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감시센터 칼럼(aw) 2006-11-17   678

<안국동窓> 한나라의 ‘의사당 투쟁’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인준 건으로 여야가 다시 격돌하고 있다. 이처럼 헌법재판소장의 국회 인준이 유례없이 여야간 극단적인 정치적 격돌로 치닫게 된 것은 물론 여권의 서투른 일처리가 빌미를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보다 중요한 원인은 헌법재판소의 높아진 정치적 위상 때문이다. 참여정부 출범 이후 정치적으로 대립되는 각종 사안이 생겨날 때마다 국회 내에서 이를 해결하지 못하고 헌재로 들고 갔고 헌재는 이제 국회를 넘어서 최종적으로 정치적 갈등을 해소하는 권위를 갖게 되었다. 대통령 탄핵 사건과 행정수도 이전 등 굵직한 사건에 대한 헌재의 판결이 그러한 권위를 확인해 주는 계기가 되었다.

포스코 점거농성사건 떠올라

이렇게 되다 보니 자연히 누가 헌재의 재판관을 맡느냐 하는 문제가 정치적으로 매우 예민한 사안이 될 수밖에 없다. 그 자리가 헌재소장이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전효숙 헌재 소장 인준 건을 둘러싼 정치적 갈등은 헌재가 정치적으로 예민한 사안에 개입하게 되면서 생겨난 불가피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도 이와 유사한 일이 재발할 가능성은 그만큼 커 보인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한나라당이 이번에 보여준 모습은 무척 실망스럽다. 이번 한나라당의 국회 점거 농성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국회의장석 앞에 붙여 놓은 현수막이다. 그 현수막에는 ‘헌법파괴 전효숙, 헌재소장 원천무효’라고 써 있다. 그 플래카드를 보면서 얼마 전 포스코 건설 노동자들이 포항의 본사 건물을 점거하고 농성에 들어갔던 일이 떠올랐다. 아무리 원내 농성이 우리 국회에서 관행화된 저지 수법이라고 하더라도 국회의원들이 마치 본사 건물을 점거한 파업 노동자들처럼 플래카드를 국회의장석 앞에 걸어놓고 투쟁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아무리 봐도 실망스럽다. 사실 건설 노동자들의 포스코 점거 농성에 대해서 가장 비판적인 입장을 보였던 것도 한나라당 의원들이었다. 국회 내 127석의 의석을 갖는 원내 제1 야당이 과연 본사 건물까지 밀고 들어가서 플래카드를 걸고 농성해야만 했던 노동자들과 같은 절박함을 갖고 있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 야당의 비의회적 투쟁은 국민의 지지를 받았다. 현실적으로 마땅히 다른 대안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선거를 통한 권력 교체가 사실상 불가능했던 상황에서 의사당 점거 농성, 단식 투쟁, 장외 투쟁 등은 모두 야당이 자신의 정치 명분과 존재를 알리기 위한 거의 유일한 수단이었다. 더욱이 여당이 차지한 다수 의석이 과연 공정한 선거로 만들어졌을까 하는 정당성에 대한 근본적 의구심이 있던 시절의 이야기다. 선거를 통한 정권교체가 가능한 지금까지도 의사당 점거가 행해지는 것은 정치 환경은 변화했지만 정치인의 의식은 여전히 그 시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국회의 권위도 생각했으면

지금과 같은 분위기라면 내년 말이면 한나라당은 집권당이 될 것 같다. 그때라면 한나라당이 원하는 인물을 헌재 소장, 대법원장으로 지명할 수 있을 것이다. 야당은 지금 한나라당이 하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그 지명에 저항할 것이고, ‘집권’ 한나라당은 이를 두고 의회주의의 파괴라고 지금 열린우리당이 쓴 것과 같은 표현으로 이를 비판할 것이다. 정치적 파국의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이제는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한나라당이 차기 집권에 바짝 다가서 있다고 생각한다면 먼저 신중하고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더욱이 아무리 생각해도 국회 의사당 내 플래카드는 좀 지나쳐 보인다. 의사당 내 플래카드 부착만으로도 미국이나 영국이라면 의회의 권위를 실추시켰다는 이유로 정치 생명에 치명적인 징계를 받았을 것이다. 한 나라의 국회의원들이 본사를 점거한 파업 노동자처럼 행동해서야 되겠는가. 집권을 꿈꾸는 정당답게 한나라당은 이제 우리 국회의 체통과 권위도 좀 생각했으면 좋겠다.

* 이 글은 11월 16일 경향신문에 함께 실렸습니다.

강원택 (의정감시센터 소장, 숭실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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