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감시센터 칼럼(aw) 2003-10-10   803

<안국동 窓> 정치개혁은 시지프의 바위인가

정치개혁 추진상황을 보면 ‘시지프의 바위’가 생각이 난다. 알베르 까뮈의 소설 <시지프의 신화(Le Mythe de Sisyphe)> 때문에 널리 알려진 이 말은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이야기다. 코린토스의 왕이었던 시지프는 신들을 속인 죄로 죽은 뒤에 커다란 바위를 산꼭대기로 밀어 올리는 형벌을 받았다. 시지프가 힘들게 산꼭대기로 밀어 올리자마자 바위는 산 아래로 굴러 떨어지기 때문에 시지프는 바위를 산꼭대기까지 밀어 올리는 형벌을 끝없이 되풀이해야만 한다.

정치개혁은 오랜 동안 한국정치의 과제였다. 군부를 배경으로 했던 30여년간의 권위주의 정권이 무너진 뒤 들어선 문민정부로부터 국민의 정부를 거쳐 참여정부에 이르기까지 정치의 최대과제는 정치개혁이었다. 국민도 정치개혁을 요구했고, 정치인들도 정치개혁을 국민에게 공개적으로 다짐하곤 했다. 그러나 시지프가 힘들게 밀어 올린 바위가 굴러 떨어지듯이 국민이 요구했던 정치개혁은 번번이 좌절됐다. 새로운 정치를 기대했던 국민은 그때마다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시지프의 바위가 굴러 떨어지는 것은 시지프가 신들을 속였기 때문에 당하는 형벌이다. 그렇다면 정치개혁이 좌절되는 것은 무엇 때문에 국민이 당하는 형벌인가? 바로 정치개혁의 칼자루를 쥔 정치인을 잘못 뽑았기 때문이 아닐까. 품성과 능력, 자질, 도덕성 등을 보지 않고 지연,혈연,학연에 이끌리고 몇 푼의 돈이나 설렁탕 한 그릇에 넘어가 신성한 주권행사인 투표를 잘못한 벌을 받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국민이 정치주체로서 제자리를 찾을 때 정치개혁이 제대로 추진될 수 있을 것이다.

민주시민이 없는 곳에 민주주의는 없다. 따라서 새로운 정치 패러다임은 시민으로 하여금 참여를 통해 자신들이 정치의 주체임을 스스로 깨닫도록 해야 한다. 효과적인 정치참여의 기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참여의 가치를 알게 되고, 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될 것이다. 시민운동이 제도권 정치에 대한 대안으로 떠오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개혁을 추진하는 힘은 국민에게 있고, 국민의 힘을 조직화해서 정치권이 정치개혁을 추진하지 않을 수 없도록 압박하는 일은 현 단계 시민사회단체의 주요한 책무이다.

정치개혁이란 지금까지의 낡고 썩은 정치를 새로운 정치로 바꾸는 일이다. 낡고 썩은 정치는 국가발전을 가로막아왔다. 정치는 사회의 여러 갈등과 대립을 가장 높은 차원에서 푸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우리 정치는 갈등을 풀기는커녕 오히려 자꾸 새로운 갈등을 만들어내고, 문제를 더욱 꼬이게 했다.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처럼 고장난 불량정치가 더욱 문제인 것은 정치논리가 경제를 망치고 사회를 혼란으로 몰아넣는 등 국가경영 전반에 나쁜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IMF 위기’는 단순한 경제 실패의 결과가 아니었다. 그것은 국정운영의 총체적 실패의 필연적인 결과였다. 그 실패의 뿌리에는 정경유착으로 만연된 부정부패가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정치는 IMF 위기를 겪었으면서도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했고, 국민의 정치불신과 무관심은 심화되었다.

따라서 국민이 정치에 대해 환멸과 증오를 느끼고 적대감을 보이기 전에 정치권은 정치개혁을 이뤄야 한다. 새로운 정치 패러다임을 만들고 유지해 나가는 과정에서 기득권 정치구조에 편입되지 않은 새로운 정치세력이 중요한 구실을 맡아야 한다. 특히 정당이 정책대결이 아니라 지역대결을 하고 있고, 정치적 신념이 아닌 사사로운 이해관계에 따른 이합집산이 잦은 우리나라에서는 새로운 정치세력의 등장이 매우 필요하다.

21세기를 끌어갈 새로운 정치세력이 추구해야 할 목표는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 시민적 토대를 바탕으로 한 열린 참여민주주의를 지향해야 한다. 둘째, 인물중심의 무원칙한 연줄정당이 아니라 이념과 노선, 정책의 동질성에 기초한 정책정당을 지향해야 한다. 당원의 당비에 의한 정당재정의 자립적 토대를 구축하고, 당내 민주주의를 활성화하며, 시민사회에 대하여 개방적이고, 정치자금을 투명하고 효율적으로 운용하며, 망국적 지역대결구도도 뛰어넘는 정치세력이 등장하면 정치개혁의 바위가 굴러 떨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손혁재 (운영위원장, 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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