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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2011.07.06
  • 2847

2008년 6월에 열린 한국사회학대회 초청장의 핵심어는 ‘산업화, 민주화, 선진화’였다. 산업화와 민주화의 자랑스러운 성과를 바탕으로 이제 선진화라는 새로운 역사적 과제를 향해 사회학자들의 노력을 한데 모으자는 것이 대회 초청장의 기본 취지였다. 한국 현대사를 바라보는 사회학자들의 관점은 긍정적인 것부터 비판적인 것까지 매우 다양하지만, 전국 사회학대회와 전체 사회학자들을 아우르는 말로서 그 용어들이 과연 적절한가에 대한 심각한 문제제기나 비판은 없었다. 아마도 그것이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 사이의 오랜 반목과 갈등을 넘어서서 화해와 통합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선진화 담론이 현대사에 대한 편협한 해석을 보편타당한 관점으로 전환시키는 은밀한 전략을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다. 보수 세력의 대표 이론가인 박세일 교수가 주창한 선진화 담론은 1940~50년대를 건국의 시대, 60~70년대를 산업화 시대, 그리고 80~90년대를 민주화의 시대로 규정한다. 이를 통해 우선 오랫동안 대중들의 머리 속에 독재자로 남아있었던 이승만과 박정희를 건국과 산업화의 지도자로 복권시켰다. 물론 선진화 담론의 진정한 목적이 여기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80~90년대 민주화 시대의 주역을 김영삼 정부와 뉴라이트 세력으로 정립했다. 보수 세력은 김영삼 정부 수립으로 민주화의 과제는 해결되었다고 보았고, 안병직 교수는 한국의 올드라이트는 산업화 세력에, 뉴라이트는 민주화 운동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한국 사회의 산업화와 민주화는 모두 우파가 달성한 것이라는 주장인 셈이다.

 
나아가 박세일 교수를 위시한 보수 집단은 2000년대의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민주화 시대의 주체로 보지 않고, 그 시대를 ‘반선진화’ 세력에 의한 분열과 갈등, 혼돈과 좌절의 시대로 규정한다. 보수 세력은 김대중과 노무현 정부를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국가주의적 평등주의를 내세우고, 균형발전이란 이름 아래 전국토를 난개발하고, 이념과 정서과잉의 코드외교를 일삼는 반선진화 세력이라고 몰아붙였다. 이러한 논리의 연장선상에서 그들은 독재정권과 타협하지 않은 광범위한 민주 세력을 지난 10여년간 ‘친북·반미·좌파’로 낙인찍고, 그에 대한 적개심을 확산하는 일을 하루가 멀다 하고 벌여왔다. 그리고 그 비극적 파국이 바로 2009년 전직 두 대통령의 연이은 서거라는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사건으로 나타났다.

 

겉으로는 산업화와 민주화의 통합을 부르짖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민주주의를 왜곡하는 선진화 담론의 논리는 1990년대 초의 세계화론과 닮았다. 당시 세계화론은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세계화를 이미 피할 수 없는 외적 강제로 받아들이게 했다. 하지만 김영삼 정부의 섣부른 세계화론은 97년의 외환위기와 국가부도 사태를 초래했다. 그로 인한 한국 경제의 신자유주의적 질서 강화로 많은 사람들은 오늘도 양극화와 고용 불안정 그리고 고용 없는 성장의 질곡에서 고통 받고 있다. 보수 세력은 이제 ‘사즉생의 적극적인 흡수통일론’을 들고 나온다. 군사적 충돌이 낳을 대량 인명 희생도, 막대한 통일 비용에 따른 사회경제적 어려움도 개의치 않는 그들의 통일 담론을 가히 사람 잡는 선무당의 세 번째 굿판이라 부를 만하다. 엉성한 세계화론과 편향된 선진화론으로 정신적 물질적으로 큰 충격과 부담을 안겨 주었던 보수 세력이 이렇게 무모한 통일론으로 또 얼마나 큰 후유증을 역사에 남길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항우 충북대 교수, <시민과 세계>  편집위원 

 

* 이 글은 2011년 7월 5일,  경향신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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