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연구소 시민교육 2008-06-21   2416

새로운 60년, 대한민국의 좌표를 묻는다

참여사회연구소는 5월 14일부터 6월 18일까지 총 6회에 걸쳐 ‘대한민국 60년, 다시 대한민국을 묻는다’ 강좌를 진행하였습니다. 이번 강좌는 뉴라이트 교과서포럼의 역사교과서 출간으로 촉발된 우리 근현대사의 쟁점들에 대한 이해를 돕고, 새로운 대한민국의 좌표를 모색하는 자리로 마련되었습니다. 이 글은 6강에 대한 강의노트로 자원활동가 박소현님이 작성해 주셨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 기획강좌
대한민국 60년, 다시 대한민국을 묻는다




새로운 60년, 대한민국의 좌표를 묻는다


김호기|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그동안 기획 강좌에서 교과서포럼의 대안교과서에 대해 다뤄왔는데, 그 중에서도 저는 [대안교과서]의 제6부 선진화의 모습에 대해 검토해보겠습니다. 강의 전반부에는 대안교과서에 대한 분석과 비판을 하고, 이어서 우리 현대사의 현재와 미래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1. 한국 정치 경제에 대한 대한 평가 분석 

뉴라이트 근현대사 교과서 제6부의 첫 번째 장에서는 권위주의 정치의 종식, 지방자치제의 실시와 지방화, 한국 민주주의의 미숙성, 통일운동의 확산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절차적 민주주의가 공고화되었다는 지적은 뉴라이트 외에 진보 진영도 공유하는 부분입니다. 군부정치 종식 등은 김영삼 정부의 나름대로의 기여라고 봅니다. 또한 지방자치시대에 대한 평가도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부분이 적지 않다고 생각하고, 교과서의 서술에 있어 나름대로 균형 잡혀 있다고 볼 수 있을 듯합니다.

한국 민주주의의 미성숙에 대한 논의의 경우 지역주의로 인해 정치적 선택이 어렵다는 주장도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말하는 포퓰리즘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포퓰리즘에는 두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첫 번째로 대중의 취향 및 기호에 영합이라는 부정적 의미로서의 포퓰리즘입니다. 두 번째는 민중 부문(popular sector), 즉 하층과 중하층 계급을 위한 정치라고 보는 시각입니다. 포퓰리즘에 대해 진보적 관점에서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지만, 보수 세력은 일면적으로만, 부정적으로만 보고 있습니다.


한편 통일운동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온당한 주장들을 하고 있습니다. 남북교류가 지속적으로 확대됐다고 인정하는 동시에 북한의 핵실험이 한반도 비핵화 선언을 파기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햇볕정책을 다소 소극적으로 평가했지만 나름대로 타당한 분석이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시장 경제의 발전에 대한 장에서는 시장의 자유화, 개방체제 가속화 등이 다뤄지고 있습니다. 경제민주화에서 금융실명제 실시 등을 높이 평가하는 점과 김대중 정권의 국민기초생활보장 제도의 도입 등 90년대 이후 복지정책의 변화를 검토하고 있는 것은 눈에 띕니다. 1997년 외환위기와 경제개혁에 관한 부분에서는 분석의 전체적인 기조가 나름대로 객관적 사실에 입각해 있고, 사실 왜곡은 크게 눈에 띄지 않습니다. 교과서의 다른 부분은 잘 모르겠으나, 제가 맡은 부분에서는 그렇다는 뜻입니다.

2. 세계화의 물결에 대한 평가 분석

기술 진보, 자유민주주의 확산, 농업 개방 등 세계화의 물결에 관한 장에서도 나름대로 납득할 만한 분석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개방에 대해서는 진보적 사회과학계의 문제의식과 차이가 있습니다. 높은 추상적 수준에서는 진보 사회과학계도 개방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이 교과서가 신자유주의적 개방을 적극 수용하고 있는 반면에 진보 학계에서는 신자유주의적 개방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입장입니다.



