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법센터 칼럼(pi) 2009-10-30   1142

쿠오 바디스(Quo vadis), 헌재?

헌재 어디로 가고 있나
“국회자율권이 면책수단 아니다”더니…

 
헌법재판소가 미디어법 권한쟁의사건에 대해 법 통과과정이 위법해 국회의장이 야당국회의원들의 권한을 침해하기는 했는데, 법통과가 무효는 아니라는 판결을 내렸다.

즉, 다수의 헌법재판관들이 신문법 통과와 관련해 대리투표 등의 위법행위가 있었음을 인정했고, 방송법과 관련해서는 국회법상의 일사부재의원칙에 반하는 위법한 재투표가 있었다고 판시하면서도, 두 법 모두 가결선포행위 자체는 무효가 아니라는 논리다.

필자는 지난 달 모 일간신문에 기고한 글을 통해 헌재가 1997년 7월 16일의 노동관계법 날치기 통과사건에서 법 통과의 위법성과 권한 침해는 있으되, 위헌무효는 아니라는 이상한 판결을 내렸고, “이 판결의 악몽이 이번에 재연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쓴 바 있다. 그런데 또 다시 이런 판결이 내려져 착잡한 마음이 크다.

위법이면 위헌이고 위헌이면 무효다!

많은 국민들이 의아해하고 있다. 위법한 권한 침해가 있었는데 무효가 아니라는 헌재 결정이 선뜻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기 때문이다. 위법성과 권한 침해는 인정하면서도 유효하다니, 전후모순된 논리로 듣기는 것은 당연하다. 결론부터 말해서, 이러한 결정은 법리적으로 틀린 결정으로 법적 판단이 아니다. 헌재가 법적 판단이 아니라 정치적 판단을 내려놓고 국민들과 국회의원들에게 이 판단이 법적 판단이니 존중하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위법이면 위헌이고 위헌이면 무효라 보는 것이 법리상 자연스럽다. 왜냐하면 헌재가 이번의 위법한 법통과 과정을 통해 위반되었다고 인정한 국회법 조항들 자체가 대의민주주의라는 우리 헌법의 기본원리나 헌법 제12조의 적법절차조항을 구체화 해놓은 하위법률조항들이기 때문이다. 하위법률조항들을 위반했다면, 그 모법인 헌법의 근거규정이나 기본원리에 위배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닌가.

특히 재투표가 위반한 일사부재의원칙에 관한 규정이나 대리투표가 흔들어놓은 일인일표제에 관한 국회법 조항들은 헌법과 밀접히 연관된 법규정들이다. 중간매개체를 거치지 않고 헌법상의 기본원리나 명문규정에 바로 맞닿아 있는 조항들인 것이다. 따라서 이 국회법 조항들을 위반하면 즉각 헌법을 위반한 것이 된다. 그리고 위헌이 되면 헌법에 위반되는 공권력이나 법률은 헌법이라는 ‘효력근거를 상실’하기 때문에 당연히 무효가 되는 것이다.

조대현, 송두환 재판관이 반대의견에서 잘 지적하고 있듯이 헌법이 대의민주주의원리에 근거해 국회의 의결을 국민의 의사로 간주하는 것은 국회의 의결이 헌법이나 국회법이 미리 정한 적법절차를 거쳐 통과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적법절차의 룰을 따르지 않고 위법하게 표결처리된 법률은 주권자인 국민의 의사로 간주될 수 없어서 당연히 처음부터 무효라 봐야 하는 것이다.

‘중대한’위법이어야 무효라는게 어디 있나?

헌재 스스로 권한 침해도 있었다고 인정했다. 그러면 야당 국회의원의 법률안 심의·표결권을 침해한 국회부의장의 위법한 의사진행권 행사와 가결선포행위 및 그로 인해 통과된 법률들은 당연히 무효가 되는 것이고 헌재는 이에 대핸 무효선언을 해주어야 한다. 헌법재판소법 제66조 제2항도 권한쟁의심판에서 “헌법재판소는 권한 침해의 원인이 된 피청구인의 처분을 취소하거나 그 무효를 확인”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지 않은가. 따라서 피청구인인 ‘국회의장’의 미디어법 가결선포행위라는 ‘처분’에 대해서는 권한 침해가 인정된 이상 무효선언이 있어야 마땅한 것이다.

헌재의 다수의견은 위법은 위법인데 국회의장의 법률안 가결선포행위를 무효화시킬 만큼의 ‘중대한 위법’은 아니라고도 주장한다. 위법한 권한 침해가 있으면 무효선언을 해야 하는 것이지 꼭 ‘중대한’ 위법이어야 무효라 할 수 있다고 어느 법조항에 규정되어 있는가.

