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감시센터 기타(aw) 2004-06-01   2124

[정치지형의 변화와 시민운동 4] 민주노동당의 원내 진출과 시민운동

인터넷참여연대는 17대 총선을 계기로 달라진 정치지형이 시민사회에 미칠 영향을 점검해보고, 이를 기초로 시민운동의 새로운 진로를 모색하는 의미에서 기획시리즈 ‘정치지형의 변화와 시민운동’을 연재한다. 편집자 주

1. 정당정치 정상화와 시민운동(상)

2. 정당정치 정상화와 시민운동(하)

3. 열린우리당은 개혁에 나설 것인가

4. 민주노동당의 원내 진출과 시민운동

5. 시민운동의 독자적 정치세력화 모색

시민운동의 입장에서 민주노동당의 원내 진출은 환경, 평화, 여성 등 시민사회적 가치를 가장 많이 수용하는 정당이 제도정치의 장으로 본격 진입한 것을 의미한다. 민주노동당 입장에서 시민운동은 ’10석에 불과한 소수정당’이 견지할 수 밖에 없는 ‘사회운동적 관점’에서나, ‘사회적 의제화의 정치력’ 극대화를 위해서나 반드시 우군으로 삼아야 할 세력이다.

민주노동당과 시민운동의 연대 탐색

이렇게 민주노동당의 원내 진출은 양 진영간 연대의 지평을 넓혀 놓았지만, 아직은 상호간에 적극적인 연대 움직임은 없는 상황이다. 다만 연대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는 형성돼 있다.

이재영 민주노동당 정책실장은 “10석 가지고는 아무 것도 못할 뿐 아니라, 민주노동당은 원내진출을 사회운동적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면서 시민운동과 민주노동당의 적극적인 연대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이 실장은 “시민운동단체에서 (민주노동당으로) 인력 유입도 필요하고, 공동정책도 만들어야 한다”면서 상당히 높은 수준의 연대를 희망하기도 했다.

시민단체의 파병반대 투쟁은, 당론과 개별 의원 모두 확고한 파병반대 입장에 서 있는 민주노동당의 원내 진출로 인해 제도 정치권에 대한 압박 수위를 한층 높일 수 있다는 전망이다.

국회 재경위를 지원한 민주노동당 심상정 당선자 일행은 최근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를 방문해 보수세력의 경제위기론, 재벌 금융회사, 재경위 소관사항 중 간접투자자산운영법 개정안의 문제점 등 현안에 대한 브리핑을 받고 상호간의 정보 교류와 협력을 요청하기도 했다.

아직 연대의 내용과 수위에 대한 합의가 형성돼 있지는 않지만, 시민운동 내에서도 민주노동당과의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의 얘기다.

“지난 대선이나 이번 총선에서 정당 정책평가를 했을 때 사실상 민주노동당의 손을 들어주는 것으로 끝난 것은 기성정당과 비교해서 민주노동당이 시민운동의 의제들을 대체로 수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성정당과도 연대하여야 하지만 민주노동당과의 파트너십은 불가피하며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 그러나 이것이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는’ 입장에서 운동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정파적이지 않다는 의미에서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화두의 진정성을 견지하면서, 더욱 진보적인 정책들을 시민단체가 자기의제화하는 노력들이 필요하고 그런 점에서 선택적으로 민주노동당과의 연대가 과거보다는 더욱 확대되어야 할 것이다.”

권력감시의 대상이자 제도개혁 연대의 주체로서 민주노동당

권력감시운동에서 민주노동당을 활용하는 것도 연대 방안의 하나로 검토될 만하다. 박원순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는 “의정감시만 하더라도 과거에는 충분히 못했는데 이제야말로 국회 개혁세력과 손잡고 의정감시를 제대로 할 여건이 됐다”면서 “예를 들어 무기명 투표가 기명투표로 바뀌면 낙선운동의 방식이 보다 치밀하게 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무기명 투표의 기명투표 전환, 상임위 운영에서 소위원회의 완전 공개 등은 권력감시운동의 전문성 강화라는 새로운 도전을 맞은 시민운동이 반드시 실현시켜야 할 국회 운영 상의 제도개혁 과제다. 시민운동이 이를 강력히 요구하고, 원내에서 민주노동당이 적극적으로 의제화하는 방식으로 제도개혁을 밀어붙이는 것도 충분히 고려할 수 있는 연대의 내용이다.

