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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2011.07.22
  • 7181

공정경제, 경제민주화, 그리고 보편복지 - 헌법 119조, 무엇이 문제인가

- 보편복지국가와 시민정치 3

 

복지국가는 복지만으로 설 수 있는 국가, 복지 홀로 지속가능한 국가가 아니다. 복지는 경제의 토대를 가져야 한다. 튼튼한 경제, 정의롭고 민주화된 사회적 시장경제가 보편적 복지와 한 패키지로 통합되면서 서로 선순환 관계에 서야 한다. 그래야 지속가능한 복지체제로 갈수가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복지정치를 결코 국가정치로 환원해서는 안된다. 이와 관련하여 나는 이미 앞선 글들에서 생산-복지 체제의 혼합전략과 양자의 상호 의존문제, 사회적 시민권으로서 보편 복지와 사회적 책임 기업의 상호의존 문제, 그리고 시민적 대항권력진지의 확장, 아래로부터 참여 자치와 연대능력의 신장이라는 견지에서 보편복지가 갖는 의미에 대해 말한 바 있다. 앞글에 이어 이글은 각도를 달리해서 보편 복지국가로 가는 길에 불가결한 정의로운 경제와 보편복지의 상호 의존 문제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

 

우리 사회에서 '정의'라는 화두가 대중화된 데는 최고베스트 셀러가 된 마이클 샌들의 책, <정의란 무엇인가>가 큰 기여를 했다. 덩달아 이명박 정부마져 '공정한 사회'를 집권 후기 국정 지표로 제시했다. 모두 '부자 되세요'를 모또로 내세우고 출범했던 이 정부가 고환율, 부자감세, 그리고 온갖 규제완화 정책으로 열과 성을 다해 재벌과 부자에 일방적으로 퍼주고, 서민과 노동자, 자영업과 중소기업의 목을 졸라댄 결과, 낙수 효과(떡고물효과)조차 일어나지 않자 "공정한 사회"까지 거론해야 할 지경으로 몰린 까닭이다. 역설적으로 '공정한 사회로 가자'는 데 대해 낡은 ,수구적 색깔 공세를 막게 한 것은 재벌-부자 퍼주기에 집중한 이 강부자 정권의 기여라면 기여다. 왜냐하면 우리 사회에는 이명박 정부의 이런 전환 조차 "사회주의적인 것"이라고 몰아 세우는 어이없는 '극우' 자유시장주의자가 여전히 발언권을 갖고 있고( ( 김정호, "MB, 한국경제의 사회주의化 시작? ",<월간 조선>, 2011/6), 특히 보수 언론의 경우는 다분히 '공정 모르쇠'로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정도 공정 나름이다. 이제는 한나라당마져 생존을 위해 새 비전으로 '선진복지국가'를 내세우며 '따뜻하고 공정한 시장', '투명하고 공정한 시장'을 거론하기에 이르렀다(< 뉴비전 보고서>). 따라서 우리는 다시 "어떤 공정이냐"를 논의해야만 한다. 광의의 진보 내부에도 공정한 경제,정의로운 경제의 내용에 대해, 그리고 보편복지 의제와 공정 경제 의제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할지에 대해 중요한 견해 차이가 존재한다. 공정시장이 먼저라면서 보편복지 의제 김빼기를 하는 흐름 조차 있는 실정이다. 그런 와중에 최근 민주당에서 보편적 복지특별위원회에 이어 '헌법 제119조 경제민주화 특별위원회' 기구를 신설한 것에 주목하게 된다. 한편 보수언론들은 이에 대해 트집을 잡느라 야단이다. 이리하여 정의로운 경제,또는 공정경제의 화두는 이런 저런 정권의 실용주의적,정치공학적 차원을 넘어 헌법적 근거와 접속되게 됐다. 그래서 나는 이번 글에서는 헌법 경제조항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 우리가 이 문제에서 어떤 과제를 안고 있는지에 대해 소견을 말해고자 한다.

