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선거법에 막혀 있는 민주주의

선거법에 막혀 있는 민주주의

 

박근용 / 참여연대 공동사무처장

 

 

4·19혁명은 언제부터 그렇게 불렸을까? 87년 6월항쟁은 또 언제부터 고유명사처럼 정착되었을까? 요즘 누구든지 붙잡고 물어보고 싶은 사소한 궁금증이다. 박근혜 대통령을 파면시킨 지난 수개월의 전국적 시민행동은 뭐라고 역사책에 기록될까? 그냥 촛불시민혁명일까? 최근까지 가장 많이 쓰이는 방식을 일단 따라보는 것도 방법일 것 같다.

 

촛불시민혁명은 뭐니 뭐니 해도 민주주의 회복, 국민주권 회복의 열망이었다. 더 나아가 시민이 주권자이고, 주권자의 기대를 저버리는 국민의 대표는 징치(懲治)의 대상임을 보여주었다. 민주주의의 기운이 살아 있음을 보여준 역사적 사건이었다. 그런데 우리의 민주주의 기운은 계속 이어질 수 있을까? 개탄스럽게도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와 관련한 규정을 담은 공직선거법 때문에 민주정치의 숨통은 반쯤 막혀 있다. 반쯤 열린 숨통 때문에 답답함은 덜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그 덜 열린 반쪽 숨통은 민주정치의 발전을 더디게 하고 있다.

 

정치참여, 투표가 전부가 아니다

 

우리 정치는 대의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물론 참여민주주의, 직접민주적 요소를 가미하고 있고 앞으로 보강하겠지만, 기본 구조는 대의민주제다. 대의민주제가 껍데기에 불과하지 않으려면, 무엇보다 대의기관인 대통령과 입법부 구성원을 선출하는 선거과정에 최대한 많은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게 민주정치의 대원칙이다.

 

무엇이 ‘정치참여’인가. 투표는 정치참여의 기본이다. 최대한 많은 이에게 투표권을 보장하여 선거에 참여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민주주의의 역사는 참정권 확대의 역사라는 말은 투표할 수 있는 사람의 범위를 확대했다는 말이다. 그런데 만18세 시민에게도 투표권을 주자는 주장은 그렇게 못하겠다는 정치인들이 세운 반대 장벽을 넘지 못했다. 그들은 스스로 만19세 이상 국민만 대표할 것임을 자랑하는 셈이다. 더 많은 국민의 대표가 되겠노라고 나서지 못하는 그들은 ‘국민 대표성’을 온전히 갖추었다고 말할 자격이 없다. 우리 국회의원과 대통령의 대표성은 19세 이상 시민에게만 투표권을 인정하는 선거법 앞에 멈추어져 있다. 그만큼 민주정치도 멈추어 있다.

 

그런데 투표가 정치참여의 전부인가? 투표뿐만 아니라, 정치에 대한 자유로운 견해를 표명하는 것이야말로 정치참여의 기본이고 핵심이다. 투표는 4년 또는 5년마다 한번씩 의사를 표현하는 방법이며, 타인에게 영향을 주지 않는, 투표하는 개인의 선택 행위다. 이에 반해 정치적 의사표현 행위는 시기에 구애됨 없이 언제든지, 그리고 공동체 구성원들과 의사를 교환하는 과정을 거쳐 더 나은 판단과 선택을 본인도 그리고 다른 이들도 할 수 있게끔 촉진하는 행위이다. 그래서 우리 헌법에서도 민주정치를 위해서라도 표현의 자유는 특별히 보호해야 하는 기본권으로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공직선거법은, 선거일 180일 이내에는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의사표현을 금지하고 있다.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주권을 위임받겠다고 하는 정당과 후보자에 대한 갑론을박은 더 치열해져야 하는 것 아닌가? 그 치열한 갑론을박을 후보자와 정당들만 하고, 시민들은 입 닫고 구경만 하거나 의사표현이 억제되어야 하는가? 인터넷에서 후보자에 대한 호불호를 표현할 기회가 보장되었다지만, 당내 경선을 넘어 본선 후보자들을 두고 비판을 했다가는 ‘후보자비방죄’라는 선거법에 걸려들어 고초를 겪는다. 비방과 비판의 차이가 무엇인지 누구도 정확히 말하지도 못하면서 사실을 근거로 한 풍자까지 비방으로 단속한다. 심지어 아예 형사처벌 당하기 전에 게시물이 삭제되어버리기도 한다.

 

18세 투표권 보장을 반대한 자유한국당을 규탄한다는 피켓을 들고 지금 새누리당 앞에 가 1인시위를 해보라. 당장 선관위에서 단속한다. 40일 앞으로 다가온 선거에 출마할 후보 또는 정당의 이름을 적은 피켓을 들고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하고 있으며 이것은 선거법 90조 위반이라고 말할 것이다.

 

사드 배치에 찬성하는 바른정당 후보에게 투표하지 맙시다,라는 유인물을 사드 배치 지역인 성주의 주민들에게 나눠줘보라. 경북선관위의 단속반이 뜬다.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하고 있으며, 유인물 배포는 93조 1항 위반이라고 설명 들을 것이다. 문재인 후보가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막기 위한 차별금지법 제정에 소극적이라고 비판하는 내용을 담은 배지나 소품을 가방에 달고 다니고 주변 친구들에게 나누어줘보라.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표찰은 안 된다고 한 선거법 68조와 90조 위반으로 단속된다.

 

선거법 개정으로 민주정치의 확장을

 

왜 시민은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했다가는 단속당하고 처벌받아야 하는가? 시민이 그냥 구경꾼으로 있는 선거가 민주주의의 꽃인가? 우리 선거법은 선거일에 다가갈수록 민주주의를 멈추는 선거법이다.

 

민주주의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민주정치를 희망한다면, 시민의 정치참여를 가로막는 살벌한 선거법을 바꾸는 것이 매우 시급하다. 참여연대, 한국여성단체연합, 민주노총, 민주사회를위한 변호사모임 등이 참여하고 있는 ‘선거법개혁공동행동’에서는 국회의원들과 대선후보들에게 어서 바꾸자고 촉구하고 있다. 웹사이트(www.changeelection.net)에서는 대선후보들에게 시민메시지를 보내는 온라인행동도 진행 중이다.

 

개탄스러운 현실을 하나만 더 말하고 글을 맺는다. 대통령 당선 예상 일이등을 넘보는 유력한 후보들이 민주주의를 멈춰 세운 선거법 문제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고 있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지금 이대로라면 18세 주권자의 참여는 봉쇄된 채, 주권자의 정당한 정치적 의사표현이 금지된 상황에서 당선된 대통령일 뿐이다. 반쪽짜리 대통령이 되는 셈이다.

 

 

* 이 글은 2017년 3월 29일, 창비주간논평에 개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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