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법센터 표현의자유 2021-02-26   2794

진실을 말하는 것이 ‘범죄’가 되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합헌 결정 유감

민주적 공론장 형성에 반하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합헌 결정 유감

‘사생활의 비밀이 아닌 경우’ 위헌 소수의견이 더 설득력있고 합헌적

 

헌법재판소가 어제(2/25) 형법 제307조 제1항의 ‘진실적시 명예훼손죄’에 대해 재판관 5명의 합헌 의견으로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지난 2016년 인터넷상 진실적시 명예훼손죄라고 할 수 있는 구 정보통신망법 제70조 제1항에 대해 참여연대가 제기한 헌법소원에 합헌결정을 내린 데 이어 헌재가 또 한번 사실적시명예훼손죄에 합헌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이번 합헌 결정으로 민주주의의 가장 핵심적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의 충실한 보장은 요원한 과제가 되었다. 이들 5인의 다수의견에 비해 “민주주의 사회의 토대가 되는 핵심적인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은 최소화해야 하고, 허위 사실을 바탕으로 형성된 개인의 명예보다 진실한 사실에 관한 표현의 자유 보장에 중점을 둘 필요성이 있으므로 ‘사생활의 비밀에 해당하지 않는 진실한 사실’에 대해서까지 처벌하는 것은 위헌”이라는 재판관 4인의 소수 의견에 오히려 주목해야 할 것이다.

 

합헌 의견은 표현의 자유와 인격권의 우열을 쉽게 단정할 수 없으며 명예가 훼손되면 회복이 사실상 불가능한 점, 형벌과 같은 예방효과를 위한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없는 점, 형법 제307조 제1항의 “사실”의 의미를 위축효과를 고려하여 개인이 숨기고 싶은 병력·성적 지향·가정사 등 사생활의 비밀에 관한 내용으로 한정하여 일부위헌 결정을 하더라도 사생활의 비밀에 해당하는 사실과 그렇지 않은 사실 사이의 불명확성이 존재하는 점을 고려하여 합헌 결정을 하였다. 

 

그러나 현실은 진실적시명예훼손죄에 근거해 기업의 상품· 서비스에 대한 품평, 공적사안에 대한 의견 개진, 국가기관과 공직자에 대한 비판 등을 할 경우 형사처벌 대상이 되어왔다. 이번 헌법소원 청구인 역시 동물병원의 잘못된 진료행위를 알리고자 한 것임에도 이 조항에 따른 처벌을 감수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다수 의견대로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라는 위법성 조각 사유를 입증해야 하고, 수사와 재판과정에까지 이를 각오를 하지 않는다면 진실한 사실조차도 공론의 장에서 토론할 기회, 알려질 기회가 없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진실한 사실을 말하는 것이 죄가 된다는 규범은 인간의 직관에도 반하고, 사실상 사회적 통념과도 일치하지 않는다. 진실을 말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보호되는 명예(소위 허명)가 과연 표현의 자유, 알권리 등을 희생하면서까지 보호할 가치가 있는지 의문이다.

 

다수의견도 형법 제307조 제1항의 “사실”을 해석함에 있어 병력, 성적지향 등 사생활의 비밀에 해당하는 사실과 그렇지 아니한 사실을 나누어 보호의 범위를 한정할 필요성은 공감하면서도 해석상의 불명확성을 고려하여 한정위헌 또는 헌법불합치 결정에 이르지 못하였다. 이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에서 형사 처벌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사실을 한정하는 것이 입법자의 몫인 점을 고려한다면 매우 아쉽다.

 

결국 차별적 의도로 사실을 적시하거나 악의적 의도로 사실을 적시하는 경우 이를 형사처벌의 대상으로 삼을 것인가 아니면 민사소송을 통하여 구제할 것인가의 문제는 국민적 합의를 통하여 입법자가 시대상황에 맞게 결정할 문제이다. 더구나 사생활의 핵심 영역에 속하는 부분을 적시함으로써 명예를 훼손한 행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도입하려는 입법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점에서 이러한 논의의 대상에서 제외되는 사실적시 행위에 대하여 형사처벌을 유지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 침해를 방치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헌법재판소 다수의견의 소극적 태도를 납득하기 어렵다. 

      

표현의 자유의 핵심은 타인이 듣기 싫은 소리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다양한 사상과 의견의 교환을 보장하고 국민의 알권리에 기여하는 표현의 자유는 우리 헌법상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핵심적 기본권이다. 사생활의 비밀에 대한 차별적이거나 악의적 의도로 사실을 적시하는 것이 아니라면 진실한 사실이 누군가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만한 부정적인 사실이라는 이유만으로 표현을 제한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UN자유권위원회는 2015년 대한민국 심사에서 진실적시명예훼손죄를 폐지할 것을 권고하였으며 표현의 자유 보호를 위해 명예훼손을 형사처벌의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은 전세계적 흐름이기도 하다. 미국에서는 명예훼손행위를 주로 민사상 손해배상으로 규율하고 있고, 형사처벌 규정을 유지하고 있는 16개 주에서도 실제 기소로 이어지는 경우는 대단히 드물다. 독일이나 프랑스, 오스트리아, 스위스 등은 명예훼손의 형사처벌 규정을 유지하고 있기는 하지만, 경범죄로 처리되는 등 실질적으로 명예훼손을 비범죄화하는 추세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유럽인권재판소 역시 인종혐오를 제외한 명예훼손에 대하여 자유형을 선고하는 것은 과도한 형벌이라는 입장을 수 차례 밝힌 바 있다.

 

소수의견이 밝힌 바와 같이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한은 불가피하더라도 최소한의 제한이 이루어져야 하고, 형사처벌이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그 대상 행위와 결과가 반(反)가치적이어야 하는데(행위반가치, 결과반가치), 형법 제307조 제1항 진실적시명예훼손죄는 행위반가치와 결과반가치가 없고, 형사 처벌조항 자체만으로 위축효과와 전략적 봉쇄소송의 도구가 될 수 있다. 이러한 헌법재판소의 소수의견을 존중하여 국회는 시급히 형법 제307조 제1항을 삭제하거나 개정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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