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감시센터 칼럼(aw) 2001-11-23   665

<시론> 행정의 조타(操舵), 그것이 국회의 역할이다.

‘ 사건공화국’의 오점을 뒤집어쓴 김대중정부

최근 우리사회는 커다란 위기에 처해 있다. 정치는 정치대로, 경제는 경제대로, 사회는 사회대로 그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 한 사건이 끝나기 전에 다른 사건이 다시 발생하고, 그 사건이 마무리되기도 전에 예기치 못한 또 다른 사건이 터지는 곳이 우리사회다.

‘사건 공화국’이라 할 수 있는 이런 현상은 현정부 하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건 공화국의 오명은 이미 김영삼 정부나 노태우 정부 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갑자기 폭로되는 어마어마한 사건들, 언론에서 진행되는 치열한 공방전, 흐지부지되는 검찰 수사, 그 뒤에 남겨지는 믿기 어려운 유언비어들. 모든 사건에 공통되는 이런 과정은 일종의 ‘필수코스’여서, 오히려 그중 한 두개가 결여된 것이 이상할 정도였다. 대체 왜 이렇게 되었을까.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데, 정작 자라를 보고도 놀라지 않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무엇보다 정치의 실종에서 비롯된다. 정치의 목적은 서로 다른 이익들의 조정과 통합이다. 그런데 이 정치가 특정 이익을 편들거나 자기 이익을 챙기면서 ‘부패사건’을 양산하고 그 사건을 둘러싼 공방전에 대부분의 시간을 허비해왔다.

정쟁속에 파묻혀버린 민생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가

지금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것을 탓하는 것이 아니다. 문제의 핵심은 그로 인해 정작 정치의 본령이라 할 수 있는 민생(民生)이 소홀히 되고 있다는 점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치의 본령이 국민의 생활보호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민생은 정치의 관심 뒤편에 처져 있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상가임대차보호법, 이자제한법, 개인신용정보보호에관한법률, 파산법, 주택임대차보호법, 국민연금법, 생명윤리기본법 등 현재 제정과 개정을 기다리는 법안들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이 대다수 법안들은 무엇보다 서민들의 생활 및 생계와 직접 연관돼 있다는 점에서 촌각을 다투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이자제한법을 보면, 연리 25% 이상의 이자를 받을 수 없도록 규정한 기존 법안의 폐지로 현재 연리 29%에 이르는 카드연체 금리, 또는 연리 360%까지 받고 있는 사채시장의 고금리 등으로 인해 서민들의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이에 시민단체들은 국민 경제생활의 안정장치로 이자제한법을 부활, 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도, 정책 당국과 금융기관은 이를 유보하고 있다. 정부가 대안으로 제시하는 금융이용자보호법의 경우 법정 이자상한선(연리 60%)이 너무 높아 사채 폭리를 근절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합법화시켜 줄 가능성까지 없지 않다. 따라서 금리 제한의 상한선을 낮추고 한시 규정을 삭제할 필요가 있다.

서민들의 생활과 다소 거리가 있다 하더라도 생명윤리기본법 제정 또한 매우 중요하다. 최근 생명복제, 유전자정보 이용 등 생명과학기술이 빠른 속도로 발전하면서 인간존엄성이 크게 위협받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기존 생명공학육성법이 없는 바는 아니지만,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생명공학이 낳고 있는 다양한 윤리적 문제를 법적, 제도적으로 제어할 장치가 전무한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에 우리사회에서도 생명과학기술의 바람직한 방향을 유도할 수 있는 생명윤리기본법의 제정은 매우 시급하고 중대한 과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정치의 본령은 흔들리는 행정의 기둥을 바로잡는 것

누가 뭐라 해도 정치의 두 축은 행정과 입법이다. 행정이 국가를 관리하는 것이라면, 입법은 그 행정의 지침을 마련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사회에서 이 두 개의 기둥이 모두 흔들리고 있다. 행정의 기능을 바로 잡아, 새롭게 조타(操舵)하는 것이 다름 아닌 입법의 역할이다. 그리고 그 입법을 담당하는 국회는 바로 국민의 대표이기도 하다. 올해 정기국회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해는 서산에 져서 갈 길이 먼 것을 탓할 것이 아니라, 더 늦기 전에 부디 민생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김호기 | 연세대 교수·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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