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연구소 시민교육 2008-11-21   5841

헌법재판소여~ 약자ㆍ소수자 보호하는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라~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노래는 국민주권이 광장의 시민에게 있음을 알리는 거대한 울림이었습니다. 이러한 울림을 이어받아 참여사회연구소는 11월 6일부터 27일까지 총 4회에 걸쳐 ‘헌법, 광장에 서다’ 강좌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번 강좌는 그동안 어렵고 멀게만 느껴졌던 헌법을 시민의 눈으로 읽어보는 자리로 마련되었습니다. 마지막 강좌인 4강은 11월 27일 ‘민주주의와 인권을 바로 세운 해외의 판결’이라는 주제로 건국대 한상희 교수가 강의에 나설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참여사회연구소 기획강좌]
헌법, 광장에 서다





제3강 우리 사회를 깨운 국내의 판결



임지봉|서강대 법대 교수



종부세 판결 이후 헌법재판소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다. ‘기득권 파수꾼’, ‘강부자 헌법재판소’라는 비난을 듣고 있으니, 이쯤 되면 헌법재판소도 무릎팍이 닿기도 전에 모든 것을 궤뚫어보고 고민을 해결해 준다는 ‘무릎팍도사’에 출연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랬을까? 강의를 들려준 임지봉 선생님이 왠지 무릎팍도사와 건방진 도사 역할을 하는 것처럼 들렸다. 그 역사를 들으니 ‘건방진 프로필’을 듣는 것 같고, 그 주요 판결들을 들으니 헌법재판소의 고민이 느껴졌다.

1. 헌법재판소의 설립과 역사

헌법재판소 역사는 한국정치사와 마친가지로 굴곡의 역사였다. 이승만 정권이 붕괴된 이후 헌법재판소의 신설 여부에 많은 논란이 있었다. 결국 1961년 4월 17일 제정된 헌법재판소법은 1개월만에 5.16 군사쿠데타가 발생하여 헌법재판소가 제대로 구성되지도 못한채 효력을 상실하였다.

민주화 과정에서 헌법재판소 논의가 다시 나왔다. 1987년 7월 국회개헌특위에서 당시 야당측은 독립된 헌법위원회 설치를 주장하였고, 대법원은 반대의견을 표명하였다. 그러나 여당과 야당이 모두 헌법재판소를 설치하는데 합의하고, 위헌법률 심사권을 비롯한 헌법재판권을 헌법재판소에 부여하기로 하였다. 이리하여 헌법재판소법은 제9차 헌법개정으로 헌법재판소제도가 채택된 후 거의 1년이 경과한 1988년 8월 5일 법률 제4017호로 제정되어 9월 1일부터 시행되었다.

89년 1월부터 헌법재판소는 판결을 내기 시작했지만,  어떤 사안에 대해서 위헌/합헌이라는 이분법적 결정만을 내리기가 어려웠다. 어떤 법에 대해 위헌판결이 나오는 동시에 그 법은 효력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일종의 법적 혼란 또는 법적 공백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은 고민 끝에, 독일연방헌법재판소의 판례를 보고 ‘변형결정’을 도입했다. 그것이 바로 헌법불합치 결정, 입법촉구 결정, 한정합헌, 한정위헌이다.

헌법불합치 결정은 헌법에 합치되지는 않으나 위헌은 아니라는 것이다. 보통 이러한 판결은 입법촉구 결정과 동시에 이루어지는데, 헌법재판소는 국회에 법률을 개정하라고 요구한다. 이 때 헌법재판소가 지정한 기한까지 개정하지 않으면 해당 법률은 기한 이후로 효력을 상실한다. 한정합헌과 한정위헌은 법조항이 여러가지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에 나온 결정이다. 한정합헌이라는 것은 어떤 법률이 위헌적으로 해석되는 방식은 버리고 합헌적으로 해석되는 방식만 선택하라고 점에서 합헌성을 강조하는 것이고, 한정위헌은 반대로 위헌성을 강조하는 결정이다.

위의 네가지를 알아야 하는 것은 헌법재판소가 합헌/위헌이라고만 결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 종부세 판결의 경우에서도 헌법재판소는 종부세 자체는 합헌인데, 세대별 합산은 위헌이고, 주택장기보유자에게 종부세를 부과하는 것은 헌법불합치라는 판결을 내렸다.