 

87년 헌법 119조항- 자유시장주의자에 대한 논박

 

1987년 정치적 민주화 과정에서 탄생한 현행 헌법 제119조 1항과 2항은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제 1항: "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기본으로 한다
제 2항: 국가는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

 

흔히 제 2항은 경제민주화 조항으로 불리며 87년 민주화의 헌법적 표현으로 이야기된다. 그래서 진보쪽은 1항은 별로 거론하지 않고 주로 2항을 내세운다. 반면에 보수 자유시장주의자들은 2항을 비판하고 기를 쓰고 삭제하려 들면서 1항을 전면에 내세운다. 한편 헌법 재판소가 헌법상의 경제질서를 어찌 보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헌재는 1,2항 모두를 고려한 판례를 내린 바 있다. "우리 헌법의 경제질서는 사유재산제를 바탕으로 하고 자유경쟁을 존중하는 자유시장 경제질서를 기본으로 하면서도, 이에 수반되는 갖가지 모순을 제거하고 사회복지ㆍ사회정의를 실현하기 위하여 국가적 규제와 조정을 용인하는 사회적 시장경제질서로서의 성격을 띠고 있다"라거나, "우리 헌법은 자유시장 경제질서를 기본으로 하면서 사회국가 원리를 수용하여 실질적인 자유와 평등을 아울러 달성하려는 것을 근본이념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보수 자유시장주의자들은 국가 권력의 간섭을 제한하지 않으면 자유가 유린될 뿐 아니라, 경제 활력이 떨어지고 그로 인해 민생마저 피폐해 진다고 주장한다. 이 보수측 경제적 자유론의 허구성은 내가 얼마전 김정호 자유기업원장의 글을 논박한 "정글자본주의를 위한 독재자를 기다리나?"라는 글에서 이미 지적한 바와 같다. 헌법 경제조항 119조 제 1항에서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최대한 보장"한다고 말했을 때, 우리는 그 "경제상의 자유"가 "어떤 자유인가" "누구의 자유인가"를 물어야 한다. 그들은 바로 이 "누구의 자유인지", "어떤 자유인지" 문제를 숨기는 프레임전략을 구사한다. 그런데 그들의 프레임 전략을 걷어 내면 시장경제는 정글식 약육강식 시장과 다름없게 됨을 알수 있는데 그기서 경제적 자유란 소수 강부자의 특권적 자유와 다수 서민대중의 부자유를 의미한다. 또 '그들'은 기업을 사람과 똑같이 동렬에 놓음으로써 기업을 공적 영역이 아니라 사적 영역에 집어 넣는 데, 정글식 시장안에서 자유로운 대기업들은 사람처럼, 개인처럼 행동하는 게 아니라 마치 "사적 정부"처럼 거대 권력을 휘두른다. 그런 경제 권력의 무책임하고 방종적인 자유는 열린 시장과 열린 민주주의, 다수 대중의 자유와 공익을 수행해야 할 책임국가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다. 대기업권력의 힘은 얼마든지 공공의 책임국가를 사익국가로 납포,전락시킬수 있다. 김용철의 <삼성을 생각한다>를 보면 이를 잘 알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헌재의 판례는 주목해서 봐야 할 지점을 갖고 있다. 그것은 1항과 2항을 연결하는 고리 부분이다. 헌재의 판례는 자유시장 경제질서가 "갖가지 모순"을 수반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 "실질적인 자유와 평등을 아울러 달성"하는 것이 헌법의 근본 이념이라고 말한다. 그럼으로써 1항의 "경제상의 자유"가 형식적 자유에 불과함을 일러 준다. 헌법상 경제질서에 대한 이같은 헌재의 판단은 자유시장의 갖가지 모순, 형식적 자유의 이름아래 실질적인 부자유와 불평등의 모순을 은폐하는 보수 자유시장주의자들의 파당적 프레임을 확실히 걷어차고 있다.헌재의 판례는 시장과 정부가 상호 대체관계가 아니라 보완 관계에 있음을 잘 말해준다.

