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감시센터 국회 2004-10-19   1663

“국보법 폐지의 기반 위에서 더 높은 수준의 인권으로”

[인터뷰] 박래군 인권사랑방 상임활동가

한 좌파 논객은 박래군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에 대해 “지난 십수년 동안 한국사회의 가장 궂은 부위에서, 빛도 이름도 나지 않는 그런 운동을 해왔다”고 썼다.

단독 과반을 넘는 정당이 국가보안법 폐지를 당론으로 정한 이 시점에 박래군 활동가가 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의 핵심인사로 참여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그의 일생에서 ‘가장 빛나고 이름나는’ 인권운동을 하는 순간일지도 모른다. 그의 말대로 “이번에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지 못한다면 처음부터 다시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90년대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죽임을 당한, 혹은 인권을 위해 스스로 목숨을 바친 50여 주검을 수습했던 박래군 활동가는 분명 ‘처음부터 다시’ 싸움에 나설 것이라 믿지만, ‘빛도 이름도 없는’ 그 궂은 싸움에 다시 나설 이 얼마나 될까.

국보법 폐지의 절박성과 시급성에 비춰 시민사회의 긴장은 다소 부족해 보인다. 박래군 활동가는 “국가보안법 폐지의 힘을 모아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모든 장치들과 기제들을 제거하는 싸움으로 나가자”고 호소한다.

원칙을 강조할 것이란 선입견과 달리, 박 활동가는 열린우리당의 당론에 대해 내란목적단체 조항 형법보완보다는 국가보안법 폐지에 더 큰 의미를 부여했다. 지금은 법리논쟁에 휘말릴 것이 이나라 국가보안법 폐지를 시민사회가 확고하게 밀고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분명한 메시지로 들렸다.

또한 박 활동가는 열린우리당에 대해 “산토끼는 집토끼 못만든다”는 격언을, 민주노동당에 대해서는 “국가보안법 폐지만큼은 공조를” 주문했다. 또한 한나라당에 대해서는 “냉전수구세력과의 단절 없이는 건전보수는 불가능”이라는 경고를 보냈다.

“내란목적단체 규정, 너무 큰 의미 부여 하지 말아야”

-열린우리당이 국가보안법 폐지와 형법보완을 당론으로 결정했다. 그런데 형법보완 내용 중에서 ‘내란목적단체’ 조항을 신설한 것을 두고 해석이 엇갈리고 있다. 어떻게 평가하는가?

“내란목적단체 조항을 형법에 신설한 것을 두고 크게 선의로 해석하는 입장이 있는 반면 여러 가지 (안좋은) 가능성을 우려하는 입장이 있다. 일단 17일 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가 낸 논평에 우리의 입장이 담겨있다. 국가보안법은 분명히 폐지되는 것이고, 형법 87조 2항에 내란목적단체 규정이 추가된 것에 대해서는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지 말아야 한다고 본다.

내란목적단체 규정이 새로 만들어져서 우려되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 이 조항을 확대해석할 경우, 혹은 아직 변하지 않은 공안기관의 자의적이고 악의적인 적용 가능성 등이 그런 우려다. 그런데 이것은 국가보안법 폐지의 문제가 아니라 헌법과 형법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1953년 제정된 형법의 안보조항은 지금까지 한 번도 손을 댄 적이 없다. 이것은 처음부터 국가보안법을 흡수할 목적으로 제정됐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무튼 제정된 지 50년이나 흘렀는데 한 번도 바뀌지 않음으로써 세계의 변화, 민족 현실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지 못하다. 따라서 국가보안법의 폐지 이후 형법 개정도 준비해야 한다.”

-이석연 변호사(전 경실련 사무총장)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형법보완을 통해 개정될 형법이 서구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국기를 지키기 위한 안보형사법보다 약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국가보안법이 인권침해라는 비판에 대해 ‘헌법재판소의 한정위헌판결 이후 개정된 국보법은 인권침해 사례가 매우 드물다’고 말했다. 이는 진실에 부합하는가?

