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법센터 공익소송 2009-03-31   2246

상식의 전복


태안 기름유출사고 책임자 삼성중공업에 대한
법원의 56억원 책임제한 결정은 상식의 전복

기상악화에도 무리하게 항해한 선장의 책임은
곧 선주인 삼성중공업의 책임

법원은 항고심 통해 보편적 상식과 사회정의 다시 세우길 

어제(30일) 태안 앞바다 기름유출 사고 피해 주민들이 삼성중공업의 책임 한도를 56억여 원으로 제한하는 지난 24일 서울중앙지법 파산1부의 책임제한절차 개시 결정에 불복하고 항고하였다. 피해주민 6천여 명은 “당시 사고는 무모한 행위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삼성중공업이 무한 책임을 져야 하는 예외적 상황에 해당한다”며 “책임제한절차 개시 결정을 취소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며 “해상 크레인은 선박이 아닌 일반 공작물에 해당“하기 때문에 선박사고의 책임제한을 적용해서는 안된다고도 하였다.

참여연대 공익법센터(소장 : 박경신, 고려대 교수)는 서울중앙지법의 책임제한절차 개시 결정은 일반적인 상식수준의 법감정과도 어긋나는 것이며 또한 그동안 누누이 지적되어 왔던 기상악화의 상황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무모하게 항해를 강행한 삼성중공업측 해상크레인의 책임을 법원이 제대로 밝혀내지 못한 것이라고 본다. 따라서 항고심을 통해서나마 제대로 판단되기를 바란다.

상법 746조는 ‘선주 자신이··· 손해발생의 염려를 인식하면서 무모하게 한 작위 또는 부작위에 의한 피해’에 대해서는 책임제한을 적용하지 않고 있다.

국내외 판례에 비추어 보면 삼성중공업 예인선단의 행위가 법적으로 ‘무모하다’는 점에 있어서는 전문가들이 대체로 동의하고 있다. 위의 “손해발생의 염려가 있음을 인식하면서 무모하게 한 행위”라는 문구는 국제협정에서 따온 문구이며 국내외법원들이 이를 어떻게 해석했는지 사례들을 살펴보자.  

▶항공사 승무원이 이륙 전 구명동의의 위치나 사용법을 승객에게 충분히 고지하지 않은 것을 “무모하게 한 행위”라고 선언하며 항공사 책임제한을 둔 바르샤바 조약을 적용하지 않은 1961년 미국의 연방항소법원 판결. KLM v. Tuller, 292 F.2d 775 (D.C. Cir. 1961).
 ▶ 조종사들이 시야가 제한된 악천후에서 착륙을 시도하다가 비행기를 추락시킨 것에 대해서도 역시 바르샤바 조약 상의 책임제한을 배제한 1985년 미국의 연방항소법원 판결 Butler v. Aeromexico, 774 F.2d 429 (11th Cir. 1985)
▶ 낚싯배가 어로지역를 찾아 영국해협에서 역주행을 하다가 유조선과 충돌한 것에 대해 당시 영국의 선주책임제한 규정 상의 ‘무모한 행위’라고 판단한 2002년 영국대법원의 판결 Margolle v. Delta Maritime, [2003] 1 Lloyd’s Rep. 203
▶화물칸에 선적하였어야 할 화물을 갑판 상에 적재하도록 결정한 해운회사의 차장의 행위가 ‘무모한 행위’에 해당된다고 하여 책임제한을 배제한 2006년에 우리 대법원의 판결(대법원 2006.10.26.선고, 2004다27082).

위의 판례들에 비추어 볼 때 풍랑주의보 예고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무게의 수십배가 넘는 크레인을 철사줄 두 개로 끌고 출항한 점, 충돌 1-2시간 전에 이미 유조선과의 충돌에 대한 경고를 받았음에도 회항, 정지, 피항 등의 조치들을 포기하고 항해를 계속한 점 등은 일반인들의 상식으로 보아도 ‘무모하다’고 보기에 충분하다.

문제는 이런 행위들이 ‘선주 자신의 행위’였는가 하는 점이다. 선주가 법인인 경우엔 대표이사는 아니더라도 ‘무모한 행위’의 책임자 지위에 있는 사람의 과실은 선주 자신의 행위로 본다. 그런데 검찰은 항해책임자라고 할 수 있는 삼성중공업 해운부장 등 회사 측 관련자 8명을 조사한 결과, 운항을 강행하라는 지시는 없었고 사고 당시 전화통화 내역에서도 상부와의 통화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우리나라에서 하나 밖에 없고 하루 임대료가 6천만원을 넘는다는 크레인의 운송과정에 있어 선장이 출항부터 충돌까지 모두 단독결정을 하였는가가 의구심이 들기도 하지만, 실제로 그렇다고 가정하자.

그러나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점이 규명되어야 할 것이다.

첫째, 왜 이들이 사고 항해에 대해 관여를 하지 않았는지 검토가 필요하다. 혹시 책임제한의 혜택을 받기 위해서 일부러 항해책임자와 선장 사이의 연락을 끊은 것은 아닐까. 하지만 평소에도 선장이 이와 같은 항해에 있어 단독결정을 내려왔다면 그 선장은 항해의 책임자였으므로 선장의 무모한 행위가 선주 자신의 행위인 것이다. 이렇게 해석해야 될 정책적 이유는 충분하다. 삼성중공업이 선장의 상관이 항해에 간여하지 않았다고 해서 선주책임제한에 성공할 수 있다면 모든 선박회사들이 항해에 대한 모든 결정을 선장들에게 맡기면 그만일 것이다. 선주책임제한이 법적으로 유효하려면 그와 같은 편법을 용납하여서는 아니 된다.