‘중대한’이라는 꼬리표는 헌재 다수의견이 독단적으로 갖다 붙인 것이다. 설령 백번 양보하여 이 주장이 맞다 하더라도, 대리투표나 재투표를 통해 국회법이 규정한 중대한 의사진행절차에 관한 조항들을 위반한 것이 ‘중대한 위법’이 아니면 무엇이 ‘중대한 위법’인지 반문하고 싶다.

“국회 자율권이 만능 면책수단이 아니다”지 않았었나

위법한 권한 침해는 있었으나 무효선언은 안 하는 이유로 헌재는 ‘국회 자율권 존중’을 들고 있다. “기능적 권력분립과 국회의 자율권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헌법재판소는 원칙적으로 처분의 권한 침해만 확인하고 권한 침해로 야기된 위헌, 위법상태의 시정은 국회의 자율적인 의사결정에 맡겨야 한다.”는 부분이 그것이다. 그러나 국회 자율권은 이런 경우에 적용되는 법리가 아니다.

헌재 스스로 과거의 판결에서 “국회의 자율권은 의사절차와 관련해 법에 명시되지 않은 부분에 관하여 그 한도 내에서 인정되는 것이지 국회법에 명시된 부분을 분명히 위반한 경우에까지 주장할 수 있는 만능 면책수단이 아니다.”라고 판시한 바 있다. 일사부재의원칙 조항을 포함한 여러 국회법 조항에 위반했다는 것은 그러한 류의 의사절차와 관련해서는 국회법에 이미 명문규정이 있음을 전제로 한 것이 아닌가.

국회법에 명시된 조항을 위반한 경우를 두고 ‘국회 자율권’을 거론하며 면죄부를 주려해서는 안 된다. 헌재 스스로도 과거의 판결에서 “국회법에 명시된 부분을 분명히 위반한 경우에도 헌법재판소의 법적 평가대상에서 제외된다면 민주주의를 수호할 방법이 없다.”고 단언하고 있지 않은가. 헌재가 미디어법 통과의 위법성과 권한 침해를 인정하면서 미디어법 가결선포행위에 대해 무효선언을 하지 않는 것은 일종의 직무유기에 가깝다. 헌법재판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국가 공권력이나 법률에 대해 위헌성을 심사해 위헌이면 무효선언을 통해 그 위헌성을 치유하는 강제력을 수반한 결정을 내리는 것이 헌법재판이 아닌가.

위법성과 권한 침해는 지적하면서도 “권한 침해로 야기된 위헌, 위법상태의 시정은 국회의 자율적인 의사결정에 맡겨야 “하고 무효선언을 통해 잘못된 가결선포행위의 효력을 상실시키지 않는다면 도대체 권한쟁의심판권을 헌재에게 준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헌법은 헌재에게 국가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 등 기관간의 권한 다툼이 생긴 경우에 타기관의 권한을 침해한 잘못된 권한 행사에 대해 이를 무효화하여 정상적인 상태로 회복시키라고 권한쟁의심판권을 준 것이다.

법에 위반했고 타기관의 권한을 침해했다는 강제력 없는 자문이나 하라고 헌재에게 권한쟁의심판권이라는 강력한 사법권한을 준 것이 아니다. 오죽했으면 조대현, 송두환 재판관도 반대의견에서 위법한 권한 침해는 있었으나 무효는 아니라는 다수의견에 대해 “모든 국가작용이 헌법질서에 맞추어 행사되도록 통제하여야 하는 헌법재판소의 사명을 포기하는 것”이라 강하게 지적했겠는가.

무효선언이 미디어법 내용 지적하는 것도 아닌데

위법한 권한 침해가 있었다고 인정했으면 미디어법의 가결선포행위에 대해 무효선언도 해줬어야 한다. 무효선언을 했다고 상황이 크게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무효선언은 국회에서 미디어법을 정상적인 적법절차를 밟으며 다시 더 논의하라는 것이지 그 법의 내용에 문제가 있어 국회가 이를 부결시켜야 한다는 결정이 아니다.

이번 결정을 통해 헌재는 국회 본회의장에서 벌어졌던 위헌적이고 불법적인 상황에 대해 단호한 위헌무효 결정을 통해 명확한 헌법적 기준을 제시했어야 했다. 그런데, 헌재 스스로야 부인하겠지만 오히려 이번 결정은 국회 다수당에게, 비록 법률안 심의통과절차에서 국회법을 위반하더라도 표결로까지 밀어붙이기만 하면 헌재가 이러한 법률안 통과를 무효화시키지는 않는다는 시그널을 줄 수 있어 큰 문제다.

