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 대표들, “비례대표 확대, 한나라당만 반대 안 하면 된다”

이재오 의원, “한나라당이 말하면 될 일도 안 된다”

국회 정개특위가 특위 시한 막판에 대거 선거법 개악을 시도하고 있는 가운데, 시민사회단체 대표들이 13일 한나라당사 앞에서 선거법 개악을 주도하고 있는 한나라당에 대한 항의집회를 갖고, 오후 1시 국회 의원회관실에서 이재오 국회 정개특위 위원장을 면담했다.

시민단체 대표들은 면담을 통해 “지역구 확대와 비례대표 축소, 인터넷 실명제 도입, 선거연령 인하 거부, 대학생 부재자 투표소 설치 기준 강화, 노동조합 정치자금 기부금지 등 막판 선거법 개악이 대부분 한나라당의 당론 때문에 이뤄지고 있다”고 항의했다.

손봉숙 한국여성정치연구소 이사장은 “국민들이 의원정수 증가에 반대하는 것은 지역구만 늘리고 비례대표는 축소하는 것에 대한 반대”임을 지적하고, “오전에 면담한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은 비례대표 의석수 늘리는 것에 찬성했다”며 한나라당이 비례대표 확대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이에 대해 이재오 위원장은 “의원정수 늘리는 것에 대해 국민 거부감이 많고, 한나라당이 말하면 될 일도 안된다”면서 “지역구 의석은 현재 227석 가지고 하다보니 선거구획정위에서 작업이 안되서 자연증가가 되는 것이다”라며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이 위원장은 “증가가 아니라, 자연증가”라는 말을 몇 번이고 되풀이했다.

이 위원장은 또한 “처음부터 여성단체가 여성 대표성 확대를 목표로 했다면 인구수 110만명 당 여성 전용 지역구 1석, 이런 방식으로 제기했으면 각 당이 수용했을 것”이라며 비례대표 확대 요구가 여성계의 전략적 착오였다는 식으로 말했다.

이에 대해 이오경숙 여성연합 상임대표는 “비례대표는 여성 대표만이 아니라 장애인, 각종 전문가 집단, 농민, 소수정당 등 각계각층의 대표성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며 “그런데 지금 한나라당은 국민 여론을 핑계로 오히려 지역구는 늘리고 비례대표는 축소하는 이상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반박했다.

시민단체 대표들은 “이미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이 비례대표 확대에 찬성했으므로 한나라당은 반대만 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 이 위원장은 “민주당, 열린우리당이 늘려달라고 요구하면 내가 한나라당을 설득할 수도 있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부정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이 위원장은 “비례대표에 대해서는, 이 제도가 유신독재의 산물이다, 3김 시대로 넘어오면서 자기들 정당의 안정성을 위해 공천헌금을 받고 판 게 전국구다, 이런 부정적인 의견도 있음을 감안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시민단체 대표들은 “정당명부 비례대표제에 의한 비례대표와, 전국구 제도를 혼동하지 말라”고 반박했다.

이재오 위원장은 면담 과정에서 “비례대표 축소는 한나라당 당론이 아니다”, “애초에 한나라당 당론은 전국구를 늘리는 것이었다”고 사실과 다른 주장을 내놓기도 했다. 이에 면담에 참석한 여성단체 활동가들 사이에서는 “한나라당은 당이 10개란 말이냐?”는 힐난이 나오기도 했다.

이 위원장은, 정개특위가 선거법을 고쳐 지금까지 허용됐던 노동조합의 정치자금 기부를 금지한 것에 대해 신언직 민주노총 정치국장이 항의하자, “그걸 왜 나한테 따지느냐, 나하고 싸우러 왔냐?”고 강하게 반발했다. 신 국장은 “선거법이 바뀐다고 민주노총이 정치자금 기부를 하지 않을 것도 아니기 때문에, 이 개악안이 통과되면 1300개 이상 사업장의 노조 대표들이 선거 끝나고 전부 감옥에 가게 생겼다”면서 강하게 항의했다.

정개특위 선거법 소위 한나라당 간사의 강력한 주도로 이뤄진 인터넷 실명제에 대해서도 항의가 제기됐다. 오경일 진보네트워크 사무국장은 “실명제냐, 익명제냐 하는 것은 국가가 나서서 규제할 사항이 아니다”면서 “인터넷 언론은 개인 홈페이지도 포함될 수 있는데 이것을 규제하겠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뿐더러, 개인과 언론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가로막는 시대착오적 발상”이라고 항의했다.

대학생정치개혁연대 관계자 역시 “대학 초년생이 투표권도 없다면 도대체 무슨 방법으로 젊은 청년들의 정치참여를 유도할 수 있는가. 한나라당은 대학교 부재자 투표소 설치도 애초에 합의된 방향에서 크게 후퇴시켜 거의 무력화하려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재오 위원장은 오늘 제기된 비례대표 유지 및 확대, 인터넷 실명제 반대, 선거연령 인하와 대학교 부재자 투표소 설치 등의 문제를 국회 정개특위에서 다시 논의해보겠다고 했다. 그러나 시간에 쫓겨 면담을 마친 이재오 위원장에게 시민단체들의 주장을 진지하게 고려할 의지는 없어 보였다.

장흥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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