세계화 물결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개인적으로 우리 사회에서 시대정신은 ‘건국’에서 ‘산업화’, 그리고 ‘민주화’로 이어져 왔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세계화 시대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요. 대부분의 견해들이 1994년 무렵 김영삼 정부 후반기로 보고 있습니다. 거시적으로 보자면 1990년대 중반부터는 민주화와 세계화가 중첩되고 있다는 걸 주목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뉴라이트 학자들은 유독 세계화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세계화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측면에는 국가 역할의 축소, 규제완화, 민영화, 노동시장 유연화 등의 적극 추진 등이 있습니다. 한국사회는 신자유주의에 입각한 세계화를 본격 추진하면서 크게 변화돼 왔습니다. 이 신자유주의가 다름 아닌 사회적 양극화를 가져왔다고 볼 수 있겠지요.



네 번째 장은 사회와 문화의 새로운 조류를 다루고 있습니다. 출산율이 낮아지고 고령화가 진행된다는 것은 누구나 지적하는 것이고 다문화사회로 간다는 것도 누구나 공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회학적 시각에서 보더라도, 우리사회의 인종차별은 대단히 유별난 면이 있는데, 그것은 우리의 인종차별이 이중적이라는 점입니다. 백인은 우월하게 대우하고 흑인이나 동남아인에게는 다른 잣대를 적용합니다. 이것은 이념을 뛰어 넘어 우리 사회가 진지하게 다뤄야 할 문제라고 봅니다.



1990년대 이후 한국사회의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대중문화의 발흥입니다. 특히 문화의 디지털화와 다양화, 가상공간의 문화가 발전해 왔습니다. 여기서 뉴라이트는 민족주의가 빠르게 고양했다가 쇠퇴하고 있다고 보는데, 이 부분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민족주의 이론가 채터지가 강조하듯이, 세계화가 강화될수록 경제적 민족주의는 약해진다고 볼 수 있지만 문화적 민족주의는 오히려 강화된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이점에서 민족주의의 약화에 관한 논의는 뉴라이트 진영의 바람이 과도하게 반영된 서술이라고 생각합니다.


3. 한국 시민사회에 대한 평가 분석

4장에서는 시민사회의 성장 또한 다뤄지고 있는데, 여기에는 시민사회에 대한 보수 진영의 비판을 그대로 옮겨 놓았습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정부 지원에 의존하는 관변단체로 변질됐다는 것은 보수 진영의 일관된 레퍼토리 중 하나입니다. 이는 객관적인 사실에도 부합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왜곡된 시각입니다. 오히려 진보적 시민운동에 대응하는 보수적 시민단체들이 더 관변단체적인 성격이 두드러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 5장에서는 여러 통계 자료들을 활용해 한국사회의 여러 성취들을 짚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꼭 지적하고 싶은 것의 하나는 개항기의 개화파 세력과 60년대 근대화 세력, 이 두 세력이 대한민국을 만든 주역이라고 평가하는 부분입니다. 저는 대한민국을 만든 세력은 개화파도, 근대화 세력도 아니고 이 땅의 평범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농민, 노동자, 중간계급 시민들, 이 사람들에 의해 대한민국이 만들어진 것이지 어떤 특정한 세력에 의해 대한민국이 건설된 것은 아닙니다. 이 부분이야말로 역사가 어떻게 이뤄지는지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뉴라이트의 얕은 역사의식과 엘리트주의를 여지없이 보여주는 부분이라고 하겠습니다.



이 교과서에 대한 사회학자로서의 소감은 이렇습니다. 첫 번째, 생각했던 것만큼 왜곡은 아니고 절반은 나름대로 객관적 사실에 충실해서 검토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나머지 절반은 분명, 지난 20년 동안 우리 사회가 이룩해놓은 성취에 대해 부정적이거나 과잉된 이념으로 해석했습니다. 두 번째,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대해 과도하게 우호적이라거나, 우리 민주주의의 가장 큰 특징이랄 수 있는 사회운동의 성격을 제대로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세 번째, 시민사회의 부정적 측면을 과장하거나 왜곡했습니다. 네 번째로는 엘리트주의적으로, 선별적으로 역사를 서술했다는 점입니다. 우파 독립운동 세력이나 근대화 세력만이 우리나라를 이끌어온 것처럼 해석하는 것은 상당히 협애한 역사관입니다.

