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연구소 칼럼(ip) 2009-08-06   7092

오마이뉴스·참여연대·참여사회연구소 공동 기획, 광장을 열어라 ⑤

서울시는 철창에 갇힌 ‘광장’을 꺼내라
– 민주화 고비마다 결정적 역할 한 소중한 공간

오마이뉴스·참여연대·참여사회연구소 공동 기획, 광장을 열어라 ⑤


이수호
 

MB 정부의 집회시위의 자유에 대한 침해와 광장공포증이 극에 달하고 있습니다.  경찰의 서울광장 경찰버스 봉쇄가 이어지고 있고, 서울시는 문화행사 이외에는 사용 제한을 내걸었습니다.  광장의 위기는 민주주의의 위기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시민사회와 야당은 광장의 위기에 맞서 주민직접발의라는 직접민주주의의 방법으로 광장을 시민의 품으로 찾아오는 서울광장조례개정운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참여연대, 참여사회연구소와 공동으로 ‘광장을 열어라’는 주제로 공동기획을 진행합니다. 독자여러분의 관심 부탁드립니다.  <편집자말> 


내 어릴 적 기억은 마당에서 시작된다. 내가 살던 산골 마을의 모든 집에는 마당이 있었다. 집은 초가집으로 보잘 것 없었지만 마당만은 넓었다. 그 마당 구석에는 윤기 나는 잎들과 탐스럽게 익어가는 감이 주렁주렁 달린 감나무가 몇 그루 있었다. 그 옆에는 우물이 있고, 사립문 옆에는 꽃밭이 있었다.
 


아침마다 일찍 일어나신 아버지가 제일 먼저 하시는 일은 싸리비로 마당을 쓰시는 일이었다. 내가 눈을 비비고 나왔을 땐 언제나 마당에는 빗자루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고, 몇 마리 참새가 종종걸음을 치며 놀고 있었다. 우리 조무래기들은 그 마당에 모여 구슬치기, 땅따먹기, 비석치기, 고무줄놀이 등을 하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마당은 우리의 놀이터였고, 우리는 이 마당에서 자랐다. 마당이 우리를 키웠다.


마을 입구나 집 사이 넓은 곳엔 너른 마당이 있었는데, 우리는 그곳을 백구마당이라고 불렀다. 그곳에선 동네 꼬마들이 모여 하루 종일 놀았다. 한국전쟁 직후여서 그런지 우리는 ‘빵빵’이라는 병정놀이를 즐겼지만, 숨바꼭질이나 술래잡기로 조용한 날이 없었다.



마을의 소통공간인 ‘백구마당’을 떠올리다



백구마당은 우리 꼬맹이들에게 누군가와 더불어 사는 이치와 방법을 가르쳐주는 선생이었다. 마을에서 공동관리 하며 누구나 어느 때나 쓸 수 있는 이 백구마당은, 어른들도 거의 매일 모이는 곳이었다. 들일을 끝낸 어른들은 자연스럽게 이곳에 모여 이웃 걱정, 나라 걱정, 마을 염려를 했다. 어른들은 저녁을 먹고 다시 모여 담배 한 대씩을 물곤 농사 걱정, 나라 걱정을 이어갔다.


명절날은 백구마당도 장날이었다. 설엔 명절 인사를 끝낸 마을 사람들이 모여 윷놀이를 했다. 정월 대보름 저녁이면 꼬마들은 쥐불놀이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어른들은 낮에 꺾어다 쌓아 논 생솔가지로 달집을 지었다. 어느 마을 달집의 연기가 제일 높이 올라가나, 이웃마을과 내기를 하면서 즐기곤 했다.


마을 어른들은 명절 때면 특별히 음식과 술을 마련해 마을 젊은이나 아이들이 마음껏 먹고 마실 수 있게 해줬다. 젊은이들은 탈을 만들어 쓰고 마을 어른들을 흉내 내며 그들을 비판하기도 하고 비꼬기도 하며 평소의 답답한 마음을 풀었다. 우리나라 탈놀이가 이런 백구마당에서 생겨났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렇게 백구마당은 마을 사람들 마음을 하나로 모으게 하고 소통하게 하고 이웃마을과 연대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 왔다. 마을에 생긴 어려운 일들은 이 백구마당에서 해결됐고, 마을의 평화는 이 백구마당을 통해서 이뤄졌다.



서울 백구마당, 서울광장을 시민에게 돌려줘라



▲ 민주당 의원들이 지난 6월9일 ‘6·10 범국민대회’를 경찰과 서울시가 불허한 데 반발해 시한부 장외투쟁에 돌입, 광장 개방을 요구하며 서울광장 사수를 위한 천막 농성에 들어갔다. 
ⓒ 남소연  민주당
 
 

 서울의 백구마당은 서울광장이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누구나 원하는 시간에 마음 놓고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서울시민 모두가 주인인 서울광장이 될 수 있다.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된다는 식의 허가제가 돼서는 안 된다. 신고하면 누구나 쓸 수 있는 광장이 돼야 한다. 아니 굳이 신고도 필요 없다. 쓰려고 하는 사람들끼리 잘 의논해서 해결하면 된다.


서울시민은 그 정도의 교양과 책임감을 갖고 있다. 광장을 묶어놓고 허가해서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서울시민의 수준을 무시하는 처사다. 특히 우리 서울광장은 우리나라 민주주의 역사상 특별한 곳이다. 살아 숨 쉬는 민주화의 성지다. 이한열의 장례에서 광우병 촛불바다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민주화의 고비, 고비 마다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 뜻이 살아나게 해야 한다.


이렇게 문화재로서도 가치가 있는 서울광장을 허가제의 철창에 가두어 놓는다면, 그것은 역사적으로 창피한 일일 뿐 아니라, 광장을 지키기 위해, 아니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싸운 선조들에게 죄를 짓는 일이다. 서울광장을 해방시키자. 평화와 자유, 민주주의가 출렁거리게 하자. 서울의 주인이 우리 시민이게 하자.    
 


덧붙이는 글 | 이수호 기자는 민주노동당 최고위원입니다.


오마이뉴스 원문보기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187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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