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감시센터 칼럼(aw) 2013-10-02   2779

[칼럼] 온라인 청원창구, 국회 청원에도 도입하자

 

온라인 청원창구, 국회 청원에도 도입하자

청원 요건과 심사 절차 개선으로 활성화 도모해야

 

한정훈 숭실대학교 교수.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실행위원

 

최근 서울시는 ‘서울천만인소’라는 온라인 청원창구를 개설하였다. 청원을 위한 복잡한 절차를 생략하고 인터넷을 통해 자유롭게 청원을 개진하게 함으로써 시민과의 소통을 강화하고자 한 것이다. 국민의 청원권을 효과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제도적 개혁의 하나일 뿐 아니라 정책형성과정에 시민의 참여를 확대한 바람직한 조치다. 특히 최근 독일을 비롯하여 미국과 영국 등에서 역시 온라인 청원창구가 마련되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시의적으로도 적절한 조치다. 그러나 지방행정기관의 위와 같은 변화와 달리 대의민주주의 사회에서 국민의 이익을 대변하는 핵심기구라 할 수 있는 국회의 청원제도는 어떠한가?

 

민주화 이후 국회 청원제도는 두 가지 측면에서 청원권 보장을 위한 기능의 효용성이 떨어지고 있다. 첫째, 국회 청원제도를 이용하는 국민이 점차 줄고 있다. 국회의 청원안 접수현황에 따르면, 13대 국회에서 503건이었던 청원안이 16대 국회에서 765건까지 증가하였으나, 17대 국회와 18대 국회에서는 다시 각각 432건과 272건으로 현저하게 감소하였다. 18대 국회에서 한국 국민이 국회 청원제도를 이용한 횟수는 민주화 직후 13대 국회와 비교할 때 거의 절반 수준인 것이다. 더구나 독일연방의회에 연평균 1만5000건이 넘는 청원안이 접수된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국회 청원제도의 활용도는 비교 자체가 힘들 정도다.

 

둘째, 국회에 접수된 청원안은 적절한 심사가 이루어지지 않은 채 폐기되는 경향이 강할 뿐만 아니라 청원안의 폐기 비율은 최근에 더욱 상승하고 있다. 국회의 청원안 처리현황에 따르면, 13대 국회는 접수된 청원안의 35% 정도만을 상임위원회의 심사 없이 폐기하였던 반면, 14대 국회부터 전반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한 폐기비율은 18대 국회에 이르러서는 75퍼센트를 넘어섰다. 다시 말해 지난 18대 국회가 접수한 청원안 4건 중 3건은 심사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채 공중분해 된 것이다. 19대 국회 역시 2013년 9월 현재 접수된 98건의 청원안 가운데 단 4건만이 처리되고 있어 지난 국회의 악습을 답습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국회 청원제도의 활용도가 떨어진 이유 가운데 하나는 헌법 제26조에서 보장하는 청원권이 다양한 경로를 통해 행사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국회 이외에도 청원법 3조 및 지방자치법 73조에 의해 국가기관과 지방자치단체를 포함한 행정기관 및 지방의회 등이 청원 대상 기관으로서 역할을 수행한다. 또한 옴부즈만 성격의 국민권익위원회 역시 공권력과의 관계에서 국민권익의 보호 및 구제 기능을 담당해 청원권 보장에 기여한다.

 

그러나 국회 청원제도는 한국 사회의 안정과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여타의 청원권 보장 경로가 대신할 수 없는 기능을 지닌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청원권 보장을 위한 다수의 행정기구들은 국민의 피해구조요청에 응답하는 기능에 제한되는 반면, 국회 청원제도는 국민들이 사회적 의제설정 과정에 참여하는 통로일 뿐 아니라 행정부 감시를 위한 정보원이 될 수 있다. 다시 말해 국회 청원제도를 통해 국민들은 국가권력에 대한 무력감을 극복함과 동시에 사회적 이슈에 대하여 자신의 선호를 드러내며 국가권력에 대한 비판세력으로써 역량을 강화할 수 있다. 또한 국회는 국민의 청원안을 통해 행정부의 구체적인 정책집행 과정 및 그에 대한 국민들의 선호나 평가에 관한 정보를 획득하고, 국민과 행정부를 중재하는 가운데 행정부에 대한 견제력을 강화할 수 있다.