 

국가 권력의 간섭을 제한하지 않으면 자유가 유린된다는 자유시장주의자의 말은 아주 교묘한, 그들의 프레임 전략임을 간파해야 한다. 어떤 자유인지, 누구의 자유인지, 그리고 어떤 국가권력인지에 대해 전혀 말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단지 경제적 자유 일반, 국가일반에 대해서만 말한다. 우리는 그들의 프레임 술수에 넘어가지 말고, 정글식 약육강식 자본주의의 갖가지 모순을 규제하고 조정하지 않으면 각인의 자유도, 더불어 사는 공동의 자유도 유린된다고 말해야만 한다. 정글시장에서는 사회복지ㆍ사회정의를 실현할 수 없고, 아울러 모두의 실질적인 자유와 평등을 달성할 수 없게 된다고 말해야 한다. 119조 1항을 금과옥조로 여기는 자유시장주의자는 자유시장은 그 자체로는 모든 사람들이 시장에 참여할수 있는 어떤 실질적인, 동등한 기회와 자유도 제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숨긴다.

 

또한 자유시장주의자들 말처럼 정글식 자유를 규제하고 조정하면 경제 활력이 떨어지고 민생이 피폐해 지는게 아니다. 정 반대다. 바로 그런 무책임, 방임적 자유가 경제를 죽이고 민생경제를 피폐케 한다. 낙수효과조차 낳지 못한채 거품을 키우다 위기를 자초한 미국의 부시경제와, 두 국민 분열 전략으로 궁지에 몰린 한국 MB경제의 귀결이 이를 잘 보여준다. 바로 이런 까닭에 한나라당에서 홍준표씨가 서민정책특위 위원장을 맡았을때 헌법 119조 2항이 '사회적 시장경제구조'를 천명하고 있다면서, "자유주의적 시장구조만 하면 힘 있고 돈 있는 사람만 이득을 볼 수 있어 국가가 적절하게 조절해야 한다"고, 민주당적 인식과 거의 대차없는 말을 말했던 것이다.그리고 이제는 당차원에서 새 비전으로 '선진복지국가'를 내세우며 '따뜻하고 공정한 시장'을 운운할 정도로 변한 것이다.

 

헌법 119조 얼마나 민주적인가? - 제2항 "경제 민주화" 조항에 대하여

 

그렇지만 우리는 헌법 119조를 좀 더 자세히 살펴 봐야 한다. 흔히 헌법 제119조 2항은 87년 민주화의 헌법적 표현이자 성과라고 말해 왔는데, 헌법 119조 전체를 놓고 볼때, 이 조항이 얼마나 87년 민주화운동의 성과라고 말할 만큼 전향적이고 진보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지는 더 따져 봐야 한다는게 내 생각이다. 이를 위해 1987년 6공화국 헌법 경제조항을 1980년 5공화국 헌법의 그것과 비교해 보자. 5공 헌법 해당 경제조항은 제120조인 데 아래와 같다.

 

제1항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
제2항 국가는 모든 국민에게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시키는 사회정의의 실현과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위하여 필요한 범위안에서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한다.
제3항 독과점의 폐단은 적절히 규제·조정한다.

 

