으로부터 징역 9월의 실형 선고와 함께 법정구속 됐다는 소식을 이곳 미국에서 접했다. 2006-7년 한 때 나는 한미FTA저지범국민대책위 대외협력 및 정책사업팀장으로서 국회 특위의원인 최재천 의원실의 정 보좌관과 함께 협력하여 일했고, 현재는 참여연대에서 안식년을 얻어 뉴욕 콜롬비아대, Weatherhead East Asia Institute 방문연구원으로 이 곳 뉴욕에 와 있다.  


문제의 문건유출 건은 2년 전 국회 조사과정에서 이미 사법처리 사안이 아니라고 판단했던  건인데, 새삼 징역형이 선고된 경위와 근거도 황당하기도 하거니와, 그 전후맥락이 상을 줘야 할 일에 벌을 준 겪이어서, 이 본말이 전도된 판결에 대해서는 도저히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이에 그를 변호하고 우리가 했던 일을 옹호하기 위해 작은 일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아 이 글을 기고하게 되었다. 
 


정창수, 한미FTA 협상에서 국회 체면을 세워준 유일한 보좌관


정창수 전 보좌관은 한미 FTA에 관한 한, 국회 내에서 가장 성실하고 일관되게 의정활동을 수행한 인물이다.


한미FTA 특위 자료 열람실 방문기록에서 정창수 이외의 이름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정창수 보좌관은 당시 특위 의원인 열린우리당 최재천 의원의 보좌관으로서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협상 관련 기록을 매번 빠짐없이 열람한 유일한 보좌관이다.


누구든 협상기록을 일일이 열람하지 않고 협상결과를 제대로 점검하기는 어렵다. 이 점에서 그는 한미FTA국회특위의 어떤 의원과 보좌관보다도 더 성실하고 일관되게 직무를 수행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의 활동은 의심할 나위 없이 한미FTA에 대한 국회 감독기능의 강화에 기여했고 나아가 국익의 증진에 기여했다.


특히 당시 국회상황에서 정창수 전 보좌관의 노력이 갖는 의미와 역할은 각별한 것이었다. 당시 국회의 한미 FTA 특위는 협상개시가 국회에 통보된 뒤 4개월이나 뒤늦게 2006년 6월에 구성되어, 동년 9월에야 활동을 시작했고, 20명 이내의 의원들로 구성되어 방대한 한미FTA 현안들에 대한 협상을 제대로 감독하기  매우 어렵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더욱이 정부의 대국회 정보공개 역시 매우 부실하여 1차 협상문 원본이 9월에나, 그것도 영문으로, 더구나 복사도 금지된 채 열람만 허용되는가 하면, 주요 협상방침이 실무협상 하루 전에나 특위에 보고되어 찬성 의원이 과반수를 점하는 특위 내에서도 늘 지탄의 대상이 되곤 하였다. 


당시 국회는 수세대의 경제적 삶을 좌우하고 수십 여 건에 이를 국내 제도의 개폐와 연결될 중대한 이슈에 대해 이를 다룰 내적 준비도 역량도 부족했고, 정부는 정책결정의 중요성에 걸맞은 충실한 보고의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는 상태였던 것이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 정창수 전 보좌관은 정부 보고자료 열람조차도 사실상 포기하고 있던 무기력한 국회에서 입법기관의 헌법적 의무를 그나마 온전히 실천하려 했던 독보적인 존재였다. 



시민사회와 국회를 넘나드는 독보적인 예산감시 전문가

 
그는 시민단체 “함께하는 시민행동” 간사로 활동하던 시절부터 시민참여 정부 예산낭비 감시와 관련된 전인미답의 길을 개척해왔고, 이에 대한 전문성을 인정받아 지방자치의원모임과 시민사회단체에 초청되어 수십 차례 이상의 강연을 진행한 바 있다. 또한 국회 내 각종 정부 예결산 평가 및 회계분석 관련 세미나에도 초빙되곤 하였다.


