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연구소 칼럼(ip) 2009-08-14   5791

오마이뉴스·참여연대·참여사회연구소 공동 기획, 광장을 열어라 ⑫

집시법이 헌법에 우선할 수 있나 


[광장을 열어라⑫] 조례에 대한 헌법소원 제기가 필요한 이유


임지봉


MB 정부의 집회시위의 자유에 대한 침해와 광장공포증이 극에 달하고 있습니다.  경찰의 서울광장 경찰버스 봉쇄가 이어지고 있고, 서울시는 문화행사 이외에는 사용 제한을 내걸었습니다.  광장의 위기는 민주주의의 위기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시민사회와 야당은 광장의 위기에 맞서 주민직접발의라는 직접민주주의의 방법으로 광장을 시민의 품으로 찾아오는 서울광장조례개정운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참여연대, 참여사회연구소와 공동으로 ‘광장을 열어라’는 주제로 공동기획을 진행합니다. 독자여러분의 관심 부탁드립니다.  <편집자말>




▲ 서울광장. 
ⓒ 유성호  광장조례개정
 
 



기본권에도 서열이 있다.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이라고 다 똑같은 지위를 가지는 것은 아니다. 국내외의 학설과 판례는 기본권들 중에서 집회의 자유의 ‘우월적 지위’를 인정한다. 즉, 소수자 및 약자의 집회의 자유는 집회지역 거주자의 주거의 평온을 보호하는 프라이버시권이나 집회로 인한 인근 상가의 영업이익 감소, 교통소통 방해와 같은 다른 권리나 이익보다 우월적 지위를 점하기 때문에 우선시 될 수 있는 것이다.


 


집회로 인해 주거의 평온이나 인근 상가의 영업이익, 인근 지역의 교통소통이 어느 정도 방해받는 것은 ‘집회의 자유’라는 중요한 기본권의 보장을 위해 다른 사회구성원들이 수인해줘야 할 ‘민주주의의 비용’이다. 즉, 다른 국민들에게는 집회의 자유 행사에 따른 일정한 생활상의 불편을 감수해야 할 의무가 발생하는 것이다.


 


최고법인 헌법은 제21조에서 언론·출판의 자유와 함께 집회·결사의 자유를 국민 기본권의 하나로 보장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 언론, 출판, 집회, 결사에 대한 사전 ‘허가제’를 헌법 제21조 제2항에서 명문규정을 통해 금지하고 있다. 이 중 헌법이 보장한 집회의 자유를 구체화한 하위법률이 바로 우리가 보통 집시법이라 흔히 부르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이다.


 


그런데 집회의 자유를 구체화한 하위법률로서 집회의 자유 ‘보장’에 중점을 두어야 할 집시법의 조항들 중에는 오히려 ‘제한’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는 조항들이 적지 않다. 특히 헌법이 국민에게 부여한 집회의 자유를 사실상 무력화시킬 수 있는 독소조항들도 발견된다.


 


광장 ‘허가제’, 헌법 규정 정면으로 위배


 


야간에 이루어지는 옥외집회는 야간집회라는 이유만으로 금지할 수 있게 한 집시법 제10조나, ‘심각한 교통불편을 줄 우려’라는 지극히 애매모호한 기준을 가지고 집회를 금지할 수 있게 한 집시법 제12조가 그 대표적인 예들이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집시법의 ‘적용단계’에서 이러한 위헌적 독소조항들에 근거해 집회 개최지 관할경찰서장이 신고된 집회에 대해 금지통고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집시법 제8조가 이를 규정하고 있다.


 


경찰서장의 집회금지통고권이 남용되면 사실상 집회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로 운용되는 것이고 이것은 집회에 대한 ‘허가제’를 금지하고 있는 우리 헌법규정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위헌적인 법적용이 된다.


 


집시법 제6조는 집회주최자가 집회 시작 720시간 전부터 48시간 전까지 관할 경찰서장에게 신고서를 제출할 것을 요구하는 ‘신고제’를 규정하고 있다. 앞에서 이미 보았듯이 집회에 대한 ‘허가제’가 헌법에 의해 금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허가제’가 아니라 ‘신고제’를 규정하고 있는 근본취지를 놓고 봤을 때, 집회에 대한 ‘신고제’란 신고만 하면 집회나 시위를 할 수 있는 자유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이 때 신고는 단지 경찰서장의 행정상의 참고를 위한 것일 뿐이다. 따라서 말 그대로 ‘신고제’가 되기 위해서는 신고서 접수 후 48시간 이내에 관할경찰서장이 내릴 수 있는 집회금지통고는 아주 예외적으로만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경찰서장의 집회금지통고는 남발되고 있다.


 


‘집회=불법’ 사회분위기 조장


 
언론보도에 의하면 지난 5월부터 6월초까지 시민·사회단체가 서울 도심에서 열려던 민생·시국 관련 집회 42건이 관할경찰서장에 의해 모두 금지통고처분을 받았다는 사실이 그 증거다. 위헌적인 독소조항들을 확대해석하고 자의적으로 적용해 이를 불법집회로 예단하고 금지하는 금지통고처분이 남발된다면, 집회에 대해 신고제를 규정한 법의 취지는 몰각되고 경찰서장의 금지통고처분이 사실상 집회 개최의 허, 불허를 결정하게 되어 신고제가 아닌 위헌적 허가제로 집시법의 신고제 규정이 운용되게 되는 것이다.
 