87년 6공 헌법을 80년 5공헌법과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3개 조항이 2개 조항으로 축소되었다. 독립조항이던 독과점의 폐단에 대한 규제조정 조항을 2항으로 통합시켜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라는 문장으로 반영했다. 둘째, 제 2항인데, 5공 헌법에서는 국가의 규제 조정 목적이 "모든 국민에게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시키는 사회정의의 실현과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위하여 "로 되어 있다. 이 부분이 87년 6공 헌법에서는 "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로 바뀌었다. 여기서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발전' 부분은 흡사하다고 보면, 결국 5공 헌법에서 "모든 국민에게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시키는 사회정의의 실현" 부분이, 87년헌법에서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로 바뀐 것이다. 이 변화에서 사회정의의 실현은 경제 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민주화에 상응하고, 모든 국민의 생활의 기본적 수요의 충족은 적정한 소득분배 유지에 상응한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사회 정의와 경제민주화는 별개의 가치라서 그 우열을 다투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주지하듯이 사회정의의 의미 자체부터 간단하지가 않다. 샌델에 따르면, 정의론은 쾌락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공리주의적 정의론, 권리중심적인 절차적 정의론, 그리고 좋은 삶, 좋은 시민을 추구하는 목적론적 정의론으로 구분된다. 그리고 권리중심 정의론은 보수의 자유지상주의적 정의론(노직)과 진보의 자유주의적 평등주의 정의론(롤스)으로 대별된다. 5공 헌법의 사회정의는 어떤 것일까. 명확히 '모든 국민의 생활의 기본적 수요의 충족'이라고 하여 분배적 정의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내가 보기에 이것은 자유주의적 평등주의류의 권리중심 정의론에 속하는 것 같다. 다른 한편, 6공헌법에서 경제민주화의 정확한 의미가 뭔지는 더 불분명하다. 내가 본 바로는, 우리 헌법에서 "경제민주화"란 말은 제헌 헌법에도 없었고 87년 헌법에서 처음으로 나타났다. 물론 내용상으로는 제헌헌법의 민주주의가 훨씬 더 강력하다. 근로자의 이익분배 규점권(18조), 그리고 공공의 필요에 부응하기 위한 생산수단의 국공유 규정(85-89조) 등이 들어 있다. 그러나 이후 시장과 자본의 힘이 엄청 강화된 경과를 감안한다면, '경제민주화'라는 말에는 87년 민주화의 시대정신이 실려 있다 하겠다. 만약 우리가 '경제민주화'란 말의 실체적 의미를, 문자 그대로 경제생활에서 "민民"이 "주主"가 된다는 의미, 국민 대중이 주체로서 민주적으로 참여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고 본다면 이는 확실히 획기적인 규정일 것이다. 정치생활에서 1인 1표를 넘어 경제생활에서도 민주적 참여를 보장한다는 해석이 되기 때문이다. 경제 민주화가 진정 실체적 의미를 갖고 있다면 이는 기업수준, 지역경제수준,국민경제 각 수준의 운영과 의사결정에서 노동자 경영참여를 비롯한 시민 대중들의 민주적 참여를 포함하게 될 것이다. 그럴 때 헌법상 한국자본주의는 "민주"( 民主)자본주의가 될 것이다. 그러면 119조 2 항은 그야말로 경제민주화 조항의 이름에 값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87년 헌법 제정과정에서도, 그 이후에도 이 조항을 그런 역사적 무게가 실린 것으로 본 사람들은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경제 주체간의 조화를 통한"이라는 말이 붙어 있는게 또 문제인데, 이 말은 경제민주화의 잠재적 진보성을 희석화시키는 물타기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물론 법조문을 넘어선 현실이 경제민주화와는 딴판이었음은 두말할 것도 없다. 따라서 오늘날 87년 헌법 '경제 민주화' 조항의 정확하고 진보적인 내용을 확보하는 일은 열린 과제로 남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헌법 119조의 또 다른 문제점들

 

헌법 119조의 다른 부분들은 어떤가. 5공 헌법에서 "모든 국민에게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시키는 국가의 과제가 6공 헌법에서는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는 과제로 바뀐 것은 어떤가? 나는 이 부분에서는 6공 헌법이 오히려 이전보다 더 뒷걸음질한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모든 국민에게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시키는 사회정의의 실현" 그리고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은 알고 보면 결코 6공헌법의 고유 조항이 아니다. 그것은 원래 제헌헌법에 있던 조항( 제 84조 )으로서 이후 군부독재시기에도 건드리지 못한채 이어져 온 조항이다. 이런 불변의 기본권 조항이 87년헌법에서 바뀐 것이다.


