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형비리 수사, 부끄러운 ‘몸통’ 면죄의 역사

SK비자금에 대햔 대검 중수부의 수사를 주목한다

SK비자금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가 외견상 정공법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건에 대한 수사 결과에 따라 그간 납득하기 어려운 여러 이유를 들어 비리의 ‘몸통’들에게 면죄부를 주던 검찰 수사의 역사를 다시 쓰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사이버참여연대>는 최근 10여 년 동안 우리 사회를 흔들었던 대형 비자금 사건에 대한 검찰의 부끄러운 수사 역사를 되돌아보는 기사를 싣는다. 편집자 주

SK그룹의 분식회계 비리가 터져나왔던 지난 3월 서울지검장은 “SK에 대한 추가수사가 국가경제에 피해를 미칠 수 있다”는 발언을 했다. “앞으로 이런 일로 재계가 위축되지 않도록 배려하겠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이 나온 며칠 뒤였다. 서울지검장의 발언이 대통령의 의지에 화답한 것인지, 경제부처의 책임까지 나누어 가지려는 두터운 소명의식의 발로인지는 알 길이 없다.

어쨌거나 비자금이 얽힌 권력형 비리에 대한 최근 수년 동안의 검찰 수사를 살펴보면 어려운 경제상황을 거론하며 면죄부를 주거나 솜방망이 처벌에 그친 사례를 쉽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더 거슬러 올라가 안보논리나 불가피한 정치적 고려 때문에 아예 수사를 하지 않거나 대충 마무리지은, 혹은 불공정한 수사를 했던 사례도 많다.

이번 SK비자금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 결과가 주목받는 이유는 권력형 비리에 대해 검찰이 정치권력도, 경제부처도, 국방부도 아닌, 오로지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하는 진정한 ‘검찰’로 태어날 수 있는지를 가늠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검찰은 최병렬 대표가 지난 8일 한나라당 국감대책회의에서 “안대희 (대검) 중수부장은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최고 실세”라며 그 정치적 독립성을 보증할 정도로 정권의 눈치를 살필 필요가 없다. 이런 호기에 또 다시 정치적 고려나 경제상황 등의 논리를 적용한다면, 앞으로도 검찰 수사의 독립성과 공정성은 기대하기 어렵다고 봐야 한다.

그런 점에서, 검찰이 군사독재의 수족에 불과했던 시절을 지나 나름대로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을 논할 수 있었던 지난 최근 10여년 간의 검찰 수사의 역사를 살펴보고자 한다.

10일만에 수사 끝난 6공 최대의 권력형비리 수서사건

수서사건은 주택단지로 개발될 수 없었던 수서지구 3만5000여 평이 서울시에 의해 건축허가를 받으면서 불거진, 6공 최대의 정경유착 비리사건이다. 한보주택과 연합주택조합은 서울시에 의해 두 번이나 불가 통보를 받았던 수서지구 택지개발을 허가받기 위해 청와대, 건설부, 서울시, 여야 정당, 국회 건설위 등 힘을 행사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권력을 대상으로 로비를 펼쳤다.

1988년 수서지구 토지매입부터 3년여에 걸쳐 이뤄진 한보주택의 로비는 청와대와 정치권의 압력에 시달린 서울시가 91년 1월 연합주택조합에 택지특별 분양을 허가하고, 건설예정 주택의 고도제한을 완화를 발표함으로써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기적을 연출했다. 그러나 같은 해 2월부터 국회와 언론의 수서비리 의혹이 계속 제기되자 노태우 대통령은 감사원에 감사를 지시했고, 검찰 역시 수사에 착수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감사원 감사는 시작 5일 만에, 검찰수사는 시작 10일만에 종결되었다. 당시 검찰은 청와대 방침에 따라 수사를 하지 않겠다고 하다가 야당과 언론의 압력이 거세지자 입장을 바꿔 3일 만에 수사에 착수했다. 그리고 근 3년 동안 지속된 불법 로비에 대한 검찰 수사가 10일만에 끝난 것이다.

당시 검찰이 수서비리로 기소한 인사는 장병조 청와대 문화체육 비서관, 이태섭 김동주 오용운 민자당 의원, 이원배 평민당 의원, 정태수 한보그룹 회장, 이규황 건교부 국장 등 9명이었다. 그러나 수서비리의 규모에 비춰 검찰이 기소한 인사의 범위는 검찰이 애초부터 정상적인 수사를 할 의지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우선 서울시가 두 번이나 불가 통보를 한 명백한 불법을 청와대 비서관 한 명의 압력에 의해 추진해 성공했다는 것을 믿을 국민은 아무도 없었다. 또한 허가의 주체였던 서울시의 공무원 역시 한 명도 기소되지 않았다. 언론이 이를 이례적인 일로 보도했을 정도다. 물론 한보주택이 민원압력의 형식으로 로비를 펼쳤던 정치권에서 기소된 인사 역시 수사의 형평성을 맞추는 최소한에 그치고 말았다는 평가다.

문민정부 들어 수사에 들어간 전·노 비자금 사건은 군사정권 자체가 재벌과 함께 하나의 거대한 비리공동체였음을 확인시켰다. 그러나 수사 자체가 문민정부의 결단과 정치적 판단에 의해 진행됐고, 두 전직 대통령이 기업으로부터 천문학적인 액수의 뇌물을 받아 챙겼음에도 검은 돈을 주기적으로 상납한 기업인에 대한 처벌은 전무했다는 점에서 이 수사 역시 검찰의 독립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깃털’과 ‘몸통’ 신조어 탄생시킨 한보비리 수사

문민정부의 권력형 비리 사건은 뭐니뭐니해도 IMF 환란의 한 원인이 됐던 한보비리 사건이다. 한보비리는 한보그룹이 92년 대선과 96년 총선에서 정치권에 막대한 규모의 정치자금을 제공하면서 싹을 키웠다. 당시 김영삼 민자당 대통령 후보와 신한국당에 들어간 거액의 불법 정치자금은 93년부터 96년까지 한보그룹에 대한 금융권의 특혜대출로 이어졌다.