4. 민주화 시대를 어떻게 볼 것인가?

이제 우리는 지난 민주화 시대를 어떻게 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해 봐야 합니다. 87년 체제라는 것은 6월 항쟁으로 인해 우리 사회에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87년 체제, 다시 말해 민주화 체제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운동에 의한 민주화 체제에 있다고 저는 생각하는 편입니다. 여러 정당들의 상승과 하강 등이 있었지만, 경실련의 금융실명제 실시 요구나 참여연대의 소액주주운동과 낙선운동, 환경운동연합의 동강살리기 운동, 그리고 여성단체의 호주제 폐지 운동 등을 보면, 우리 사회의 주요 국가 의제들은 바로 이런 사회운동에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이것이 한국 민주화 체제의 특징 가운데 하나이며, 대안교과서의 해석과 다른 지점입니다.



저는 87년 체제라는 개념이 기본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보는 편인데, 정치적으로는 절차적 민주화가 이뤄졌을지는 몰라도 경제사회 면에서는 61년 체제와 크게 다른 점이 없다고 보고 있습니다. 레짐(regime)이라는 것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경제적 측면입니다. 즉, 경제적으로 생산 및 재생산의 구조가 변경됐을 때 체제 변화가 이뤄졌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87년 체제는 이런 체제 변화를 가져오지 못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오히려 97년 체제를 주목합니다. 우리사회에서 어느 시점부터는 세계화 시대가 본격화되었고 세계화가 우리 사회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쳐 왔습니다. 그게 97년 체제입니다. 97년 체제의 본질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있으며, 최근 이명박 정부는 바로 이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대변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를 개념 규정하자면, 신자유주의적 발전주의라고 볼 수 있는데, 예를 들어 교육은 전형적인 신자유주의의 사례, 대운하는 전형적인 개발독재 또는 발전주의의 사례라고 할 수 있겠지요.



5,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

저는 현재 우리 사회에 두 개의 과제가 동시에 부여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 번째, 민주화 20년 동안 국민들의 삶의 조건은 여전히 어렵다는 점입니다. 절차적 민주주의는 성취되었을지 몰라도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는 크게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는 ‘민주주의의 민주화’가 필요합니다. 정당정치에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으나 실질적 민주주의에 더욱 더 주력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더 많은 일자리, 더 많은 복지, 더 많은 평등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 개방에 대해 보다 적극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입니다. 이건 제 고유의 생각입니다. 저는 신자유주의와 세계화를 분리해야 한다고 봅니다. 세계화를 거부할 수는 없습니다. 물론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의 많은 부분이 서로 중첩되긴 하지만 너무 동일시하는 점이 있습니다. 인구의 규모, 국가의 크기 이런 걸 보면 우리나라의 경우 상당한 부분 개방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국가 역할의 축소, 시장의 탈규제 등이 이뤄지는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아니라, 새로운 대안적인 세계화가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제가 이것에 대해 사회통합적 세계화, 최근에는 성찰적 세계화라고 개념화하기도 해 봤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자면, 저는 신자유주의와 세계화를 분리해서 세계화의 긍정적인 부분을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성찰적인 세계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현재 주어진 조건에서 비(非)신자유주의 전략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반(反)신자유주의는 협애할 수 있습니다. 미국산 쇠고기에 대해서는 국민 다수가 반대하지만 이것이 FTA로 가면 얘기가 다소 달라집니다. 각자 처한 위치에 따라서 개방에 대한 입장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계화를 거부하는 반신자유주의는 정치적 대안이 되기 어렵고, 신자유주의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이 모두 모일 수 있는, 비신자유주의적인 최대 다수 정치 연합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촛불집회에서 봤듯이, 진정 역사를 만드는 주체는 풀뿌리 시민, 풀뿌리 국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들과 함께 비신자유주의적인 정치연합을 어떻게 이룩하고 성취할 것인가, 민주주주의 민주화를 어떻게 성취할 것인가. 그리고 사회적 약자를 위한 사회통합적 세계화를 어떻게 모색할 것인가가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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