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법센터 칼럼(pi) 2011-12-05   3956

SNS규제는 인터넷연좌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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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부에 의하지 않은 SNS규제는 위헌적이다

SNS관계망은 포털게시판보다 더 사적인 매체

 
SNS소통은 사적인 면도 있고 공적인 면도 있다. 그러나 SNS에서의 정보의 소비는 대부분 사적 소통을 통해 이루어진다. 즉 SNS에 글을 올리면 그 글은 SNS관계망에 전달이 된다. SNS관계망은 아무나 들어오는 포털게시판이 아니고 일정한 기준에 의해 선별된 사람들로 이루어지며 이들에 대한 소통은 포털게시판에서의 소통과는 달리 사적 성격이 더욱 강한 것이다. 물론 그 정보는 RT나 공유를 통해 망밖으로도 전달이 되지만 이 전달은 친구나 팔로워 중의 한명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 SNS의 사생활로서의 본질이 있다.
 
SNS의 정보가 불특정다수에게 공개된다는 말 자체는 맞지만 SNS를 통한 정보확산이 “주로” 그러한 공개적 소통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은 착시현상이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SNS게시물은 한 사람이 불특정다수에게 전달하는 것이 아니고 우선 한 사람이 자신의 ’친구‘나 ’팔로워‘들에게 볼 수 있게 정보를 올리면 그 ’친구‘나 ’팔로워‘ 중의 한 명이 다시 이를 ’리트윗‘이나 ’공유‘를 하고 이 단계가 여러번 반복됨으로써 이루어진다. 이러한 모드에서 어느 한사람도 정보를 ’붙특정다수‘에게 보내지 않는다. 모두가 특정소수나 특정다수에게 보낼 뿐이며 어느 누구도 불특정다수에게 보내지 아니한다.
 
SNS소통의 사적 성격이 규제의 타당성에 미치는 영향은 자명하다. 과거에 연예인X파일이 ‘너만 보라’는 1대1 소통으로 통해 들불처럼 퍼져나가 모든 사람들이 이를 보게 되었지만 어느 한 사람도 이를 ‘불특정다수’에게 공개한 사람은 없었기 때문에 업무규칙을 위반하여 처음 회사 외부로 유출한 자 외에는 처벌이 불가능했었다.
 
SNS의 “공적 소통”의 소극적 성격
 
물론 ‘비공개’처리를 하지 않은 SNS계정에 있는 정보는 일반에게 ‘공개’되는 측면이 있다. SNS계정을 ‘공개’로 해두면 ‘나’의 관계망에 없는 사람들도 나의 글을 내 계정에 찾아와서 볼 수는 있다. 특히 자신의 팔로우대상이나 친구들이 제공하는 글들 만으로는 시의성있는 정보가 자신의 계정에 제공된다고 생각지 않는 사람은 검색(search)기능을 통해 자신의 관계망 밖의 사람들의 계정에 있는 정보에도 접근한다. 정확히 비공개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들은 SNS상의 대화는 사적 소통이라고 느끼고 있을까? SNS계정에 글을 올리는 행위는 매우 소극적인 행위이기 때문이다. 계정소유자는 단지 자신의 소회를 담담히 적어내려가는 것이고 친구들과 팔로워들은 이 일기쓰기를 자발적으로 지켜보는 것이 된다. 그 외의 사람들이 자신의 계정까지 방문하여 자신의 일기를 보는 것은, SNS이용자들은 광장에서 소리지르기와 같이 침입성이 있다기 보다는 술집에서 말하고 있는 것을 옆자리에서 관심이 있어서 귀기울여 듣는 것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다. 즉 자신의 관계망에 이미 있는 사람들에게 공개되는 것은 자신과 일정한 관계를 맺은 사람들에게의 공개이기 때문에 공개라고 보기 어렵고 자신의 관계망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공개되는 것 역시 ‘적극적인 배포’라기 보다는 ‘열람의 허용’정도로 생각하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SNS에서의 소통은 관계망에 있는 사람에의 정보전달 즉 사적 전파를 주로 기본단위로 하여 이루어진다. 관계망에 없는 사람들이 직접 계정에 찾아와서 계정소유자의 정보를 지득하는 즉 공적 전파도 많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규제의 측면에서 보았을 때 공적 전파는 글을 게시한 사람에게 법적 책임을 물을 경우 신중할 것이 요구된다. 특히 법규제가 상당한 적극성을 위법성 요건으로 하고 있을 때 SNS에서의 소통에 법적 책임을 묻기가 어렵다고 본다.
 
