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감시센터 칼럼(aw) 2011-11-07   2736

[칼럼] 구시대적 선거법 앞에 유권자의 권리는 없다

구시대적 선거법 앞에 유권자의 권리는 없다

 

 


사례1. 트위터 상 낙선대상자 게시, 벌금 100만원

 

지난 10월 14일, 어느 트위터 이용자는 사전선거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벌금 100만원을 선고받았다. 대통령에 대한 욕설을 연상시키는 아이디(2mb18noma)를 써서 이미 방통심의위원회가 계정을 차단한데다 표적수사 논란까지 일었던 사람이다. 그가 했던 것은 그저 내년 총선에서 당선되지 않았으면 하는 국회의원 이름을 트위터에서 거론한 일, 이른바 ‘트위터 낙선리스트 게시’다. 총선 11개월 전에 한 명의 개인이 낙선대상자 명단을 거론하는 행동이 피선거권을 박탈할 만큼 중한 형을 선고해야 할 일일까? 그가 올린 낙선대상자들이 총선에 출마하기는 하는 걸까? 정치인에 대해서는 아무리 화가나도, 혹은 지지하고 싶어도 아무말도 하지 않고 참고 있어야 할까? 도대체 알 수 없는 일이다.

 

 

사례2. 무상급식 활동가, 벌금 200만원 선고

 

서울시장이 새롭게 바뀌면서, 내년부터는 서울시내 초등학교 무상급식이 전면 실시된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그러나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끝난 바로 다음날, 무상급식 운동에 앞장섰던 어느 활동가는 200만원의 벌금형을 최종 선고받았다. 배옥병 친환경무상급식연대 상임운영위원장은 이미 10년이 넘게 무상급식 운동을 해왔고, 지난 지방선거에서는 각 정당과 후보자에게 해당 정책을 채택할 것을 요구하는 캠페인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당시 서울시정을 책임지고 있었던 오세훈 후보와 한나라당을 비판했다는 것이 선거법 위반 판결의 요지다. 선거만큼 정책 채택을 활발히 요구할 수 있는 시기가 있을까? 공약 채택을 요구하면서 이에 대해 소극적인 ‘후보자’와 ‘정당’의 명칭을 거론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닌가? 정책캠페인은 허용되지만, 후보자와 정당을 거론하면 선거법 위반이라는 판결, 결국 정책캠페인·공약채택 운동은 하지 말라는 말이다.

 

 

사례3 선관위, 유명인사는 투표독려도 금지

 

숭어가 뛰니 망둥이도 뛴다고 했던가? 10·26 재보궐 선거를 이틀 앞두고, 선관위가 황당한 자료를 연이어 발표한다. ‘선거일의 투표인증샷에 대한 10문 10답’, ‘SNS관련 선거일의 투표참여 권유·독려활동시 유의사항‘이 그것이다. 제목은 그럴싸해 보이지만 선관위의 의도는 분명해보였다. “이른바 ‘정치적 성향을 가진 유명인사’는 선거당일에 투표독려를 하지 말라!” 투표독려에 앞장서야 할 선관위가 투표독려활동을 단속하다니? 선관위는 SNS에서 풍자와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해 버렸다. 누군가가 투표독려를 했을 때 유권자가 ’선거운동으로 인식‘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조금이라도 드러낸 사람은 투표하라는 말도 하면 안 되는 걸까? 선관위가 마음만 먹으면 투표독려를 선거운동으로 단속할 수 있으니 이런 무소불위의 권력이 없다.

 

 

구시대적 선거법, 성숙한 유권자를 옭아매다

 

현행 선거법은 지금으로부터 17년 전인, 1994년에 만들어졌다. 문제는 ‘돈은 묶고 입은 푼다’는 공직선거법의 취지가 오롯이 ‘묶는 것’만을 강조하다보니 ‘국민의 입도 묶고, 손발도 묶고 있다’는 데 있다. 앞서 언급한 사례들은 예시에 불과하다. 이미 2000년 총선연대의 낙천낙선운동 규제, 2004년 패러디물 규제, 2007년 인터넷 UCC 대대적 단속, 2010년 4대강·무상급식 캠페인 규제, 트위터 규제, 2011년 SNS 투표독려활동 규제 등 시민들의 참여가 폭발하는 시기마다, 선거법은 낡은 법조항에 근거한 규제로 수많은 시민들을 범법자로 만들었다.

현행 선거법에서 가장 대표적 독소조항이라 평가받는 93조 1항은 ‘선거 180일 전부터 후보자·정당에 대한 지지·추천·반대의 내용이나 정당 명칭, 후보자의 성명을 나타내는 제반 문서 (인터넷·SNS 포함)를 금지’하고 있다. 사실상 선거 6개월 전부터 후보자와 정당에 대한 언급을 포괄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것이다. 내년 총선이 4월이니 이미 10월 14일부터 총선에 출마할 것으로 예상되는 후보자나 정당에 대해 말할 때는 표현 하나하나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내년에는 총선·대선이 연이어 있고, 통상 재보궐 선거가 1년에 2번씩 있으니 6개월 기한을 적용하면, 유권자는 1년 내내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한다. 보다 큰 문제는 선거법 위반에 대한 일말의 두려움이 결과적으로 자기검열로 이어진다는 데 있다. 내가 내 생각을 말하는 것을 주저할 때 ‘정치적 의사 표현의 자유’에 기반한 민주주주의의 근본 토대는 너무나 쉽게 무너져버린다. 누가 범법자가 되기를 원하겠는가? 구시대적 선거법이 성숙한 유권자를 옭아매고, 우리 민주주의의 토대를 갉아먹고 있다.

 

 

유권자에게 자유를! 선거를 축제로 만들기 위해 선거법을 바꾸자!

  

선거는 ‘민주주의 꽃이자 축제’라고 한다. 그러나 정치적 의견을 말할 수 없고 토론할 수 없는 선거는 축제가 될 수 없다. 앞서 언급한 선거법 93조 1항에 대해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는 헌법소원을 제기한 바 있고, 대표적 보수 지식인(?)인 지만원씨는 ‘전근대적 코미디 악법 공직선거법을 고쳐라’라고 외치고 있다. 이미 규제 중심적 선거법의 문제는 좌·우, 진보·보수의 문제가 아니라 시민적 권리에 대한 공통의 요구가 된지 오래다.

지난 6월, 50여개의 시민단체와 네티즌은 선거법 개정을 위해 ‘유권자 자유 네트워크(준)’라는 모임을 꾸려 활동을 시작했다. 이를 통해 △피해 시민·네티즌에 대한 법률지원 활동과 △유권자 표현의 자유를 위한 시민 입법운동을 펼쳐나가고 있다. 당장 재보궐 선거 이후에 본격화될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의 선거법 논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이다. 내가 원하는 정당·후보자를 지지하고 비판할 권리, 내가 원하는 정책을 호소할 수 있는 권리, 누구에게라도 자유롭게 투표를 권유할 수 있는 권리. 이것은 과도한 요구가 아니다. 선거가 축제이기를 원하는, 민주주의를 당연한 것이라 생각하는 우리 시대의 상식이다. 유권자의 자유, 축제같은 선거를 위해, 더 이상 주저하지 말고 구시대적 선거법을 개정하자!

● 황영민(유권자자유네트워크(준) 사무국, 참여연대)


 

 

※ 이 글은 한국여성민우회 홈페이지(http://www.womenlink.or.kr/)에 게재한 칼럼입니다.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