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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2011.07.15
  • 8124

보편복지국가와 시민정치


 

보편복지국가의 한국적 착근을 위하여

 

민주화 이후 한국의 진보는 오래 동안 대안 담론의 지체, 지연 상태에 놓여 있었다. 보수가 포장을 다시 해서 이른바 '선진화' 기획을 공격적으로 밀어 부칠 때만 해도 사실 진보는 좀 난감한 처지에 몰렸던 게 사실이다. 그러던 차에 보편적 복지국가론이 진보 재구성의 유력한 대안 담론으로 떠올랐다. 시민사회, 정치사회 할 것없이 큰 흐름이 모두 이 쪽으로 몰리고 있고, 다행히 대중의 호응도도 상당한 것같다. 민주당의 변신은 물론이고, 덩달아 한나라당을 위시한 보수조차 복지국가를 내세우며 진보와 경쟁할 채비를 슬슬 해가고 있다. '그들'은 더 이상 무능한, 파탄난 이명박 보수와 같이 물귀신이 되지는 않겠다면서 '명박 이후의 새 보수'로 가기 위해 보수(保守)를 보수(補修)하는 중이다. 덕분에 민주당도 좀 긴장해야 될 형편이 됐다. 이대로라면 대한민국은 어떤 모양새로든 복지국가로 갈 것 같기도 하다. 이제 복지가 대세다. 한국에서 일종의 '복지국가 컨센서스'가 형성된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왜, 어떤 복지국가인가, 그리고 어떤 복지정치 전략인가라는 문제는 여전히 쟁점이다. 무엇보다 어떻게 대한민국같이 척박한, 보수의 벽이 두터운 땅에서 스웨덴식 보편 복지국가로 간단 말인가? 그 추진 주체,동력은 어디서 나오나. 또 이미 유럽 복지국가자체도 크게 변화되고 있는 상황인데 구체적으로 스웨덴 모델의 한국화라는 게 어떤 모양이 될 것인가. 미래 보편복지국가의 한국적 특성, 그기로 가는 한국특유의 경로 또는 복지정치 전략, 한국특유의 주체와 동맹 형성 등이 모두 궁금한 문제거리다.이에 대해서는 이미 논의들이 상당히 진행되고 있고 앞으로도 필경 많은 논의와 사건들을 거칠 것이다. 이 글에서는 한마디로 '보편 복지국가의 한국적 착근'의 정치라는 주제와 관련하여 그 구체화의 진전을 위해 몇마디 짧은 소견을 부쳐 본다.

 

낡은 유산과 새로운 미래간의 다툼

 

보수측의 선별적 복지나 맞춤형 복지 어쩌고 하는 이야기들은 일단 다음에 따지게 논외로 친다고 해도, 진보안에서 한국에는 스웨덴같은 북구 나라를 준거로 삼는 보편적 복지국가는 어렵다, 무리라는 지적은 오래 전부터 있어 왔다. 스웨덴과 우리는 너무 다르다는 것이다. 이는 충분히 근거가 있고 나 자신부터도 그런 생각을 많이 해온 편이다.

 

우리는 한국에서 보수 특권체제가 얼마나 뿌리깊고 그 벽이 두터운지 잘 안다. 반면에 강한 보수와 다툴 수 있는 진보의 힘은 약하다. 스웨덴 같은 강한 노조, 강한 사회민주당이 있는가. 없다. 한국의 노동운동은 87년 민주화 이행국면에서 독자적 주체로 서지 못했다.이는 민주화 시대 노동운동이 국민적,보편적 동의를 얻는데 중대한 장애를 부과했다. 민주화시대 이른바 '노동없는 민주주의'는 61년 박정희 개발독재체제, 또는 권위주의 개발국가와 대재벌이 지배연합이 된 '주식회사 한국'의 치명적 덫이며-이는 장하준이 보지 않는 지점이다- 더 멀리는 53년 체제, 48년 체제로까지 소급된다.

 

그렇지만 문제는 단지 노동의 힘이 미약한 데만 있지는 않다. 보편복지국가로 가는 역사적 경험에서 중요한 것은 권력자원으로서 노동의 힘만이 아니라 그 노동의 힘을 중심으로 어떻게 보편적인 연대와 동의를 구성하는가 하는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 복지국가건설이란 곧 국가를 경유하는 공적 연대를 구축하는 일인데, 한국의 경우 그 사회적 신뢰기반이 얕다는 게 또 큰 문제다. 한국의 근대화 50년은 낮은 조세율, 낮은 사회지출로 요약되는 "작은 정부"아래 이루어졌고 돌진적 개발-성장주의를 체질화시켰다. 겨우 생겨난 진보정당에 대한 지지도가 매우 낮은 데는 여러 요인이 겹쳐있지만 얕은 사회적 신뢰기반, 즉 "얕은 사회"가 큰 요인이다. 공적 연대성, 복지공공성을 창출하는 시민적-민중적 능력,그 사회기반이 약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 역사에서 보편복지를 위한 증세는 전혀 새로운 의제가 되고 있다.

