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연구소 단행본 2009-01-06   3355

촛불들의 파노라마, 시민들의 성장드라마


촛불들의 파노라마, 시민들의 성장 드라마


참여사회연구소 이상혁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습니다> 그저 제목을 읽었을 뿐인데, 그저 사진 한장을 보았을 뿐인데, 책을 채 펼치기도 전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그리고 머릿속에서는 광장에서 우리가 함께 나누었던 일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다시 심장이 콩닥콩닥 뛰면서 연애 초기에나 있을법한 그 강렬한 떨림에 몸이 잠시 부들부들 떨린다. 2008년 우리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제는 희미하게 남아있겠지만 우리의 몸엔 물(색소)대포, 군홧발, 소화기의 흔적이 남아있고, 이명박 정권의 국민 생활기록부에는 불법시위자, 좌빨이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흔적은 사라지지만 기록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바로 여기에 우리가 2008년 촛불을 기억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 이 책은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2008년 촛불들의 파노라마이며, 우리가 함께 기억하고 싶은 시민들의 성장 드라마이다.


위험, 그리고 국민과 국가


어쩌면 촛불은 이미 예정되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은 민주화 이후 대선 후보 1, 2위 간의 표차가 최대라는 것만을 강조하였다. 그보다 우리는 이명박 대통령이 민주화 이후 역대 대선후보 중 최저의 지지율로 당선되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다. 경제를 살리겠다는 말에 적지 않은 국민들이 조건부 지지만을 보냈지만, 이명박 정권은 경제를 살린다는 명분으로 온 국민의 목숨을 건 도박을 시작하였다. 국민과 국가의 관계를 ‘위험’과 ‘사회계약론’의 입장에서 이야기해보자면, 국민은 국가라는 대리인으로 하여금 위험을 파악하고 자신들을 대신해서 처리하기 위해 주권을 양도한 것이다. 그러니 국가가 위험을 파악하지 못하거나 처리하지 못할 경우에 국민은 양도한 주권을 회수하고 보다 그 역할을 잘 할 수 있는 다른 대리인을 선택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미국산 쇠고기 수입은 국민을 위해 위험을 파악하고 처리해야 할 국가가 오히려 위험을 은폐하고 그 위험을 국민에게 전가하고, 심지어 국민들이 양도한 그 주권마저 제3자에게 일부 넘기는 사태였던 것이다. 


소녀로부터 온 한 통의 편지


역사가 말해주듯이, 모든 사건에는 그 맥락과 계기가 있기 마련이다. 2008년 촛불은 ‘4.15 공교육 포기 조치’에 가장 먼저 자신들의 목소리를 낸 소녀들로부터 시작되었다. 국가-국민, 교사-학생, 어른-청소년, 남성-여성이라는 관계 속에서, 소통이 아닌 일방통행식의 명령, 통제, 위협만이 존재하는 상황 속에서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많이 ‘위험’에 노출된 소녀들이 “내 친구를 이기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친구들과 함께 잘 살고 싶다고” ‘FM2008 대한민국’이라는 라디오 방송국에 촛불사연을 보낸 것이다. 그 사연이 소개되고 얼마 되지 않아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을 다룬 MBC 피디수첩이 방영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위험을 인지하게 되었다. 그리고 ‘값싸고 질 좋은 쇠고기’를 먹고 싶은 것이 아니라 우리 중 그 어떤 누구라도 안전하지 않은 먹거리로 위험해지지 않기를 바라는 시민들의 간절한 염원으로 인터넷이라는 가상의 공간과 광장이라는 현실의 공간에서 촛불들이 하나둘씩 켜지기 시작하였다.


안하무인, MB씨와 그의 무리들


그러나 여기 “신화는 없다 그리고 BBK도 없다”고 말하는 한 사람이 있었다. 다운된 청와대 홈페이지에 그림 파일만을 떡하니 올렸던 것처럼 그와 그 무리들의 모습은 안하무인(眼下無人)이었다. 그들에게 우리들은 남의 자식들일 뿐이며 더더구나 자기 사람은 아니었다. 고슴도치도 제 자식은 이뻐한다는데, 오로지 자기 자식, 자기 사람, 강부자밖에 보이지 않는 그들은 진정 고슴도치였다. 안으로는 잔뜩 웅크린 채 소통을 원하는 국민들에게 국면전환용 임기응변으로 그저 2번의 대국민 담화를 했을 뿐이며, 바깥으로 향한 그 날카롭고도 많은 그 가시들은 진정성이 느껴지는 물대포, 군홧발, 소화기, 방패였다. 내 나라의 폭력이 나에게로 향한 경험이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선무방송으로 틀어대는 그 조롱과 비아냥은 그들이 우리를 국민들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일종의 선전포고였다. 그 무자비한 폭력과 선전포고에 대해 우리는 너무나 평화스럽게 그러나 단호하게 우리가 누구인지를, 그들이 어떤 존재인지를 분명하게 이야기해주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함께 살자 대한민국


우리는 폭력이 항상 물리적이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떤 폭력은 불가피하다고, 나와 내 가족이 살아남기 위해서 조금씩 타협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보다 더 큰 폭력은 우리 공동체를, 우리 삶의 터전을 온통 시장, 경쟁력, 효율이라는 이름으로 파 헤쳐놓은 개발주의, 성장지상주의, 신자유주의 그리고 보다 근원적으로는 우리들의 은밀한 욕구였을 것이다. 2008 촛불이 이러한 흐름을 얼마나 멈추어 놓을 수 있을지, 우리 안의 은밀한 욕구를 얼마나 성찰하게 하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는 분명히 마지노선을 분명히 그었다. ‘함께 살자 대한민국’은 대운하ㆍ수도ㆍ전기ㆍ가스ㆍ방송ㆍ교육 등 우리 삶의 터전을 이루는 그 근본 축만큼은 절대 사유화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절대 돈벌이의 수단으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고, 언제든지 촛불을 들 수 있다는 우리들의 마지막 경고였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습니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이 문구의 의미는 단지 성경에 나오는 텍스트이거나, 잠시 가슴에 울림을 주는 명언이 아니다. 이 문구는 기원 후 로마 제국과 같은 민족의 지배자의 지배를 받으며 식민지 치하를 살아야만 했던 한 민중공동체가 자신들의 삶을 변화시켜줄 메시아를 기다리며 간절히 드렸던 기도이다. 2008년 우리는 함께 촛불을 들었고, 시민이라는 이름으로 하나가 되었다. 잠시 찬 바람이 불고 있지만 우리 가슴 속에는 촛불이 켜져 있다. 그들이 드렸던 그 기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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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서평은 참여연대가 발행하는 <참여사회> 2009년 1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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