이 문제는 다시 위의 법인의 선장관리감독 의무와 관련이 있게 되는데 삼성중공업측이 평소에 이와 같은 항해에 대한 결정권을 선장들에게 맡겨왔다면 그 자체가 무모한 행위이거나 그와 같은 결정권을 가진 선장의 행위가 선주 자신의 행위인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법리는 여러 해외 판례를 통해 재확인되어 왔다( Societe Anonyme des Minerais v. Grant Trading Inc., (The “Ert Stefanie”), [1987] 2 Lloyd’s Rep. 371 (Queen’s Bench Division). [1989] 1 Lloyd’s Rep. 349 (Court of Appeal); The Charlotte, (1921) 9 Ll.L. Rep. 341; The Lady Gwendolen, [1965] 1 Lloyd’s Rep. 335; The Marion, [1982] 2 Lloyd’s Rep. 52 at 54; [1983] 2 Lloyd’s Rep. 156 at 158; [1984] 2 Lloyd’s Rep. 1 at 3; [1984] A.C.563 at 571.).

둘째, 실제로 외국의 판례들을 보면 사고가 발생한 항해에 대한 구체적인 관여 행위만이 ‘무모한 작위 또는 부작위’로 인정되는 것이 아니다. 선장이 무모한 행위를 할 수 밖에 없는 업무환경을 제공하거나 선장의 잘못된 습성에 대해 관리감독을 하지 않은 것도 선주책임제한을 깨는 근거로 인정하고 있다.

영국엔 과속의 습관이 있고, 새로운 레이더에 익숙하지 않은 선장을 제대로 교육시키지 않은 것도 ‘선주 자신의 행위’로 인정한 판례가 있다. (The Lady Gwendolen(1965) 1Lloyd’s Rep. 335. CA). 또 선주가 예인선의 줄의 인장강도를 미리 조사하지 않은 상황에서 선장의 과실로 사고가 발생하였을 때도 선주의 불완전한 항해도구의 제공이 ‘선주 자신의 행위’로 인정된 바 있다(The Smjeli [1982] 2 Lloyd’s Rep. 80.).

1989년 엑슨발데즈호 사고에서도 미국법 상의 선주책임제한이 깨져 당시 선주인 엑슨 정유사가 총 3조원대의 민사책임을 지게 되었는데, 이때 음주경력이 있던 선장을 선임하고 그 선장을 보좌할 수 있는 충분한 유능한 선원을 배치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선주 자신의 행위’로 보았기 때문이다. 위 판례 둘 다 모두 당시 적용되었던 책임제한 해제 기준이 정확히 ‘선주 자신의. . .손해발생의 염려를 인식하면서 한 무모한 행위’는 아니었고 ‘선주 자신의 실질적 과오 및 인식 (actual fault and privity)’라는 기준이었지만 이것은 단순과실보다는 높은 중과실로 해석되어 왔었다.

셋째, 검찰이 삼성중공업 법인 자체를 기소하였고 삼성중공업은 유죄판결을 받았다는 사실을 간과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점이다. 이 판결은 위의 행위가 선주의 지위를 가진 삼성중공업 자신의 행위였음을 확인한 것이었다. 물론 검찰의 삼성중공업에 대한 기소와 해양오염방지법의 양벌규정 상의 ‘형식적 기소’였다고 폄훼할지 모르나 그렇지 않다. 양벌규정이란 법인의 직원이 법을 위반했을 때 법인을 함께 처벌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이 법인에 대해 형사책임을 묻는 법적 근거에 대하여는 무과실책임설(無過失責任說), 과실확정설( 過失推定說),과실의제설(過失擬制說), 과실책임설(過失責任說) 등이 있는데 대체로 과실책임설이 유력설이다. 즉, 법인 자신의 행위에 과실이 있는 경우에만 책임을 묻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헌법재판소는 양벌규정에 의한 법인의 처벌도 직원에 대한 선임감독 상의 과실을 근거로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판시한 바 있다(2007.11.29 선고, 2005헌가10 사건). 이 결정에 의거해 보자면 법원은 삼성중공업 법인의 유죄판결을 형식적인 것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삼성중공업 기름유출사고가 발생한지도 이제 햇수로 2년째 접어들고 있다. 안타깝게도 이 사건 역시 다른 무수한 사건들과 마찬가지로 망각 속으로 묻혀가고 있다. 하지만 피해주민들이 마주하는 차가운 현실만이 이 엄청난 재난을 기억하는 유일한 증거물이 되게 해서는 안된다. 삼성중공업기름유출사고는 정의의 문제이고 우리 사회 신뢰의 문제이다. 책임질 만한 행위를 한 주체에게 엄격하게 책임을 묻는 것이야말로 사회가 유지되게 하는 가장 기본적인 룰이다. 이 기본적인 룰을 법원이 깨트리지 말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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