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감시센터 칼럼(aw) 2014-02-12   2487

[칼럼] 후진적인 ‘사실상 정당허가제’ 위헌 결정을 환영하며

 

후진적인 ‘사실상 정당허가제’ 위헌 결정을 환영하며

[시민정치시평]거대 정당 특혜성 선거제도 개혁해야

 

정하윤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실행위원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이후 2% 이하의 정당 득표율을 획득하여 정당 등록이 취소된 녹색당, 진보신당, 청년당이 2012년 헌법재판소에 취소된 정당의 동일 당명 사용금지에 대해 헌법소원 청구서를 제출하였다. 그리고 2014년 1월 28일, 헌법재판소는 득표율 2% 미만 정당의 정당 등록 취소와 일정 기간 당명 사용금지를 명시한 정당법 제44조 제1항 제3호는 헌법에 위배된다는 위헌 결정을 내렸다. 이 결정은 신생 군소정당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하여 정치권 진입의 장벽을 낮추었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판결이라 할 수 있다.

 

사실 외국과 비교할 때, 한국 정당의 결성과 활동의 자유는 제한적이다. 프랑스, 미국, 일본 등의 국가에서는 정당법이 존재하지 않으며, 정당을 넓은 의미에서 정치단체로 파악한다. 정당 설립 요건에 대한 특별한 규정이 없으며, 정당을 설립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정치적 활동을 표명하고 등록하기만 하면 정당으로 인정받는 등 진입 장벽이 존재하지 않는다. 영국의 경우, 선거에 출마할 정당이라는 신고만 하면 기존 등록된 정당 명칭과 동일하거나 혼동할 우려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두 정당으로 등록할 수 있으며, 정당이 스스로 명부에서 삭제해달라고 신청하면 등록이 취소된다. 정당법이 존재하는 독일의 경우에는 정당 설립 요건에 시·도당이나 지구당, 당원의 수 등이 명시되어 있지 않으며, 선거에서 유효투표 총수의 0.5% 이상을 획득하거나 최근 세 번의 선거에서 1% 이상 득표하기만 하면 보조금을 지급받으며, 정당 등록 자체가 취소당하지 않는다. 즉 대부분의 해외 사례를 살펴보면 정당 결사의 자유가 보장되고, 등록이 용이하며, 취소도 엄격하지 않다.

 

이번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정치권 진입 장벽이 낮아지기는 하였지만, 기득권과 다수 중심의 한국의 정치제도와 구조에서 신생 군소 정당의 생존은 쉽지 않다. 정당이 존재감을 가지고 대표성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국가로부터 정당 지위에 대한 공식 인정을 받아야 하고, 경쟁을 위하여 선거 공간으로 진입해야 한다. 그런데 거대 주류 정당이 자리 잡은 한국의 정치제도와 구조에서 신생 군소 정당은 경쟁의 장으로 들어가기도 전에 제한을 받는다.

 

현행 헌법에서는 정당설립의 자유와 복수정당제 보장이 모두 명문으로 규정되어 있다(헌법 제8조). 그러나 하위 법인 정당법에서는 정당 등록 제도와 등록 요건을 명시한 일정한 조직 기준을 요구하고 있으며, 이번에 위헌 결정을 받은 정당 등록 취소 제도를 통해 정당의 존립과 활동을 제한하였다. 법정 시·도당 수를 명시한 정당법 제17조와 시·도당의 법정 당원 수를 명시한 제18조는 정당 등록 요건을 규정한 것으로 법정 안정성에는 기여할 수 있지만, 일정한 규모 확보를 요건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실상 정당 허가제와 다를 바 없다. 또한, 중앙당과 시·도당의 구성과 중앙당의 등록을 명시한 정당법 제3, 4, 6조 역시 군소 정당과 지역 정당을 배제하고 전국적 정당 조직을 확보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는 점에서 결사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있다.

 

이와 같은 정당법의 정당 등록과 취소 제도는 신생 정당이나 지역 정당 등이 정치권으로 진입하는 것을 가로막음으로써 다양한 소수 의견들이 정치적으로 결집하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고, 기존 정당 체계를 고착화하는데 기여한다고 볼 수 있다. 즉 현행 정당법은 1962년 제정된 이후 여러 차례 개정이 이루어졌음에도, 여전히 군사정부 시기의 정치결사와 정치 활동의 자유를 포괄적으로 제한하는 원리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기존 거대 주류 정당들은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만을 추구하기 때문에, 불공정한 정치관계법을 개정하는 데는 무관심했다고 볼 수 있다.

 

신생 군소 정당의 정치권 진입을 보장하고, 더 나아가 정당의 자유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정당 설립 요건을 완화하고, 중앙 정치 중심의 구조를 변화시키는 방향으로 정당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 정당은 국민의 지지를 통해 선거에서 승리하여 정권을 획득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따라서 선거 과정을 통해 복수의 정당이 정권을 획득하기 위하여 서로 경쟁하도록 하면서, 정권의 정통성을 보장하고, 정권 교체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 중요하다. 정치 세력 간 경쟁이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정당 설립이 자유로워야 하고, 경쟁에의 참여가 가능해야 하며, 경쟁에서 균등한 기회를 보장받아야 한다. 조직으로서의 정당이 결사의 자유를 제한받을 뿐만 아니라 공정한 경쟁의 기회마저 박탈당한다면 이는 기회의 평등에 어긋나며 민주주의의 원리에도 벗어난 것이기 때문이다.

 

정당법 개정과 더불어 소수 정당의 정치권 진입에 가장 큰 장벽이라고 할 수 있는 선거제도 개정도 고려해야 한다. 현행 선거제도는 비례성이 약한 소선거구 단순다수대표제로 기존 거대 정당은 과다 대표되고, 소수 정당은 과소 대표되도록 만든다. 따라서 신생 군소 정당이 정치적 대표성을 가지고 실질적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정치 구조와 제도 전반을 개혁할 필요가 있다. 정치 구조와 제도는 ‘국민의 자발적 조직’으로서의 정당이 결성되고 활동하며 경쟁할 수 있도록 자유롭고 공정한 맥락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개혁은 국민 다수의 의사뿐만 아니라 소수의 의사가 제대로 전달되도록 정당의 대표성과 다원성을 보장하는 가운데 정당 기능을 강화하고 정당 간 경쟁을 활성화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민주주의가 다른 체제보다 나은 이유는 다양성을 허락하고 비판을 허용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원칙이 말이나 글자 상태로만 존재해서는 안 된다. 정치제도와 구조 개혁이 중요한 이유는 자유로운 결사와 참여를 통해 공정하고 공개적인 경쟁을 실현하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야만 형식이 아닌 실질적인 자유와 평등을 누릴 수 있다.

※ 이 글은 2014년 2월 12일자 프레시안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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