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감시센터 칼럼(aw) 2004-04-19   1672

<안국동 窓>17대 총선과 지역주의

이번 선거에서 한국정치의 고질병인 지역주의가 사라지거나 약화될 것인가 하는 데 대해 우리 모두는 비상한 관심을 갖고서 선거결과를 지켜보았다. 부산 경남지역에서 일부 열린우리당과 민노당 당선자가 나오고 전라도 지역에서 민주당 후보가 거의 탈락한 것은 긍정적 신호라 볼 수 있지만, 박근혜 바람을 타고 대구 경북지역에서 한나라당이 싹쓸이 한 것은 우리의 기대를 좌절시키기에 충분했다. 결국 탄핵심판/거대여당 견제/진보정당지지라는 쟁점 외에 이번 선거에서 유권자의 선택에 가장 많이 영향을 미친 변수는 역시 지역주의였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한나라당이 예상보다 많은 의석을 차지한 것은 영남 지역의 지지가 있었기 때문인데, 우리는 전라도 충청도와 달리 영남지역에서 지역주의가 여전히 완고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여러 가지 긍정적인 신호도 있었다. 우선 부산 경남 지역에서 열린우리당이 4석을 차지하고 경상도 전역에서 열린우리당 지지가 20%에서 30% 초반대로까지 나온 것은 지역주의가 크게 와해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이다. 그리고 민노당이 전국 모든 지역에서 10% 이상의 고른 지지를 얻은 것은 대단히 의미심장하다. 민노당은 노동자들이 밀집 거주하는 경남지역에서는 20% 이상의 지지를 얻었고, 대공장이 거의 없는 충청도나 전라도에서도 10% 이상의 지지를 얻었다. 민노당의 지지를 모두 민노당 정책에 대한 지지로 해석할 수 있는가의 문제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일관된 정책과 참신한 정당활동을 보여줄 경우 지역성을 극복한 전국정당이 자리잡을 수 있다는 중요한 신호라 볼 수 있다.

전반적으로 우리는 이번 선거를 통해 패권적인 지역주의와 방어적인 지역주의의 차별성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그 동안 일부 학자들이 주장했듯이 경상도 지역주의는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것이며 전라도, 충청도 지역주의는 그것에 대응하는 형태로 나온 것인데, 이번 경상도 지역의 한나라당 바람은 과거의 지역주의와는 달리 단순한 박정희 향수 혹은 특정 정치가나 후보에 대한 거부감에 기인한 것이라기보다는 권력상실과 경제불황의 위기의식 속에서 ‘살길을 도모한 행동’이었다고 볼 수 있다. 즉 서울 경기에 거주하는 경상도 전라도 사람들의 한나라당 민주당 지지는 다소 감정의 요소가 있지만 현지 주민들의 한나라당, 민주당 지지는 단순한 지역감정보다는 이들의 현실적 이해관계가 결합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지역주의 투표행동을 한 경상도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경제위기, 생활 어려움에 대한 호소가 대단히 많았으며, 지역기반이 없는 급조한 열린우리당 후보에 대한 낮은 인지도 역시 하나의 주요한 원인이었는데, 이것은 경상도 주민들이 특정 정당, 익숙한 후보에게 몰표를 줌으로써 자신이 처한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경상도의 지역주의는 경제위기(대구경제 소외론), 권력상실에 대한 박탈감을 수동적 퇴영적 방식으로 극복하려는 몸부림 (영남 대동단결을 통한 권력견제와 경상도만의 이익 추구)으로 이해할 수 있다. 선거구가 변한 일부 농촌 지역에서 자기 군 출신에 대한 지지가 나타나서 소지역주의의 양상도 드러나기는 했지만, 결국 이번 선거의 지역주의는 단순한 지역감정, 혹은 자기 고향 사람에 대한 호감으로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임을 보여주었다.

물론 호남과 충청지역의 지역주의도 완전히 퇴조했다고는 보기 어렵다. 전북지역에서의 열린우리당에 대한 압도적 지지는 정동영 대표에 기대한 기대감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고, 충청 지역의 경우 수도권 이전 효과에 대한 기대가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차기 대선에서 후보가 누가 나오는가에 따라 지역주의는 부활할 가능성이 높다. 그 이유는 한국의 지역주의가 단순한 지역감정의 결과, 혹은 영호남 대립의 문제가 아니라 중앙권력에 소외되어왔던 지방 사람들의 자기 이익 추구의 한 양상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경상도도 그렇지만 다른 지역 역시 이들이 원하는 것은 지역의 대표가 지역발전과 지역경제 활성화의 분명한 목표를 갖고서 중앙정치의 힘있는 인물(그 최고는 대통령)이 되는 것이다. 지역민의 입장에서 볼 때 계급정치나 이익집단 정치가 대단히 취약한 한국 실정에서 가용한 이익추구 전략은 힘있는 지역대표의 중앙 진출이기 때문에, 이들이 자신을 보호해주는 정당이나 정치가들에게 기대는 것이다.

결국 지역주의 자체가 지난 수십년 간의 냉전 체제 하의 우익독점의 정치, 그리고 중앙의 지방 지배의 귀결이며, 조선 조 이래의 붕당정치의 한 유산이기 때문에, 지방의 소외 그리고 사실상의 전국정당( 정책정당)이 건설되지 않고서는 여전히 위세를 발휘할 가능성이 있다. 결국 현재의 승자독식의 선거구도인 소선거구제가 그대로 유지되고 열린우리당이 시민사회에 뿌리를 내리는 등의 변신의 노력을 경주하지 않는다면 다음 대선이나 총선에서 지역주의는 또다시 완화된 형태로 부활할 것이다.

하나 덧붙이자면 지역의 시민사회 혹은 의사소통 구조도 지역주의의 부활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현재 대구와 부산에는 중앙지보다 더 영향력있는 두 지방지가 있는데 이들 신문은 조선일보 이상으로 소유구조가 비민주적이며, 보수적인 색채를 갖고 있다. 그리고 대구 지역은 한국에서도 시민운동이 가장 취약한 지역 중의 하나이다. 즉 대구 부산 사람들은 이들 보수 매체의 지배 하에서 세상의 문제를 판단하고 서로간에 의사소통을 하고 있는 셈인데, 이들이 이렇게 편향된 생각을 갖게 된 것은 바로 경상도 보수언론의 지배와도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결국 지역사회에서의 시민운동의 활성화와 언론민주화가 특정 지역을 게토화하고 이들이 건강한 판단력을 가진 시민으로 거듭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김동춘 (참여연대 집행부위원장,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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