“거짓말이다. 서구에는 특별법 형식으로 존재하는 국가보안법이 없다. 9·11 테러 이후 미국만 애국법이 제정됐지만 그것도 사상, 양심의 자유를 문제삼지는 않는다. 설사 몇몇 국가에서 국가보안법이 있다고 하더라도 표현의 자유와 충돌할 때 표현의 자유를 우선하기 때문에 사문화된 법으로만 존재한다. 안보 불안의 측면에서 우리와 비슷한 대만의 경우도 처벌조항이 아니라 훈시조항만 두고 있다.

90년 헌재의 한정합헌판결 이후 인권침해 사례가 드물다? 91년 국보법 개정 뒤 국보법 위반 구속자는 96년과 97년에 연 600∼700명 수준으로 가장 높았다. 국가보안법에 의한 인권침해가 어떻게 일어나는가? 맨 처음 간첩죄로 국정원에 끌려갔다가 죄를 밝힐 수 없으면 이적표현물 소지죄로 기소된다. 간첩죄와 이적표현물 소지죄는 하늘과 땅 차이다. 98년 영남위 사건 때도 무려 3분의 2 이상이 무죄 선고를 받았다. 그런 사건이 비일비재하다.

지난해 처음으로 국보법 구속자가 100명 이하로 떨어진 것은 그만큼 신중하게 적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한총련은 수배 상태다. 설사 아무런 구속자가 없다고 하더라도 국가보안법은 언제든지 자의적으로 적용돼 인권을 침해할 준비가 돼 있다. 공안문제연구소를 봐라. 경찰로부터 이적표현물 소지죄를 광범위하게 의뢰받는다. 그런데 인권침해 사례가 드물다? 이석연 변호사는 경실련 사무총장까지 지낸 사람으로, 알만한 사람이 그렇게 왜곡해서는 안된다.”

“민노당, 국보법 폐지만큼은 공조해야”,

-앞으로 국가보안법 폐지의 국회 처리를 전망해본다면?

“한나라당이 막을 수 있다고 자신하는 것만 봐도 정상 처리가 어렵지 않을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열린우리당은 민주노동당, 민주당과 공조해야 한다.”

-열린우리당의 국가보안법 폐지-형법보완 당론에 대한 민주노동당의 17일 논평을 보면, 내란목적단체 조항의 형법 신설에 대해 대단히 실망스럽다고 밝혔다. 또한 민주노동당은 여당과의 개혁공조를 끝내려는 움직임이다. 민주노동당에 대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국보법 폐지까지는 공조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국가보안법이 어떤 법인가? 역사적 과제는 인내심을 가지고 공조해야 한다.”

-열린우리당의 당론에 대한 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 내부의 입장은 정리됐는가?

“내부 의견은 내란목적단체 규정이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 조항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에 불과하다는 입장에서 ‘열린우리당 당론은 사기다’라는 주장부터 내란목적단체 규정을 형법 87조 내란죄 조항의 중복으로 해석하는 입장은 일단 국가보안법 폐지로 적극 나가야 한다는 입장도 있다. 305개 시민사회단체의 연대기구이다 보니 입장차가 있을 수밖에 없다. 논평은 일단 국가보안법 폐지를 환영하고 우려점을 지적하는 수준으로 가져갔다.

그런데 문제는 대중운동이다. 법적, 논리적 판단만이 아니라 현실적 판단도 필요하다. 국가보안법 폐지 문제가 법의 문제로만 맞추진 부분이 있다. 우리 사회가 비정상을 유지케 하는 정점에 국가보안법이 있다. 정상 사회가 나가는 데 돌덩이 같은 이 공포와 폭력의 체제를 걷어내야 한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의 목적은 완전 폐지지만 현실적인 선도 찾아볼 수 있다. 법리논쟁을 끝내고 대중투쟁을 통해서 국가보안법 폐지로 나가야 한다. 그렇게 해서 냉전수구세력에 정확히 타격을 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국보법폐지국민연대에 참여하는 시민단체의 참여도와 긴장감이 생각보다 높지 않다는 지적이 있다. 원인을 무엇이라고 보는가?

