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법센터 칼럼(pi) 2011-06-08   2298

촛불의 기원

촛불의 기원

 

‘촛불’이라는 말은 2002년 미군 장갑차에 치여 숨진 효순이·미선이를 추모하는 집회에서 처음 대중적으로 사용된 것 같다. 현재도 마찬가지이지만 당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이하 집시법)은 “학문·예술·체육·종교·의식·친목·오락·관혼상제 및 국경행사에 관한 집회”에 대해서는 사전신고 의무를 부과하지 않았다. 그래서 당시 사전신고 의무를 피하기 위해서 많은 집회들이 ‘문화제’라는 형식을 취했고, 여기에 외국에서 유명인의 죽음을 추모하는 ‘캔들라이트 비질’(candlelight vigil)이 열렸던 것에 착안하여 ‘제사’와의 유사성을 강조하기 위해 앞에 ‘촛불’이라는 말까지 붙여진 것이 아닌가 추측한다.

 그런데 ‘학문·예술…친목·오락·관혼상제…에 관한 집회’를 도대체 어떻게 가려내겠다는 것인가?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집회에는 수많은 동창회들이 광장에서 모였는데 ‘친목’이 아닌가? 요즘 우리 대학생들이 학교에서 벌이는 ‘공부농성’을 길거리에서 하면 ‘학문’이 아닌가? 외국의 길거리 집회 현장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티치-인’(즉 강의농성)은 어떤가? “전쟁하지 말고 사랑을 하세요”라는 모토가 지배했던 미국의 우드스탁과 비슷한 공연이 작은 규모로 서울의 길거리에서 벌어지면 경찰이 ‘오락’인지 ‘예술’인지 골머리를 싸매고 고민할 일을 생각하니 헛웃음부터 나온다. 결국 ‘촛불’이라는 말은 자유롭게 집회를 하고자 하는 시민들의 열망의 산물이기도 하지만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황당한 집시법의 산물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나 허망하게도 경찰은 정부에 비판적인 집회의 경우 ‘촛불문화제’라는 제목이 붙어도 신고를 하지 않으면 ‘불법’이라고 규정하여 탄압하는 경우가 허다했고, 이때마다 법원은 잡혀온 이들이 실제로 ‘오락’을 했는지 ‘예술’을 했는지 따져보지도 않고 거수기처럼 경찰의 해석을 따라 유죄판결을 내려왔다. 결국 지금은 ‘촛불문화제’라는 제목이 약발이 먹히지 않으니 집회 주최자들도 아예 미리 신고를 하고, 경찰은 정부에 비판적인 집회에 대해서는 ‘금지 통고’를 함으로써 대응하고 있다.

 이럴 거라면 아예 신고를 하지 마라. 물론 국가는 타인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집회의 시간·장소·방법을 합리적인 범위 안에서 제약할 수 있고(예를 들어 주택가에서의 확성기 사용 제한, 공공도로의 통행방해 금지, 또는 참가자들이 버리는 쓰레기 규제) 그러한 제약의 실행을 위해 사전신고를 의무화할 수 있다.

 하지만 ‘집회’가 무엇인가? 친구 3명이 영화를 보러 가려고 길거리에서 만나는 것을 집회라고 하여 사전신고를 요구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집회·시위 규제가 정녕 타인의 자유를 위한 것이라면, 많은 인원이 모여야 타인에게 불편한 소음이나 소통장애를 초래할 것이 예상될 터이니 그런 경우에만 사전신고 의무를 부과해야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집시법 어디에도 그런 요건이 없다. 이 때문에 이명박 정부 들어 ‘기자회견’, 그야말로 기자들과 길거리에서 만나도 미신고 집회라며 처벌당하고, 한 사람이 조용히 코스프레를 하고 나타나도 동시에 다른 장소에 나타난 코스프레와 연관성이 있다며 처벌당했고, 심지어는 시골의 농민 몇명이 논바닥에서 만나서 쌀값 폭락을 걱정해도 조사 대상이 되었다. 애시당초 국민의 숨통을 막는 제도였던 것이다. 미국에서는 이런 이유로 ‘더글러스 대 브라우넬’(Douglas vs Brownell) 판결에서 10명 이상만 모이면 신고 의무를 부과하던 법이 위헌판정을 받았고, ‘최소 참가자’ 요건 없이 신고 의무를 부과한 법도 위헌판정(콕스 사건 판결)을 받는 등 비슷한 위헌판결이 줄을 잇고 있다.

 ‘최소 참가자 수’의 요건도 없이 ‘학문·예술·오락’ 등등의 애매모호한 기준으로 적용되는 사전신고의무 제도는 위헌이다. 지난 5일 전국등록금네트워크가 사립대학들의 담합으로 쌓은 살인적 등록금에 대해 국가의 개입을 요구하는 집회를 7~10일에 하고자 신고를 하였고 경찰은 불허하였다. 신고를 하면 집회가 ‘학문’도 ‘오락’도 아니어서 신고 의무가 있음을 자인한 꼴이 되고, 이때 금지 통고를 받으면 그 집회의 불법성이 공식화되어 버린다. 신고할 것이 아니라 신고제도 자체를 거부하고 그 위헌성을 다툴 일이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공익법센터 소장

 

*이 글은 6/8 한겨레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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