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감시센터 칼럼(aw) 2005-01-20   762

<안국동窓> ‘선진 한국’의 꿈

노무현 대통령이 연두 기자회견에서 ‘선진 한국’의 건설을 논하고, 이에 대해 한나라당도 일단 적극적으로 화답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제 정말 ‘선진 한국’을 향해 나아갈 수 있게 되는가? 그러나 내용을 조금 더 들여다보면 별로 그럴 것 같지 않다.

무엇보다 먼저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타협’이라는 것이 믿을 만한 것이 못 된다는 점을 지적해야 한다. 당연하게도 ‘선진 한국’을 만들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이 ‘돈’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열린우리당은 재정정책을 강조하는 데 반해 한나라당은 감세정책을 제시하고 있다. ‘선진 한국’의 에너지를 만드는 방법에서 두 정치집단은 완전히 거꾸로 가고 있는 것이다. 이 차이는 결코 단순한 차이가 아니다.

‘선진 한국’이란 단순히 총량적으로 더 잘 사는 사회를 뜻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더 많은 사람이 더 잘 사는 사회를 뜻해야 한다. 이 점에서 보자면 일단 열린우리당 쪽이 한나라당보다는 올바른 정책방향을 제시했다고 할 수 있다. 사회적 약자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펴야 하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의 감세정책이란 부유한 자들에게는 세금을 줄여주고, 가난한 자들에게는 경쟁을 강화하는 정책이다. 요컨대 열린우리당이 그나마 ‘복지사회’의 모델에 눈길을 던지고 있다면, 한나라당은 사실상 ‘승자독식의 사회’를 강력히 추구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 차이는 아주 큰 차이이다. 한나라당은, ‘선진 한국’을 위한 최소한의 개혁입법을 ‘분열입법’이라 부르며 ‘떼쓰기’를 했듯이, 이 나라를 ‘승자독식의 사회’로 만들기 위해 올해에도 변함없이 ‘떼쓰기’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열린우리당이 ‘선진 한국’을 위한 자신의 정책을 관철하기 위해 한나라당과 강력하게 맞붙을 가능성도 여전히 별로 없어 보인다. 열린우리당은 한나라당을 떠받드는 기괴한 지역주의의 위력에 기세가 눌려서 제대로 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정치적 임포텐스’의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니, 벗어나려는 생각이 조금도 없는 것 같다.

더 큰 문제는 열린우리당이 추구하는 ‘선진 한국’의 내용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제시한 ‘선진 한국’은 그저 ‘소득 2만불 사회’일 뿐이다. 여기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박정희를 떠올리게 된다. 박정희는 ‘소득 1천불 사회’를 내걸고 악랄한 유신독재를 자행했다. 그 목표는 예정보다 일찍 달성했지만, 그것은 혹심한 ‘이중의 착취’를 통해 이루어진 것이었다. 가혹한 노동자의 착취와 극심한 자연의 착취가 그것이다. ‘선진 한국’은 이런 박정희식 사회를 개혁하는 데서 비로소 나타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소득 2만불 사회’라는 총량지표를 내걸고 국민들을 동원하는 방식으로는 박정희식 사회를 조금도 개혁할 수 없다.

열린우리당에 대해 별 기대를 하지 않게 되는 것은 ‘정치적 임포텐스’ 때문만이 아니다. 열린우리당도 한나라당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박정희식 사회에서 벗어나려고 애쓰기는커녕 그 문제를 직시하는 것조차 제대로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은 다른 누구보다도 노무현 대통령이 잘 보여주었다. 연두 기자회견에서 ‘선진 한국’이라는 목표를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어떤 감흥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소득 2만불’ 운운하는 목표가 허황되어서가 아니라 그가 낡디 낡은 박정희식 사회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박정희식 선진 한국’이 도대체 가당키나 한 것인가?

사실 시민사회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선진 한국’의 꿈을 펼쳐왔다. ‘부실 도시락’ 문제 따위는 결코 일어날 수 없는 ‘복지사회’, 지율 스님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자연의 파괴 따위는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생태사회’, 모든 사람이 자유시간을 향유하며 내면의 발전을 추구하는 ‘문화사회’가 그것이다. 서구를 그 역사적 모델로 삼고 있는 이러한 ‘선진 한국’의 꿈을 수구 기득권세력은 ‘선진국병’이라고 부르며 극력 기피해왔다. 그러나 이런 태도야말로 ‘선진 한국’을 막는 ‘반선진국병’이라고 불러야 한다. 수구 기득권세력이야말로 ‘선진 한국’을 막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반선진국병 세력’인 것이다.

박정희식 착취사회는 물론이고 그것을 더욱 더 강화한 박정희식 승자독식 사회는 결코 ‘선진 한국’이 될 수 없다. ‘선진 한국’은 복지사회, 생태사회, 문화사회를 꿈꾼다. 이 꿈을 이룰 수 있는 경제적 기반은 이미 갖춰져 있다. 한국은 이미 돈이 없어서 문제가 아니라 돈이 너무 많아서 문제인 사회이다. 투기와 향락으로 흐르는 수백조원의 돈을 복지와 생태와 문화를 위해 쓸 때, 비로소 ‘선진 한국’은 꿈이 아닌 생생한 현실로 나타날 것이다.

홍성태(정책위원장, 상지대 교수)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