공직선거법 적용의 문제
 
바로 그러한 법 중의 하나가 공직선거법이다. 공직선거법은 금권선거, 관권선거 및 과열된 선거를 방지하기 위하여 선거운동기간을 매우 짧게 (2-3주) 지정하여 이 기간에만 선거운동을 하는 것을 기본골짜로 하고 있다(공직선거법 제254조). 즉 선거운동에 해당하는 행위를 선거운동기간 외에서 하게 되면 사전선거운동이라는 범죄를 저지를 것으로 다루어진다. 그런데 이 법조항에서 선거운동을 ‘당선되거나 되지 않게 하기 위한 모든 행위’로 폭넓게 규정하고 있고 실제로 법원에서도 인터넷에 글을 올리는 개별적인 행위마저도 모두 선거운동으로 지정하여 처벌하고 있다. 그런데 법의 취지상 ‘선거운동’은 상당한 적극성을 요구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SNS상의 소통에 공직선거법을 적용시키는 것은 더욱 심각한 문제를 발생시킨다. 대부분의 SNS상의 소통이 사적 전파를 통해 이루어지고 공적 전파가 일부 있더라도 이는 전파자의 입장에서 보면 타인들의 열람을 허용하는 소극적인 행위이다. 결국 SNS상의 소통에서 사적 전파 부분은 공연성이 없으니 처벌대상이 되지 아니하고 공적 전파 부분은 선거법이 요구하는 적극성을 갖추고 있지 않다.
 
SNS의 구술생활적인 성격
 
특히 SNS에서의 소통은 문자생활이라기 보다는 구술생활에 가깝다. SNS의 소통은 필연적으로 짧지만 많은 숫자의 글들로 이루어진다. 이렇게 글이 많아지기 때문에 수많은 글들이 올라오자마자 순식간에 화면 바닥으로 망각의 지평 너머로 꺼져간다.
 
트위터의 경우 나의 글을 받아본 팔로워나 팔로워의 RT를 받은 사람이 나의 글에 대해 멘션을 해주면 내가 그에 대해 멘션을 해주면서 대화가 시작된다. 이 대화 역시 정보유통단위가 작기 때문에 쌍방향으로 또는 다방향으로 즉 참여적으로 이루어진다. 한쪽에서 장고하여 완성된 의사를 전달하면 이를 다른 쪽에서 면밀하게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한쪽에서 완성되지 않은 의사표시를 하고 이에 대해 재빨리 다른 쪽에서 반응하고 다시 이쪽에서 반응하면서 대화참여자들이 하나의 의사를 형성하게 된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SNS가 인기를 끌게 되는 이유, SNS개발자들이 사람들에게 팔려고 했던 것은 바로 이러한 구술생활의 재연이다. SNS의 Social은 ‘사교’이다. 사람들이 더 친해지기 위해서는 서로 ‘만나봐야 하듯이’ 사람들이 서로 ‘만나도록’ 해주려 했던 것이고 여기서의 만남은 당연히 구술대화를 동반하는 것이다. SNS는 진짜 구술생활의 일부인 메신저나 휴대폰문자메시지의 기능을 블로그 상으로 구현하려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SNS의 소통에 법이 칼날을 대는 것은 본능적인 반감을 일으킨다. 사람들이 SNS규제에 대해 극렬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위에서 말한 전파행위가 관계망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것, 관계망에서 밖으로의 전파는 전파자 입장에서 소극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 외에도 이렇게 구술생활에의 개입에 대한 반감이 섞여 있는 것이다.
 
특히 실제로 법 중에서는 정보의 전파가 ‘문서’로 이루어졌는지 아닌지에 따라 법적 평가가 달라지는 경우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공직선거법 제93조는 위에서 말한 사전선거운동금지 조항과 입법목적은 같되 사전선거운동금지 조항을 보완하여 ‘문서를 통한 후보지지 반대’마저도 특정기간 금지하고 있다. 이 법조항 역시 입법취지상 전파자의 적극성을 어느 정도 요구하고 있어 SNS에서의 소통에 적용함에 있어서 신중해야 한다는 것은 위에서 본 바와 같다. 그런데 이와 더불어 이 조항은 ‘문서’라는 요건을 부가적으로 두고 있어 방송 또는 육성과 같이 비영속적 매체를 통한 후보지지반대에는 적용되지 않는데 SNS의 구술생활적 성격에 비추어 이 법 조항의 적용이 타당한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차단 및 삭제’절차의 문제점
 
가. 불법트윗 하나 때문에 계정 전체 차단
 
정보통신망법은 게시자에게 책임을 물으려는 것이 아니라 게시물을 차단하고자 한다. SNS의 게시글에 대해 게시자를 처벌하는 것과 별도로 국가기구가 게시글을 삭제하거나 차단하려는 것은 훨씬 더 심각한 문제를 발생시킨다. 그런 행정조치는 아예 실효성이 없거나 헌법상 기본권을 심대하게 침해하는 방식으로만 행사될 수 밖에 없다. 이것은 SNS는 사람을 중심으로 조직되지만 규제는 내용을 중심으로 집행되기 때문에 오는 시스템적 불일치 때문이다.
 
SNS 상의 정보는 그 내용이 아니라 사람을 맥락으로 해석되고 사람을 기준으로 조직되고 유통된다. 이에 따라 SNS에 올라온 글들은 한 계정 내에 올라와 있어도 내용상 서로 연관성이 전혀 없고 작성자들도 제각각이고 오직 공통점은 저자들이 계정소유자의 친구들이나 팔로우대상자들이라는 것 뿐이다. 하루를 지내면서 사람이 하는 말은 말상대와 상황에 따라 그 주제와 내용이 엄청나게 변화무쌍하다. 예를 들어, 나는 영화에 대해 칼럼을 쓰지는 않지만 말로는 꽤 많은 영화들에 대해 주변인들과 꽤 심각하게 이야기한다. 더욱이 그 변화의 진동폭은 스마트폰이라는 하루종일 사용자의 수많은 경험의 장들을 같이 따라다니는 단말기를 통해서 훨씬 증폭된다.
 
