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감시센터 칼럼(aw) 2004-01-29   1074

<안국동 窓> 낙선운동에 돌을 던지는 자 누구인가

낙천낙선운동의 시민사회적 정당성

바야흐로 우리사회가 또 하나의 시험대에 올라서고 있다. 오는 4월 15일 총선을 두고 하는 말이다. 하지만 올해 총선은 지난 2000년 총선과는 사뭇 다른 구도 속에 진행되고 있는 듯하다. 먼저 정치자금에 대한 수사가 여전히 진행 중이며, 민주당의 분당으로 과거와는 상이한 정당 구도 아래 총선이 치러질 것으로 보인다.

총선에 대한 시민단체의 개입 역시 지난 총선과는 다소 다르다. 2000년 총선에서 시민단체는 낙선운동에 주력했지만, 올해에는 ‘총선물갈이연대’가 당선운동을 표방함으로써 낙선운동과 당선운동이 공존하고 있다. 게다가 일부 시민단체들은 정치인 정보제공운동을 벌이겠다고 하니, 총선에 대한 시민사회의 개입이 훨씬 다채로워진 셈이다.

낙선운동과 당선운동 가운데 어느 것이 바람직한 개입이냐는 간단한 이슈가 아니다. 낙선운동이 ‘네거티브’ 전략이라면, 당선운동은 ‘포지티브’ 전략이다. 당선운동이 등장한 것에는 지난 4년간의 경험이 반영돼 있다. 당시 70%에 가까운 낙선율을 기록했음에도 정치권은 여전히 부정부패로 얼룩져 있으며, 부패 정치인을 퇴출시키는 것 못지않게 개혁적 인사를 진입시키는 것이 자연스레 새로운 과제로 부상해 왔다. 게다가 지난 2002년 대선에서 나타난 적극적인 지지운동의 경험 또한 작지 않은 자극을 줬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정치사회에 대한 시민사회의 개입을 과연 어느 정도까지 인정할 것인가에 있다. 당선운동은 낙선운동과 비교해 정치적 지향이 두드러질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시민사회의 정치적 중립성이 문제시될 수 있다. 하지만 오늘날 시민사회가 정치적으로 중립이어야 한다는 것은 사실 허구이며, 불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어떻게 보면 이 말은 시민사회는 정치에 관심을 갖지 말라는 엘리트주의적인 발상을 내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당선운동이 갖는 문제는 오히려 그 실효성에 있다. 유권자의 입장에서 보면 낙선운동과 당선운동의 차이는 그다지 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시민단체의 입장에서 보면 당선운동을 위한 전략을 모색하기 쉽지 않을 뿐 아니라, 현실적으로 지지 후보를 제외한 나머지 후보들로부터의 집합적인 반발 또한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바로 이 점에서 대다수 시민단체들이 당선운동보다는 낙선운동에 주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역사적으로 볼 때 낙선운동은 1987년 6월 민주화 운동의 연속으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6월 민주화 운동이 군사독재를 거부하고 민주주의를 열망했던 시민사회의 ‘폭발’이었다면, 2000년 낙선운동은 그동안 지체돼 온 민주주의 공고화를 위한 시민사회의 ‘부활’이라 할 수 있다. 현재 진행 중인 낙선운동은 바로 이 부활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며, 정치개혁을 위한 시민사회의 집합의지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낙선운동의 사회학적 정당성은 ‘시민불복종’에 있다. 시민불복종이란 헌법의 정신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그 정신에 어긋나는 제도나 사안에 대한 복종을 철회하는 것을 뜻한다. 한마디로 시민불복종은 민주사회에서 시민들이 갖는 최소한의 권리이며, 민주주의 국가에서 최후의 법정은 사법부도 정부도 아닌 전체로서의 국민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정치사회가 자정의 의지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정치사회를 견제.감시.비판하는 것은 시민사회가 갖는 당연한 권리이며, 또 이것은 대의민주주의와 참여민주주의의 생산적인 결합양식이기도 하다.

낙선운동에서 중요한 것은 정치적 중립성이 아니라 공정성이다. 공정성을 넘어서 과도한 당파성을 드러낸다면 시민들은 낙선운동의 대의에 공감한다 하더라도 그 참여를 유보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 점에서 시민단체들은 국민이 공감하고 납득할 수 있는 객관적인 기준과 합리적인 방법으로 운동을 전개해야 할 것이다.

최근 우리사회가 성숙한 민주사회로 가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성숙한 민주사회로 가기 위한 가장 중요한 조건은 전체사회의 조정을 담당하는 정치사회의 개혁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정치사회의 현실은 상상을 초월하는 부정부패, 전근대적인 지역주의 정치, 국민을 외면하는 반(反)민생 정치로 암울하기 이를 데 없다. 정치사회가 스스로 개혁을 거부하는데 이에 적극 개입하는 것은 시민사회의 권리이자 의무다. 낙선운동의 시민사회적 정당성은 바로 여기에 있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 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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