경찰서장의 집회 금지통고처분 남발은 헌법상의 집회의 자유를 무력화시킨다. 예를 들어, 화물연대나 민주노총이 과거 폭력시위를 했다고 해서 이 단체들이 개최할 미래의 집회까지 공공의 안녕질서에 직접적인 위협을 끼칠 집회라 주장하면서 금지한다면, 이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집회를 과거 전력만을 이유로 불법집회로 치부해 버림으로써 집회의 자유를 침해하는 위헌적인 ‘불법집회 낙인찍기’에 다름 아니다.


 


이러한 집회에 대한 불법 낙인 찍기는 ‘집회 = 불법, 폭력’이라는 이미지를 다른 국민들에게 은연 중에 각인시킴으로써, 집회의 자유라는 헌법상의 기본권으로 보호받아야 할 집회에 대해 이를 불법시, 폭력시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장한다.


 


서울시 조례에 의하면 서울광장을 집회장소로 사용하려면 시에 사용허가를 받게 되어 있다. 서울시는 조례로 서울광장을 사용하는 목적, 일시, 인원 등을 적은 신청서를 사용하려는 날 7일에서 60일 전에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 사용 목적은 시민의 건전한 ‘여가선용’과 ‘문화활동’ 2가지로 제한한다. 서울시는 이 규정을 들어 많은 집회에서의 서울광장 사용을 금지했다.


  
 ▲ 지난해 6월 27일, 경찰과 서울시 용역직원들이 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농성을 벌이던 각 단체들의 천막을 강제 철거하고 있다. 
ⓒ 유성호  한미 쇠고기 협상
 
 

서울시 조례에서 규정한 ‘여가선용’과 ‘문화활동’의 개념이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다. 따라서, 이러한 불명확한 기준 때문에 집회시 서울광장의 사용 여부를 서울시가 자의적으로 판단할 수 있게 되는 것이고 서울광장에서 열리는 집회를 서울시가 입맛에 따라 고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에 국가인권위원회는 2006년 서울광장 사용을 거부당한 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의 진정에 대해 “서울광장은 누구에게나 개방해야 하고, 이용 목적을 특정해선 안 된다”고 하면서 서울시의회에 조례 개정을 요구한 바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광장’은 놀이와 휴식의 장소일 뿐만 아니라, 정부와 사회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표출하는 ‘공적 장소'(public forum)가 될 수 있다. 당연히 집회의 장소도 될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서울광장은 다양한 성격의 집회 장소로 이용되어 왔으며, 보수나 진보를 가리지 않고 많은 이들이 이 곳을 집회장소로 사용해왔다.


 


보수진영도 참여정부 시절에 국가보안법 개정이나 행정수도 이전 등에 반대하는 대규모 집회를 다름아닌 서울광장에서 열었다. 이런 의미에서 민심의 분출 공간인 서울광장은 상시 시민들에게 열려 있어야 한다. 서울광장은 서울시나 서울시장의 전유물이 아니다. 서울시에 지방세를 납부하고 서울시장이나 서울시 의회의원을 선거로 뽑는 서울시민의 것이다.


 


위에서 말한 집회자유의 기본권으로서의 우월적 지위를 고려했을 때, 다른 시민들의 광장사용권 때문에 서울광장에서의 집회가 서울시의 허가대상으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 이런 면에서 서울광장에서 열리는 정치적 집회를 허가대상에서 제외할 수 있게 한 서울시 조례는 납세자인 서울 시민의 ‘집회장소 선택권’이라는 ‘집회의 자유’를 침해하는 위헌적 조항이다. 하루빨리 개정되어야 한다.


 


조례 자체에 대한 헌법소원 제기도 한 가지 방법


 


이 때문에 서울광장 사용 ‘허가제’를 ‘신고제’로 바꾸기 위한 시민사회 단체의 조례 개정 작업이 속도를 내고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런데, 서울시 조례의 위헌성을 치유하기 위한 더 신속하고 효과적인 방법도 있다. 서울시 조례 자체에 대한 헌법소원의 제기가 그것이다. 헌법소원이란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1항에 의해 ‘공권력의 행사나 불행사로 기본권을 침해받은 국민’이 제기할 수 있는 헌법소송의 한 유형이다.


 


서울시 의회에 의한 위헌적인 조례 제정이라는 ‘공권력 행사’로 인해 서울시 광장 사용에 관한 조례가 만들어졌고 이 조례의 존재 자체가 직접 서울시민의 집회의 자유를 침해하기 때문에 조례 자체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해 그 위헌성을 다툴 수 있는 것이다.


 


우리 헌법재판소는 여러 번에 걸쳐 조례 자체의 위헌여부를 묻는 ‘조례에 대한 헌법소원’을 받아들인 바 있다. 또한, 헌법소원의 경우에는 헌법소원의 제기와 함께 가처분 신청도 할 수 있다. 따라서 헌법소원과 함께 정치적 집회의 장소로 서울광장 사용을 금지하는 위헌적인 서울시 조례에 대해 그 효력정지를 구하는 가처분 신청을 헌법재판소에 함께 제기할 수 있는 것이다.


 


광장에서 집회를 통해 그 의견을 마음껏 표출할 수 있는 집회의 자유는 헌법으로부터 부여받은 국민으로서의 당연한 권리이다. 집시법이건 서울시 조례건 헌법에 어긋나게 규정되거나 운용되어서는 안 된다. 헌법은 그 국가의 최고법이기 때문이다.


 


☞ 서울광장 사용권리 되찾기 주민조례개정운동 사이트 바로가기

 

덧붙이는 글 | 임지봉 기자는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입니다. 


 
기사원문보기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191344&PAGE_CD=N0000&BLCK_NO=3&CMPT_CD=M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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