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법센터 칼럼(pi) 2010-02-22   2511

‘PD수첩 소송’보다 못한 국정원의 ‘박원순 소송’

[법치의 표리(表裏)] 국가의 명예를 ‘돈’으로 배상 받겠다?

필자는 최근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를 상대로 국가정보원이 명예훼손소송을 제기한 사건의 법적 쟁점을 검토하는 세미나에서 토론할 기회를 가졌다. 그 기회에 여물기 시작한 생각 한 자락을 ‘법치의 표리’ 독자들과 함께 공유하고자 한다.

널리 알려졌듯이 이번 명예훼손 사건은 우리 사회의 대표적 시민운동가인 박원순 변호사가 이명박 정부의 출범 이후 기업 후원이나 정부와의 협력사업이 중단된 배경에 국가정보원(국정원)이 자리하고 있다는 취지의 언론인터뷰를 한 데서 비롯되었다. 국정원은 인터뷰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박 변호사가 허위의 사실로 국정원과 국가의 명예를 훼손하였기 때문에 그 손해를 배상하라는 취지로 민사소송을 제기하였다.

‘PD수첩 소송’과 ‘박원순 소송’의 차이점

이번 소송은 민사상 손해배상소송이라는 점에서 명예훼손죄로 언론인의 형사책임을 추궁한 문화방송의 <PD수첩> 사건과는 구별된다. 형사소송은 국가가 공권력을 동원하여 형사적 제재를 부과함으로써 법질서를 유지하고자 하는 사법절차이지만 민사상 손해배상소송은 개인간에 사사로이 야기된 사적인 권리침해에 대해 돈으로 배상을 받고자하는 사법절차이다. 결국 이번 사건에서 국정원과 그 입장을 수용하여 국가를 원고로 하는 소송을 제기한 법무부장관은 국가는 일반 국민과 같은 지위에 있는 사법적인 분쟁의 당사자임을 주장한 셈이다.

국가도 개인과 마찬가지의 지위에서 분쟁의 당사자가 되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다. 국가가 재산상의 거래를 하는 경우 그 거래상의 분쟁은 질서유지 등 공익을 위해 공권력을 행사하는 것과는 본질이 다르기 때문에 개인간의 분쟁과 달리 볼 이유가 없다. 또 이런 경우 개인과 같은 지위로 국가를 인식한다고 하더라도 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특별한 문제가 야기될 여지가 없다.

그러나 국가가 국민을 상대로 명예의 훼손을 주장하는 경우는 여러 측면에서 재산상의 분쟁과 다르다. 국가가 주장하는 ‘명예’란 것의 실체가 존재하는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접어 두더라도, 국가를 국민과 같은 지위에 두고 민사소송의 주체로 인정하는 것은 특별한 헌법적 문제를 야기한다. 국민의 국가기관에 대한 비판행위는 민주국가의 기본적인 자유로 헌법에 의해 보장되는 것이다. 국민의 자유로운 언론행위가 사법절차를 통해 제약될 때 민주주의가 훼손되는 반헌법적 상태가 초래될 수 있다. 따라서 국가가 개인의 지위에서 민사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가능성은 예외적으로 특별한 법적 근거가 있는 경우에만 가능하다.

우리 법체계는 앞서 언급한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국가를 개인과 같은 지위에서 다루고 있지 않다. 국가는 헌법에 의하여 개인의 인권보장과 질서유지라는 특별히 공익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창설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가는 일반 개인과 구별되어, 국가와 국민간의 관계는 공법적 질서에 의해 규율되고 그 법적 분쟁은 행정소송이나 형사소송의 절차를 통해 해결하는 체제이다. 공법과 사법의 체계를 엄격히 분리하는 법체계인 셈이다.

이런 법체계는 국가에게 질서유지권이라는 특수한 목적을 달성하는 특별한 지위를 인정하는 것이다. 이런 지위에 있는 국가는 국민이 다른 국민들 간의 관계에서 누리는 다양한 권리를 당연히 누릴 수는 없다. 법이 그런 예외적 필요성을 특별히 인정하는 경우에만 누릴 수 있을 뿐이다. 현행법은 국가의 명예권을 민사소송이나 형사소송을 통해 보장하고자하는 명문의 근거를 마련하고 있지 않다. 만일 국민의 국가기관에 대한 언론행위가 부적절한 경우 반론보도청구나 정정보도청구제도 등을 통해 시정할 수 있는 가능성만을 열어 두고 있을 뿐이다.

영미법계 국가도 인정 않는 국가의 명예훼손 소송권

모든 사회가 이처럼 개인과 구별되는 특별한 법적 지위를 국가에 부여하는 것은 아니다. 국가를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단체들 가운에 하나로 인식하는 영미법계 국가들에서는 국가를 개인과 같은 지위에서 인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실질적인 기능을 중심으로 법률관계를 인식하기 때문에 공법과 사법의 구별을 기본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전통이 강하다. 그러나 이처럼 다원주의적 법체계를 가진 국가들의 경우에도 국민들을 상대로 하는 명예훼손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지위를 국가나 공공단체에는 인정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 지위를 인정할 때 언론의 자유가 위축되고 민주주의에 역행할 수 있는 위험성을 고려한 까닭이다.

이번 소송은 국가기관에 대한 비판활동을 형사적 수단이 아닌 민사소송적 수단으로 해소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사회통제기법을 구축하려는 시도이므로 특별한 경계가 필요하다. 만에 하나 국가의 명예라는 것이 법적으로 보호받아야 할 이익이라고 하더라도 그 보호의 방법이 돈을 배상받는 것이라는 것은 국가의 법적 지위나 격(格)에 맞지 아니한 것이다. 우리 법체계상 민사소송이 형사소송과 같이 제재를 통해 법의 목적을 실현하는 절차가 아닐뿐더러 국민과 소송을 통해 돈을 받아서 국고를 더 채우는 것이 국가의 목적이 될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꼭 필요하다면 국가모독죄와 같이 형사처벌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법질서의 목적에 맞는 태도이다(국민들이 이 대안에 동의할 리 없지만). 따라서 이번 소송은 집회주최자나 노사분쟁의 당사자에 대한 손해배상책임을 강화하려는 시도와 더불어 법체계의 목적을 일탈하여 정치사회적 기득권을 강화하려는 시도라고 볼 수밖에 없다. 결국 이번 소송은 민사소송을 이용해 정치사회적 공익활동을 탄압하려는 일종의 ‘전략적 봉쇄소송'(Strategic Lawsuit Against Public Participation)으로 표현의 자유에 대한 엄청난 위축효과를 초래할 수 있는 국가권력의 남용에 해당된다.

이명박 정부의 출범 이후 우리 사회는 근대입헌주의의 기본원리인 법치주의를 오도하고 국민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면서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는 반자유민주적 발상을 가진 정치세력이 득세하고 있다. <PD수첩> 사건, 미네르바 사건, 집회에 대한 원천봉쇄의 일상화나 집회참가자에 대한 무차별 기소 등 정당한 공권력의 발동보다는 정파적 이해관계에 따라 반헌법적인 효과를 초래하는 공권력의 남용을 일삼아 사회적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이번 국정원에 대한 명예훼손소송도 이런 퇴행적 공권력남용의 일례라고 할 수 있다. 하루빨리 민주헌정을 정상화시키기 위한 국민적 노력이 절실한 시점이다.

김 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헌법

* 이 글은 2월 12일 프레시안에 기고한 글입니다.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