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연구소 칼럼(ip) 2009-05-26   6577

[칼럼] 법견, 법살 그리고 자기응징

법견, 법살 그리고 자기응징



용산폭거 이래 엠비(MB)정권은 그 성격이 급속히 변했다. 포악하고 무능한 정권 운영과 관련된 인명 피해가 한 달이 멀다 하고 속출하면서 피냄새가 점차 짙어져 왔다. 사람 몇이나 잡고 끝날거나? 매일 자살하는 이들, 수많은 촛불 피의자, 용산폭거의 희생자, 화물연대의 박종태 지회장 … 그리고 터졌다. 대한민국 16대 대통령 노무현!

아무리 봐도 스스로 죽을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죽음이 아니라면 그를 저주하는 세력의 ‘정치적 노리갯감’으로 상설 전시될 것이라는 전망은 점차 분명해졌다. 검찰은 그가 재임 시절 가족과 측근들의 비위 사실을 실제 알고 방조했다는 ‘정황’을 막장드라마처럼 쏟아냈다. 그런데 검찰은 언제나 ‘증거’를 내놓지? 그런데 이제는 증거가 있은들!


아서라, 대한민국 검찰이여, 어떻게 끝날지 뻔히 안다. 광주항쟁 때 누구도 계엄군에게 쏘라고 명령하지는 않았다고 발뺌하는데 총탄은 병사들 총부리에서 자발적으로 튀어나갔다고. 그래서 애초 광주학살이 성공한 쿠데타라고 했다가 금세 반국가 변란이라고 손바닥 뒤집듯 견해를 바꾼 대한민국 검찰은 끝내 발포 주동자를 찾지 못했다지? 그리고 아무도 죽지 않고 지금껏 산다.


노무현이 ‘자살’했다? 아니다. ‘증거’가 아니라 ‘먹이’만 찾고, 응당 죽을 자들을 방임하고 수백억, 수천억원씩 먹은 자들을 좌시하면서 대한민국 국가기관 모두를 능멸한 자들에게는 면죄부를 줘온 법견(法犬)들에 의한 법살(法殺)이다.


이 사람 입에 올라 분에 못 이겨 죽었던 그 누군가와 ‘똑같은 자살’이라고? 그 사람의 삼족이 모두 검찰에 불려나가 모멸당했던가?


그렇다면 ‘승부수로 던진 자살’이라고? 그렇게 게임 보듯 하지 말라. 살아서 무슨 득을 보겠다면 판돈 걸듯이 목숨을 내놓겠는가?


결국 자기 응징이다. 자신이 뒤늦게 인지하고 시인한 자기 가족의 오점에 대해, 그리고 자기 적들에 비하면 턱없이 적기는 했지만 아무리 궁색한 살림비용이라도 받아쓴 평생 동지들의 실책이 그들에게 생활을 책임져 주지 못하는 망자의 자괴감을 들쑤셔 올렸을 것이다. 그리고 퇴임 뒤 한없이 꼬투리 잡으려는 현존 권력의 강퍅함은 그 자신이 잘 알 터이다.


그런데 자기와 관련된 실책을 이렇게 엄중하게 자책한 대통령이 앞으로도 있을까?


이제 노무현 선(線)이 진정성의 기준이다. 정의는 불의를 저지르지 않는 것이지만, 저지른 불의를 징벌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는 자기 응징으로 자기가 세운 정의의 최소 원칙은 지켜냈다.


그런데 이렇게 죄인도 자기를 응징하는데 왜 지금 수사 종결인가? 정말 응징할 죄인이 얼마나 많은데?


나는 노무현을 위해 눈물 흘리지 않겠다. 눈물 한 점도 혹여나 내 시야를 흐릴까봐 단 한숨도 흐느끼지 않고 이 나라의 한 시민으로 죽는 날까지 지켜보겠다.


노무현보다 더 죄지은 자들이 어떻게 살아갈는지. 법을 폭압의 도구로 타락시킨 이 정권이 이제 암살당한 대통령과 자살한 대통령을 모두 갖게 된 이 대한민국에서 어떻게 정의로운 선진 정치를 이룰는지. 아니면 폭력에 손대기 시작한 권력이 자멸하든가 붕괴하기 전에 결코 폭력을 끊지 못하는 권력의 생리대로 흘러갈는지.


노무현을 법으로 몰아붙인 ‘법견’들이 노무현보다 더 죄 많은 자들까지 과연 물어뜯을지. 그래서 사울이 바울이 되듯, ‘법견’이 ‘정의의 사도’가 될는지.


우리의 새 시대는 아직 열리지 않았다. 밤은 아직도 지속되고 있다.


 <홍윤기 | 동국대 철학과 교수 / 참여사회연구소 시민과세계 공동편집인>

* 이 칼럼은 한겨레신문 5월 26일자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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