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감시센터 칼럼(aw) 2007-01-16   543

<안국동窓> 돌연한 개헌론을 접하고

사람들이 덕담을 주고받으며 새해의 희망을 만들고 있을 때, 노무현 대통령은 갑자기 개헌론을 제기했다. 그리고 세상이 잠시 소란스러워졌다. 갑자기 개헌론을 제기하다니, 도대체 그 꿍꿍이가 무엇인가? 새해 초부터 특유의 ‘깜짝쇼 초식’을 펼치는 것인가? 한나라당은 쓸모없는 정략적 발상이라고 노골적으로 비난을 퍼부었고, 이에 맞서서 노무현 대통령은 한나라당을 ‘독재정당’이라고 비난했다.

사실 개헌은 대단히 중요하고 어려운 문제이다. 무엇보다 헌법은 민주국가의 법적 초석이기 때문이다. 헌법은 민주국가의 성격과 방향을 규정한다. 물론 꼭 민주국가만 헌법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독재국가도 헌법을 내세울 수는 있다. 이승만이나 박정희의 독재는 그 좋은 예이다. 이승만의 발췌개헌과 사사오입개헌은 헌법을 놀림감으로 만들었고, 박정희의 유신헌법은 총통체제에 헌법의 허울을 씌웠다. 그리고 전두환은 박정희의 유신헌법을 물려받아 단군 이래 최대 도둑놈이 되었다.

잘 알다시피 현재의 헌법은 1987년 6월 항쟁의 결과물이다. 6월 항쟁으로 박정희와 전두환의 오랜 군부독재를 겨우 끝내고 민주화를 이룰 수 있는 길이 열렸다. 6월 항쟁으로 이룬 민주화의 가장 핵심적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 바로 현재의 헌법이다. 흔히 ‘87년 체제’라고 부르는 것도 6월 항쟁의 산물인 현재의 헌법에 따라 형성된 질서를 뜻한다. 그 정치적 고갱이는 대통령 직선제이다. 박정희의 유신헌법은 사실상 박정희가 선출한 대의원들이 체육관에 모여서 박정희를 대통령으로 선출하도록 했다. 박정희는 국민의 주권을 무력으로 찬탈한 독재자였던 것이다. 6월 항쟁의 결과로 대통령 직선제가 시행되면서 이러한 박정희 시대는 비로소 끝나게 되었다.

현재의 헌법은 박정희 시대를 끝내는 동시에 또 다른 박정희 시대를 막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즉 현재의 헌법은 ‘반독재’ 헌법이라고 할 수 있다. 독재는 너무나 무섭고 더러운 것이기에 그것을 막는 것은 우리 모두의 일차적 과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렇다 보니 부작용도 생겼다. 예컨대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의 주기가 일치하지 않는 데서 오는 막대한 선거비용과 구조적 불안정성의 문제가 있다. 1995년부터 지방선거가 실시되면서 막대한 선거비용의 문제는 더욱 더 커졌다. 또한 대통령 5년 단임제가 책임정치의 구현이나 레임덕의 방지에 불리하다는 지적도 일리가 있다.

지난 20년 동안 우리가 이룬 민주화의 성과에 주목한다면, 현재의 ‘반독재 헌법’을 ‘민주화 헌법’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87년 헌법’을 ‘07년 헌법’으로 개정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의 개헌론은 큰 문제를 안고 있다. 그것은 크게 두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진정성’이다. 왜 하필 지금 개헌을 주장하는가? 이른바 ‘정권재창출’을 위한 정략이 아닌가? 정말로 민주화의 심화를 위한 것이었다면, 적어도 2006년 여름에는 제기했어야 하지 않는가? 시민사회에서는 2005년부터 개헌에 관한 의견들을 제시했으나 이에 대해서는 그 동안 사실상 무관심으로 일관하지 않았는가? 둘째, 이른바 ‘원 포인트 개헌’이라는 내용도 큰 문제이다. 이것은 대통령의 임기를 현재의 5년 단임에서 4년 중임으로 바꾸자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렇게 해야 대통령이 안정된 국정을 수행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임기와 같은 제도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그것보다 더욱 더 중요한 것이 ‘정치력’이다.

대통령의 권한은 지금도 막강하다. 4년 중임은 이러한 대통령의 임기를 단순히 8년으로 늘리는 것으로 그칠 수 있다. 여기에 동시선거는 여당에게 유리하게 작용해서 대통령의 권력을 더욱 더 크게 강화할 수 있다. 지난 20년 동안 우리가 이룬 민주화는 사실 수구-보수세력의 온존 속에서 이루어진 ‘취약한 민주화’였다. 이런 상황에서 단순한 ‘원 포인트 개헌’은 유사 박정희 시대의 도래를 가져올 수 있다. 따라서 올바른 ‘민주화 개헌’은 권력구조 전반의 조정과 개혁을 추구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것은 주권재민과 삼권분립이라는 민주주의의 기본원리를 더욱 충실히 구현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우리가 무엇보다 시급히 이루어야 하는 것은 대통령의 임기가 아니라 국회의 구성에 관한 것일 수 있다. 현재의 헌법은 국회의원의 수를 ‘200명 이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것을 국회의원들은 ‘299명까지’라고 해석해서 현재 국회의원 수는 299명이 되었다. 우리의 인구나 국력으로 보아서 이것은 턱없이 부족한 수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국회의원들은 이 조항을 들어서 국회의원 수를 한사코 늘리지 않으려 하고 있다. 왜 그런가? 다시 말할 것도 없이 국회의원의 수를 늘리지 않아야 현재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권력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망국적 지역주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국회의원의 수를 500명 정도로 늘리고 늘어나는 국회의원은 모두 비례대표로 뽑아야 한다. 이렇게 해야 과잉대표의 문제를 해결하고 엄청나게 분화한 우리의 현실을 올바로 반영할 수 있다.

‘200명 이상’을 ‘299명까지’라고 해석하는 국회의원들이 다수를 이루고 있는 한, 이 나라의 미래는 실로 암울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엉터리 셈법은 우리의 국회가 아직도 저 참담한 ‘사사오입’의 시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개헌은 필요하다. 그에 관한 논의는 더욱 더 그렇다. 그러나 그것은 반드시 올바른 방식과 내용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헌법은 민주국가의 법적 초석이기 때문이다.

홍성태 (상지대 교수, 정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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