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가명정보도 개인정보, 무분별한 데이터 판매 멈춰라

가명정보도 개인정보, 무분별한 데이터 판매 멈춰라

 

지난 9일 <미디어오늘> 보도에 따르면 한국데이터산업진흥원이 운영하는 ‘데이터 스토어’에서 판매되는 소셜 빅데이터에 이용자 신상이 드러날 수 있는 정보가 포함되어 있었다. 데이터 스토어에서 SK텔레콤의 자회사인 스마트인사이트가 판매해 온 ‘포털사/SNS 검색 키워드 기반 소셜 빅데이터’에는 디시인사이드, 트위터, 여성시대, MLB PARK 등 게시글이 올라온 사이트와 ▲게시글 제목 ▲글 내용 ▲작성 날짜 ▲게시글 링크 등이 포함돼 있었다. 해당 상품은 구매자가 원하는 키워드가 들어간 게시물을 일괄적으로 크롤링한 것으로, 한 세트당 500만원에 판매돼 왔다.

 

여기에는 세 가지 문제점이 있다. 우선, 해당 빅데이터 상품은 제대로 익명처리되지 않은 가명정보다. 개인정보보호법은 개인이 특정되지 않더라도 다른 정보와 결합해 쉽게 알아볼 수 있는 경우 역시 개인정보의 범주에 포함한다. 또한 개인정보보호법은 당사자 동의 없는 개인정보 제공과 활용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통계작성/연구 목적으로 빅데이터를 제공하는 경우, 개인이 드러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SK텔레콤 스마트인사이트 측은 일부 마킹(**)처리를 한 것으로 비식별화 조치를 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게시글 내용에 작성자의 아이디가 있는 경우에는 그대로 노출됐다. 또한 판매하는 데이터 자체에 게시글 링크가 포함돼 있기 때문에 링크를 통해 사이트 내부에서 얼마든지 재식별이 가능하며, 일부 누리꾼은 지역정보까지 노출되는 등 누가 그 글을 작성했는지 식별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따라서 해당 빅데이터는 비식별조치를 했다고 볼 수 없는 수준이다.

 

두 번째 문제는 온라인에 공개된 글이라고 해서 당사자의 동의 없이 판매가 가능한지 모호하다는 점이다. 얼마 전에는 이 데이터 스토어에서 ‘나쁜 기억 지우개’ 어플이 이용자의 ▲출생연도 ▲성별 ▲위치 ▲고민 내용 ▲작성 날짜 등을 담은 ‘지역별 청소년 고민 데이터’ 판매를 시도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작성자가 해당 정보들이 제3자에 의해 수집된다는 점과 분석 목적으로 판매될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나쁜 기억 지우개 어플의 데이터 판매는 스마트인사이트의 데이터 판매와 문제점을 같이 한다. 이용자들이 예상할 수 있는 이용 범위를 넘어섰다는 것이다. 사적인 게시물이 상업적인 목적으로 수집되고 분석을 목적으로 판매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누구도 자유롭게 글을 작성할 수 없게 된다.

 

세 번째 문제는 정부가 운영하는 데이터 스토어가 정보주체의 동의 없는 가명정보를 판매하고 있다는 점이다. 애초에 개인이 식별되지 않는 익명정보만 거래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위 사례와 같이 가명정보 혹은 사실상 개인이 식별가능한 정보가 유통되도록 방치해 왔다. 이는 현행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이며, 따라서 데이터 스토어는 위험천만한 가명정보 판매를 중단해야 한다. 또한 데이터 스토어에서 거래되는 빅데이터의 비식별화조치 수준을 엄격하게 관리해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엄중한 경계를 기울여야 한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데이터 스토어는 한번 유출되면 피해 회복이 극히 어려운 개인정보의 유통을 막기 위해 어떠한 감독 장치를 마련하고 있는지 우선 밝혀야 할 것이다. 또한 정부는 이번 사건 이외에 다른 개인정보 유통 사건이 없는지 철저히 조사하라.이번 사건은 사실상 재식별이 가능한 가명정보의 문제점을 보여주고 있다. 현재 국회에는 가명정보를 정보주체 동의 없이 학술연구 및 통계작성 뿐만 아니라 기업 내부적인 영리적 연구 목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개인정보 보호법 개정안(정부안을 그대로 받아 인재근 의원 대표발의)이 심의 중이다. 이 법안은 개인정보가 무단으로 활용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있다. 이미 여러 정부부처에서 데이터 활용 정책이 쏟아지고 있는데다 지난 3일에는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데이터는 미래산업의 쌀”이라며 “데이터 활용이 우리 경제의 활로”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데이터 판매를 촉진시키기 위해 민간기업이 보유한 로(RAW) 데이터나 가공 데이터 구매를 지원하는 사업인 데이터 바우처 사업은 올해 600억원 규모로 확대된 바 있다. 

 

그러나 개인정보보호 안전망 없이 추진되는 이와 같은 빅데이터 정책은 결국 국민들의 정보주체로서의 권리를 빼앗고 개인정보 유출 사고 등의 국민피해만 양산하게 될 것이다.정부와 국회는, 빅데이터 시대에선 데이터 집합을 사용해 개인을 식별하는 일이 더욱 쉽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특히 정부가 현재 운영중인 데이터 스토어의 경우, 정보주체의 동의 없는 가명정보를 판매하고 있다는 점에서 현행 개인정보보호법마저 위반하고 있다. 또한 국회는 가명정보의 정의 및 이용 범위를 기업을 위해 대폭 확대한 개인정보 보호법 정부안의 해당 조항을 수정해야 한다. 기업을 위해 소비자나 인터넷 이용자 등 정보주체의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을 부당하게 침해하는 일이 계속된다면 국민의 신뢰와 지지를 잃을 것이다. 정부는 국민의 신뢰 없이는 데이터 산업이 존립될 수 없음을 명심하라.

 

 

2019년 7월 12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디지털정보위원회 소비자시민모임 서울YMCA 진보네트워크센터 참여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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