SNS계정은 그 계정의 내용을 일반화시켜 묘사할만한 특정한 주제도 없고 성향도 없다. 또 양적으로도 많은 사람들과의 사교가 목표이지 소수와의 연대를 목표로 하고 있지 않으므로 수천개 수만개의 내용상 상호무관한 짧고 많은 글들이 한 계정에 하루만에도 올라올 수 있다. 그렇다면 ‘내용’에 의해 조직되지 않은 엄청난 정보를 ‘내용심의’하여 차단하는 것은 당연히 어려운 일이 된다.
 
정보의 숫자가 이렇게 많을 경우 웹사이트와 같은 기존의 인터넷서비스는 웹사이트 내의 정보가 내용에 따라 정돈이 되어 있으므로 사이트 내의 일부 내용이 불법적이면 다른 내용의 불법성을 합리적인 범위 내에서 유추하여 웹사이트 전체를 또는 메뉴 전체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차단했었다.
 
하지만 SNS내의 정보는 내용에 따라 조직되지 않고 인맥에 따라 조직된다. 그러므로 계정 내의 일부 내용이 불법이라고 해도 다른 내용이 불법일 가능성에 전혀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불법정보를 올린 페북사용자의 친구는 역시 불법정보를 올릴 가능성이 높다는 엉터리가정을 하지 않는 한 그렇다. 결국 그 사람의 계정에 있는 정보의 편린들 즉 트윗과 글들의 내용을 개별적으로 평가할 수 밖에 없다. 콩이 가득 든 부대에서 썩은 콩을 한알씩 골라내듯. 팔로워가 많은 트위터러의 트윗은 하나 하나가 수십만개로 복제되는 상황에서 과연 이것이 가능할까?
 
불법정보들을 극히 일부 나마 골라냈다고 해도 해당 정보만 일일이 삭제하는 비용과 기술적 부담은 상당하다. 국내SNS가 실제로 그렇게 한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해당 SNS가 국내서비스가 아닐 경우 국내행정기관이 외국SNS에게 서버에서 삭제해달라는 요청을 할 권한이 있는지 권한이 있더라도 과연 외국SNS가 이를 들어줄 것인지 알 수 없다. 외국서비스의 변덕에 따라 어떤 것은 규제되고 어떤 것은 규제되지 않는다면 형평성이 훼손된다. 결국 서버삭제 방식은 포기하고 해당 정보에 해당하는 전파의 편린을 찾아내어 국내통신사들에게 차단을 요청하는 수 밖에 없는데, 개별트윗이나 개별페북글처럼 URL과 같은 표지도 없는 작은 정보의 편린을 식별해내려면 기계어 수준에서 정보를 훑지 않는 한 불가능하고 이렇게 하려면 ‘일반에게 공개된’ 글이 아닌 비밀통신까지 모두 입수해야 하며 결국 감청을 불사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이 문제를 현재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가? 해결하고 있지 않다. 방통심위의 SNS규제는 불법정보가 발견되면 SNS계정 전체를 차단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불법적이지 않은 수많은 정보들이 같은 계정에 올라왔다는 이유 만으로 차단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의 트위터계정 2MB18nmA의 경우 계정이름이 이대통령에 대한 욕설을 연상한다고 하여 그 계정 내의 수많은 트윗들이 차단되었다. 어떤 페북계정은 김일성 찬양글이 올라왔다는 이유로 차단되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북한 정치범수용소를 비난하는 글도 같이 차단되었다.
 
나. 인터넷 연좌제
 
더욱이 계정을 차단하면서 그 계정소유자의 친구들과 팔로우대상자들의 글마저도 함께 차단되고 있는데 특정 계정소유자의 친구라고 해서 자신의 글도 불법정보인 것처럼 처리된다니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결사의 자유 침해가 아닐까.
우리가 freedom of association에 해당하는 것을 ‘결사의 자유’라고 번역하며 ‘회사’의 社자를 써서 마치 결사(結社)의 자유가 어떤 영속성있는 단체를 만드는 것에만 해당된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원래 freedom of association에서 association은 모든 공적 사적 관계를 말하는 것이며 도리어 사적 관계를 더욱 폭넓게 보호한다. 그런데 팔로우를 하고 친구를 선정함으로써 우리는 일정한 관계를 맺는다. 그런데 SNS는 이를 통해 상대방의 글들이 자기의 계정에 들어올 것을 허락하는 것이 된다. 그런데 자신의 계정에 들어온 그러한 글들이 위법하다고 하여 자기의 계정이 차단된다는 것은 결국 그 사람과의 관계를 맺은 것에 대해 제재를 당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결국 방통심위는 내용심의가 아니라 사람심의, 친구심의를 하는 것이 된다.

* 이 글은 박경신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시민과 언론 95호 (2011년12월)”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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