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연구소 시민교육 2008-05-19   11908

뉴라이트의 역사의식, 무엇이 문제인가


참여사회연구소는 5월 14일부터 6월 18일까지 총 6회에 걸쳐 ‘대한민국 60년, 다시 대한민국을 묻는다’ 강좌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번 강좌는 뉴라이트 교과서포럼의 역사교과서 출간으로 촉발된 우리 근현대사의 쟁점들에 대한 이해를 돕고, 새로운 대한민국의 좌표를 모색하는 자리로 마련되었습니다. 이 글은 1강에 대한 강의노트로 자원활동가 박소현님이 작성해 주셨습니다. 2강은 5월 21일 ‘해방전후사로부터 무엇을 배울 것인가?’라는 주제로 서울대 정용욱 교수가 강의에 나설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참여사회연구소 기획강좌
대한민국 60년, 다시 대한민국을 묻는다


제1강 뉴라이트의 역사의식, 무엇이 문제인가?


한홍구|성공회대ㆍ평화박물관 건립추진위원회



 지금 우리는 국내외 역사를 둘러싼 전쟁을 보고 있습니다. 일본·중국과의 역사 기록을 둘러싼 갈등도 있지만 우리의 근현대사를 두고도 논쟁이 벌어지고 있죠. 일본 후소사의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하 새역모)’ 교과서와 비견할만한 뉴라이트의 ‘대안교과서’ 등장 때문입니다. 오늘은 ‘자유주의’를 표방하는 뉴라이트의 등장배경, 그들의 속성과 역사인식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1. 자유주의의 빈곤 – 뉴라이트 등장의 토양


1) 해방 이전
  우리 사회는 자발적으로 자본주의의 맹아를 틔우기도 전에 제국주의의 침략을 받으면서, 일본의 식민자본주의가 들어온 거죠. 바로 근대화라는 이름으로 말입니다. 그래서 자연히 우리의 민족해방운동은 반근대적이면서 반제국주의적인 정서를 띨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근대화에 저항하고, 근대에 휩쓸리지 않았던 기층 민중들에게 반일이라는 것은 반근대성과 같은 의미였습니다. 또한 우리를 침략했던 제국주의가, 고도로 발달한 자본주의라는 점에서 반제국주의 운동은 반자본주의적 정서와도 맞물립니다. 즉, 반제국주의는 동시에 사회주의적일 수 밖에 없었다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신학문을 수학해 근대화의 세례를 많이 받았다면 그만큼 자유주의적 성향과 개인주의적 성격이 생기는가에 대한 물음이 생깁니다. 그러나 그 근대학문이라는 것이 일본제국주의 하에서 수학한 것입니다. 그런데 일본제국주의는 제국주의 중에서 가장 후진 제국주의라고 할 수 있겠죠. 천황을 섬기는 봉건적 성격과 군국적 성격, 그리고 ‘천황의 신민’이란 집단적 성격을 가지고 있었으니까요. 결국 자각한 개인들이 모여 민족이란 단위를 만든 것이 아니라, 민족이란 집단이 먼저 형성된 것입니다. 따라서 자유주의적 성향을 가질 토양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는 것이죠. 게다가 그나마 자유주의적 성향의 지식인들도 전쟁수행에 강제 동원되거나 협력해야 하는 측면이 있었습니다. 자발성이냐, 강제 동원이냐라는 정도의 차이 혹은 딜레마가 있었겠지만 그 과정에서 존경받을만한 우파마저 거의 소멸됩니다.


2) 해방- 전쟁 – 학살
  해방 이후, 미군정이 성립되면서 친일파가 득세해 제대로 된 과거 청산에 실패하게 됩니다. 아니, 친일 청산을 주장했던 민족적 세력이 오히려 친일파에게서 청산당하는 아이러니(반민특위, 백범 김구의 암살 등)까지 일어나죠. ‘조선의 몸, 황국신민의 마음, 미국 옷’이란 말은 그 시대를 상징합니다. 그 후 친일 정권이 수립되었고, 분단이 되었고, 전쟁이 발발했고, 학살이 있었습니다. 관용이라는 것이 없는, 거의 멸균실 수준의 학살이 자행되었습니다. 보도연맹사건 등 사실상 좌익과 무관한 민간인마저도 학살당하였는데, 이러한 민간인 학살은 친일파들이 이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행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렇듯, 말이 필요없는 시대, 담론이 없는 시대가 1950년대였습니다.