그가 시민단체 활동가 시절 기획한 ‘밑빠진 독’ 賞 캠페인은 정부 예산낭비 감시운동에 기여한 참신하고 독보적인 기획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는 재정적인 이유로 시민단체 활동을 잠시 중단하고 국회 보좌관으로 잠시 재직하는 동안에도, 불요불급한 정부 출연기금에 대한 방대한 자료를 수집하는 등의 정력적인 활동을 통해 최재천 의원(당시 열린우리당)과 원희룡(한나라당) 의원 등을 지원하였다.


그를 징역으로 몰아 간 이른바 문건유출 사건 역시 그의 우발적인 공명심이나 특정한 경제적 정치적 이해관계가 아니라 정부를 바로 세우려는 순수한 의도를 실천하는 과정에서 예기치 않게 발생한 일이었다.



기밀유출? 국익훼손? 도대체 뭘 빼돌렸길래?


한미FTA 협상을 시작할 때 정부는 “통상마찰 완화로 수출이 증대되고 일자리가 창출된다”는 점을 크게 강조하였다. 정부는 협상과정에서도 무역구제 분야, 특히 미국의 반덤핑제도의 완화를 가장 중요한 협상목표라고 발표하여 왔었다. 당시의 모든 언론도 이 분야 협상결과에 주목하고 있었다.


그런데 정부는 4차 무역구제 분과협상에서 관련업계의 15개 요구사항을 미측에 제시하였다가 미국이 반덤핑 관련법 개정 불가 입장을 밝히자 5차 협상에서 6개로 요구사항을 줄였고 이 또한 받아들여지지 않자, 7차 협상부터는 정부가 스스로 무역구제에서 양보할 수 없는 가장 중요한 쟁점이라고 밝혀왔던 ‘비합산 조치’를 공식적으로 제외하였다.


유출된 문제의 보고서는 2007년 1월에 예정된 6차 실무협상과 관련된 것으로서, 무역구제분야 핵심요구사항-비합산조치 등의 미국법률 개정-을 포기하고 이를 다른 협상의 카드로 이용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었다. 미국이 입장이 너무 강경해서 우리 측이 가장 중요한 관철목표로 삼아왔던 핵심내용을 철회하고 다른 협상분야에서의 만회를 고려하겠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유출된 문서’는 협상목표의 중대한 변경을 다루고 있었다. 



“미국 무역구제법령 하나만 바꿔도 어디냐?”던 정부의 말바꾸기
 


실무협상은 본질적으로 정부가 FTA로 얻어질 국익으로 제시한 기대목표의 범위 내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만약 실무협상 과정에서 국민에게 공표해온 목표가 불가능해졌다면? 당연히 1) 협상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하거나 2) 협상목표의 변경을 국민에게 정확히 알려서 동의를 구하는 것이 이치가 아닌가? 특히 그것이 무역구제 분야와 같이 한미FTA의 핵심쟁점에 관한 것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할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이를 투명하게 공개하여 동의를 구하기는커녕 도리어 그 의미를 축소하고 공개도 최소화하려 하였다. 정부는 대미협상 하루 전 국회 특위에 협상계획을 보고하면서, 다른 수십 건의 보고내용 중 하나로 무역구제 관련 핵심 협상목표를 포기한다는 보고를 슬쩍 끼워 넣었다. 이 보고서는 2-3시간 남짓한 특위 검토 후 회수되었다. 이 비공개 보고 문건의 단 몇 줄에 해당하는 내용 – 무역구제 협상 목표 변경-이 언론에 유출된 것이다.


같은 사안에서 미국 정부의 태도는 한국 정부의 태도와는 너무나 달랐다. 미국 구티에레즈 상무장관은 무역구제 협상에서 국회의 동의를 구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한국 측 법령개정 요구를 거절하고, 단 한 번도 여기서 후퇴하지 않았다. 결국 그는 일방적으로 한미FTA 협상은 한국산에 대한 극히 미미한 수준의 물품취급 수수료를 면제하는 것 외에 어떤 미국법률도 개폐하지 않는 범위에서 하겠다고 선언하고 의회에 최종보고서를 제출해 버렸다. 미국 통상관련법에 따르면, 무역대표부가 국회 고유권한인 법률개폐를 필요로 하는 협상을 진행하려면 국회가 위임한 신속체결권한 종료 180일전에 이를 국회에 알려야 한다. 미국 무역대표부가 이를 공표한 것은 2006년 12월 상황이다.