그러나 민주노동당과 시민운동이 전적으로 연대와 협력의 관계만을 상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민주노동당의 원내 진출로 그 동안 잠재돼 있던 새로운 긴장이 가시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물론 시민운동 입장에서든 민주노동당 입장에서든 이런 긴장이 발전적인 측면도 있다. 그동안 종합대변형 시민운동이 상당 부분 수행해온 ‘사회적 의제화’의 정치를 민주노동당이 원내에서 수행하게 됨에 따라, 전문성 강화, 생활세계 등 새로운 시민운동 영역의 개척 등 역할의 변화를 요구받게 됐다는 점은 시민운동의 새로운 위상 정립을 위한 발전적 긴장의 성격이 강하다.

원내 진출한 민주노동당 역시 비판세력에서 대안세력으로서의 자기위상을 정립해 가는 과정에서 시민사회의 검증대상으로 긴장감이 높아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정당운동과 시민운동의 존재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긴장, 사회경제적 개혁 등을 둘러싸고 그 수위와 전략구호의 차이에서 오는 긴장 등은 좀 더 예각화할 가능성도 부인할 수 없다.

김민영 참여연대 시민감시국장은 민주노동당과의 관계 설정에 대해 “권력감시운동 입장에서 민주노동당은 다른 정당과 마찬가지로 권력감시의 대상일 뿐”이라면서 “참여연대의 제도정치권에 대한 사업 원칙은 개혁과제를 중심으로 모든 정당으로부터 사안별 최대협력을 이끌어낸다는 것이고, 민주노동당 역시 여기서 특별한 예외는 아니다”고 말한다.

향후 낙선운동, 당선운동 등 시민단체 총선운동이 어떤 변화를 겪을 지 현재로선 예측이 어렵지만, 권력감시 주체로서 시민운동과 권력감시 대상으로서 민주노동당 사이에 일정한 긴장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민주노동당은 탈물질적 가치를 얼마나 수용할 수 있는가

정당과 시민단체라는 존재의 차이에서 오는 또 다른 긴장은 환경, 여성, 소수자 등 시민운동의 근원적 가치인 신사회운동적 요구를 민주노동당이 얼마나 수용할 수 있는가에 대한 양 진영의 시각차다. 이병천 강원대 경제학과 교수의 다음과 같은 지적은 민주노동당에 대한 시민사회의 우려와 비판의 성격을 담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노동사회와 산업사회를 넘어서는 어떤 비전과 삶의 양식을 제시하고 있는가. 민주노동당은 노동 중심사회를 넘어서는 다중 활동적인(multi-active) 삶과 문화적 사회구성에 대한 비전이 잘 보이지 않는다. 민주노동당이 제시하는 상은 한 발은 68 이후로 내디뎠지만, 다른 한 발은 여전히 68이전 포드주의적 복지자본주의=완전고용사회=소비사회에 담그고 있는 것처럼 비친다.”

실제로 상당수 시민운동 인사들은 민주노총을 주요한 인적, 물질적 기반으로 삼고 있는 민주노동당이 탈근대적·탈물질적 가치를 구현하는 데 있어 지닐 수밖에 없는 한계를 지적하곤 한다. 그리고 민주노동당에 대한 이런 비판은 녹색당과 같은 시민운동의 독자적 정치세력화 모색의 핵심 근거로 작용하면서, 양 진영의 정치적 긴장으로 잠복돼 있다.

다만 박진섭 환경운동연합 정책실장은 이 문제에 관해 민주노동당과 시민운동의 정책 제휴 가능성을 열어뒀다.

“민주노동당과 시민운동의 정책적 제휴 가능성에 대한 검증이 없다. 실제 내용에 대한 접근이 안됐기 때문이다. 정책의 비교 검토 전에 민주노동당에 대한 사전 재단은 옳지 않다. 독자 정치세력화 모색은 민주노동당의 정책대변이 불충분하다는 판단이 섰을 때 하나의 방식으로 가능하며, 선험적인 향로 설정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박 실장은 유럽의 경우를 예로 들며 “노동운동과 환경운동의 공조가 잘 되고 있지는 않다. 민주노동당이 이런 경향에 대해 준비가 됐는지 확신할 수 없다”는 입장을 피력하기도 했다.

물론 여기에 대한 민주노동당의 반론도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 “지금까지 환경단체의 요구와 민주노총 소속 노동조합의 이해가 어긋나는 건건이 민주노동당은 환경단체의 요구를 수용했다”는 이재영 정책실장의 주장은 적어도 당 차원에서는 환경의 가치를 노동조합의 이해보다 우선시하고 있다는 구체적 반론이다.

조현연 교수 역시 “환경이나 여성 분야에서 부족했던 것은 인정하지만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면서 “21세기 한국의 진보정당은 계급적 과제, 민족적 과제, 탈근대적· 탈물질적 가치를 동시에 추구해 나가야 하며, 이런 가치를 채워 넣지 못할 때는 자기 대중의 확보가 어려울 것”이라고 말한다.