“DJ정부만 하더라도 국보법 폐지는 굉장히 비장한 심정으로 주장하는 것이었다. 당시 새정치국민회의는 개정안조차도 당론 확정을 못했다. 그 때는 (시민단체가) 국보법 폐지를 위해 정말 열심히 쫓아다녔지만 수구세력은 느긋했다. 지금은 상황이 변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국보법 폐지) 발언 이후 운동단체들 사이에도 긴장감이 떨어지고 있다. 또 한편, 국보법 폐지가 노무현 대통령의 줄세우기 전략이라고 바라보는 입장에서 반노정서도 있다. 전선이 복잡한 것이다. 국보법 폐지 당론과 달리 이라크 파병 연장, 비정규직 개악 등 다른 부분에서 집권여당이 개혁을 제대로 못하기 때문에 전선이 흩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도 있다.

개혁입법은 시민사회가 역량을 적절히 배분해야 한다. 과거 3대 개혁입법 연대기구와 같이 시너지효과를 낼 수 있는 연대가 필요하다.”

-국가보안법을 반드시 이번 정기국회에서 처리해야 될 특별한 이유는 무엇인가?

“폐지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은 것이다. 시기적 상황으로는 내년에 가면 집권여당의 힘이 더 떨어질 것이다. 구체적으로 보궐선거를 거치면 다수당의 위치가 바뀔 수도 있다. 따라서 12월 초까지는 개혁입법이 처리되어야 한다. 그 이후에는 예산심의까지 연계돼 더욱 힘들어진다.”

여당은 이번에 개혁의 성과를 내서 지지세력을 결집해야 할 것이다. 민주노동당도 (국가보안법이 폐지된 기반 위에서) 선의의 경쟁을 통해 성장을 도모해야 한다. 한나라당이 그리고 박근혜 대표가 건전보수를 자처했다면 그 정치적 성공 여부가 수구세력과의 결별 여부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산토끼를 집토끼로 만들 수 없다”

-여론의 향배를 보면 국가보안법 완전폐지보다는 개정, 대체입법 등 나머지 항목이 전체적으로 높게 나타난다. 한나라당이 국보법 폐지를 반대하는 하나의 근거로 자주 인용하기도 한다. 이를 어떻게 해석하는가?

“존속과 폐지라는 두 개의 선택항만 있으면 여론은 비슷한 것 같다. 대략 30% 폐지-30% 존속이고, 나머지 중간지대에 개정, 대체입법 등으로 분산돼 있다. 조금씩 변하기는 하지만 이런 구도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어쨌거나 폐지 여론이 과거정부에 비해 확실히 증가한 것은 분명하다.

‘먹고살기 힘든데 무슨 국보법 폐지냐’는 식의 조선일보식 왜곡보도가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여론조사 항목구성을 어떻게 하냐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존속과 폐지만 놓고 조사하면 폐지가 더 높게 나타나는데 존속, 개정, 폐지, 대체입법 등 여러 항목을 제시하면 상대적으로 폐지 여론이 낮게 나타나기도 하는 것이다. 여론이 정확히 어떻다라고 말하기 어렵다.”

-열린우리당은 자꾸 여론 눈치를 보는 것 같은데, 이에 대해 한마디 한다면?

“국가보안법 폐지는 여론 향배로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산토끼를 집토끼로 못만든다’는 속말이 있다. 국가보안법 존폐와 관련해, 이 말의 의미를 오히려 냉전극우세력이 더 잘 인식하고 있다. 열린우리당은 기왕에 나뉜 세력들은 요지부동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다른 이슈는 여론 향배를 중시할 필요도 있지만 국보법은 개정안 낸다고 해서 절대 수구세력이 지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열린우리당이 자유민주주의 철학위해 서 있느냐, 군사독재세력 청산 의지가 있느냐의 문제다.”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 말은?

“국가보안법 폐지는 단순히 이 법 하나의 폐지로 끝나지 않는다. 이후 보안관찰법 폐지 운동, 지체돼온 비대한 공안기구의 개편·축소·폐지, 그리고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여러 검열 장치들과 기제들을 제거해 나가는 운동을 해야 한다. 그리고 국가보안법이 없어도 유사 국가보안법, 예를 들어 테러방지법같은 악법이 언제든지 등장할 수 있다는 것도 고민해야 한다. 이번에 국보법을 폐지하면 위에서 말한 여러 과제들을 힘있게 밀고 갈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하면 처음부터 다시 싸워야 한다.”

장흥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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