문건이 유출된 2007년 1월에는 이미 미국 법상 한국의 협상목표인 무역구제 관련 미국법률의 개정이 사실상 불가능해 진 상태였다. 한국정부로서는 마땅히 미국 협상대표부가 더 이상 법률개정에 해당하는 협상권한을 가지지 못한 상황이라는 점, 따라서 무역구제 협상목표가 불가능해졌다는 점을 공개적으로 알리고 이에 대해 협상을 계속할 것인지를 포함하는 중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하는 국면이었다.


정부는 이러한 노력을 회피하고 당시 박빙이었던 한미FTA 찬반여론이 반대쪽으로 기우는 것을 우려하여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어물쩡 넘어가려 했던 것이다. 그러던 차에 관련 문건이 언론에 유출되자, 이것이 정부를 자극하여 정창수 보좌관에 징역형을 선고한 최근의 송사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재경부 차관이 인터뷰에서 이미 밝힌 ‘협상기밀?’을 유출한 죄!
 


정부로서는 비록 무역구제 협상이 물 건너 간 것이 사실일지라도 그것을 통해 자동차나 의약품 같은 다른 협상목표를 관철시킬 수 있었는데 그런 협상전략이 문건 유출로 노출되었기에 국익에 타격을 입었다고 주장하고자 할 수도 있다. 재판부 역시 판결문에서 “당시 해당문서가 협상전략 등의 민감한 사안이라 의원들에게만 배부된 뒤 회의가 비공개로 진행됐다”며 “이 내용이 협상기간 중에 언론에 기사화돼 외부로 알려져 국가의 기능이 적지 않게 위협받았다”고 밝히고 있다. 일리가 있는 지적인 것 같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유출된 문건이 매우 중요한 사실을 재확인해주고 있지만 이 문건의 내용이 그렇다고 여론을  뒤흔들만한 대단한 비밀은 아니었다. 더구나 국가의 기능이 적지 않게 위협받았다는 것은 당치 않다. 당시 언론에 무역구제 협상은 이미 ‘물 건너간 것’으로 간주되고 있었다. 한미 FTA를 찬성하는 언론이나 전문가들은 정부의 기대에 부응하여 무역구제 부분 협상목표를 만회할 협상의제들을 이러저러하게 언급하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진동수 당시 재정경제부 제2차관은 아예 미국 무역대표부가 법령개폐 불가를 선언하기 전인 2006년 12월 11일, KBS1라디오 ”라디오정보센터 김원장입니다”에 출연하여 “무역구제 분야에서 우리 측 요구사항에 대한 진전이 있어야만 자동차와 의약품 등 미국 측 관심사항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 발언은 당시의 맥락에서는 ‘비합산조치’를 관철하겠다는 주장이라기보다는 무역구제 분야 협상이 자동차 의약품 등 다른 상품 협상분야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음을 암시하는 내용으로 간주되고 있었다. 


무역구제를 대신하여 자동차 분야나 의약품 협상에서 더 얻어 내겠다는 것이 그토록 중대한 기밀이라면 재경부 차관이 나와서 그걸 시사하는 발언을 한 것은 중대한 기밀누설이 아니고 뭐란 말인가? 게다가 문건이 유출된 2007년 1월은 이미 미국 대표부가 더 이상 법령개정에 준하는 수준의 협상권한 자체를 가지지 못한 상황이여서, 미국도 한국도 다른 협상 방안을 모색해야 하는 시점이었다. 한마디로 서로가 뻔히 판을 읽고 있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누설될래야 누설될 기밀도 없었고 그런 세밀한 것을 정부가 국회에 보고한 적도 없었다.   


이 모든 것은 종합할 때, 정부가 문건이 공개됨으로써 마치 협상에 중대한 장애가 초래된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당시 상황을 명백히 오도하는 것이다.



협상을 위해서라면 국민을 속여도 되는가? 그 협상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도리어 문건유출로 인해 유일하게 분명해 진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한국 협상단이 협상목표 변경에 따른 부담을 더욱 크게 느끼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부담과 불편함은 정부가 스스로 공표한 협상목표가 관철되지 못했을 때 정부가 져야할 당연한 부담이다. 더욱이 미국과 대등한 협상을 하여야 한다는 국내의 압력이 더욱 커짐에 따라 결과적으로 문건유출이 국익창출에 기여했을지언정, 국익을 훼손했다고 보기 힘들다.    


