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감시센터 칼럼(aw) 2004-02-12   840

<안국동 窓> 5일과 10일 사이, 국회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

지난 2월 3일 ‘2004총선시민연대’가 발족하고 2월 5일에 현역 의원 중 66명, 2월 10일에 원외 인사 중 41명과 추가로 현역 의원 2명 등 두 차례에 걸쳐 모두 109명의 낙천 대상자 명단이 발표되었다. 잘 알다시피 낙천낙선운동은 너무도 심하게 썩어 자정능력을 잃은 기성 정치권을 정화하기 위한 시민들의 자구적 노력이다.

이 노력에 대해 기성 정치권은 대체로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심지어 이 노력의 정당성 자체를 의심하는 발언들도 내쏟고 있다. 그러나 낙천낙선운동은 주권재민이라는 민주주의의 원리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또한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것으로서 너무도 정당한 사회운동이다. 정작 우리가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것은 시민들이 낙천낙선운동을 벌이지 않을 수 없을 지경에 이른 우리의 한심한 정치상황이다.

기성 정치권은 너무나 썩어서 자정능력을 잃었다. 그냥 내버려둬서는 결코 맑아지지 않는다. 이 때문에 나라가 휘청거리고 있으므로 우리는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야 한다. 썩은 정치를 개혁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은 시민의 권리이기에 앞서서 의무이다. 이 의무를 제대로 달성하지 않고 권리를 누릴 수는 없다. 썩고 무능력한 자들이 정치인 행세를 하며 나라를 망가트리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이 의무를 다하는 훌륭한 방법이다.

기성 정치권은 이러한 시민의 의무와 권리는 물론이고 자신의 썩은 상태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아니, 모르는 척하면서 계속 썩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 같다. 2월 5일에 1차 낙선대상자 명단이 발표되고 다시 2월 10일에 2차 낙선대상자 명단이 발표되기까지, 기성 정치권이 한 일을 살펴보면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도대체 그들은 무슨 일을 했는가?

지난 며칠 사이에 ‘한-칠레 FTA 동의안’과 ‘이라크 파병동의안’이라는 국가중대사에 관한 치열한 논란이 있었다. 그런데 일부 의원들은 이 국가중대사에 관한 표결을 무기명으로 하자고 주장했다. 수백만 농민의 생사가 달린 문제를 처리하면서, 수천명 젊은이의 목숨이 달린 문제를 처리하면서, 정작 자신들은 익명의 그늘 속에 숨어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으려 한 것이다. 게다가 그들은 ‘양심’을 들먹이며 이런 잘못을 정당화하려 했다. 이런 파렴치한 정치꾼들이 이 나라의 운명을 책임지는 정치인 행세를 하며 국회에 들어앉아 있는 것은 참으로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기성 정치권의 자정능력을 보여줄 마지막 시도가 이른바 ‘정치개혁특별위원회’이다. 2월 9일, 이 위원회는 선거관련법 개정안에서 이른바 ‘인터넷 실명인증제’를 도입하기로 합의했다. 선거와 관련된 기사를 다루는 인터넷 언론에 네티즌이 글을 올리기 위해서는 실명을 쓰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한마디로 ‘표현의 자유에 재갈을 물리는 것’이다. 의원들이 하라는 정치개혁은 하지 않고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데 합의한 것이다.

이 위원회의 활동에서 가장 뜨거운 쟁점이 되었던 것은 선거법 개정에서 선거구와 의석수의 조정이다. 이와 관련된 국민적 소망은 정당명부식 비례대표를 늘려서 선거법을 선진화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위원회는 이 국민적 소망을 짓밟았다. 이 위원회는 선진국형 선출방식인 정당명부식 비례대표 의석을 늘리기는커녕 현행 46명인 전국구 의석수보다 최대 10석까지 줄이려고 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기성 정치권이 자정능력을 잃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

이처럼 기성 정치권은 확실히 ‘개혁의 대상’이다. 그러나 아직 최악의 사건이 남아 있다. 1차 낙천대상자 명단이 발표된 바로 다음 날인 2월 6일 한나라당은 국회에 서청원 의원의 석방을 요청하는 발의안을 냈다. 그리고 2월 9일 국회 본회의에서 한나라당은 의사일정에 상정되어 있지도 않던 ‘서청원 석방요구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그것도 무기명투표로. 이러한 ‘2·9 망동’을 통해 한나라당은 ‘방탄국회’에 이어 ‘석방국회’라는 신조어까지도 만들어냈다. 서청원 의원은 한화그룹으로부터 10억원의 불법자금을 받아 개인적으로 유용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제 이 나라의 최대당인 한나라당은 ‘차떼기당’을 넘어서 노골적인 ‘비리비호당’이 되어 버렸다.

기성 정치권에는 희망이 없다. 기성 정치권은 갈아엎어야 할 자갈밭일 뿐이다. 이 상태로는 아무리 씨를 뿌려도 싹이 돋지 않을 것이다. 희망은 오직 시민의 참여에만 있을 뿐이다. 그리고 낙천낙선운동은 시민의 참여를 이루는 훌륭한 방법이다. 기성 정치권을 엄정하게 심판해야 한다. 시민의 힘으로 저들을 바꿔야 한다.

홍성태(참여연대 정책위원장, 상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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