은행은 대출시 자기자본 15%, 지급보증시 동일인 여신한도 30% 규정까지 어겨가면서 한보에 돈을 쏟아 부었다. 제일은행은 한보철강에 자기자본의 94%에 해당하는 자금을 대출해 준 것으로 확인될 정도였다. 그렇게 약 5조원의 자금이 한보계열사에 대출됐다. IMF 청문회 때 확인했듯이 한보그룹은 은행 대출금의 상당부분을 정관계 로비에 사용했다. 정태수 회장의 로비에 대한 집착은 당시 언론에 의해 “100억 대출을 위해 90억 뇌물을 줄 수 있는 사람”이란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검찰 수사의 결과는 초라했다. 정치인으로는 홍인길 황병태 정재철 등 3명의 신한국당 의원들과 권노갑 국민회의 지도위원회 위원 등 4명이 처벌을 받았고, 장관 1명과 은행장 2명이 처벌받았다.

이 같은 검찰 수사는 국민적 불신을 초래했고, 결국 대검 중수부장의 교체 이후 대통령 차남 김현철의 구속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IMF 청문회 때 정태수 회장의 입을 통해 확인됐듯, 정 회장은 92년 민자당 대통령 후보에게 최소 150억원의 불법 선거자금을 제공한 것이 확인됐다. 국민적 압력에 밀려 ‘소통령’을 구속한 검찰도 차마(?) 대통령까지는 수사의 손길을 미칠 수 없었던 것이다. 검찰 구속을 앞둔 홍인길 의원은 당시 “나는 깃털에 불과하다”는 말을 남겨 이후 대형비리사건이 터질 때마다 ‘깃털’과 ‘몸통’이라는 단어가 인구에 회자했다.

관계 인사에 대한 처벌 역시 비슷했다. 정상적인 금융관행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대출이 이뤄진 것은 청와대 경제수석실, 재정경제원, 은행감독원 등의 묵인 내지 지원이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상식적인 판단에도 불구하고, 김우석 내무부장관 한 명을 처벌하는 선에 그쳤다. 검찰은 정 회장으로부터 1억원 미만의 ‘떡값’을 받은 정관계 인사 20여 명의 명단을 확보했으나 해명을 받는 선에서 처벌을 면해주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기소독점주의를 활용해 검찰이 스스로 판사 노릇을 한 셈이다.

줄줄이 이어진 ‘게이트’를 한번도 제대로 열지 못한 검찰 수사

국민의 정부 들어서는 고속철도비리사건, 청구그룹 비리사건 등 주로 전 정권과 관련된 비리사건도 이었지만, 김대중 정부의 실세들이 연루된 각종 비리 사건도 끊이지 않았다. 소위 ‘게이트’가 따라 붙었던 최규선, 이용호, 진승현 등이 비리사건의 주범들이었다. 여기에는 대통령의 측근과 아들, 친척들도 연루됐다.

최규선 게이트는 미래도시환경 대표 최규선이 대통령 차남 김홍걸과 함께 대원그룹, 타이거풀스인터내셔널 등의 기업으로부터 기업활동과 관련된 뇌물을 받은 사건이다. 검찰은 김홍걸을 기소, 구속했지만, 다른 관계자에 대한 성역 없는 조사가 필요했음에도 오히려 사건의 은폐와 축소에 검찰이 개입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특히 경찰청 최성규 총경이 미국으로 도피하는 과정에서 검찰의 방조가 있었다는 상당한 정황증거가 포착되기도 했다.

수서사건이나 한보비리 사건 등과 같은 권력형 비리에 가장 근접했던 비리는 이용호 게이트다. 이용호 게이트는 G&G 구조조정 회장 이용호가 보물사업이라는 재료를 이용해 1999년 인수한 계열사들의 주가가 크게 오르면서 의혹이 제기됐다. 그의 주가조작과 관련해 검찰고위층·국세청·금융감독원·국가정보원·정치권 등 핵심 권력기관의 인사 상당수가 직간접 연루된 사실이 확인됐다.

그러나 검찰 고위층 다수가 이 게이트에 직간접으로 연루돼 국민의 불신을 산 이용호 게이트는 결국 특별검사의 손에 의해 전모가 드러나 검찰 망신을 톡톡히 시켰다. 특별검사의 조사로 대통령 처조카인 이형택 전 예금보험공사 전무, 이수동 아태재단 이사 등 대통령 측근들과, 신승남 검찰총장의 동생 신승환이 구속됐다. 검찰 수사에 맡겼더라면 불가능했다는 평이다.

이밖에도 진승현 게이트, 정현준 게이트, 백궁-정자지구 특혜분양 사건, 파크뷰 특혜의혹 사건, 기양건설 비리 사건, 동아건설 분식회계, SK 분식회계 사건 등 기업 비자금 또는 권력형 비리 성격의 수많은 비리사건이 터져 나왔다. 이들 사건 중 상당수는 국민의 정부와 무관한 비리사건도 많았다. 그러나 비리 당사자가 누구냐를 불문하고, 비리 의혹이 터져 나올 때마다 검찰 수사는 국민적 의혹을 해소시키는 데 실패했다. 그 원인의 대부분은 검찰의 수사 의지의 문제였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장흥배 사이버참여연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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