여기서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 있다. 정부가 협상의 ‘마지노선’을 국민에게 공표하는 것이 단지 상대측을 혼란케 하려는 협상수단에 불과한 것이라는 발상, 혹은 공표된 ‘마지노선’의 변경을 대외비에 부침으로써 협상의 심부름꾼에 불과한 정부를 그 주인인 국민과 여론의 문제제기로부터 보호하는 것을 ‘국익’이라고 우기는 발상의 위험성이다. 그러한 발상 자체가 국익을 구성하는 기본 토대인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왜곡이자 도전일뿐더러 그러한 발상이 현실적 힘을 얻을수록 특정 구성원의 이익을 국익의 이름으로 정당화할 위험도 현저하게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당연히 국민에게 알려져야 할 정보를 유출했다는 이유로, FTA 협상을 민주적 토론의 장으로 이끌어내는데 기여한 이, 나아가 한국정부의 협상력을 높이는데 가장 강력한 역할을 한 이에 대해 치졸한 방법으로 정치적 보복을 가하는 것을 용인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지난 금요일 법원(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10단독 신용호 판사)은 이 가당치 않은 송사에서 국민의 감시를 불편하게 여기는 안이한 정부의 손을 들어줬다. 게다가 불구속으로 수사 받아온 이에게 도주우려와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전례 없이 실형을 선고하고 말았다.


이로써 정부가 열람만 허락한 영문협상문과 모든 법률 행정 경제 분야를 망라하는 협상정보-어떤 국회의원도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은 협상문건-을 싸안고 밤을 새워 읽어가며 국민에 대한 국회의 책무를 다하려던 유일한 국회의원 보좌관은 국익을 훼손하고 기밀을 누설한 죄로 옥에 보내졌다.


법원의 이번 판결은 아무도 다시는 ‘묻지마 협상’에 제동을 걸지 못하게 하기 위해 정 씨를 괘씸죄로 다스리려던 행정권력의 나쁜 의도를 뒷받침해줬다. 이런 일을 그대로 용인하고 그 피해자인 정창수 같은 이를 외롭게 방치하는 것은 우리 자신과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을 용인하고 방치하는 일이 될 것이다.



연내처리에 거수기로 나서는 국회의원들은 한미FTA로 도대체 몇 개의 한국법령이 어떻게 바뀔지는 알고 있는가?
 


마지막으로 정창수 보좌관이 최재천 의원실에 있을 때, 나와 몇몇 연구자들이 함께 진행하던 작업을 하나 소개할까 한다. 이 작업은 사실 국회의 무능과 무지, 그리고 정부의 비협조로 마무리되지 못하였는데, 그것은 한미FTA로 인해 한국의 법령이 몇 개나 바뀌는 지 조사하는 것이었다.


올해 한해를 들끓게 했던 쇠고기 수입 문제는 농림부 장관 고시와 관련된 것이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법률이나 대통령 혹은 국무총리령을 의미하는 법령은 장관재량인 고시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입법으로서 법률은 국회가 직접 그 입법권한을 가지고 있고, 대통령령 역시 원칙적으로 국회가 규율한 법률의 범위를 넘어서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법령이 바뀐다는 것은 국민의 실생활에 대한 변화가 행정적 나아가 사법적으로 강제된다는 뜻. 이를 파악하는 것은 각계각층에 미치는 영향을 가늠하는데도 필수적인 것이었다. 특히 미국 의회가 자신의 법률은 단 한 개도 바꾸지 않겠다고 선언한 상황에서 한국은 도대체 몇 개의 법령이 바뀌는 지 확인하는 것은 한국의 국회나 정부의 당연한 의무이기도 하다고 했다.


