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연구소 칼럼(ip) 2013-05-10   2238

[칼럼]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빅 데이터’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빅 데이터’

 

이항우 충북대 사회학과 교수

미국 미니애폴리스에 사는 한 중년 남성이 화가 난 얼굴로 지역의 대형 쇼핑센터 ‘타겟(Target)’에 들어섰다. 손에는 그 회사가 자신의 딸에게 부친 쿠폰이 쥐어져 있었다. 쿠폰은 임산부 의류, 육아 도구, 신생아 옷과 침대 할인권이었다. 하지만 그 남자의 딸은 아직 고등학생이었다. 그래서 화가 난 것이다. ‘타겟’이 미성년자 임신을 조장하기라도 할 셈이냐고 매장 관리자를 몰아붙였다. 관리자는 잘못을 시인하고 사과했다. 그러나 며칠 뒤 관리자가 다시 사과하기 위해 그에게 전화했을 때, 돌아온 것은 뜻밖의 대답이었다. 그 남성은 자신의 딸이 임신했으며 분만 예정일이 다가온다고 말했다. 그 사실을 모른 채 매장에 항의를 했으니 사과할 쪽은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작년 뉴욕 타임즈에 보도된 이 사례는 최근 뜨고 있는 이른바 ‘빅 데이터(big data)’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일상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정보와 지식이 기업 이윤의 최대 관건이 되었다는 것은 물론 이미 오래된 이야기지만, 오늘날 양산되는 데이터와 정보의 양은 실로 엄청나다. 최첨단 디지털 망원경은 천문학이 지금까지 축적한 것보다 더 많은 천체 정보를 단 수주일 만에 수집할 수 있다. 

 

2010년 현재 세계 인구의 60%가 휴대 전화를 사용하며, 매달 300억개의 콘텐츠가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공유된다. 2012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오바마 캠프는 1300만 명의 민주당 지지자 이메일 데이터를 분석하고 그들의 취향과 선호에 맞는 선거운동을 펼친 덕분에 낙승할 수 있었다. 또한 ’빅 데이터‘는 수백 수천억 개의 집적된 사례를 토대로 우리가 언제 가장 저렴한 가격으로 항공권을 구입하고 호텔을 예약하고 자동차를 렌트할 수 있는지를 알려줄 거라고 약속한다. 

 

이처럼 ‘빅 데이터’는 기술을 점점 더 스마트한 인공지능으로 만들고 있다. 반면, 우리가 사용하는 각종 카드, 전화, 컴퓨터, 센서 등을 통해 우리는 점점 더 클라우드에 ‘빅 데이터’를 모아주는 마이크로프로세서가 되고 있다. 디지털 기술은 점점 더 인간을 닮아가고 인간은 점점 더 기계를 닮아간다. 

 

우리는 신용카드와 할인카드로 물건을 사지만, 쇼핑 데이터가 우리의 직업이 무엇이고, 월 소득은 얼마이며, 출신 학교가 어디이고, 임신 했는지를 집요하게 추적하는 자료로 쓰이는 것에 동의하기는 어렵다. 우리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 이런저런 정보를 얻지만, 클릭 데이터가 우리의 성 생활이 어떠하고, 정치적 입장이 무엇이며, 재정 상태는 어떠하고, 어떤 집에 사는지를 체계적으로 수집하여 우리에 관한 프로파일을 만드는데 쓰이는 것에 불편한 마음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앞의 미니애폴리스 남자처럼 말이다. 우리는 과연 카드와 인터넷 사용의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있는가?

 

기업이 내 가족에 대해 나보다도 더 잘 알고, 심지어는 나 자신에 대해서도 더 잘 알게 된 ’빅 데이터‘의 시대에, 프라이버시와 편익 혹은 인권으로서의 개인정보와 상품으로서의 그것 사이의 ’균형(trade-off)‘이 필요하다는 말은 그저 허울뿐인 수사처럼 들리기도 한다. ’빅 데이터‘가 가져다 줄 편익의 매력은 흔히 과장되고 그 편익을 가능하게 해준 수많은 마이크로프로세서의 인권은 종종 등한시되기 때문이다. 

 

근대 자유주의 사상가 존 스튜어트 밀은 자신의 유년기 일거수일투족을 철저히 통제하고 감시한 아버지로 인해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고 청년기에는 급기야 자살까지 시도했다. 근대 민주주의 헌법의 토대를 제공한 그의 자유주의 사상은 이러한 혹독한 개인적 경험의 산물인지도 모른다. 프라이버시는 근대 민주주의(양심과 학문의 자유, 언론 및 출판의 자유, 비밀투표권, 집회 및 결사의 자유 등)의 근본 토대를 이루는 가치라는 관념은 ’빅 데이터‘에 의해 형애되지 말아야 한다.

 

 

* 이 글은 2013년 5월 10일 머니투데이에 게재됐습니다. (원문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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