2. 헌법재판소의 주요 판결

현행 헌법에 의해 헌법재판관의 임기는 6년이다. 임지봉 교수는 임기에 따라 1기부터 4기까지 헌법재판소를 구분하였다. 그리고 1기부터 현재 4기 헌법재판소(2006-2012)가 어떤 판결을 내렸는지, 그리고 당시 주요 판결들이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1) 제1기 헌법재판소의 주요판결(1988-1994)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의 열기와 호응을 이어받아 많은 위헌 판결을 내기 시작했고 국민들로부터 많은 박수를 받았다. 최초의 위헌 결정은 ‘국가에 대한 가집행 금지 위헌결정(헌재 1989.1.25. 88헌가7)이었다. 임지봉 교수는 1기 헌법재판소에 가장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고 하였다. 모든지 처음이 제일 힘든 법인데, 유명무실한 기관이 될 거라는 저주에도 불구하고 헌법재판소를 반석 위에 올려놓았다는 것이다.

‘토지거래허가제 합헌결정'(헌재 1989.12.22 88헌가13)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토지거래 허가제는 투기예상지역을 토지허가 거래지역으로 묶고 이 지역을 거래하려면 해당관청의 허가를 받아야 하고, 이를 어길 시에 처벌하는 법이다. 이것이 재산권 침해라는 요구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이 법률이 헌법에 의한 합리적인 기본권 제한이라고 판결하였다. 지난 김종철 교수의 이야기대로 이는 ‘침해’가 아니라 함리적인 ‘제한’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달리 ‘토지초과이득세 헌법불합치결정'(헌재 1994.7.29 92헌바49,52 병합)은 재산권에 대한 과잉적인 제한으로서 ‘침해’라는 판결을 내렸다.

또한 국가보안법은 고무죄에 대한 기준이 애매하여 국민의 자유를 침해하는 악법이었는데, 이와 관련한 판결은 많은 주목을 받았다. 헌법재판소는 고민 끝에 “그냥 찬양ㆍ고무가 아니라, 국가의 존립안정, 자유민주주의적 질서를 침해하는 찬양ㆍ고무의 경우에 한해 처벌하는 것은 합헌이다”라는 국가보안법상 찬양ㆍ고무죄 한정합헌결정'(헌재 1990.4.2 89헌가113) 판결을 내렸다.
   
2) 제2기 헌법재판소의 주요판결(1994-2000)

2기 헌법재판소는 사회적 약자를 위한 판결, 소수자의 권리 보호에 있어 획기적인 판결을 내렸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동성동본 금혼 헌법불합치결정'(헌재 1995.7.16 95헌가6-13)이다. 동성동본이라는 조선시대 전부터 있었던 관습을 국회가 아닌, 헌법재판소가 종식시킨 엄청난 사건이었다. 헌법불합치결정이 되었지만, 이와 더불어 국회가 법개정을 할 때까지 이 법률을 적용중지시켰다. 사실상 위헌결정인 것이었다. 위헌의 근거로 평등권 침해를 들었다. 원래 성이라는 것이 남계열만을 고려한 기준이기 때문에 남녀차별이고, 배우자 결정권을 침해하기 때문에 헌법10조인 행복추구권을 침해한다는 것이었다.

언론, 출판에 대해 검열하는 제도에 대해 ‘영화에 대한 공연윤리위위원회 사전심의제 위헌결정'(헌재 1996.10.31 94헌가6)을 내렸다. 표현의 자유를 보호한 판결이었다. 그리고 97년 경제위기 이후 공무원시험에서 최고점을 받고도 가산점을 받은 사람때문에 탈락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이에 대해 그 가산점 자체가 위헌은 아니고 그 가산점의 폭이 너무 크기 때문에 ‘제대군인가산점에 대한 위헌결정'(헌재 1999.12.23 98헌마363)을 내렸다. 이는 비제대군인 여성 약자를 보호한 판결이었다.


3) 제3기 헌법재판소의 주요판결(2000-2006)

문제는 3기였다는 것이다. 1기에서 반석 위에 올려 놓았고, 2기에서 약자의 권리를 보호하면서 꽃을 피웠다. 그러나 3기에서는 투표로 선출된 국회의원들에게 맡겼어야 할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사건에 개입하기 시작하였다.