이 당연한 점검 작업이 정부에서 미리 이루어져 협상 전에 국회에 보고되었으면 좋으련만, 2007년 1월 현재 정부는 한미FTA 협상 테이블에 올라 있는 법률의 목록도 집계하지 않고 있었고 따라서 국회에 보고도 하지 않았다. 최재천 의원실과 한미FTA 정책사업단은 공동연구작업을 통해 각종 정부 보고자료와 각 분야 전문가들의 조사를 바탕으로 각 분야 협상테이블에 총 168개의 한국 법률과 연관된 의제가 올라있다고 발표했다.


당시 정부는 시민단체들이 반대를 위한 반대를 위해 허무맹랑한 통계치를 발표하고 있다고 강력히 반발했다. 사실 시민사회단체들의 발표는 168개 법률이 변경된다는 것이 아니라, 한국 협상팀에 아무런 입법적 가이드라인 없어 미국 측 협상의제가 모두 관철될 경우 국내법률과 상충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168개 이상이라는 취지였지만, 정부는 시민사회단체에 대한 비난에만 열을 올릴 뿐 어떤 공개적인 가이드라인도 제시하지 않았다. 미국이 2006년 12월 자국 법률개정이 필요한 협상은 더 이상 안하겠다고 선언한 것과는 너무도 다르다.  


사실 정부는 시민사회와 최재천 의원실의 문제제기 후에 비로소 협상관련 법률정보를 집계하고, 법률개정사항을 최소화하려는 시도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최종협상이 마무리되기까지 정부는 단 한번도 협상으로 인해 변경될 법률안의 목록과 조항의 내역을 국회에 제출한 바 없다. 놀랍게도 입법기관인 국회는 극히 일부 의원들을 제외하고는 자기 권한 중 무엇이 협상테이블에서 거래되는지도 모른 채 아무 문제제기 없이 지켜보고만 있었다.



놀라운 헌법권한의 양도, 민생과 민주주의에 대한 융단폭격

 
2008년 정기국회에 제출된 정부자료– 이 역시 정부가 자발적으로 보고한 자료가 아니라 참여연대의 제안에 따라 이미경 의원실에서 요청해 받아낸 자료이다 –에 따르면 9월 26일 현재 정부는 한미FTA 체결로 인해 최종적으로 24개 법률이 개폐될 예정이라고 밝히고 있다. 사실 이 통계치는 검증이 필요하다. 하지만 여기에 자본시장통합법 등 FTA 수준의 개방을 예정하고 자발적으로 개방한 금융과 산업 관련 법률은 포함되지 않았다. 게다가 대통령령이 같이 국회입법 사항이 아닌 정부 위임입법이 몇 개나 바뀌는 지에 대해서는 국회에 최소한의 정보조차 제공하지 않고 있다. 지침이나 고시, 조례 등이 얼마나 바뀔 지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고 있음은 물론이다.


문제는 이들 법령, 명령, 지침, 조례 등의 개폐는 대개가 한미FTA 아래서는 우리 맘대로 다시 뜯어고칠 수 없는 불가역적인 것이라는 점이다. 더 큰 문제는 국회 내의 대부분의 국회의원들이 이걸 점검하거나 따져 보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나마 문제의식이 있는 몇몇은 “묻지마식 날치기 통과”를 막기 위해 동분서주하느라 검토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쯤되면 그야말로 놀라운 ‘주권의 양도’, ‘헌법권한의 양도’가 아닌가? 다시 말하건대, 올 봄의 촛불집회는 법률도 대통령령도 아닌, 장관고시 하나를 둘러싼 갈등이었다.


국은 한미FTA 협상으로 한국의 시행령 수준에 해당하는 사소한 조항 하나 외에 일체 변경하지 않았는데도 재검토에 재검토를 거듭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와 여당은 무엇이 바뀌는 지도 파악하지 못한 상황에서 무슨 배짱으로 연내에 이 거대하고 되돌릴 수 없는 경제통합 협상을 비준하려고 몸을 던지는지 납득할 수 없다.


더구나 지금과 같은 국제적인 경제위기 아래서는 비단 법률개폐가 없다하더라도 개방으로 인해 각계각층이 겪게 될 변화가 훨씬 더 격렬하고 불균등할 수 있다. 이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점검 없이, 심지어 그걸 시도하던 사람들을 비난하고 옥에 가두면서 누구를 위해 이 도박을 강행하려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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