3) 군사독재
  휴전 7년만에 민중의 힘으로 정권을 바꾼 4.19혁명이 있었습니다만 5.16 군사 반란으로 그마저도 꺾입니다. 4.19에서 주장되었던 것은 (북은 청산한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한 남한의 잘못에 대한 지적과 통일이었습니다.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라는 통일의 열기에서 친일파와 군대들은 위기감을 느꼈고, 그래서 결국 군사반란과 군사 독재가 시작된 것입니다. 군사독재 시기 우리의 국시는 반공이었습니다. 반공이라는 것. 이건 제대로된 이념의 부재를 의미합니다. 살아남은 친일 세력들이 ‘반공’이란 개념을 사용한건이죠.
 저는 식민치하에서 생계형 친일을 할 수는 있다고 봅니다. 우리가 그 친일이 잘못되었다는 지적은 하지만, 용서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정말 용서하지 못 할 친일파는, 독립운동 하던 사람을 밀고·체포·학살한 주체. 즉, 고등경찰들입니다. 그러나 고등경찰이 반공을 무기로 살아남았습니다. 친일에 대해선 가급적 입을 다물고 반공·경제성장을 두 축으로 나라를 운영하였던 겁니다. 체육관 선거가 정당화된 나라에서 자유가 설 자리가 어디 있었습니까. 게다가 70년대, 한국적 민주주의가 주장되면서 외래 자유민주주의에 대해서도 부정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2. 한국현대사에서 보수와 진보의 단순 이분법 가능한가?


1) 한국의 진보
  진보진영의 정신적 지주들은 과연 진보적이었을까요? 김구, 장준하, 함석헌, 계훈제, 문익환, 김수영, 이영희 등의 사상이나 이념의 성격은 사실상 보수주의라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단지 양심적이었던 것이 진보적이었던 시절에, 양심적이었을 뿐입니다.


2) 한국의 보수
  우리나라의 속성은 사실 보수적이라고 봅니다. 왕조의 지속성을 봐도, 유교문화의 전통을 봐도 그렇습니다. 200~300년만에 지배층이 완전히 교체되던 중국과 비교해 보아도, 신라부터 대한민국까지 지배층이 완전히 물갈이 되는 경우가 없었지요. 그런데 현대에 오면서 한국의 진짜 보수는 다 사라지고 가짜 보수, 친일파가 득세했습니다. 분단이란 특수상황에서 주먹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었기 때문에 굳이 담론을 형성하지도 않았고 형성할 필요도 없었던 거지요. 담론생산 능력이 결여된 극우세력은 전향한 진보로부터 많은 것을 빌려옵니다. 4.19세대, 6.3세대들이 정권에 복속합니다. 류근일, 조갑제, 송복, 김진홍, 이석연, 김문수, 이재오, 심재철 등 지금은 수구지만 사실, 진보의 총아였던 자들 아닙니까? 이들은 개별적으로 수구에 충원되어갔던 것이죠. 그런데 이제 우리는 2002년에 ‘뉴라이트’라는, 과거 주사파였던 자들의 집단적인 전향을 목격하게 됩니다.


3. 2004년 뉴라이트 등장


1) 2002년 대선과 노무현 정권 출범의 의의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의 승리는 수구 세력도 납득할 수 있었을 겁니다. 외환위기에, 군사독재 등 장기집권 30년에 대한 국민적 염증에, 김영삼-김현철 부자의 실정이 있었죠, 그리고 DJP연합으로 지역구도도 탈출했지요. 여기에 후보 개인에 대한 평가도 한 몫했으며 500만표를 가져갔던 이인제 효과도 있었습니다. 하나만으로도 대선 결과가 바뀔만한 중대요인이 여러 개 중첩되었던 것이죠. 수구 세력도 패배를 납득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2002년 노무현의 승리는, 수구세력으로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던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수구세력이 탄핵을 통해 반격을 합니다만 탄핵도 실패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수구의 위기로 이어졌던거죠. 그 때 사실 진보개혁진영이 제 역할을 못함으로써 수구 세력을 분리수거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바로 수구의 헤게모니를 깰 수 있는 호기를 놓치게 됩니다. 민변출신 대통령·국정원장·원내대표·법무부장관과, 여당 단독과반수, 그리고 덤으로 민노당 10석을 가지고도 국가보안법을 폐지못했지요. 이른바 4대개혁입법을 가지고 정치적 야합을 하는 와중에 민심은 진보 진영에서 떠나게 됩니다.