바로 ‘노무현대통령 탄핵사건'(헌재 2004.5.14 2004헌나1)이었다. 탄핵법안을 국회에서 통과시킬 때, 토론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절차위반이라고 각하 심사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오히려 내용심사로 들어가서 기각결정을 내렸다. 당시 윤형철 헌법재판소장이 판결문을 읽기 전에 2명의 반대의견이 있었다고 이야기하였으나 판결문에서 반대의견을 낸 재판관이 누구인지 그 이유와 근거를 밝히지 않았다. 지금까지 그런 경우는 없었다고 한다. 탄핵사유에 해당하는 2명의 의견을 녹여내다보니 앞뒤가 안맞는 판결을 내렸다.

그리고 불과 5달 후에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 위헌결정'(헌재 2004.10.21 2004헌마554)을 내렸다. ‘관습헌법’이 그 근거였다. 사실 헌법적인 관습이나 관행도 성문헌법의 조항을 해석하는 보조자료로서 판결의 근거로 가능하다.그러나 우리처럼 관습에만 근거해서 판결을 내린 예는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행정중심복합도시법안에 대해서 헌법소송이 제기되었고, 합헌결정을 내렸으나, 여전히 관습헌법의 개념을 버리지 않았다.

그리고 약자 보호에 위배되는 판결을 내리기도 하였다. 안마사는 시각장애인만 할 수 있다는 보건복지부령에 대해 직업선택의 자유 침해라고 위헌 판결을 내렸다.

4) 4기 헌법재판소의 주요판결(2006-)

3기 시각장애인 관련 판결 이후 안마사협회에서 의원입법을 통해서 개정법안을 올렸다. 법률로서 바뀌었고, 내용적으로 새로운 헌법적인 판단을 기대했다.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헌법재판소가 약자의 생존권을 보호한 것이다. ‘시각장애인안마사 독점 합헌결정'(헌재 2008.10.30 2006헌마1098)이다. 일반인의 직업 선택의 자유보다 장애인의 생존권이 중요하다는 결정을 내렷다.


문제는 종부세다. 헌법재판소가 가진 자의 권리만 보호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있다. 이에 대해 임지봉 교수는 “헌법재판소 4기만 그랬던 것이 아니다. 1기부터 그랬다”고 이야기하였다. 결과적으로 종부세 자체가 무력화졌지만, 종부세 자체에 대해서는 위헌이라고 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헌법재판소 4기는 2006년에 시작되어서 채 3년이 되지 않았다. 이제 헌법재판관들이 1~2년 열심히 공부하는 학습기가 막 지났다 지금부터 판결을 내릴 것이다. 아직까지 4기에 대한 판단은 보류 상태라는 것이었다.

3. 약자ㆍ소수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헌법재판소가 되어야

헌법재판소의 보수성에 관해 임지봉 교수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였다. 9명의 재판관들은 대부분 20대에 천재소리 들으면서 사법시험 합격하였고, 20대부터 영감소리 듣는 엘리트 판검사였다는 것이다. 또한 대부분 특정대학 특정학과 출신이다. 결국 살아온 배경이 비슷하니 성향이 비슷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50대 남성 엘리트들이 가질 수 있는 보편적인 보수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판결이 나오더라도 반대의견이 잘 나올 수가 없고. 별 논쟁없이 서둘러 판결이 내려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헌법, 그리고 헌법판단이라는 것에는 정답이 없다. 헌법이라는 규정 자체가 추상적인 규정이고, 그 사회를 고려해서 판결을 내야 하는 것이다. 누가 더 설득적이고 논리적인 판결을 내는 것이지,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다. 헌법재판관의 판결에는 법논리 외에도, 살아온 배경, 정치관, 세계관, 사회적 지위 등이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일부에서는 헌법재판소가 정치적인 결정을 한다고 비난하지만, 원래 그 역할이 정치적인 것이다. 헌법이 정치적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잘 뽑아야 한다.


지금처럼 선출해서는 국민 각계각층의 이해를 대변할 수 없다. 임명 단계에서 많은 국민들이 여론을 형성해서 임명권자에게 국민의 목소리를 전달해야 한다. 소수자의 권리를 보호할 수 있는 헌법재판관 추천운동을 벌인다던지, 대통령과 지명권자인 대법원장에게 압력을 가해야 한다. 또한 헌법재판소장 청문회를 이슈화시키고, 형식적인 청문회가 되지 않도록 지금보다 더 열심히 목소리를 내야 할 것이다.

강의가 끝날 즈음, 어디선가 무릎팍도사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헌법재판소여~ 애초 취지대로 국민의 기본권과 약자ㆍ소수자의 권리 보호에 더욱 더 충실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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