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법센터 표현의자유 2010-10-29   3631

헌재의 “불온한” 결정 유감

헌재 국방부 불온서적 소지 금지 합헌 결정 유감 천만

2002년 불온통신 위헌결정에서 한참 후퇴해
국민 관심사 회피한 ‘헌재의 말놀이’에 놀아난 군인의 책읽을 자유
개념, 절차적 하자 지적한 소수의견이 더 설득력 있어

헌법재판소는 어제(28일) 군대 내에서 국방부 장관이 정한 ‘불온서적’을 소지할 수 없도록 한 군인복무규율 제16조의2에 대해 합헌이라고 결정하였다. 이와 함께 그 조항에 따라 내려진 23개의 서적들의 불온서적 지정 및 반입금지조치에 대해서는 장병들의 기본권을 직접적으로 침해하지 않는다며 헌법소원을 각하하였고 군인복무규율 조항의 근거법률인 군인사법 제47조의2에 대해서도 비슷한 이유로 각하하였다.

참여연대 공익법센터(소장 박경신, 고려대 교수)은 위 결정이 군인들의 사상의 자유를 무시한 결과이며 법적으로도 흠결을 가지고 있어 유감이다. 위헌 주장을 한 이공현, 송두환 재판관의 소수의견은 국민의 기본권 보호 측면에서 훨씬 더 설득력이 있다고 본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군부대’라는 공간이 군인들의 생활공간이기도 하지만 군사적 대치상황에서 국방이라는 민감한 업무를 수행해야 할 업무공간이라는 점에서 군부대 내에서 군인들이 접하게 되는 서적들은 일반인들이 도서관이나 서점에서 접하게 되는 서적들보다는 한정될 수도 있다는 점은 인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역시 대부분의 국민들은 위에서 지정한 서적들이 국방업무에 방해가 되거나 업무수행능력(소위 ‘정신전력’)을 약화시키는 내용의 것인가에 대해 회의를 느꼈다. 도리어 ‘나쁜 사마리아인들’(장하준 저), ‘우리들의 하느님’(권정생 산문집), ‘지상에 숟가락 하나’(현기영 소설집) 등은 각종 단체로부터 우수도서로 추천된 도서들임은 물론 그 외의 서적들도 체제에 대한 저항을 선동한다거나 그러한 방법을 지시하는 내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불온도서로 지정된 것에 대해, 위 지시가 현 정부의 정치적 성향에 복무하려는 국방부와 군의 과잉충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하는 강한 의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결국 강제로 징집되어 봉사하고 있는 군인들의 정신생활이 고위군인과 관료들의 출세욕에 희생된다는 것에 분노하였다. 그런데 헌법재판소는 이번 결정에서 실로 ‘말놀이’로 이러한 국민의 분노를 비껴나갔다.  이로 인해 헌재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었다고 해도 탓할 일만은 아니게 되었다.

위 구체적인 서적들의 ‘불온’지정은 국방부장관이 각 군 참모총장에게 그리고 각 군 참모총장이 예하부대에 공문을 하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고 이 공문을 통해 이루어진 지시에 대해 헌법소원이 제기된 것이다.

그런데 헌재는 ‘일반장병의 기본권 제한은 하급부대장의 구체적 집행행위를 매개로 하여 비로소 현실화된다 할 것이므로, 이 사건 지시 자체가 대외적 효력을 발하여 청구인을 비롯한 일반 장병에 대하여 직접 자유의 제한. . .을 초래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시하며 불온도서지정의 실체적 타당성에 대한 판단을 피하였다.

즉 각 일선부대장이 위 지정서적들을 실제로 반입금지하기 전까지는 기본권제한이 없는 것이니 상위계통에서 이루어진 지시는 위헌여부를 판단할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 책을 빼앗긴 군인이 헌법소원을 제기하기 전까지는 그 책을 불온서적으로 지정한 조치에 대한 헌법적 판단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헌재가 이렇게까지 엄격하게 직접성을 요구한 것은 사상 처음이 아닐까?

당시 국방부가 각군 참모총장에게 그리고 각군 참모총장이 예하부대에게 전달한 공문은 위 23개서적의 목록과 함께 ‘불온서적 반입여부 일제점검’, ‘휴가 및 외출·외박 복귀자 반입 물품확인’, ‘우편물 반입 시 간부 입회 하 본인 개봉/확인’ 등의 문구를 포함한다. 일선 군부대까지 내려온 이러한 상부지시가 실제로 군부대에서 위 서적들을 찾아내서 금지한 사례가 없다고 하여 직접적 침해가 없다며 각하하는 것은 소수의견이 지적한 대로 ‘대안이 없는 실효적 구제수단’을 부인하는 것이다.

헌재의 모순적인 입장은 복무규율조항에 대한 판단을 보면 알 수 있다. 위 지시의 법적 근거가 되었던 대통령령인 복무규율 제16조의2에 대해서는 군인에게 직접 의무를 부과한다면서 본안판단을 진행하고 합헌이라고 선언하였다. 위 조항은 ‘군인은 불온표현물을. . .소지. .하여서는 아니. . 한다‘라고 되어 있을 뿐 이 규범이 어떻게 군부대장에 의해 집행되는지 명시가 되어 있지 않다. 어떻게 불온서적을 특정해주면서 반입금지하라는 상부지시는 직접성이 없고 아무런 설명 및 절차도 없이 불온서적은 소지하지 말라는 대통령령은 직접성이 있다는 것인지 그 속내를 알 수 없다.

헌재가 막상 불온서적 지정의 내용은 옹호하기 어려우니 직접성을 핑계로 내용에 대한 판단을 비껴가고 옹호하기가 쉬운 복무규율규정에 대해서만 판단을 한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물론 복무규율 제16조의2 자체도 심각한 문제가 있다. ‘불온서적’이라는 표현 자체는 너무나 불명확하다. 이는 다수의견도 인정한 바다. 이공현, 송두환 재판관의 소수의견의 지적처럼 “‘국가보안법상 이적표현물’의 정도에 이르러야 하는 것인지, 그 정도에는 이르지 아니한 ‘체제비판적인 도서’도 포함하는 것인지, 체제비판에는 이르지 아니한 ‘정부 비판적인 도서’까지 포함하는 것인지, 더 나아가 ‘정부의 특정정책에 대한 비판적 내용이 있는 도서’까지 불온에 해당하는 것인지도 전혀 알 수 없다.”

 헌재는 2002년 소위 ‘불온통신’ 결정에서 행정기관이 인터넷상 게시물에 대해 삭제명령을 내리는 기준으로서의 ‘불온통신’ 개념에 대해 명확성의 원칙 위반이라면서 삭제명령의 대상은 ‘표현 자체로부터 불법성이 명백한 경우’로 한정되어야 한다면서 위헌결정을 내린 바 있다. 즉 똑같은 개념이라고 할지라도 행정기관의 삭제명령의 기준으로 이용될 경우 더욱 엄격한 명확성이 요구된다고 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징병제를 실시하고 있다. 자신이 다른 체제를 우월하다고 믿는다거나 정부에 비판적이라고 해서 징집을 거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이들도 모두 군부대내에서 생활하고 있다. 또 24시간 생활해야 하는 “군부대 내”에서 특정 책을 읽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그 책을 “아예” 읽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결국 복무규율 제16조의2는 젊은이들을 강제로 데려다가 2년간 세뇌교육을 시키는 근거가 될 위험이 있는 조항이다.

PIe2010102900.hwp논평원문

헌재결정문.pdf헌재결정문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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