그런데 "모든 국민에게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시킨다는 말은 보편주의적 의미를 확연히 지니고 있다. 헌법 10조(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34조 ( 1항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 2항 국가는 사회보장 ㆍ사회복지의 증진에 노력할 의무를 진다)와도 정합적이고 보완적이다. 뿐만 아니라 '기본적 수요의 충족'이란 말은 사회적 통념으로 통용되는 표현이라는 게 중요하다. 반면에,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한다는 말은 대단히 애매모호하다. 고무줄같이 자의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주관적 표현이다.따라서 사회적 통념으로 통용되기가 매우 어렵다.뿐더러 헌법의 다른 조항들과 괴리가 있다.

 

나는 87년 6공헌법 경제조항의 진보성에 이견을 달게 하는 또 다른 두가지 문제를 지적하겠다. 첫째, 119조 제 1항이다. 이 1항은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고 되어 있으며, 자유시장주의자들이 금과옥조로 여기는 조항이다. 그런데 이와 달리, 80년 5공 헌법은 단지 개인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하는 것으로만 되어 있다. 6공헌법에서 기업이 개인과 똑같은 자격으로 들어간 것이다. 이 조항 변화는 내가 알기로는 우리 헌법 역사상 초유의 일이다. 기업이 개인, 즉 사람과 똑같은 기본권을 갖는다는 것은 아주 중대한 문제다. 왜냐하면 위에서 지적한 바대로 기업,특히 대기업은 단지 제도일 뿐아니라 그자체 경제권력체이며 사물은 물론 인간을 지배하고, 경제는 물론 사회 정치에 대해서도 부당한 지배력을 행사하기 떄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에 대해 개인과 똑같은 경제적 자유를 제공할 수 있느냐하는 것이 외국 헌법사에서 중대한 논란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최근 라이시 같은 사람은 <슈퍼 자본주의>에서 기업에 민주주의 권리나 의무를 부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하기도 했다.우리는 이런 중차대한 문제를 별 논란없이 아주 쉽게 집어넣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119조 2항의 '경제민주화' 조항이 그 말에 합당한 실체적 의미, 즉 대중의 민주적 참여라는 의미를 확보해서, 1항이 허용한 기업 권력의 자유와 횡포에 대해 민주적 대항권력(countervailing power)을 행사하지 못한다면, 87년 헌법 119조는 전체적으로 이전보다 오히려 후퇴한 개정이 된다는 해석이 가능해진다.

 

87년 헌법 119조은 제헌헌법이 아니라 3공화국 헌법을 답습하고 있다

 

둘째, 119조 1항, 2항의 관계 문제와 관련하여 또 한 가지 매우 중요한 문제가 있다. 잘 알다시피 보수 자유시장주의자들은 어디까지나 1항이 기본이며, 2항은 부수적이고, 보완적인 조항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119 조의 구조를 보면 먼저 1항에서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 존중이 "기본"이라고 규정한 후에, 2항에서 성장과 안정, 소득분배유지, 경제 민주화를 위해 국가가 규제 ㆍ조정을 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1항으로 먼저 규정하고, "기본"이라고까지 말해놓은 점으로 보면 자유시장주의적 해석의 여지를 남기고 있다. 그러나 헌재의 판례는 그 "기본 "자체가 갖가지 모순을 갖고 있고 형식적 자유와 평등에 그치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이는 1항이 기본이고 2항이 부수적이라는 자유시장주의자들의 해석을 거부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헌법 역사상 1항과 2항의 관계는 매우 중요한 변화를 겪었음을 알아야 한다. 제헌헌법에서 해당 조항을 보면 아래와 같다.

 

제84조: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모든 국민에게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할 수 있게 하는 사회정의의 실현과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기함을 기본으로 삼는다. 각인의 경제상 자유는 이 한계 내에서 보장된다.

