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감시센터 칼럼(aw) 2003-08-18   574

<안수찬의 여의도 파일> 흔들리는 신념

안수찬 『한겨레』 정치부 기자 ahn@hani.co.kr

얼마전, 난생 처음으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거두절미하고 “너무나 고맙다”고 인사부터 했다. 적지 않은(사실은 상당액의) 연봉을 제의할 정도로 나를 높게 평가했으니, 정말 고맙고 황송한 일이다. 그러나 “그럴 수 없다”고 정중히 거절했다. “아직 해야할 일이 있다”고 했다. (그 분과 그 조직의 선의에 지금도 감사한다)

여기까지는 정말 아무렇지 않았다. 만의 하나, ‘이런 일이 생기면 이렇게 해야지’ 하고 마음 속에 담아두었던 예상 각본 그대로 진행됐기 때문이다. 처음 촌지를 거절했던 순간보다 훨씬 덜 떨리고 수월했다. 오히려 제법 뿌듯해지기까지 했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지릿지릿하게 번져오는 명치 끝의 통증이 시작됐다. 가슴이 후끈거리고 입안이 타들어갔다. 참으로 이상하게도 자꾸 그 돈 생각이 났다. 깊은 호수에 떨어뜨린 돌맹이가 진흙바닥을 긁어 뒤늦게 수면 위로 토해내듯이, 무심하게 반나절을 보낸 뒤에서야 침잠해 있던 온갖 상념들이 부글부글 끓어 올랐다.

평생 다시는 그런 월급을 받아보지 못할 것이 확실한데, 그걸 순순히 손에서 놓아버린 처지가 서글펐다. 한 5년 정도 일찍 태어나거나 늦게 태어났어야 하는 건데, 하며 가망없는 후회도 했다. 아예 철저히 정치적인 세대로 자라나거나, 아니면 철저히 실리적인 세대에서 성장했어야 했다. 천재를 질투할 능력만 부여받은 살리에리처럼, 나는 어쩌다 경제적 윤택을 경멸하면서도 이념적 지표도 분명치 않은 비릿비릿한 놈이 돼버렸나, 한숨이 나왔다.

며칠 전, 암검사를 받았다는 어머니 생각도 났다. 뭐가 잘못 되기라도 한다면, 정말이지 그 돈이 필요할텐데. 아니 그보다도 그 돈을 받으며 그 조직에서 생활하는 게, 정말 내 인생의 어떤 중요한 부분을 팔아치우기라도 한다는 거야 뭐야. 팔아먹을만큼 가치있는 그 무엇을 내가 갖고 있긴 한거야. 집에 돌아와 아껴두었던 산사춘 2병을 벌컥벌컥 비우고, 신음하며 잠들었다.

마음의 평화를 되찾은 그 다음날, 깨달았다. 경멸해마지 않았던 몇가지 앞에서 나는 생각보다 훨씬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제 아무리 마음 속으로 ‘시뮬레이션’해가며 다짐해도, 때로 의지와는 무관한 어떤 상황들이 그 선택을 강제할 수도 있다는 것을. 사실은 그런 ‘상황’을 이유로 예민한 의지의 끝을 스스로 무디게 할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다짐과 약속이란, 한번 질끈 눈감고 지나가 버리면 예상외로 쉽게 잊혀져 버린다는 것을. 변절과 타협 뒤에는 평생을 따라다니는 양심의 가책이 있을 것이라는 ‘공포’는 허구적 상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들 대부분은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이리저리 합리화시킨 삶의 명분에 스스로를 가둬놓고 사실은 충분히 평화롭게 호위호식한다는 것을.

바로 그렇기 때문에, 양심과 신념의 울타리란 강철로 지어진 성채가 아니라 가시 하나로 스스로를 지킬 수 있다고 믿는 허영심에 가까운 것이기 때문에, 그걸 지킨다는 게 더욱 대단한 일이라는 것을, 이제서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 지 6개월이 됐다. 천지개벽을 기대했던 사람은 없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남북평화통일이나 선진국 진입과 같은 ‘대단한 역사적 성취’를 믿었던 적도 없었던 것 같다. 정치판이 지금과 조금 달라질 것이라는 기대. 조금 다른 사람들이 조금 다른 방식으로 정치를 할 것이라는 소망. 따지고보면 그 작은 희망들이 모여 권력을 만들었다.

변절을 밥먹듯하는 정치인을 욕하면서도, 사실은 매일처럼 타협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었던 필부들은, 양심과 신념을 지키느라 제때 빛을 보지 못했던 인물들로부터 그런 희망의 만개를 꿈꾸었다. 허약한 가시 하나만으로 신념을 지켰던 그들이 바야흐로 권력을 가진 것이었다.

그래서 노무현 정부에 대한 대다수 시민들의 지지는 자신의 이해관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 사실은 매일처럼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배반하고 있는 각자의 어떤 꿈과 양심에 대한 ‘대리보상’의 심리였다. 조금 더 진취적인 사람이 있었다면, 그런 필부들의 양심과 신념을 지켜줄 어떤 사회적 보호망을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여 6개월만에 20%대로 떨어졌다는 지지도 변화를 보고, 경제정책의 실패를 그 이유의 첫 손에 꼽는 것은 다분히 의례적인 분석에 불과하다. 양심껏 살고싶은 사람들의 자기다짐을 끝없이 흔들고 실망시키는 게 노무현 대통령과 주변 정치인들의 가장 핵심적인 잘못이다.

제대로된 기자가 되보겠다는 언론인들 앞에 터무니없는 불공정 신문시장과 이로 인한 불균등 임금시장을 존치시키며 끝없이 시험에 들게한 잘못. 깨끗하게 정치를 해보겠다는 신인 정치인들 앞에 정치제도 개혁의 비전과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채 술수가 판치는 정치권의 정글에 그들을 방치하고 있는 잘못. 실력으로 승부해보겠다는 취업생들에게 일류대학 간판이 가진 강위력함을 절감시키면서도 상고출신 대통령의 존재를 재현 불가능한 신화로 승격시킨 잘못. 부지런히 일하기만 하면 언젠가 내집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 꿈꾸었던 서민들 앞에 또다시 2만불 시대 운운하며 허황된 국가경제지표만 던져놓은 잘못….

정치하는 사람들은 잘 이해못할 수도 있지만, 필부들도 매일 변절과 지조의 갈림길에 선다. 권력이란 남의 운명까지 판가름짓는 능력이다. 힘없는 서민들은 때로 자신의 선택조차 자유의지에 맡길 수 없다. 양심과 신념을 지키고 싶은 것은 노무현 대통령, 혼자만이 아니다. 그 절절한 심정을 가장 잘 이해할 정치인인 것 같아서, 그런 사람들의 소중함을 깨달아 권력의 힘으로 지켜달라고 그 자리에 노 대통령을 보낸 게 바로 필부들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가장 큰 잘못은 정치에 국민들의 양심과 신념을 의탁할 가치조차 없다는 절망을 전 사회적으로 퍼뜨리는 것이다. 노무현 이후의 대안에 대해 침묵하게 하고, 양심과 현실의 경계선에서 매일처럼 이어지는 작은 전투를 제풀에 포기하게 만드는 일이다.

나는 산사춘 2병에 배부른 번민을 훌쩍 떠나보냈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 허약한 울타리를 지키지 못해 오늘도 아예 세상을 떠나버린다. 더 늦기 전에 돌아봐야 한다. 자신이 추구하는 양심과 신념에 맞춰 꿋꿋이 살아나가는 사람이 대한민국에 노무현 대통령 혼자만이라면, 그에게 위임된 권력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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