2) 뉴라이트 등장 요인
 2004년 하반기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국가보안법, 행정수도 이전에 대한 대법원과 헌재의 판결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의 8.15 경축사와 과거청산 시도가 있었습니다. 이에 노무현 정권의 과거청산(친일/민간인 학살/군사독재) 작업에 대한 뉴라이트의 위기의식이 발동하게 된 것입니다. 2004년 가을. 뉴라이트는 수구좌파와 수구우파를 비난하면서 “우리의 사랑하는 조국 대한민국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져 있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이념적 정당성과 대한민국 건국의 역사적 정통성이 집권세력에 의해 의문시되면서 국가정체성이 훼손되고 있다”며 결집하기 시작하엿습니다.
 여기에 수구언론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과거 수구세력의 충원이 개별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면 뉴라이트 세력은 집단으로 등장하게 됩니다. 이에 수구측은 자신들의 주장이 과거 운동권 전술을 통해 관철되기를 기대하였고, 실제로 그들의 투쟁력도 증강되었습니다. 그리고  2007년 대선을 두고 ‘좌파 정권’ 재창출을 저지할 필요성을 느껴 보수층이 총집결합니다.

4. 뉴라이트의 문제점과 미래


1) 약점과 문제점
  뉴라이트들에게는 사상적 깊이가 없습니다. 그들은 주로 독재정권으로부타, 그리고 스스로의 내면으로부터도 억압받던 시절에 대학을 다녔습니다. 반공교육을 가장 철저히 받은 세대가 가장 극렬한 운동권이 되는 아이러니를 보여준 것이 바로 주사파 집단입니다. 그런데 지금 뉴라이트는 사실 그 주사파 집단 출신들입니다. 20대에는 좌익 소아병을 앓더니 40대가 되어서는 극우 소아병을 앓는 행태를 보이는 것이죠. 이들이 수구의 관심과 지원을 받고있지만, 뉴라이트의 출현으로 인해 한국사회에서 합리적 보수집단이 출현하기는 더욱 어려워진 겁니다.


5. 뉴라이트의 한국 근현대사 인식

  한국의 근현대사 연구는 연구 그 자체가 투쟁이고 운동이었습니다. 80년 광주를 겪으며 80년대에 시작되었습니다. 당시에는 글을 쓰는 것도, 자료를 구하는 것도 투쟁이었던 시대였지요. 젊은 연구자들 중심으로 『해방전후사의 인식』이 씌어졌습니다. 그런데 뉴라이트 집단은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을 펴냅니다. 그 책의 1권은 ‘탈민족’집단이 함께 저술했는데 책이 나온 후에 포스트모던 역사가들은 『근대를 다시 읽는다』를 펴내  탈근대적 입장에서 뉴라이트와 민중사관을 함께 비판했습니다. 민중사관은 자신들의 주장이 정치적이라는 것을 인정합니다. 일하는 민중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고 스스로 밝힙니다. 그런데 뉴라이트는 지배세력 중에서도 친일 세력의 입장에서 역사를 보면서 자신들 스스로 객관적이라고 주장합니다.
 