 

위에서 보듯이, 제헌헌법 84조는 모든 국민에게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할 수 있게 하는 사회정의의 실현과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기함을 "기본"으로 삼고 있다. 먼저 이 "기본"을 규정한 후에 , "각인의 경제상 자유는 이 한계 내에서 보장"한다고 말하고 있다. 87년 헌법과 비교하면, "기본"도, 조항 순서도 거꾸로 뒤바뀌여 있다. 매우 중대한 변화가 아닐수 없다. 이 변경은 언제 이루어졌는가. 제 3공화국, 박정희 시대의 일이다. 3공 헌법의 111조는 아래와 같다.

 

제1항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
제2항 국가는 모든 국민에게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시키는 사회정의의 실현과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위하여 필요한 범위안에서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한다.

 

앞서 말한 80년 5공 헌법 120조는 62년 3공 헌법의 1, 2항에다 "제3항 독과점의 폐단은 적절히 규제·조정한다"를 추가한 것이다. 이런 경과를 보면, 87년 헌법 119조의 구조는 제헌헌법이 아니라 제헌헌법 84조규정를 뒤바꾼 3공 헌법을 답습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3공 헌법 111조 1항, 5공 헌법120조의 1항에는 없었던 "기업"부분을 새로 삽입한 것이다.

 

헌법 119조와 경제적 자유주의 또는 시장민주주의

 

이처럼 87년 헌법이 제헌헌법을 뒤바꾼 3공, 5공헌법 조항을 답습하고 있고 더구나 그기에는 없었던 "기업" 부분까지 새로 집어 넣은 것을 우리는 어떻게 봐야 할까. 여러 해석이 가능하다. 나의 생각에, 가장 중대한 문제는 이 변화가 우리로 하여금 자유시장이란 걸 마치 자연적인 것인냥 생각토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자유시장이 정치적, 제도적 구성물이라는 생각을 밀어내 버렸다. 그래서 기업권력, 자본권력의 폐해, 즉 소수의 자유와 다수의 부자유를 비롯한 자유시장의 "갖가지 모순"을 가볍게, 부수효과 (side effects) 정도로 생각하게 만들고 자유시장주의 해석에 빌미를 주었다. 또 시장이 본래부터 공익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는 생각도 밀어냈다. 개인과 기업의 경제적 자유가 본래부터 공동의 부에 의존하고 있으며, 따라서 그 자유는 원래부터 사회적 책임을 동반한다는 생각을 밀어냈다. 뿐만 아니라, 우리 경제 구성원들을 각인의 자유와 함께 더불어 사는, 공동의 자유를 추구하는 인간이 아니라, 센이 "합리적 바보"라고 부른 원자적 개인, 호모에코노미쿠스적인 시장인간, 소유개인주의적 인간으로 간주하게 만들었다.

 

이상에서 살펴본바와 같은 헌법 경제 조항의 변화는 더 넓게 보면 우리 헌법에서 민주공화국, 민주주의를 어떻게 보고 있느냐 하는 문제와 연결된다. 그간의 연구가 밝히고 있는 바와 같이 우리 헌법전문에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말이 처음 나타난 것은 '유신헌법'때의 일이었다. (자세한 것은 다음 글을 참조, 박명림, "헌법개혁과 한국민주주의", 함께하는 시민행동편,<헌법 다시 보기-87년 헌법 무엇이 문제인가> ,창비사,2007 수록).이는 제헌헌법 전문에서 "민주주의 諸 제도"로 말하고 있는 것과는 현저히 다른 것이다. 87년 헌법은 유신헌법 전문을 답습하고 다시 제 4조에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을 추가했다.

