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연구소 칼럼(ip) 2008-12-19   3756

[칼럼] 홉스의 국가論, 한국의 국가폭력

근대 초기 영국의 철학자였던 홉스에 따르면 자연 상태에서 사람들은 상대방에 대해 늑대와 같아서 그대로 내버려두면 만인 대 만인의 투쟁으로 인해 자신의 자유와 권리를 지킬 수 없다. 이런 자연적 전쟁상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국가를 통해 인간의 폭력적 공격성을 제어하지 않으면 안 된다. 때로는 국가라는 것이 개인의 입장에서 보자면 성가신 존재이기도 하지만 그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까닭도 타자의 폭력으로부터 나의 자유와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국가라는 울타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잘 알려진 대로 이것이 홉스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런 국가이론은 서양에서는 어떨지 모르나 적어도 한국에서는 잘못된 이론이다. 왜냐하면 이 땅에서는 다른 사람의 폭력이 아니라 국가의 폭력이야말로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위협하는 가장 큰 위험요인이기 때문이다. 국가가 행패를 부리지 않으면 개인의 삶이 훨씬 더 평화롭고 조화로울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의 국가기구는 시민을 적으로 삼아 야만적인 폭력을 행사함으로써, 시민들 사이의 전쟁상태를 종식시키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국가기구와 시민공동체 사이에 전쟁상태를 스스로 조성해 왔던 것이다.

자유·권리 지키는 울타리

이 세상에 국가와 시민공동체 사이에 불화가 없는 나라는 없다. 왜냐하면 국가 권력을 장악한 사람들 역시 특정한 개인들인 까닭에 다른 사람들과 이해관계가 충돌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충돌하는 이해관계가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조정되는 한에서 국가는 정치적 상태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국가 권력을 장악한 자들이 나라 안에서 자기와 이해관계가 다르고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대등한 시민으로서 인정하지 않고 폭력으로 억압하려 하거나 적대적으로 말살하려 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이런 경우 만약 국가기구가 표면적으로라도 다수의 이익을 대변한다면 소수자들을 희생양 삼는 파시즘적 전체주의가 득세하게 된다. 하지만 국가기구가 소수의 이익을 위해 대다수 국민을 적으로 몰아간다면 그 때는 국가기구와 대다수 시민공동체 사이에 전쟁상태가 초래될 수밖에 없다.

파시즘이 서양 나라들의 병리현상이라면 우리나라에서는 국가기구와 시민공동체 사이의 전쟁상태가 수백 년 이래 나라의 불치병이었다. 왜냐하면 국민 모두의 공공적 이익이 아니라 자기들의 사사로운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국가권력을 사유화하는 것이 이 나라 지배계급의 집요한 습속이기 때문이다. 공공적 이익을 지키는 데는 지극히 무능하면서 사사로운 이익을 추구하는 탐욕은 상상을 초월하는 자들이 이 나라의 상류층인데, 이들은 자기들의 그런 무능과 탐욕에 대한 시민들의 비판을 틀어막기 위해 다시 국가 권력을 남용함으로써 국민의 마음에 원한의 씨앗을 뿌리게 된다.

이를 테면 자동차를 몰고 촛불집회에 참석했다는 이유로 운전면허를 취소하여 가난한 장애인 부부의 생계를 막거나, 일제고사에 반대했다 하여 여러 명의 교사들을 한꺼번에 해고하는 것이 모두 그런 권력 남용이라 할 수 있다. 사소한 일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당사자에게 이런 일은 생존을 위협하는 치명적인 폭력이다. 그런데 이런 만행을 법의 이름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하는 것이 한국의 권력집단인 것이다.

‘촛불’을 짓밟은 권력 남용

멀리는 동학농민전쟁에서부터 가까이는 87년 6월항쟁에 이르기까지 이 나라에서 20~30년 만에 한 번씩 엄청난 봉기가 나라를 뒤흔들고 때때로 국가기구를 전복시켜온 까닭도 바로 이런 야만적인 국가폭력 때문이다. 권력집단이 동료시민을 적대시하고 법의 이름으로 끊임없이 크고 작은 폭력을 행사할 때 그들은 이를 통해 시민 봉기의 에너지를 스스로 축적하게 된다. 그리고 때가 되면 씨알들의 분노는 지진처럼 대지를 뒤흔들고 썩은 권력의 성채를 허물어 버리는 것이다.

지난 봄, 여름 이 나라를 밝혔던 촛불은 명백히 그런 지진의 전조였다. 머지않아 그 전조는 현실이 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겨울이니 가난한 우리는 서로의 체온으로 이 추위를 견디자.

<김상봉 | 전남대 교수·철학 / 참여사회연구소 편집위원>

* 이 칼럼은 경향신문 12월 19일자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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