 이제 뉴라이트의 한국근현대사 인식을 짚겠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구세력에 빚진 게 없기 때문에 과거청산에 적극적일 수 있었습니다. 2004년 이후 과거 청산이 본격화됩니다. 그런데 수구세력들은 이 과거청산에 대해 위기감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나온 말이 ‘자학사관’입니다. 대한민국을 건국한 세력이 사실 친일파였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자학사관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자학사관’이란 말은 일본의 ‘새역모’가 만들어낸 용어입니다. 어디 빌려올 게 없어서 일본 침략사를 정당화하는 ‘새역모’의 용어를 빌려옵니까. 이 비판이 제기되자 최근에는 ‘자해사관’이란 용어를 쓰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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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면 대한민국을 건국한 세력과 그 정체성은 어떨까요? 우리 헌법에는 대한민국이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고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임시정부의 계승을 위해서는 두 가지의 조건이 충족되어야 할 것입니다. 인물과 정책이 그것입니다. 먼저 인물을 봅시다. 임시정부의 주축이었던 백범 김구 선생은 당시 현역 육군 소위였던 안두희에게 암살당했습니다. 그런데 안두희는 전쟁통에 복귀해 육군 중령까지 진급하고 예편후엔 군납업으로 큰 재산을 모으기까지하지요. 이를 계승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정책은 계승했습니까? 임시정부의 강령과 정책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임시정부의 강령의 주요 내용은 주요산업 국유화, 토지는 국민에게 무상 분배, 파업의 자유 보장, 무상교육, 무상취업, 남녀평등입니다. 너무 좌파적입니까? 식민시 시절 당시 조선에서 웬만한 중요산업은 일본인의 것이었기 때문에 독립운동세력은 비자본적, 반자본적 입장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그게 1940년대의 분위기였던 겁니다. 이 당시 자유당의 강령조차도 지금 시각으로 보면 좌파적입니다.
 
 건국을 둘러싼 두가지 시각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건국 자체가 정당하다는 뉴라이트의 주장과 건국은 불행했으나 그 이후 걸어온 민주화의 길이 정당했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불행하게도 친일파가 세운 나라입니다. 교과서에는 한정된 지면에, 어떤 부분의 이야기를 더 쓸 것이냐의 문제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독립운동을 써야 합니까? 친일파를 써야 합니까?
 뉴라이트 학자들은 세계사적 시각을 중시해야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2차대전 이후 제국주의에 협력한 세력이 집권한 나라가 더 많은지, 아니면 독립운동했던 세력이 집권했던 나라가 더 많은지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제국주의 협력 세력이 집권한 나라는 대한민국과 남베트남, 두 곳밖에 없으며 지금은 대한민국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70~80년대 올드라이트들은 친일을 미화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뉴라이트는 친일과 독재까지 미화하고 있습니다.
  왜 이런 문제가 생겼느냐. 그것은 사실 뉴라이트의 역사 인식 때문입니다. 뉴라이트의 대안교과서 필진에는 한국사 전공자가 없습니다. 물론 교과서 집필이나 역사서술을 전공자만이 기술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역사학자가 빠지다보니, 사료의 오독과 역사 왜곡, 그리고 직업윤리(역사학자들은 있는걸 없다고 못하고, 없는 걸 있다고 못 합니다) 부재의 상황이 발생하는 겁니다. 그들은 이승만이 건국의 아버지이고, 박정희가 근대화의 아버지라고 주장합니다. 그렇다면 이승만에게, 박정희에게 아버지가 죽임을 당한 사람들은 어떻게 할 것입니까. 국가권력에 의한 피해자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 시절에 어떤 일이 있었고, 경제발전과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뤄낸 역량은 무엇인가, 과거사 진실규명에 의한 성과는 무엇인가, 민주화의 성과는 무엇인가 교과서에 기술해야 할 것입니다.
  뉴라이트는 경제적 발전을 절대화하는데, 민주화와 경제발전은 대립항이 아닙니다. 87년 이후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경제발전도 이루어졌습니다. 또한 민주화의 성과로 노조가 생기고, 임금이 오르고, 노동자가 인간대접을 받게 됩니다. 군대의 의문사나, 산업재해가 줄어들엇습니다. 바로 민주화의 성과로 사람의 죽음이 줄어들었습니다. 뉴라이트의 주장과는 다른 대한민국의 모습을 보여줘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앞으로의 진짜 문제는 2010년의 교과서 편찬 기준이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입니다. 뉴라이트의 주장에 일일이 대응하는 방식보다는, 큰 그림을 그리면서, 우리가 바라보는 현대사를 기술해야 할 것입니다. 과거사 진실규명과 관련된 성과, 민주화의 성과를 제대로 알려 큰 그림을 그릴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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