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연구소 시민교육 2008-06-16   5844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었나?

참여사회연구소는 5월 14일부터 6월 18일까지 총 6회에 걸쳐 ‘대한민국 60년, 다시 대한민국을 묻는다’ 강좌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번 강좌는 뉴라이트 교과서포럼의 역사교과서 출간으로 촉발된 우리 근현대사의 쟁점들에 대한 이해를 돕고, 새로운 대한민국의 좌표를 모색하는 자리로 마련되었습니다. 6강은 6월 18일 ‘새로운 60년, 대한민국의 좌표를 묻는다’라는 주제로 연세대 김호기 교수가 강의에 나설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참여사회연구소 기획강좌
대한민국 60년, 다시 대한민국을 묻는다




제5강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었나?


김상봉 | 전남대 철학과




6월 10일 대한민국을 환히 밝힌 촛불의 열기는 좀처럼 식지 않는다. 아침은 밝아왔지만 우리 가슴에 아로이 새겨진 촛불은 지금도 뜨겁게 빛나고 있다. 우리 가슴에 남겨진 것은 비단 촛불 뿐만이 아니다. 그 찬란했던 광장에서 우리가 함께 촛불을 들고 함께 외쳤던 노랫말도 가슴 속에 맴돌고 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바로 헌법1조다.

그런데 의문이 생긴다. 민주공화국은 민주주의와 공화국의 합성어인가?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다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우리가 그래도 교과서에서도 들어보고 잘 아는 ‘민주주의’라는 것과 정확한 의미는 모르지만 왠지 좋은 것만 같은 ‘공화국’은 서로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민주공화국이라는 것의 내용은 무엇인가? 질문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노래로 부를 때는 무언가 명쾌한 거 같았는데, 생각을 조금씩 해보니 뭔가 매우 복잡해진다. 그런데 이보다 더 도발적인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있었다. 대한민국은 과연 민주공화국었나? 김상봉 교수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슬슬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우리에게 체득되지 않은 ‘공화국’


먼저 공화국이 무엇인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헌법1조 조항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있지만, 그 헌법 1조에서 사용되는 민주는 무엇이고, 공화국은 무엇이다라고 조목조목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즉 헌법 조문 내에 민주공화국이란 말은 있지만 이것이 실제로 이해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가 오랜 기간 동안 반독재 민주화 과정을 거치면서 어떤 것이 민주주의가 아니라는 것은 체득해왔다. 분명한 것은 독재는 민주주의가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의미에서 공화국의 의미를 체득한 적은 없다. 공화국이 무엇인가라고 했을 때, 선뜻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는 헌법학자 등 전문가도 마찮가지다. 아직 공화국이 의미하는 바에 대해서 합의된 의미와 내용을 가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 사람들은 자신의 입으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고 노래하고 이야기하고 있다. 민주화가 이루어진지 20년이 지났다. 절차적인 민주화의 과정이 끝나고 공화국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논의가 나오는 것은 당연한 과정인 것이다. 6월 10일 광장에서 다들 느꼈것이겠지만, 이제 우리 사회가 어디로 나아가야 할 것인가의 문제가 남아있다.


‘공화국’의 개념사적 의미


그렇다면 공화국이 뜻하는 바가 무엇일까? 먼저 이 말의 역사와 용례를 살펴보자. 공화국이란 로마인들이 사용했던 레스 푸블리카(res publica)라는 말의 번역어이다. 이 말을 영어로 직역하면 ‘public thing’이다. 문자 그대로 보자면 레스 푸블리카란 말은 공공적인 일 또는 공동체라는 말로서 사사로운 일을 뜻하는 레스 프리바타(res privata)에 대립되는 말이다. 여기서 푸블리카라는 말은 인민을 뜻하는 포풀루스(populus)라는 명사에서 비롯된 형용사이다. 그러니까 공화국이란 그 어원에서 보자면 인민의 일, 인민의 공동체라 할 수 있다.
그리스인들은 레스 푸블리카와 레스 프리바타를 구별하기 위해 폴리스(polis)와 오이코스(oikos)라는 표현을 썼는데, 단순하게 말해 폴리스는 국가이고 오이코스는 가정이다. 이런 의미에서 키케로는 “공화국이란 인민의 일로서, 인민이란 어떤 식으로든 사람들이 모이기만 하며 이루어지는 집단이 아니라 법(또는 정의)에 대한 합의와 공동의 이익에 의해 결속된 다중의 공동체를 일컫는다”라고 말하였다.


공화국의 위기와 소유의 공공성


현대 사회에서 공화국이 위기에 빠진 것은 바로 경제주의 때문이었다. 돈을 버는 것은 과거에 가정이 해야 할 일이었다. 국가는 이보다 공공적인 일을, 한걸음 더 나아가 문화적인 일을 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바로 교육이 나라의 기초이고, 교육을 통한 공통된 시민정신, 시대정신이 태동할 수 있었다. 그 바탕 위에서 동시대인으로서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지금의 대통령이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듯이 CEO 마인드로는 정치를 할 수 없다. 자본, 화폐, 재산, 돈은 개인적으로 소유할 수는 있지만, 각자의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에 그것이 결코 결속을 위한 토대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결속을 위한 토대는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앞서 말한대로, 공화국은 법과 정의에 기초하고, 공익에 기반한 공동체이다. 여기서의 공익 또는 공공성이 실현되려면 두 가지가 모두 보장되어야 한다. 첫째, 의사소통(결정)의 개방성/공공성. 둘째, 소유와 권리의 공공성이다. 소유가 공적이지 않으면 의사소통이 될 수 없다. 한 예로, 학교의 소유가 사적인 것인데 왜 남들이 와서 참견을 하느냐는 사립학교의 주인들이 있다. 의사결정의 공공성은 소유의 공공성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사회주의 국가의 오류에 빠지지 않으면서 공공성을 이야기하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이다.



다시 광장에서



강의가 끝나고 수많은 선거와 정권 교체에도 불구하고 공화국은 건설되기 어렵지 않겠는가라는 자못 비관적인 질문이 제기되었다. 김 교수는 아직 이 나라에서 두가지가 이루어지지 못했다고 이야기하였다. 첫번째는 밑으로부터의 열정과 의지를 가진 학생운동, 농민운동, 환경운동, 시민운동, 민주화운동 등 다양한 운동이 있었지만, 정당을 만들어보는 노력은 없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어떤 사회를 만들어낼 것인가에 대해서 청사진을 그려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현실 사회주의 붕괴 이후 미국을 따라가려는 노력을 한 것이 지금의 결과이다. 반민주정당 대 민주정당의 시대는 지났고, 이제 내용을 채워야 하는데, 지금까지의 진보정당은 밑으로부터의 열정과 의지를 받아내지 못하였다. 독재에 저항해서 민주화를 이루는 과정이 우리의 역사였다면, 지금부터는 어떤 나라를 만들 것인가라는 내용을 어떻게 채울 것인가의 문제가 남아있다.

마지막으로 김 교수는 강조하며 말했다. 우리에게는 유독 빠르게 돌아가는 정치일정이 있다. 바로 4년 뒤에는 총선이, 5년 뒤에는 대선이 있다. 현실정치 속에서 수준높은 민의를 담아내고 공공적으로 나가려는 노력을 함께 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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