 

국회 청원제도가 국회와 국민, 국회와 행정부 간의 관계에 미치는 위와 같은 순기능을 고려할 때 저조한 국회 청원제도의 활용도를 개선할 필요성이 시급하다. 특히 국회 청원제도의 이용 편의성 증대와 접수된 청원안의 심사 및 처리 과정의 효율성을 증대하기 위한 제도적 개선에 관심을 쏟아야 할 시점이다. 우선 국민들이 국회 청원제도를 상대적으로 더 쉽게, 더 많이 이용하기 위해서는 국민이 국회에 대한 신뢰가 높을 뿐 아니라 제도적으로도 접근 가능성이 높아야 한다. 한국에서는 두 측면 모두 문제다. 국회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낮을 뿐 아니라 국회청원은 엄격한 제도적 조건을 수반한다. 특히 ‘의원소개(紹介)’와 ‘서명·날인된 청원서’ 제출을 요구하고 있는 현행제도는 무분별한 청원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을 달성한 것은 말할 것도 없이, 국회 청원제도 자체의 유용성과 국회와 국민 사이의 정책적 소통을 감소시키는 역효과까지 내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국회의 대국민 신뢰회복이 장기적인 성격을 지닌 문제라는 점과 함께, 국회청원의 활성화를 위해 제도적 개선이 시급함을 의미한다.

 

이와 관련하여 독일연방의회가 2005년 전자청원창구를 개설한 후 청원현황의 변화는 흥미로운 시사점을 지닌다. 전자청원창구 개설 이후 연평균 청원안 제출건수에는 큰 변화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대중에게 공개된 청원안의 경우 청원안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의 지표가 되는 서명 건수는 큰 폭으로 상승한 것이다. 공개된 청원안에 대한 국민의 서명 건수 증가는 국회의 청원안이 국민과 소통하는 기회의 장의 기능을 수행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현행 ‘의원소개’ 규정은 국회가 이러한 기회를 활용하는 데 장애가 되는 것으로 보인다. ‘의원소개’ 규정은 국회의원들이 소개하기에 부담스러운 청원사항에 대한 접수를 방해할 뿐 아니라 청원안을 대중에게 공개하는 절차수립을 어렵게 한다. 따라서 ‘의원소개’ 규정을 재고하고, 개선방안을 마련함으로써 국민들이 국회청원을 더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제출된 청원안을 매개로 국회와 국민들 간의 소통을 증대할 수 있는 조치가 마련될 것으로 기대해본다.

 

둘째, 국회 청원제도에 대한 낮은 활용빈도를 개선할 수 있는 방안과는 별도로 국회에 접수된 청원안만이라도 제대로 심사될 수 있는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 앞서 보였듯이 국회에 접수된 청원안의 처리현황은 그 자체로 실망감을 안겨준다. 국회의원들의 불성실을 낮은 처리율의 원인으로 지적할 수도 있겠으나 단순히 불성실만을 탓하고 있기에는 문제가 심각하다. 또한 청원사항에 따라 ‘청원을 소개한 의원이 심사과정에서 청원의 취지를 설명’하도록 요구하는 제도적 규정의 부정적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이러한 규정은 청원자를 대신하여 청원취지를 설명해야 하는 부담뿐 아니라 청원의 원래 취지를 왜곡할 가능성도 내포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문제점의 해결방안 가운데 하나는 청원사항에 따라 청원안에 대한 논의에 참여할 수 있는 대상을 확대하고, 그에 따라 청원안의 심사절차를 공적논의 결과에 따라 차별화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독일의 전자청원제도는 대중에게 공개된 청원안이 5만 명 이상의 서명을 획득한 경우 의회 청원위원회에 청원내용에 따른 법안 개정을 논의하기 위해 공청회(public meetings) 개최를 의무화한다. 이는 의회에 접수된 청원안의 사안에 따라 청원의 취지 및 내용에 대한 국민적 참여와 숙의를 유도하고 그 결과에 따라 청원안의 심사 및 처리 절차에 차별을 두는 것이다. 이러한 사례를 전적으로 한국 국회 청원제도에 활용하기에는 제도적으로 무리가 있을지 모른다. 다만 청원안을 소개한 의원에 의해 자의적으로 청원안의 취지가 해석되는 것을 방지하고, 청원안의 심의절차에 국민의 참여 가능성을 확대하는 제도적 개혁은 국회에 접수된 청원안이 무차별적으로 폐지되는 현행 제도의 문제점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 이 글은 2013년 10월 2일자 프레시안 시민정치시평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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