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감시센터 칼럼(aw) 2004-03-19   889

<안국동 窓> 법률가들이여, 더 이상 법을 비틀지 말라.

사상초유의 대통령 탄핵소추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를 둘러싸고 논란이 분분하다. 하지만 법적인 판단은 지극히 간단하다. 적지 않은 법률가와 법학자들이 거듭 밝힌 것처럼, 이번의 탄핵소추는 법적인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것이다.

다시 한번 정리해보자. 헌법상의 요건은 대통령이 “그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이다. 그리고 야당은 대통령의 선거법 위반과 측근 비리와 경제 파탄에 의해 그 요건이 갖추어졌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우선, 기자의 질문에 대해 4.15총선에서 “열린우리당에 표 줄 수 있는 일이 있으면 합법적인 모든 것을 다하고 싶습니다”라고 대통령이 답변한 것은 선거법 위반이 아니다. 선관위도 밝혔듯이 대통령은 “광범위한 정치활동”을 할 수 있는 특수한 공무원이다. 그러한 대통령이, 예를 들어 관권선거를 획책하는 구체적인 행위를 했다면 모르되, 자타가 공인하는 여당을 위해 “합법적인 모든 것”을 하고 싶다고 기자에게 답변한 것을 선거법 위반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한 걸음 물러나 그 답변이 선거법 위반이라고 하더라도 곧바로 탄핵소추의 요건이 충족되는 것은 아니다. 법을 해석할 때는 법체계 전체를 고려해야 한다. 헌법상 대통령은 국민의 직접선거에 의해 선출된 국가원수이자 행정부 수반이자 국군통수권자로서 강력한 권한을 가지고 있고, 그 때문에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저지르지 않는 이상 재직 중에는 형사상의 소추도 받지 않는다. 이와같은 대통령의 막중한 지위와 대비시켜 볼 때, 위의 답변이 대통령을 파면할만큼 중대한 헌법이나 법률 위배라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측근 비리와 경제 파탄에 관해서는 길게 이야기할 필요도 없다. ‘측근’ 비리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대통령’이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것이 아니다. 경제 파탄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정책의 문제이지 헌법이나 법률의 문제가 아니다.

이것이 ‘법적 상식’이다. 헌법과 법률을 아무리 비틀어도 탄핵소추의 요건을 충족시킬 수 없다. 따라서 이번의 탄핵소추안에 대해 법과대학 강의실에서 투표를 했다면 100% 부결되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3명이나 되는 국회의원들이 가결시켰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그 중 30여명이 판사, 검사, 변호사 출신이라는 사실 앞에서는 법학도의 한사람으로서 차마 고개를 들 수가 없다.

‘정치적 결단’이었다고 변명하고 싶을지 모른다. 물론 그들은 선거를 통해 정치적 책임을 추궁당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법치국가에서 애당초 헌법과 법률에 입각하지 않은 정치란 있을 수 없다. 게다가 국회의원은 단순한 정치가가 아니라 ‘법을 세우는’ 기관의 구성원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법률가들은 정치적 책임 이전에 법률가로서의 책임을 지지 않으면 안된다. 합법적인 이유없이 대통령을 파면하려고 하는 것은 법률가에게는 그저 항상 있는 사소한 실수가 아니라 기본 자질에 관련된 치명적인 잘못이다. 솔직하게 무자격을 인정하고 공적인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이 룰을 존중해야 하는 법률가의 도리를 다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오히려 ‘법적 상식’에 어긋나는 주장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탄핵소추가 법적인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탄핵은 헌법에 의한 절차”라고 강변하는 서울, 경기, 인천의 자치단체장들에 대해서는, 그들이 법률가가 아니라는 점을 참작하여 그나마 D-를 줄 수도 있다. 하지만 판사 출신의 국회의원이 “탄핵사유는 줄이고 줄여도 책자로 만들 정도”라고 한 데 대해서는 F 말고 달리 줄 수 있는 점수가 없다.

법률가들이여, 더 이상 법을 비틀지 말라.

김창록(사법감시센터 실행위원, 부산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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