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회] 대한민국사의 재인식: 48년 체제와 민주공화국

그들만의 '건국절'은 이제 지나갔다. 이명박 정부, 뉴라이트단체들, 그리고 기업들까지 나서서 대대적으로 수많은 '건국절' 기념행사를 치뤘지만, 그 빈 자리가 썰렁하다 못해 흉흉하다. 도대체 왜 그들은 광복절을 '건국절'로 기념하고 싶은 것일까? 우리의 근현대사를 조금만 알더라도, 헌법 전문을 한번 들여다 보기라도 했어도 그토록 용감하고 무식하게 '건국절'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건국-산업화-민주화-선진화라는 단순 도식으로만, '성공의 역사'로만 기억하고 싶은 그들은 허울좋은 자화자찬만 늘어놓을 뿐이다. 역사에 대한 성찰의 목소리마저도 '자학'이라며 몰아붙이고 있는 그 모습이 점차 우경화되고 있는 일본의 극우파들의 행태와 모양새가 비슷하다. 그런 그들에게는 바로 그들 옆에서 억울하게 짓밟힌 수많은 이들의 죽음과 하소연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듯 하다.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로, 박정희를 산업화의 아버지로, 그리고 이명박을 선진화의 아버지로 세우고 싶은 그들의 '반공주의+개발주의+신자유주의 프로젝트'는 다시 시작되고 있다. 이제 '대한민국 헌법1조'를 노래하며 광장을 수놓고 있는 수많은 촛불들의 민주공화국을 이야기할 때이다.

참여사회연구소는 의제 27 / 코리아연구원과 공동으로 1948년과 이후 60년의 역사를 어떻게 인식하고, 해석해야할 것인가의 문제를 논쟁적으로 살펴보고, 1948년 제헌 이후 계속되어온 민주공화국이라는 대한민국 정체의 과거와 현재적 의미는 무엇인지에 대해서 되짚어보는 토론회를 마련하였다.


기조강연으로 나선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는 우선 한국 현대사를 평가하는 기준으로서 민주화, 자주화, 그리고 민족통일의 관점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이 세 과제는 따로 떨어진 별개의 명제들이 아니고 하나의 통전적인 것이라는 것을 강조하였다. 또한 건국-산업화에 기초한 국권 중심의 뉴라이트 성공사관과 달리, 민권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한국 현대사를 발전시킨 가장 중요한 요인은 국민의 창의성을 보장하는 자유, 국권에 상당하는 민권, 국권을 능가하는 민권이 사회를 이끌어간다는 것이었다.
 
1부 토론의 첫번째 발제자 한시준 단국대 역사학과 교수는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자는 이명박 정부와 뉴라이트 단체들에 대해 "일본의 역사왜곡보다 더 심각한 건국 60년"이라고 강력하게 비판하였다. 일단 '건국 60년'론 에는 환갑잔치나 한번 거하게 하자는 것 이상의 논리가 없다는 것이다. 1919년 임시정부에서 제정한 임시헌장 제1조에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이라고 하였다.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한 임시정부가 수립되면서, 우리 역사가 군주 주권에서 국민 주권으로, 전제군주제에서 민주공화제로 대전환을 이루게 되었던 것이다. 또한 1948년 8월 15일에 선포한 것은 '대한민국 건국'이 아니라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선포한 것이다.

두번째 발제자 박찬표 목포대 정치미디어학과 교수는 1948년 8월 15일의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의미를 지적하면서, 민주주의 관점에 초점을 두고 48년 체제에 대한 하나의 해석을 시도하였다. 48년 체제의 특징은 '반공체제 내에서 제도화된 자유민주주의'로 요약될 수 있다. 국권 상실의 시기를 거치면서 새로운 국민국가 건설의 지향점은 민주공화정을 수렴되었고, '어떤 공화국인가'를 둘러싼 좌에서 우에 이르는 다양한 분화가 일어났다는 것이다. 냉전체제로의 편입은 반공국가라는 신생국가의 이념과 지향점을 외부로부터 부과하게 되었다. 자유민주주의는 냉전반공체제라는 한계 내에서 수용되고 작동되었던 것이며, 이러한 분단국가의 이념적 기초와 실천을 담은 것은 헌법이 아니라 국가보안법이었다는 것이다.

세번째 발제자 서희경 진실과화해위원회 조사팀장은 '민주공화국(제)'의 역사적 기원을 검토하였다. 1948년 헌법의 '민주공화제'는 단지 미군정에 의해 주어진 명목적인 것이나 특정 정치가의 권력의지 또는 소수 법률가의 헌법이론에 의해 구성된 임의적 산물이 아니라, 1898년 만민공동회, 1907년 황제퇴위사건, 그리고 1910년 한일합방 이후 변화된 민주공화정체 선언 등 19세기말 이래 한국인들의 역사적 실천과 정치적 숙고에 의해 탄생되었음을 이야기하였다. 민주공화국 건설에 대한 광범위한 사회적 합의는 1898년 만민공동회의 정치적 지향 이래 반전을 거듭하며 장기간에 걸쳐 형됭 것이며, 19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공식화 되었던 것이라는 것이다.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1부 토론의 첫번째 지정토론자로 나선 박찬승 한양대 역사학과 교수는 임시정부의 법통성을 강조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임시정부가 다른 독립운동 세력을 배제하지는 않았는지, 일제 36년 간 임시정부의 법통성이 그대로 이어져갔는지도 고려해야함을 지적하였다. 또한 대한민국정부를 수립한 당사자들이 임시정부를 계승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계승과 재건의 대상을 두고 명백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였다.