민주노동당의 ‘정책’과 시민단체의 ‘운동’ 간의 긴밀한 상호작용을 통해 시민사회적 가치의 확산과 내용 수위를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이런 긴장은 오히려 바람직한 측면도 있다.

사회경제 개혁정책에서의 급진성, 방법론의 차이

민주노동당의 원내 진출로 좀 더 많은 진단과 대화가 필요한 영역은 사회경제 개혁정책을 둘러싼 양 진영의 입장 차이다.

구체적인 예로, 노동자 소유기금 설치, 노동자 경영참가법 제정 등 민주노동당이 재벌 및 대기업집단의 개혁방안으로 채택하고 있는 북구 사회민주주의의 ‘기능 사회주의’ 노선(5월 7일 제 40회 참여사회 포럼 ‘탄핵, 촛불, 총선 그리고 한국사회의 새 진로’에서 이병천 교수의 분석)과 참여연대의 경제개혁센터의 재벌개혁운동은 양 진영에 관계하는 주요 논객들 사이에 종종 비판이 오가는 지점이다.

특히 민주노동당은 시민운동이 좀 더 계급적 관점에 서 주기를 희망한다. 조현연 교수는 “시민운동이 공공성과 공익성을 담보한다고 했을 때, 그 공공성이 비계급적일 수는 없다”면서 “현재 한국사회에서 가장 고통받은 사람들을 위한 공공성이 전제된다면 연대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한다.

물론 재벌개혁을 비롯한 사회경제 개혁 프로그램에 대한 시민운동의 고민이 ‘가장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는 전제 하나로 대체될 정도로 간단하지는 않다. “유럽 사회적 시장경제가 직면한 새로운 문제, 즉 효율-평등의 상충 문제와 별도로 평등-고용의 상충문제에 대해 민주노동당이 얼마나 고민하고 있는 지 의문”이라는 이병천 교수의 지적은 “민주노동당이 제시하는 대안경제체제가 얼마나 잘 작동할 수 있을 지, 경제 시스템이 그 내부 제도형태간에 상호 보완성을 갖는 유기적 전체로서 성공적으로 움직일 수 있을 지”를 따질 수밖에 없는 시민운동의 고민을 담고 있다.

17대 총선평가 토론회에 참석한 이재영 정책실장은 시민단체의 이런 지적에 대응할 만한 발언을 했다.

“왜 시민운동은 훨씬 좋은 인력을 가지고도 큰 역할을 못했는가? 상상력의 한계다. 무상교육, 무상의료, 부유세 등 민주노동당이 내건 구호는 선거가 과학이 아니라 가치의 문제라는 것을 말해 준다. 시민운동은 전문성, 정합성, 실현 가능성의 룰에 빠져 있다.”

“책임성, 투명성의 원칙은 거시적 경제담론과 배치되지 않는다”

반면 김상조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소장은 참여연대 경제개혁운동이 민주노동당의 사회경제 개혁정책과 양립 불가능한 운동이 아니라, 경제구조의 재편에 있어 완급의 문제, 큰 담론에서 상호 배치되지 않는 기본 전제의 문제라는 입장을 제시한다. 그의 얘기다.

“민노당 원내 진출이 사회적 인식의 한계를 뚫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그것이 후퇴할 수 없는 결과로 나타나는 것은 별개다. 기업단위에서, 산업현장에서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사회적 담론의 한계 뚫는 노력뿐만 아니라 법, 제도적으로 현실화하는 데 포인트를 둬야 한다는 것이다.

참여연대의 경제개혁 정책과 민주노동당의 재벌정책 노선이 현재 충돌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30년 동안 살아온 경제구조를 극복하는 것은 시간의 문제가 있다. 빨리 줄이면 줄일수록 좋다. 그러나 도달 목표는 다 다르지만 어떤 기업모델이나 산업모델이든지 투명성과 책임성의 원칙은 기본이다. 보다 더 큰 담론과 배치되지 않는다.”

아직 가시화되지는 않았지만, 민주노동당 당직선거에서 한·미관계를 보다 급진적으로 재정립하려는 그룹들이 민주노동당 지도부를 형성하게 됐을 때, 한반도 안보와 미국의 역할 등을 둘러싸고 민주노동당과 시민운동 진영의 평화운동이 얼마나 공조가 가능할 지 역시 도 새로운 긴장의 가능성이다.

민주노동당 원내 진출이 제도 정치권 내에서 정치력 검증이라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한 것처럼, 제도정치에 진입한 민주노동당과 시민운동의 연대 역시 그 내용과 방식에 대한 더 많은 토론과 모색을 요구하고 있다.

장흥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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