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법센터 칼럼(pi) 2012-02-28   2786

검열자일기-김용민은 언제나 보수인사와 같이 출연해야 하는가?

김용민이 방송에 출연할 때는 항상 보수인사와 함께?

공정성은 산술적 균형이 아니다


지난 2월16일 2012년 제4차 전체회의에서 김용민이 출연한 SBS-AM ‘김소원의 SBS 전망대'(‘11.11.2.수, 11.9.수, 11.14.월, 11.23.수, 11.28.월, 07:10-08:00)에 대해 법정제재가 내려졌다. 명진스님이 출연한 CBS-AM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2부'(‘11.12.12.월,19:00-19:30)에 대해서도 똑같은 법정제재가 내려졌다.

 

 ○ 김용민 시사평론가의 ‘뉴스브리핑’ 코너에서, – ‘의약계 리베이트 수수금지 결의 및 정부의 의료수가 인상'(11.2.), ‘SNS 등을 통한 한-미 FTA 유언비어 유포 관련 검찰의 구속․수사 방침'(11.9.), ‘제주도 세계 7대 자연경관 선정 논란'(11.14.), ‘한나라당의 한-미 FTA 비준 동의안 단독 처리’ 및 ‘원자력진흥위원회의 원전 강화계획'(11.23.), ‘한-미 FTA 비준 이후 지적재산권보호 강화'(11.28.) 관련 뉴스를 소개하면서 사회적 쟁점 사안 등에 대하여 대립되는 의견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특정 신문(한겨레 경향)의 사설 및 기사를 인용하여 일방의 의견만을 소개하는 내용을 방송함.

 

○ 인터뷰 형식으로 진행되는 시사 프로그램에서 출연자(명진 스님)가 현직 대통령을 “거짓말하는 사람(거짓말쟁이)” 또는 “사기꾼”에 빗대어 비판하는 과정에서, – ▲”위증을 교사하였다”,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갑자기 어느 날 총을 든 괴한이 우리 집에 들어와 협박을 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누가 전화를 걸어서 탕탕탕 했다”고 한다, ▲”대단히 유명한 정신과 의사인 선생님이 세무 조사로도 안 나오니까 직원 6명밖에 없는 그 조그마한 병원에, 치료실에 노무 조사를 나와 가지고 차 없는 사람한테 차량 보조비를 줬다고 세금을 매겼다”, ▲”이런 식으로 노무현 대통령 주변도 하다못해 잘 가던 음식점까지 가서, 삼계탕집인가요? 뭐 뒤지고 그랬다는데 거기에 견뎌낼 사람이 없다” 등과 같이 발언하는 내용을 방송함.


위 방송내용이 징계받은 이유 중의 하나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만든 심의규정 제9조 제2항에 따라 “사회적 쟁점 사안 등에 대하여 대립되는 의견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특정 신문의 사설 및 기사를 인용하여 일방의 의견만을 소개하여” 방송의 공정성을 훼손한다는 이유이다. (명진스님건은 진실성에서, 김용민건은 출처표시미비도 부가적인 규제이유였다). 


똑같은 조항으로 과거에 PD수첩 광우병보도가 미국산쇠고기의 안전한 측면에 대해서는 충분히 보도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규제된 바 있다.

 

그러나 진짜 방송에 나와야 할 사람들은 약자이다. 강자는 방송에 나올 필요가 없다. 묵묵히 자신이 계획대로 밀어부치면 될 일이다. 하지만 바로 이 강자의 ‘조용한 횡포’를 중단하려는 사람들은 목소리를 내는 수밖에 없다. 논리에 호소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반대하도록 호소하여 강자를 설득해야 한다.


그렇다면 약자의 이야기만 방송에 나왔다고 해서 강자에게 불공정한 방송이라고 할 수 있을까? 과연 방송의 공적 책무가 그런 의미일까?

 


시장에서의 힘의 불균형이 방송에 그대로 반영되면 국민들의 알권리 침해


도리어 방송을 다른 매체처럼 시장에 맡겨두지 않고 공적 통제를 하는 것은 시장에서의 힘의 불균형이 방송에 그대로 반영되면 국민들의 알권리를 침해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방송에서 시장의 힘의 우열이 그대로 방송시간에 반영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내용에 대한 공적통제를 하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공정성심의이다. 그렇다면 방송공정성심의는  의식적으로 강자 보다는 약자의 입장을 더욱 중점적으로 보도하도록 해야 하고, 그것이 바로 방송의 공적책무이다.

 

물론 누가 강자이고 누가 약자인가가 불분명할 때는 많다. 그러나 국가와 개인 사이에서는 명백하다. 국가는 적법절차나 의회절차만 거친다면 국가의 결정을 국민에게 강요할 법적 권한을 언제나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국가와 개인 사이에 쟁점이 된 사안에 대한 보도를 할 때 무엇이 공정한 방송인가는 쉽게 알 수 있다. 국가는 그냥 법적 권한을 행사하면 되므로 방송에서 보도되지 않는다고 큰 ‘억압’을 받는 것이 아니다. 


1960년대 미국에서 반전시위가 한창일 무렵, 예를 들어 대규반전시위에 대한 반전보도를 하면 항상 같은 시간동안 미국정부의 전쟁홍보를 같이 방송해야만 방송이 공정해지는 것이 아니다.  특히 국가는 별도의 전쟁홍보광고를 하면 될 일이지 뉴스보도에서도 전쟁홍보성 보도를 반전시위 보도에 항상 같은 길이만큼 추가해야 한다는 것은 이를 비판하고자 하는 국민에게는 너무나 불공정한 방송이 된다. 산술적 균형성 때문에 실체적 균형성이 깨진 방송이 된다.

 

결국 명진스님이나 김용민 같이 현재의 정부에 비판적인 인물들이 방송에 나온다고 해서 토론프로그램도 아닌데 이 사람들”만”을 출연시킨 죄로 공정성심의 제9조 제2항 위반으로 모는 것은 진정한 공정방송의 가능성을 폐기하는 것이 된다. 뿐만 아니라 공정성심의를 국가가 하는 이상 결국 김용민 출연건이나 명진스님 출연건은 국가에 비판적인 방송이라고 하여 제재하는 것밖에 되지 않으며 이는 우리 헌법이 금지하고 있다.

* 이 글은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의 교수의 “검열자 일기”를 옮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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