그런데 자유민주주의란 원래 하나의 이념만 나타내는 게 아니다. 맥퍼슨 (C.B.Macpherson)이 잘 지적했듯이, 그것은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모순적 구성물이다. 따라서 어디에 더 방점을 찍느냐에 따라 자유민주주의의 성격과 내용은 판이하게 달라지게 된다. 나는 제헌헌법상의 "민주주의 제 제도"가 군부독재 시대에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로 바뀜으로써 그 시계추가 자유주의쪽으로, 더 정확히 말해 '경제적 자유주의', 또는 '시장 민주주의'쪽으로 크게 기울었다고 생각한다. 군부독재가 역설적으로 경제적 자유주의와 결합된 것이다. 제헌 헌법 84조가 3공 헌법 111조 1항,그리고 5공 헌법120조로 변한 것은 이런 변화와 궤를 같이 한다는 게 나의 해석이다.

 

87년 헌법을 넘어서, 보편복지국가는 경제민주화와 동행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묻게 된다. 자유시장이란 게 자연적인 것인가 ? 그렇지 않다. 자유시장은 결코 자연적인 게 아니라 정치적,제도적,역사적 구성물이다. 그리고 현존하는 소유구조와 분배구조는 정의롭지 못한 배경조건들, 역사적 조건들을 반영하는 것일 수 있다. (세실 라보르드외 지음, 곽준혁외 역, <공화주의와 정치이론>, 까치,2009, p46-7 ).나는 시장, 자유시장에 대한 이런 생각을 민주공화주의적, 또는 간단히 시민정치적 사고라고 부른다. 이에 대해서는 장하준도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에서 thing 1으로, 자신의 책의 '정초명제'로 언급하기도 했지만 그의 생각은 정치를 국가로 환원한다는 중요한 문제를 안고 있다. 또 시장과 경제에 대한 시민정치적 사고는 제헌헌법의 규정대로 모든 국민이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할 것을 추구하지만, 이는 각인이 좋은 삶을 추구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움과 동시에, 시민다운 삶을 살기 위해, 좋은 시민의 능력 증진을 위해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그리하여 각인의 자유와 공공성의 상생하는 길로 가야 한다. 경제적 불평등을 일정 범위로 통제해야 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경제민주화는 그 자체로서 뿐만 아니라 정치적 참여와 자유의 신장을 위해서 요구된다. 바로 이런 지점들 때문에 우리는 제헌 헌법의 소중함을 환기시키면서도, 그것의 단순한 복원을 주장하지는 않는 것이다.

 

오늘날 87년 헌법의 119조 2항을 지키는 것은 좋은 일이다. 우리 사회에 워낙 보수가 뿌리깊고 그 벽이 두텁기 때문이다. 친일보수에다 냉전보수, 다시 민주화시대, 세계화 시대에는 시장보수가 중첩됐다. 그러나 지금까지 말한 것처럼, 87년 헌법을 지키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이미 한나라당 조차 헌법 119조 해석에서 민주당과 거의 차이가 없을 정도로 변화의 기미를 보이고 있다. 오늘날 제2의 민주화, 사회경제적 민주화의 도전 앞에 선 우리는 87년 헌법의 성과를 지키되 그 한계를 넘어서야 한다.

 

돌이켜 보면,87년 민주화 운동의 과정에서 제헌은 민주화 운동 세력의 손을 떠나 집권당과 반대당 엘리뜨들의 수중으로 넘어갔었다. 헌법 쟁취국면과 헌법 제정국면은 완전히 분리 구획되었다.(위의 박명림 글, p. 71). 87년 헌법 119조에도 바로 이런 경과와 헌법 현실이 반영되어 있다는 게 나의 해석이다. 그러므로 87년 헌법을 넘어 119조를 비롯한 헌법 경제조항을 민주공화주의적으로 재구성하는 작업, 애매모호한채 겨우 버티고 있는 2항 "경제민주화"에 실체적, 현실적 활력을 불어넣는 일은 미래의 과제로 열려 있다. 보편복지국가로 가는 한국적 길은 복지만으로는 안되고 이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보편복지국가의 길은 노동의 가치를 존중하는 실질적 경제 민주화, 그리고 아래로부터 시민참여 민주주의와 동행해야 한다.

 

이병천 강원대 교수, <시민과 세계> 공동편집인

 

* 이 글은 2011년 7월 19일,  프레시안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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