두번째 지정토론자 김득중 국사편찬위원회 연구원은 '이승만 반공체제'의 그 성립배경으로 분단정권에 대한 지지세력의 협애화와 45년~48년 간 지역민들의 자발적인 대중적 운동의 폭발을 이야기하였다. 이 국면에서 이승만 정부는 계엄령과 국가보안법을 통해 그 누구도 반공국민이 아니면 생존이 불가능한 조건을 창출했고, 저항의 가능성을 가진 대중을 통제하였다. 많은 이들이 죽어서 공산주의자라는 딱지를 달게 되었던 것이다.

세번째 지정토론자 임지봉 서강대 법대 교수는 헌법의 관점에서 광복절이 건국절이 될 수 없음을 주장하였다. 48년 제헌헌법은 임시정부를 '재건함에 있어서'라고 스스로 밝히고 있으며, 현행헌법의 전문에서도 임시정부의 법통, 법적 정통성을 계승한다고 되어 있다. 결국 48년 8월 15일을 건국절로 보는 것은 위헌적인 것이며, 48년 8월 15일을 건국절로 보게 될 경우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의 재산을 몰수하는 법률이 헌법적으로 근거가 사라질 수 있게 됨을 지적하였다.


최태욱 한림대 국제대학원 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2부 종합토론에서도 열띤 토론이 이루어졌다. 정해구 성공회대 사회학부 교수는 뉴라이트 등 일부 우파세력들이 1948년 8월 15일 '건국절'로 만들고 싶어하는 이유는, 그렇게 함으로써 북한의 실체를 부정하고 근대적 국민국가로서 남한 국가의 정통성을 주장할 수 있을 뿐더러 이를 통해 남한 분단국가 수립의 주역이었던 이승만 등 우 파세력의 긍정성을 더욱 부각시킬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우리의 과거 60년의 역사가 근대화의 추진에 있어 성공적인 역사라 할지라도 우리의 안목이 '비판적'이고 '성찰적'이어야 함을 지적하였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는 뉴라이트들이 제기하는 국가정체성에 대한 비판적 관점을 제시하였다. 대한민국의 국가정체성으로 근거 삼을 수 있는 것으로 임시정부의 강령과 제헌헌법 등이 있을 것인데, 실제로 대한민국이 임시정부를 계승했던 것인가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살펴보자는 것이다. 미군정은 조선총독부를 계승한 것이고, 그것이 대한민국으로 이어진 것이고, 다시 그것이 국가보안법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전쟁을 거치면서 급속하게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만들어져 갔고, 그 근거는 헌법이라기보다는 초헌법적 지위를 가진 국가보안법이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김상봉 전남대 철학과 교수는 '건국절' 담론이 나오게 된 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고 지적하였다. 해방 이후의 남한 중심의 편협한 사고방식으로 인해 나라, 역사, 국가라고 생각해보면 남한 밖에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헌법 전문의 3.1운동과 4.19혁명을 계승한다는 점을 이야기하였다. 두 사건의 본질은 현존 국가기구 부정의 정신인데, 이것이 헌법정신의 기초라고 본다는 것이다. 즉 불완전한 국가를 참된 나라로 향해서 부정하고 극복하는 것이 우리의 헌법정신이라고 하였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진술의 사실판단과 가치지향으로서의 이중적 의미를 강조하였다. 사실 판단의 의미로서 유신시대와 전두환 군사독재는 인정될 수 없다. 또한 가치지향의 의미로서 2008년 광장에서 울려퍼진 '헌법 제1조'의 노래는 대통령과 대통령에 의해 구성된 정부가 국민 다수의 뜻을 위반했을 때, 우리 국민들이 민주공화국의 이념을 지키기 위해서 촛불을 들지 않을 수 없었고, 그것이 민주공화국의 이념을 지키는 국민으로 가질 수 있는 당연한 권리이자 동시에 의무를 나타낸다는 것이다.

이병천 강원대 경제학과 교수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헌법적 가치를 탈환해야 함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시장 자유주의에 의해 ‘정치적 자유’는 무너질 수 있는데, 한국의 제헌헌법 뿐만 아니라 삼균주의, 삼민주의는 서구 공화주의와 달리 ‘정치적 자유’를 많이 이야기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사회적 내용을 가져야 함을 지적하였다. 이를 위해 사회운동, 노동운동, 시민운동에서 이야기하는 공공성, 공동의 영역(주택, 토지, 교육, 의료)을 확보해야 할 것이며, 공화국의 새로운 시민으로서 기본적인 능력과 토대를 갖추어야 할 것을 이야기하였다.

<관련기사>
국가 정체성을 묻는다: 이명박 정부의 국가정체성과 건국신화 만들기 (경향신문, 2008.8.18)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 헌법 정신 되살려야” (한겨레, 2008.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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