민주주의는 원래 결과 못지않게 과정을 중시하는 원리이다. ‘법통과’ 라는 결과만 얻을 수 있으면 그 과정과 절차야 위법해도 상관없다는 생각은 민주주의에 반하는 것이며, 절대로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필자는 헌재가 이번 사건에서 법적 판단이 아니라 정치적 판단을 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헌재의 존립근거를 헌재 스스로가 뒤흔드는 우를 범하는 일이다. 원래 정치적 판단은 정치를 직업으로 삼는 국회의원들이나 그 수반이 국민의 직접선거로 뽑히는 행정부의 구성원들이 할 일이다. 정치적 분쟁은 정치인들간의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해결하는 것이 최선이겠으나, 정치적 관점에 매몰된 정치인들 사이에서는 도저히 해결될 수 없는 정치적 분쟁을 헌법의 관점에서 법적 판단을 통해 해결하라고 헌재를 만든 것이다.

그런데 그런 헌재가 법적 판단보다는 여러 법외적인 정치적 고려에 입각한 정치적 판단을 한다면 헌재 스스로가 그 본분을 망각한 것이 된다. 정치적 판단은 평생 엘리트 판검사의 길만 달려온 헌재 재판관들보다 정치인으로서의 길을 걸어온 국회의원들이 더 잘 하기 때문이다. 헌재는 이런 지적에 대해 “순수하게 법리적으로 판단한 결과”임을 강조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어느 국민이 선뜻 이 말을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절충’의 미명하에 애매모호해지고 있는 헌재

헌재가 언제부턴가 ‘절충’의 미명하에 애매모호한 판결들을 내리기 시작하고 있다. 이러한 헌재 판결 속에 흐르는 조용한 흐름이 필자는 심히 우려스럽다. 얼마 전 집시법 제10조의 야간옥외집회 금지규정이 헌법에 위배된다는 헌법불합치결정을 내리면서도 결정주문에서 그 위헌조항을 국회의 법개정시까지 잠정 적용하라는 명령을 함께 내리고 있는 것이 그 예이다. 헌재는 그 전에 집시법 제10조와 같은 형벌법규에 대해 헌법불합치결정을 내리게 되면 반드시 그 조항의 적용중지결정도 같이 내렸다. 그래서 그 형벌법규 조항이 적용중지되다가 국회의 법개정으로 폐지되는 운명을 맞게 하였다.

그런데, 이번 집시법 결정에서는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며 위헌성은 지적하고서도 법이 개정될 때까지는 그 위헌적인 법률을 계속 적용하라고 한 것이다. 헌법에 위배되는 법률을 적용해 유죄판결을 내리는 것이 도대체 ‘법적 정의’에 조금이라도 합치되는 일인가. 이런 애매모호한 결정 때문에 헌재 결정의 취지나 의미에 대해 다시 의견이 분분해진다. 헌재 결정의 이행을 두고 혼란이 생기는 것이다.

헌재와 같은 최고사법기관은 국민 인권보장의 최후보루다. 국민 인권보장을 위해 단호하면서도 누가 봐도 그 결정내용이 무엇인지 명백한 ‘헌법적 결단’을 내려줘야 할 기관이다. ‘헌법적 결단’은 간명해야 한다. 난해한 시처럼 헌재결정의 모호한 뜻을 법전문가들이나 국민들이 또 다시 해석해야 하는 결정이어서는 안 된다.

더 나아가 모호한 헌재결정 때문에 또 다른 정치적 분쟁을 낳을 수 있는 것이어서는 더더욱 곤란하다. 간명하지 않고 절충적이면서 애매모호하다든지, 여야 정치세력들의 시선을 의식해 이쪽 저쪽 눈치를 살핀 좌고우면의 흔적이 베인 애매모호한 결정들은, 정치적 분쟁을 해결하는 헌법재판이 아니라 오히려 정치적 분란만 더 키우는 화근거리가 될 수밖에 없다.

개헌을 통해 1988년에 이 땅에 세워진 헌재가 단기간 내에 지금과 같은 폭넓은 국민적 지지와 사랑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은, 비록 일부 문제있는 판결이 없지는 않았지만 대체적으로 많은 선배 헌법재판관들이 헌법과 양심에 따라 용기있는 위헌판결들로 국민들의 아픈 곳을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었기 때문이다. 그런 헌재였기에 국민들은 신뢰와 사랑을, 그리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박수를 보냈던 것이다. 지금 이 순간 헌재에게 묻는다. 그런 헌재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쿠오 바디스(Quo vadis), 헌재? 헌재를 아직도 사랑하는 많은 국민들이 헌재에게 묻고 싶은 말이다.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 이 글은 프레시안에 기고한 글입니다.

첨부파일: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