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개협 정치자금 개혁안 정치권과 엇박자 우려
국회 정치개혁특위 자문기구인 범국민정치개혁협의회(이하 정개협)가 3일 ‘정치자금’ 부문에 대한 개혁안을 발표했다. 정개협 개혁안은 정치자금 수입·지출시 선관위 신고된 단일 계좌 사용, 고액 기부자의 인적사항 공개 등 정치자금 투명성 강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지난 10월 중순 최병렬 대표가 국회 대표연설을 통해 밝힌 선거공영제 강화에 무게를 두고 있어 정개협 개혁안과 엇박자를 빚을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한나라당, 법인세 1% 기탁 등 선거공영제에 무게 중심
이번 정개협 개혁안은 선거공영제 강화 수단으로 정치권에서 제기된 법인세 1% 의무기탁제도에 대해 “이중과세 논란과 함께, 기부자의 자율성 침해 등을 고려해 채택하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정치개혁안은 여전히 최 대표의 구상을 중심으로 하고 있어, 정치자금과 관련 투명성 강화에 무게 중심을 둔 정개협과 선거공영제 강화에 비중을 싣고 있는 한나라당이 서로 접점을 찾지 못할 우려도 제기된다.
한나라당 정개특위 간사 이경재 의원실의 한 관계자는 “최 대표가 밝힌 대로 법인세 1%를 정치자금으로 하는 선거공영제 강화가 여전히 한나라당의 당론”임을 분명히 했다. 이 관계자는 “최 대표의 정치개혁 구상 발표 이후 아직 정개특위 본회의를 한 번도 열지 못해 이제 협상의 시작 단계”라며 “정개협의 안을 수용할 수 있는 부분을 수용하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민주당 정개특위 간사 박주선 의원실의 관계자는 “한나라당의 선거공영제 강화에 대해서는 찬성하지만 법인세 1% 기탁금제도는 반대한다”고 밝혔다.
정치자금 투명성 강화와 선거공영제 강화는 논리적으로 서로 대립되지는 않지만, 무게 중심을 어느 쪽에 싣는가의 합의 여부에 따라 국회 정개특위에서 논의될 의제들이 확연히 갈릴 수 있다. 만약 정치자금과 관련 정개특위의 논의가 선거공영제 강화 쪽으로 전개된다면 정치자금 투명성 확보 수단보다는 정당보조금 배분 방식, 늘어나는 정치자금 재원 마련 등의 의제들이 더 진지하게 논의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선거공영제, 사실상 거의 100% 수준”
선거공영제 강화 주장은 우리나라의 선거공영제가 70∼80% 수준이라는 전문가들의 지적에서 나타나듯이 설득력이 약하다는 지적이다. 정치자금 투명성 강화라는 근본적인 부패 근절 방안 대신 정치권으로 들어가는 세금만 늘리자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선거공영제 강화와 관련해서는 중앙선관위도 부정적인 반응이다. 중앙선관위의 선거관리실의 한 관계자는 “우리나라 선거공영제 수준으로만 봤을 때 공명선거와 선거공영제는 별 관계가 없다”면서 “국회의원 선거의 경우 사실상 거의 모든 법정선거비용을 선거공영제로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선거벽보, 선거공보, 소형 인쇄물, 전화선거운동, 운동원 수당, 자동차 임차료와 확성장치, 인터넷 홈페이지 운영비까지 전부 보조하고 있고, 안해주는 것은 어깨띠, 사무소 임차료와 유지비가 전부”라면서 “돈 선거의 주범은 합동연설회 같은 곳에 조직을 동원하거나 유권자 접대 같은 불법운동”이라고 설명했다.
국회의원 선거의 경우 후보자 1인당 법정선거비용은 1억2000만원 정도다. 각 후보들이 선관위에 보고하는 비용의 평균은 약 6000만원 정도다. 선관위 관계자는 “15% 이상 득표자의 경우 이 비용의 52%인 3000만원 이상을 선관위에서 보전해 주고 있다”면서 “공식 선거비용으로 인정할 수 있는 비용은 3000만원 수준으로, 사실상 100% 선거공영제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설명을 종합해보면, 정치권이 정치자금 투명성 강화 논의는 뒷전에 두고 선거공영제 강화에만 비중을 실을 경우 정치부패에 대한 국민들의 지탄을 우회하기 위한 계산된 전략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4일 열릴 대통령 측검비리 특검 재의결이 재의결 쪽으로 점쳐짐에 따라 국회 정개특위도 곧 재개될 전망이다. 여야 정당이 정개협과 시민사회의 정치자금 투명성 강화 요구에 어떻게 대응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돈 선거, 조직 선거 응징”
정개협 정치자금 개혁안 뭘 담았나 |
정개협은 3일 정치자금 부문에 이어 오는 8일 선거관계법과 정당법 개혁안을 만들어 발표함으로써 정개협 개혁안을 마무리지을 방침이다. 이번에 발표된 정치자금 개혁안은 그간 정치개혁연대가 계속 주장해온 투명성 강화 방안을 좀 더 세부화하고 실효성 확보 방안을 구체화한 것이 특징이다. 투명성 강화 방안으로는 정치자금 수입·지출시 선관위 신고된 금융계좌 사용 의무화, 음성 정치자금의 변칙적 통로였던 무정액 영수증 제도 폐지, 1회 100만원 또는 연간 500만원 이상 기부자의 인적사항 공개, 정당·후원회 회계보고제도의 표준화 등이 마련됐다. 정당 경상보조금의 20%는 정책개발비에 의무적으로 사용한다는 현행 규정을 강화해, 경상보조금 중 정책연구소에 40%, 10%는 여성정치발전기금에 사용토록 했다. 보조금 배분기준 역시 비례대표 득표율이 높은 정당에 더 유리하게 개선했다. 투명성 확보 수단으로는 정치자금 위반자에 대한 사면 제한과 공무담임권 제한, 양벌규정 신설, 공소시효 연장, 선관위 정치자금 실사권 강화 등 다수의 제재 규정을 신설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이밖에 정치자금 기부금에 대한 세액공제 제도 도입, 정치신인 등록제도 선거일 120일 전 정치자금 모금 허용 등도 눈에 띈다. 정개협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김기식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정개협 개혁안은 기본적으로 돈 선거, 조직 선거는 묶고, 깨끗한 정치를 실천하는 정치인에 대해서는 최대한의 인센티브를 주는 방향으로 합의가 이뤄지고 있다”면서 “오는 8일 선거법, 정당법 관련 개혁안까지 마무리되면 이런 방향을 좀 더 구체화할 수 있는 획기적인 안들이 나올 것”이라고 밝혔다. 합의가 안된 사항은 공개하지 않는다는 원칙에 따라 오는 8일 발표된 선거법과 정당법 개혁안의 구체적인 윤곽을 확인할 수는 없지만, 돈 선거와 조직 선거를 막을 수 있는 방안이 좀 더 촘촘하게 마련할 것으로 예상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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