 

이렇게 강한보수의 벽과 마주한 상황에서 공적 연대 경험은 미약하고 국가에 대한 불신,그리고 연고망 밖의 타자에 대한 불신의 벽이 높은 반면에, 살아남기 위한 서바이벌 경쟁, 그리고 출세를 위한 사적 경쟁은 엄청나게 강하다. 오래된 한국 특유의 교육열도 그 표현이다. 97년 이후 고삐풀린 정글 자본주의 시대가 닥치면서 서바이벌 경쟁은 한층 심화되었다. 한국 대중들이 보이는 '다이나믹한' 부동성(浮動性), 정당에 대한 낮은 충성도, 그리하여 그들이 곧잘 투기적 '욕망의 정치'에 빠지는 것은 이해하고 남음이 있다.

 

위와 같이 보수의 높은 벽, 작은 정부, '얕은 사회', 강한 사적 경쟁, 약한 노동 및 약한 진보 정당과 같은 조건들은 복지국가로 가는 한국적 길에 중대한 제약을 부과한다. 이는 대체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제약조건이지만 다시 생각하게 되는 엄중한,간과할 수 없는 조건이다. 얼마 전 참여사회연구소에서 '복지재정전략'을 주제로 토론회를 연적이 있다.이때 오건호 씨의 발제에 대해 토론자였던 황성현 교수로부터 나는 복지증대를 위한 목표 조세율을 21~22%수준으로 생각한다는 말을 들었다. 한국의 복지국가 길이 어떤 한계선에 걸려 있는지를 여실히 일깨워준 발언이었다. 한국 최고의 재정전문가에 속하는 사람이 한 발언이니 귀담아 들어야 할 말이라 생각한다. 한국의 복지국가 정치는 이 엄중한 제약을 얼마나, 어떻게 뚫어낼 수 있을까?

 

밖으로는 2008년 미국발 세계경제위기, 안으로는 이명박 정부의 두 개의 대한민국 전략,또는 낙수 효과전략의 파탄, 나아가서는 97년 이후 과잉시장화와 과소복지 또는 복지 지체간의 불균형을 해결하지 못한 중도 자유주의 민주정부의 실정이 보편복지국가 의제를 떠올렸고 진보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했다. 무엇보다 다수 대중들이 그간 누적되고 심화된 '삶의 불안'(민생 5대 불안으로 말해지는)과 '사회적 불안'(social insecurity)- 나는 이를 이중의 의미에서 폴라니적 모순이라 부른다-에 직면하여 다시 '사회적 보호'의 대항운동에 나선 것이다. 이 대항운동에는 가까이는 촛불시위의 공유 경험의 기반, 멀리는 오래동안 한국의 민주화 운동이 키워온 민주적, 시민적 저력과 기반이 실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복지국가로 가는 한국적 길은 결국 경로의존적인 역사적 한계선 그리고 안팎의 위기를 새로운 기회로 반전시키며 그 한계선을 뚫고자 하는 대항적 복지동맹 정치 능력간의 다툼의 동학을 통해 결말이 날 것이다.

 

추격 보편복지국가, 복지와 생산체제의 한국적 혼합전략은?

 

그런데 보편복지냐 선별복지냐 하는 문제 뿐 아니라,어떤 수준의 보편복지냐 하는 문제가 존재한다. 즉 보편복지의 "두께" 문제가 있다. 나는, 예단해서는 안되지만, 우리의 엄중한 조건과 역량으로 봐서는 보편복지국가로 간다 해도 그 두께나 깊이가 스웨덴에 비해서는 얇은 형태가 될 거라는 생각을 해 본다. 위에서 말한, 고약하게 달라붙어 있는 역사적 제약조건들을 생각한다면, 한국에서 신구 다툼의 동학은 아무래도 스웨덴같은 북구모델, 즉 고부담- 고복지 모델을 낳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역사를 봐도 그렇지만 동아시아 다른 나라들의 어제와 오늘을 봐도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일본은 기본적으로 기업복지 중심 모델로 고착이 되었고, 국영 부문의 비중은 매우 낮다. 그리고 대만, 싱가포르같은 나라는 우리같은 강한 재벌이 없고 오히려 국영 부문의 비중이 매우 높다. 대만, 싱가포르에서 시장의 고삐를 잡는 국가의 힘은 여전히 세다. 특히 싱가포르는 아시아에서 잘 알려진 개발주의 복지국가인데 이는 권위주의 국가가 주도한 복지체제다.

