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법센터 칼럼(pi) 2012-03-15   2640

[칼럼]해적,Revolt, 짜장면

해적, Revolt, 짜장면


이영조가 쓴 단어들, revolt, rebellion, 모두 국제적으로 좌우파 관계없이 ‘지배에 대한 저항’이라는 중립적인 의미로 널리 쓰이는 말이다. Rebel이라는 말도 영웅적인 ‘반군’, ‘저항군’의 의미로 영화 <스타워즈>같은 곳에서 잘 쓰이고 있다.오래된 예로는 유태인들도 2천년전 로마제국에 대한 자신들의 항쟁을 Jewish Revolt라고 자랑스럽게 부른다. 5.18이나 최근 중동의 민주화운동을 거론하는 외국언론들이나 학자들의 표현에도 rebellion이라는 표현은 빠짐없이 등장한다. 이영조의 의도나 문맥 때문에 일부러 ‘반란’이나 ‘폭동’이라고 부정적으로 번역했는지는 모르나 언제든 ‘항쟁’이라고 번역될 수 있기 때문에 단어사용 자체만을 문제삼을 일은 아니다.   

 

Communist-led (공산주의자 주도)라는 말은 틀림없이 오도의 의도가 있을 수 있고 실제 오도의 가능성이 있다. 4.3은 ‘항쟁’이라기 보다는 남로당빨치산에 대한 무차별적 진압시 벌어진 양민학살이었다. 그러나 당시 해방후 혁명적 열기 속에서 우리 ‘양민’의 상당수가 자본주의보다는 공산주의에 더 친숙해져 있었다. 또 4.3이 남로당의 무장공격으로 시작되어 국군과 극우단체의 무차별적 진압-양민들의 정당방위적 저항-양민학살로 이어진 것도 사실이다. ‘Communist-led’라는 표현의 오도가능성도 있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너무 극렬하게 거부하는 것은 우리 내부에 깊게 이식된 반공의식 때문이 아닌지 살펴볼 일이다. 이영조가 4.3에서 이루어진 학살의 사실을 부인했다면 모르되 영어단어 사용만 가지고는 비판하기 부족하다.   

 

필자는 ‘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말은 당시의 피비린내가 소독된 무미건조함 때문에 잘 사용하지 않고 ‘광주항쟁’이나 ‘광주학살’이라는 표현을 더 즐겨 쓴다. 과거 군사독재정권의 폄하와 ‘색칠하기’에 열받아서 일부러라도 그 역사를 돌파해낸 민주정부가 정해준 용어를 사용하는 것도 예의겠지만 그것도 나의 선택이다.

 

사실 국가가 사물의 이름을 정하려는 것 자체가 사상통제이다. 국가가 자신들의 공문서에 자장면이라고 쓰건 말건 국민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짜장면, 북어국 소리도 못하는 언어관치를 더 보편화하자면, 특정 언어의 선택으로 전달하려는 감정과 견해의 공유가 차단되고 그리하여 결국 사상이 통제된다. 바로 이 언어관치가 토양이 되어 Fuck the Draft라고 못하고 Fucking U.S.A. 라고 못하고 2mb18nomA라고 못하는 비민주성이 자라난다.

 

여기에 해군이 ‘해적’기지라는 말을 형사고소한 사례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주둔해군 때문에 강정주민들의 생계와 안정이 위협받는다는 의미’였다고 아무리 설명해도, 결국 강정주둔도 해군작전의 일환이었으니 천안함 유가족들이나 해군사병들의 마음은 분노 때문이든 회한 때문이든 착잡하긴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찌되었든 중요한 것은 그렇다고 해서 그런 말을 쓴 사람을 형사처벌의 위험에 노출시키는 것이 맞는가이다. 물론 이런 질문을 던지기 위해서는 우리는 이영조씨가 4.3과 5.18을 설명하면서 중립적인 revolt나 rebellion 대신 부정적인 용어인 sedition라는 표현을 썼다고 하더라도 이영조씨에게 형사처벌을 위협하는 것은 옳지 않음을 인정해야 한다.

 

모욕죄 명예훼손죄 형사처벌제도를 유지하기를 바라는 분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한편으로는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혐오죄가 없어서, 다른 한편으로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해, 또다른 한편으로는 민사소송비용을 감당하지 못하는 서민층 보호를 위해서 필요하다고 한다. 하지만 혐오죄는 만들면 되고 프라이버시 보호는 민사소송으로도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돈없어서 민사소송 제기 못하는 서민층이 검찰에는 과연 고소장들고 냉큼냉큼 잘 다녀갈 것인가? 이번 형사고소로 위축될 수많은 사람을 생각하면 또 이 고소 때문에 ‘해적’의 의미를 국어사전이나 문헌에서 뒤져보고 있을 검사들과 판사들에게 지급될 국민세금을 생각하면 아무리 따져보아도 폐지하는 것이 수지가 맞는다.


글 / 박경신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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