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감시센터 칼럼(aw) 2004-04-26   1347

<안국동 窓> 탄핵심판 결정 선고, 이미 빠르지 않다

총선의 열풍에 잠시 가렸지만, 대통령 탄핵심판 절차는 계속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드디어 그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지난 4월 23일 제5차 변론기일의 결과를 종합하면, 내일(4월 27일) 심판 절차를 종결하고 곧 결정을 선고할 예정이다. 결정 선고는 빠르면 5월 초, 늦어도 5월 중순을 넘기기 전에 이루어질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꼬박 두 달 동안 멀쩡한 대통령의 권한을 정지하고 비상 상황을 자초한 것이다. 어쨌든 이미 익숙한 정상 상태로 회복할 것인지, 아니면 또 한바탕 혼란을 겪은 뒤 새 대통령을 뽑을 것인지는, 조만간 결정된다.

아쉬운 것이 있다면, 대통령의 탄핵 소추를 의결한 국회가 스스로 철회할 기회를 거의 잃고 말았다는 점이다. 국회의 재의결에 의한 탄핵 소추안 철회는 현행법으로는 여러가지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우선 철회를 위한 의결 정족수도 명확하지 않다. 일반 의결정족수에 따라 재적 의원 과반수 출석에 출석 의원 과반수 찬성으로 족한가, 아니면 적어도 탄핵 소추 의결과 동등하게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해야 하는가.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이 철회에 찬성한다 하더라도, 헌법재판소법에 따라 탄핵 소추의 철회 또는 취소가 가능하냐도 문제다. 필요한 경우 민사소송이나 형사소송의 절차를 준용할 수 있다는 규정은 있지만, 탄핵 소추 철회를 당사자의 소취하나 검사의 공소취소와 동일하게 처리하는 데는 많은 이견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 하더라도 국회의 탄핵 소추 철회는 가능하다면 그 자체로 의미가 있고, 실익도 있다. 국회는 과반수건 3분의 2건 철회를 의결하여 서면으로 헌법재판소에 제출할 수 있다. 그 철회의 법적 효력은 헌법재판소가 판단하면 된다. 철회의 심판 요건적 효력을 인정해 탄핵안을 각하할 수 있다. 아니면, 국회의 변경된 의사를 탄핵심판의 이익이 없는 것으로 간주하여 기각의 유력한 근거로 삼을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부가적으로는, 절차적 적법성과 실체적 정당성을 무시한 채 당파적 정쟁의 수단으로 의결권을 휘두른 의회 다수파의 역사적 과오를 스스로 벗을 기회란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하지만 이제 탄핵 철회는 시기를 놓친 것 같다. 총선 직후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의 논의 제안을 한나라당이 거부했을 뿐만 아니라, 묵은 국회와 새 국회 중 어디에서 처리해야 할 것인가도 간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16대 국회가 마지막으로 한번 모이기엔 억지춘향격의 어중간함이 있고, 17대 국회에 맡기자니 시일이 지체되어 기다릴 수 없다.

따라서 이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5월의 첫 번째 주나 두 번째 주에 있을 헌법재판소의 결정 선고를 기다릴 따름이다. 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심판을 두 달만에 종료하게 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노 대통령에 대한 직접 신문은 부적절할 뿐만 아니라 불필요하고, 문병욱 씨나 이광재 씨에 대한 소추위원의 증인 신청을 기각하고, 구인에 실패한 신동아 롯데쇼핑 사장에 대한 조사를 신속히 포기한 헌법재판소의 심판 절차 진행은 옳았다. 27일에 있을 양측의 마지막 구두 변론도 약 30분 정도로 제한하여 미리 권고한 것도 현명했다.

하지만 이런 진행의 과정을 두고 헌법재판소가 무조건 잘하고 있다고만 하기에는 미진한 부분이 있다. 헌법재판소가 심리를 지체없이 진행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심판 절차 초기에 의견이 개진되었다시피, 이번 탄핵심판 과정에서 소추위원 측의 사정으로 절차가 지연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국회는 탄핵 소추안을 의결하기 전에 충분히 조사를 했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헌법재판소에서 소추위원이 신청한 증인을 거의 대부분 기각한 것이다. 소추위원의 주장대로 수십 명의 증인을 모두 불러 신문했다면 어떻게 되었겠는가. 실체 없는 의혹을 앞에 두고, 정치적 쟁론이나 인신 공격을 해대며 시간을 흘려 보냈을 것이다. 그리고 얻는 결과는 두 가지뿐일 것이다. 하나는 김진흥 특별검사처럼 껍데기만 확인하는 허망함이고, 둘은 대통령 부재 상태의 정치적 공전이 대책 없이 한두 달 더 길어지는 불안감이다.

따라서, 대통령 탄핵심판의 결정 선고는 당장 행하더라도 결코 빠른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제 슬슬 늦은감이 들기 시작한다. 비록 중간에 총선이 끼여 있긴 했지만, 연속성의 의미가 있는 증인 신문 외의 변론 기일을 반드시 주 단위로 간격을 두어야 했는지는 의문이다. 헌법과 법률이 정하고 있는 헌법재판소의 업무 중 현실로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더 집중적으로 심리했어야 옳았다.

예를 들어 보자.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절차는 한 달을 조금 넘겼을 뿐이다. 미국의 대통령 탄핵 소추 의결은 하원에서 한다. 그리고 탄핵 심판 절차는 연방대법원장이 의장이 되어 상원에서 처리한다. 상원은 1999년 1월 7일 탄핵 재판을 시작하여 37일만인 2월 12일에 표결로 결정했다. 그 기간 동안 주말을 제외하고 거의 매일 심리를 진행했고, 수십 명의 증인이 증언했다. 물론 그 사이에 클린턴의 권한 행사도 정지되지 않았다.

그에 비하면 우리 대통령의 공백 상태는 너무 길다. 권한이 정지된 대통령은 잠시 무대 뒤로 사라져 헌법재판소의 선고만 기다리고 있다. 권한대행자인 국무총리가 잘 해내고 있다는 건 야당들의 정치 선전이나 다름없다. 아주 짧은 기간이나 불가피한 사유로 정상 회복이 의심스런 특별한 사정이 존재한다면 모를까, 모호한 정치적 사유가 헌법상 탄핵의 구체적 소추 사실로 둔갑한 가운데 진행되는 대통령 부재의 비정상 상태가 한 달은 넘긴다는 건 불행이다. 파병안 처리나 북한 룡천 사고 구호 또는 내각 재정비와 같은 현안도 현안이지만, 보이지 않는 비정상 상태가 두 달을 넘기면 후유증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러므로, 헌법재판소는 더 머뭇거릴 여유가 없다. 내일 절차를 종료하면, 가장 빠른 시일 내에 선고할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해야 한다. 선고가 빠를수록 우리 정치의 정상화도 빨라진다.

차병직(변호사, 참여연대 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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