 

한국은 정치적 민주화에는 선두에 선 반면, 경제적 자유화의 결과 사적 대자본의 힘과 고삐풀린 시장의 힘이 아시아에서- 홍콩은 예외로 하고- 유별나게 강한 나라가 됐다. 정치적 민주화이후, 자유주의 민주정부 10년이후, 사회경제적 진보화 힘보다 보수화 힘이 더 강해진 건 한국특유의 민주화 역설이다. 한국은 97년이후 싱가포르,대만과 같은 강한 국가 주도 복지모델로 가지도 못하고, 약한 노동-약한 신뢰 때문에 북구같이 사회적 합의에 기반한 모델도 어려운 곤경에 놓였다. 그런 저런 사정들을 감안한다면, 일단 한국의 로드맵은 고부담-고복지국가보다는 이른바 '중부담- 중복지국가'로 전망해야 할지 모른다.

 

확실히 중부담-중복지국가는 고부담-고복지국가에 비해 미달하는 측면이 있다. 여기서 우리는 후발 '추격 복지국가'가 된다. 그렇지만 경제발전의 경우도 그러한데 복지도 꼭 후발 추격 =미달의 등식이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우선, 복지 부담 방식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당연히 달라질 것이다. 그렇지만 복지의 "양" 이상으로 복지의 "질" 또는 구조가 중요하다. 오늘날 기본 소득 또는 시민소득론에서 잘 제기되고 있는 것이지만, 사후적 복지만이 아니라 사전적 복지 즉 출발선에서 자산 평등체제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다. 통상 복지는 2차 분배라고 말하지만, 사전적 복지는 '2차 분배'라기보다 1차 생산수단 및 생활수단의 분배 의제다. 근로복지가 전통 사민주의의 보수적, 후향적 전환을 대표하는 꼭지라면, 기본소득은 전통사민주의를 진보적,전향적 전환을 대표하는 대안 꼭지다. 그러므로 사후- 사전 복지의 혼합 방식에 따라 한국의 복지체제는 스웨덴과 다른 구조를 가질 가능성이 있고, 혹시 부분적으로는 더 선진적 요소를 내장할지 누구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이와 별개로, 경제와 복지, 더 실감나게는 생산체제와 복지체제의 혼합(production-welfare mix) 방식의 문제가 아주 중요하다. 설사 보편 복지국가를 수립하는 데 성공한다 해도 이는 시작일 뿐이다. 그것이 어떻게 지속가능한 체제로 발전할수 있나 하는 문제가 여전히 존재한다. 그 때문에 복지국가는 절대 복지만으로 설 수 없고 지속될수 없는 국가다. 경제와 복지의 선순환 또는 경제정책과 사회정책의 조화, 양질의 일자리와 소득분배 평등을 낳는 노동시장체제 등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이른바 "1차 분배"를 결정하는 생산체제 수준, 즉 총자본과 총노동의 관계, 산업체제, 기업체제, 노동체제,금융체제 그리고 제 3섹터 등의 편성방식이 건강하고 갈등이 잘 조절된다면, "2차 분배"의 비중은 덜하게 될수도 있다.

 

예컨대 가처분소득기준이 아니라 시장소득 기준으로 보면 일본의 소득분배가 스웨덴보다 더 평등하게 나타나는 현상- 최근에는 좀 달라졌다- 을 유심히 볼 필요가 있다. 왜 그럴까.이 점과 관련하여 생각해봐야 할 부분은 많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일본시스템이 스웨덴보다 낫다는 건 결코 아니지만, 이는 생산-복지 혼합의 중요성을 잘 말해준다. 그런데 특히 한국의 경우 여전히 난제로 남아 있는 재벌공화국 또는 삼성공화국의 개혁문제, 중소기업문제, 자영업문제, 이미 과도한 비정규직 문제, 생산자 서비스와 공적 사회적 서비스의 대폭 확대를 포함한 산업구조 선진화와 공공화 문제, 토건업 구조조정문제, 협동조합을 포함한 사회적 경제(또는 제3섹터)의 확충문제, 자주관리기업 그리고 건강한 국공영기업을 발전시키는 문제 등을 어떻게 해결할지에 대해 머리를 싸매야 한다. 이를 통해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감당할 수 없는 복지수요, 그에 따른 증세압박을 차단함으로써 고용친화적인 사회적 시장과 선진혁신경제로 이행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물론 대외 개방의 이익을 확보하면서 그 파괴력을 제어하는 개방관리 문제는 또 별도과제다.

 

이병천 강원대 교수, <시민과 세계> 공동편집인

 

* 이 글은 2011년 7월 14일,  프레시안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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